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가 너를 부수고 죽이기 까지 하더라도.."

[발또르따의 예수이야기-8] 마리아가 성전에 바쳐지다

강명준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1/27 [10:11]

"십자가가 너를 부수고 죽이기 까지 하더라도.."

[발또르따의 예수이야기-8] 마리아가 성전에 바쳐지다

강명준 변호사 | 입력 : 2018/01/27 [10:11]

[번역 강명준 변호사  편집 추광규 기자]

 

 

 

 

 

1944. 8. 30.

 

나는 마리아가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서 예루살렘의 거리를 걸어가는 것을 본다.

 

행인들은 눈같이 흰 옷을 입고 매우 가벼운 베일을 쓴 아름다운 소녀를 보려고 걸음을 멈춘다. 가벼운 옷감으로 된 베일 바탕에 더 진한 나뭇잎들과 꽃무늬를 보니 안나가 정결례 날 썼던 베일인 것 같다. 유일한 차이점은 안나에게는 그것이 허리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었는데, 마리아에게는 거의 땅에까지 내려온다는 것인데, 아주 아름다운 가볍고 빛나는 흰 베일이 그녀를 감싸고 있다.

 

어깨 위와 가냘픈 목덜미에 흐트러져 있는 황금색의 머리카락이 베일의 무늬가 없는 옅은 바탕색만 있는 곳에서 반짝인다. 이마의 베일은 하늘색 리본으로 고정되어 있는데, 리본에는 작은 백합꽃들이 은실로 수놓아져 있는데, 틀림없이 엄마의 작품일 것이다.

 

흰 옷이 땅에까지 내려와 마리아가 걸을 때에나 하얀 샌들을 신은 작은 발이 보일 정도다. 긴 소매에서 삐져나온 작은 두 손은 두 개의 목련꽃잎 같다. 리본의 하늘빛 테를 빼고는 다른 빛깔은 없다. 모두 하얗다. 마리아는 눈으로 지은 옷을 입은 것 같다.

 

요아킴은 정결례 때와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다. 안나는 매우 짙은 자줏빛 옷을 입었고, 머리까지 가린 겉옷도 짙은 자주색이다. 안나는 겉옷을 눈 밑까지 올린 채로 있다. 너무 울어서 새빨개진 가엾은 엄마의 두 눈, 울지 않으려고 하지만 겉옷으로 가린 채 울지 않을 수 없는 엄마의 가엾은 두 눈. 겉옷을 내려 쓴 조심성은 행인들과 요아킴도 눈물을 보지 못하게 한다. 평소에는 맑은 요아킴의 눈이 오늘은 아직도 흐르고 있는 눈물로 젖어 있고 흐려져 있다. 터번처럼 꾸민 베일을 쓰고 몸을 많이 구부린 자세로 걷고 있는데, 베일의 두 깃이 얼굴 양쪽으로 늘어져 있다.  

 

요아킴은 많이 늙어 보인다. 손을 잡고 가는 어린 여자 아이의 할아버지나 증조부로 생각할 수 정도다. 딸을 잃는 슬픔으로 인해 가엾은 아버지가 발을 질질 끌다시피 걷는데, 그는 나이에 비해 20년이나 더 늙어 보인다. 너무 낙심하고 풀이 죽어 있어 마치 늙은 병자처럼 보인다. 코 양쪽으로 오늘따라 매우 뚜렷해진 두 개의 주름 사이에서 입이 가볍게 떨린다.

 

두 사람은 눈물을 감추려고 애쓴다. 많은 사람에게 눈물을 감추는 데 성공하지만, 마리아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키가 작기 때문에 마리아는 위쪽을 올려다보는데, 그 시선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이 미소 지으면서 쳐다볼 때마다 떨리는 입으로 미소를 지으려고 애쓰며, 마리아의 작은 손을 꼭 쥐고 있는 손에 힘을 더 준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자, 저 미소를 보는 것이 또 한 번 줄었구나.’

 

그들은 천천히 조용히 걷는다. 가능한 한 가는 시간을 늘리려는 것 같다. 무엇이든 멈추어 서는 핑계가 된다. 그러나 결국 길은 끝나기 마련이다! 여행이 이제 끝나려고 한다. 저기 올라가는 비탈길 마지막 한 토막과 성전을 둘러싼 성벽이 나타난다. 안나가 신음 소리를 내고, 마리아의 손을 힘주어 꼭 쥔다.

 

“사랑하는 안나 언니, 제가 언니와 함께 있어요!”

 

십자로에 있는 낮은 회랑 그늘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말한다. 안나를 기다리고 있던 엘리사벳이 와서 안나를 껴안는다. 안나가 울기 때문에 엘리사벳이 말한다. “일단 친구 집으로 갑시다. 그런 다음 다시 우리 함께 가십시다. 즈카르야도 여기 있어요.”

 

그들 모두가 낮고 어두침침한 방으로 들어갔는데, 빛이라고는 타고 있는 큰 촛불 하나뿐이다. 분명히 엘리사벳의 친구겠지만, 안나가 알지 못하는 여주인은 이 일행을 마음 편하게 해 주려고 조용히 물러간다.

