"사랑과 결혼이 더럽혀지고 있다고 말하는 바다"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3] 안나가 성전에서 기도드리고 하느님께서...

번역 강명준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1/05 [09:56]

"사랑과 결혼이 더럽혀지고 있다고 말하는 바다"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3] 안나가 성전에서 기도드리고 하느님께서...

번역 강명준 변호사 | 입력 : 2018/01/05 [09:56]

[번역 강명준 변호사, 편집 추광규 기자]

 

1944. 8. 23.

 

글을 쓰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 집은 잘 알려진 나자렛의 집인 것 같지 않았다. 최소한 위치가 매우 다르다. 과수원도 더 크고, 그 너머에 밭들도 보인다. 밭이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있기는 있다. 나중에 마리아가 결혼한 후에는 큰 과수원 외에 달리 밭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본 그 방은 다른 환상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재정적인 이유로 마리아의 부모가 그들의 재산의 일부를 처분하였다고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마리아가 성전에서 나와 요셉이 그녀에게 주었을지도 모르는 다른 집으로 이사했다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과거의 환상이나 내가 받은 가르침 중에서 나자렛의 집이 마리아가 탄생한 집이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피로로 인해 머리가 매우 무겁다. 특히 내가 받은 명령들은 내 생각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고 내 영혼을 비추고 있는데도 말은 곧 잊어버린다. 세부사항은 즉시 사라진다. 만일 내가 들은 것을 한 시간 후에 되풀이해야 한다면 주된 한두 개의 문장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에 환상은 내 마음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그것들을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받아쓰기는 내가 듣는 것이고, 환상은 내가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상은 다양한 국면을 통하여 그것을 따라가면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내 생각 안에 더 선명하게 남아 있게 된다.

 

나는 어제의 환상에 대한 설명을 듣기를 바랐는데,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나는 지금 환시를 보면서 쓰기 시작한다.

 

예루살렘 성 밖 야산 위와 올리브나무들 사이에 많은 군중이 있다. 큰 장터 같다. 그러나 가판대도 없고 야바위꾼들과 장사꾼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노름도 없다. 틀림없이 물이 스며들지 않는 거친 모직으로 만든 천막이 땅에 박은 말뚝 위에 펼쳐져 있는데 푸른 가지가 그대로 달린 말뚝에 매여 있다.

 

그 말뚝은 천막을 장식해 줄 뿐 아니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다른 천막들은 땅에 생생한 가지들만을 박아서 산비탈에 묶어 작은 초록 터널처럼 만들어져 있다. 각 천막 아래에서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이 조용히 진지하게 대화하고 있는데, 가끔 어떤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 조용한 분위기를 깨뜨리곤 한다.

 

밤의 어둠이 내리덮이고 작은 기름등잔의 불빛들이 이 이상한 천막촌 여기저기에서 깜빡거린다. 몇몇 가족들이 불빛 주위의 땅바닥에 둘러앉아 식사하고 있는데, 엄마들은 아기들을 안은 채 먹고 있다. 많은 아기들이 피곤한지 불그스름한 작은 손에 아직 빵 한 조각을 쥔 채 어미 닭의 날개 밑을 파고드는 병아리들처럼 엄마의 가슴에 고개를 떨어뜨린 채 잠들어 있다. 엄마들은 한 손으로는 아기를 가슴에 껴안고 한 손만을 움직여 그럭저럭 식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아직 식사를 시작하지 않은 가족들은 음식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어스름한 황혼 빛 속에서 대화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불이 켜지고 그 주위에서 여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느릿느릿하고 구슬픈 자장가가 잠투정하는 아기들을 달랜다.

 

저 위에는 구름 한 점 없이 아름다운 하늘이 점점 더 어두운 푸른색이 되고 마침내 거대한 검푸르고 부드러운 벨벳 휘장처럼 된다. 그 천에 보이지 않는 금은세공사와 장식가들이 보석들과 밤을 밝혀 주는 등불들을 박아 놓은 것 같은데,

 

어떤 것들은 외따로 떨어져 있고, 어떤 것들은 이상한 기하학적인 형태로 모여 있다. 그 가운데 달구지처럼 생긴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가 두드러지게 보이는데, 그 달구지 채는 소들의 멍에가 벗겨진 채 그대로 바닥에 놓여 있다. 북극성은 밝게 빛나며 미소 짓고 있다.

 

 

 

 

 

“몇 년 만에 보는 아름다운 10월이로군!”

 

한 남자의 굵은 목소리를 듣고 나는 지금이 10월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안나가 모닥불로부터 우리의 케이크와 같이 넓고 평평한 빵 위에 펼쳐 놓은 것들을 끄집어내어 두 손으로 들고 온다. 어린 알패오는 안나의 치마를 붙들고 오며 어린아이다운 목소리로 재잘거린다.

 

요아킴은 잎이 우거진 작은 오두막집 문지방에서 30대의 어떤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 안나가 오는 것을 보고는 서둘러 등불을 켠다. 알패오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높은 목소리로 그 남자에게 인사한다.

 

“아빠”

 

안나는 죽 늘어선 천막집들 사이를 위엄 있게 지나간다. 안나는 근엄하지만 겸손하여 누구에게도 거만하게 굴지 않는다. 어떤 여자 거지의 아이가 서투른 걸음걸이로 비틀거리다가 자기의 발치에서 넘어지자 안나는 바로 일으켜 준다. 아이는 얼굴에 흙이 묻은 채 울고 있어, 안나는 어린이를 닦아 주고 달래어 달려와 사과하는 엄마에게 돌려주며 말한다.

 

“오, 괜찮아요. 아이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귀여운 아이네요! 몇 살이에요?”

 

“세 살입니다. 끝에서 둘째 놈인데, 저는 곧 또 한 아이를 낳게 됩니다. 저에게는 아들만 여섯 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딸을 하나 가졌으면 합니다. 딸 하나가 엄마에게는 대단히 소중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당신을 아주 많이 위로해 주셨군요!”

 

안나가 한숨 쉬며 말한다.

 

“그렇습니다. 저는 가난합니다만 저희 아이들은 저희의 기쁨입니다. 그리고 큰 놈들은 벌써 저희 일을 거들어 줍니다. 그런데 부인은 (안나가 더 높은 신분에 속해 있는 것이 분명하고, 그 여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자녀를 몇 명이나 두셨는지요?”

 

“하나도 없어요.”

 

“하나도 없으시다고요? 이 아이는 부인의 아이가 아닙니까?”

 

“아니오. 아주 마음씨 착한 이웃의 아들이지요.”

 

“마님의 아이들은 세상을 떠났습니까? 아니면….”

 

“나는 아이를 가져 본 적이 없어요.”

 

“어머!”

 

가난한 여자는 동정어린 시선으로 안나를 쳐다본다. 안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그 여자에게 인사한 다음 자신의 오두막으로 향한다.

 

“여보, 기다리게 했군요. 어떤 가난한 여자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들만 여섯 명이라는군요. 그런데 글쎄! 얼마 안 있어 또 아기를 낳는대요.”

 

요아킴이 한숨을 쉰다. 알패오의 아버지가 아들을 부르자 알패오가 대답한다.

 

“난 안나 아줌마와 함께 있어요. 나는 아줌마를 도와줄래요.”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웃는다.

 

“가만 놔두세요, 우리를 귀찮게 하지 않으니까요. 이 아이는 아직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어요. 여기 있으나 거기 있으나 그저 먹기만 하는 작은 새에 지나지 않아요.”

 

안나가 말한다. 안나는 앉아서 아이를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고 그에게 빵과 구운 생선을 준다. 아이에게 생선을 주기 전에 무언가 손질하는 것이 보이는데, 가시를 발라내는 것 같다. 안나는 먼저 남편에게 식사를 차려 주고 자기는 나중에 먹는다.

 

밤하늘에는 점점 더 별이 많아지고, 야영지에도 불빛이 많아진다. 그러다가 많은 불빛이 점차 하나씩 꺼진다. 일찍 저녁식사를 한 다음 이제 잠자리에 드는 가족들의 불빛이다. 웅성거리는 소리도 천천히 줄어든다.

 

아이들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젖먹이 아이들 몇 명만이 엄마 젖을 찾는 어린양 같은 목소리를 낸다. 밤은 땅과 사람들 위에 입김을 불어 고통과 기억과 소망과 악감정을 지워버린다. 아니, 마지막 두 가지는 설혹 잠에 의해 완화된다 해도 꿈속에서도 계속 살아 남아 있을 것이다. 안나는 자신의 품 안에서 잠들려는 알패오를 어르면서 남편에게 말한다.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내년에는 제가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축제를 지내기 위해 성도에 올 거라는 꿈이었어요. 한 축제는 제 아이를 성전에 바치는 축제일 거래요. 오! 여보!”

 

“굳센 희망을 가져요, 안나! 다른 말은 못 들었소? 주님께서 당신 마음에 무언가를 속삭이지 않으셨소?”

 

“아무 것도요. 그저 꿈뿐이었어요.”

 

“내일은 기도하는 마지막 날이오. 이미 모든 제물을 다 바쳤지만, 내일 다시 새 제물을 엄숙하게 바칩시다. 충실한 우리의 사랑으로 하느님에게서 은총을 받아낼 거요. 나는 항상 엘카나의 한나에게 일어났던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 왔소.”

 

“하느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를! 저는 ‘평안히 가거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네가 청한 은혜를 허락하셨다!’ 하고 말하는 목소리를 지금 들었으면 좋겠어요(1사무 1, 17).”

 

“은총을 받게 되면 아이가 당신의 태 안에서 처음으로 몸을 돌리면서 당신에게 그렇게 말할 거요. 그것은 무죄한 아이의 목소리일 거고, 따라서 하느님의 목소리일 거요.”

 

이제 야영지는 어둠에 싸인 채 침묵하고 있다. 안나는 알패오를 이웃 천막으로 데리고 가서 이미 잠든 아이의 동생들 옆에 눕힌 다음 돌아와 요아킴 옆에 눕는다. 그런 다음 곧 이어 그들의 작은 등잔불도 꺼진다. 그것은 땅에 있는 마지막 작은 별들 중의 하나였다. 이제는 하늘의 영롱한 별들만이 자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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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의인들은 항상 지혜롭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의 벗들로서 하느님과 함께 살며, 무한한 지혜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배우기 때문이다. 내 조부모들은 의인들이었고, 따라서 그분들은 지혜를 가지고 계셨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하였으며, 지혜를 아내로 맞이할 결심을 하였다(지혜 8, 2)’는 성경의 지혜에 대한 찬미가를 그분들은 정확히 자신들의 삶에 적용하셨다.

 

아론의 안나는 우리 조상이 말하는 용맹한 여자였다. 다윗왕의 후손인 요아킴은 매력과 재물보다는 성덕(virtue)을 더 추구하셨다. 안나는 큰 성덕을 가지고 계셨다. 모든 거룩한 속성들이 향기로운 꽃다발처럼 결합하여 이 특별한 성덕이라는 아름다움을 이루었다. 하느님의 옥좌 앞에 설 만한 진정한 성덕이었다.

 

그러므로 요아킴은 ‘안나를 다른 여자보다 더 사랑함으로써’ 지혜 즉 의로운 여자의 마음속에 좌정해 계시는 하느님의 지혜를 아내로 맞이한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이중으로 지혜를 사랑한 것이다. 아론의 안나도 가정의 기쁨은 충실함에 달려 있다고 확신하고 자기의 삶을 의로운 남자의 삶과 결합시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았다.

 

용맹한 여인의 상징이 되는 데 있어 그분에게 부족하였던 것은 솔로몬이 말하는 아내의 영광이요 결혼의 정당화인 자녀의 화관뿐이었다. 그분의 지복에 있어 부족한 것은 오직 이웃 나무와 결합하여 거기에서 많은 새 열매를 맺고 거기에 두 나무의 장점이 하나로 합쳐지는 나무의 꽃들인 그 자녀들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남편으로 인해서는 어떤 실망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나는 오랜 세월 동안 요아킴의 아내였고, 이제 늙어 가는 요아킴에게 여전히 ‘청춘시절의 아내요 기쁨이며, 지극히 사랑하는 암사슴이자 우아한 새끼사슴’이었다. 그녀의 애무는 여전히 신혼 첫날밤과 같은 신선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었고, 남편의 애정을 감미롭게 매혹하여 그것을 이슬에 젖은 꽃처럼 신선하고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처럼 열렬하게 보존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분들은 자녀 없이 고통을 겪으면서도 ‘당신 자신들의 생각과 걱정 가운데서 서로 위로하는 말’을 주고 받으셨다.

 

때가 오자, 영원한 지혜가 각성된 의식 안에서 가르치는 것 외에도 밤에 꿈을 통하여 그분들을 통하여 오기로 되어 있는 영광의 시의 환상으로 그들을 비추셨다. 그 시는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 내 어머니시다. 겸손으로 인해 머뭇거렸지만, 그분들의 마음은 하느님 약속의 첫 번째 암시에 희망으로 떨었다. ‘굳센 희망을 가져요. 충실한 우리의 사랑으로 하느님에게서 은총을 받아낼 거요’ 하는 요아킴의 말에는 이미 확신이 들어 있다. 그분들은 아이를 꿈꾸셨는데, 하느님의 어머니(the Mother of God)를 얻으셨다.

 

지혜서의 말씀은 그분들을 위하여 쓰인 것 같다. ‘지혜 덕분에 나는 백성 앞에서 영광을 얻을 것이고, 불사불멸을 얻을 것이며, 나의 후계자들에게 영원한 기억을 남겨 놓을 것이다(지혜 8, 13).’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 그분들은 어떤 일에도 흔들림 없는 참되고 영원한 덕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하였다. 믿음의 덕, 사랑의 덕, 바람의 덕, 순결의 덕을 말이다.

 

부부의 순결! 그분들은 부부의 이 순결을 가지고 계셨다. 반드시 동정이라야만 순결한 것은 아니다. 순결한 부부의 침실은 천사들이 지켜 주며, 부모의 성덕을 자신들의 삶의 규칙으로 삼는 착한 자녀들이 그런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가정들이 어디 있느냐? 지금은 사람들이 자녀를 원치 않으며, 그렇다고 순결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과 결혼이 더럽혀지고 있다고 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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