 

“내가 후회한다거나 내 보배를 주님께 마지못해 드린다고 생각하지는 마.”  안나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 아아!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아이 없는 늙은 어미의 고독으로 돌아갈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네가 그걸 느낀다면…”

 

“안나 언니, 나도 그걸 이해해요. 언니는 착하니까 고독한 가운데 하느님께서 위로해 주실 거예요. 마리아가 엄마에게 평화를 주시도록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겠어요?”

 

마리아가 엄마의 손을 쓰다듬고 입 맞추고 자기 얼굴로 가져다가 쓰다듬게 하고, 안나는 두 손으로 그 작은 얼굴을 꼭 싸잡고 입을 맞추고 또 맞춘다. 안나는 입 맞추는 데 결코 싫증내지 않는다.

 

즈카르야가 들어오면서 인사한다.

 

“의인들에게 주의 평화가 있기를.”

 

“그래, 이 아이를 바치는 것으로 인해 가슴이 떨리니 우리를 위해 평화를 빌어 주게. 이것은 아브라함이 제물을 바치려고 산을 올라가던 것과 같네. 우리는 이 아이를 도로 찾기 위한 다른 제물을 발견하지 못했네. 우리는 하느님께 충실하고자 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원치 않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즈카르야, 우리는 괴롭네. 하느님의 사제, 우리를 이해하고 불편해 하지 말게.”

 

요아킴이 말한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허락된 한계를 넘지 않을 줄 알고 자신을 불충한 길로 이끌어가지 않을 줄 아시는 형님의 고통은 지극히 높으신 분을 사랑하도록 저에게 가르쳐 줍니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여예언자 한나가 다윗과 아론의 꽃을 정성껏 돌볼 것입니다. 지금은 이 꽃이 다윗의 거룩한 후손 중 성전에 있는 유일한 백합꽃입니다. 한나는 이 백합을 왕의 진주를 보살피듯이 보살필 것입니다.

 

기한이 다가오고 있고, 다윗 가문의 동정녀에게서 메시아가 나올 것이므로 다윗 후손의 어머니들이 딸들을 바치는 데 마음을 써야 할 터인데,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에 성전 안의 동정녀들의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성전에 동정녀가 너무 적고, 3년 전에 엘리사의 사라가 나가서 결혼한 이후에는 다윗 왕 혈통의 동정녀가 하나도 없습니다. 정해진 시기까지는 삼십 년이 남은 것은 사실입니다만…자, 마리아가 다윗 가문의 동정녀들 중에서 거룩한 휘장 앞에 서는 첫 번째 동정녀가 되기를 바랍시다. 그리고 또 누가 압니까?”

 

즈카르야는 다른 말은 덧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에 잠긴 채 마리아를 내려다보다가 말을 잇는다.

 

“저도 마리아를 돌보겠습니다. 저는 사제이기 때문에 저는 여기서 힘이 있습니다. 이 천사를 위해 그 힘을 활용하겠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벳도 자주 마리아를 보러 올 것입니다.”

 

“오, 그럼요! 저에게는 하느님이 대단히 필요합니다. 이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영원하신 분께 말씀드려 달라고 하겠어요.”

 

안나가 다시 용기를 낸다. 엘리사벳이 한층 더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안나에게 묻는다.

 

“이건 언니의 신부 면사포 아니에요? 아니면 새로 짠 거예요?”

 

“내 면사포다. 나는 이것을 마리아와 함께 주님께 바친다. 이제는 내가 눈이 잘 보이지 않고, 또 세금과 사업실패 때문에 재산이 많이 줄어서 많은 비용을 지출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이 애가 하느님의 집에 있는 동안과 그 후를 위해서 옷가지는 많이 준비해 두었다. 이 애의 결혼식 때 내가 옷을 입히기 위해 거기 참석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애의 결혼식을 위해 준비해 주고, 신부의 속옷과 겉옷을 길쌈하는 손이 차고 생기가 없더라도 엄마의 손이기를 내가 원하기 때문이다.”

 

“아이고!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동생, 나는 늙었어. 이처럼 큰 고통을 느낀 적은 일찍이 없었어. 내 생애의 마지막 힘을 이 꽃을 임신하고 기르느라고 이 꽃에게 바쳤어. 그리고 지금은, 지금은 이 애를 잃는 고통이 내 마지막 힘을 뽑아 흩어 버리네.”

 

“요아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시면 안 돼요.”

 

“자네 말이 옳아. 내 남편을 위해서 나는 살 생각을 하겠네.”

 

요아킴은 즈카르야 쪽에 주의를 기울여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체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었다. 눈에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한숨을 쉰다.

 

“지금은 제3시와 제6시 중간입니다. 이제 갈 시간입니다.”

 

즈카르야가 말한다.

 

그들이 다시 겉옷을 입고 떠나려고 일어서자 마리아가 팔을 벌리고 문지방에 무릎을 꿇는다. 기도하는 작은 케루빔 천사 같다.

 

“아버지! 어머니! 축복해 주세요!”

 

용맹한 어린 소녀가 울지는 않지만 그녀의 작은 입술이 떨리고, 흐느낌을 참느라 약해진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멧비둘기의 떨리는 울음소리 같다. 얼굴은 더 창백하고, 두 눈은 체념한 고통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그 눈빛을 골고타와 예수의 무덤에서 다시 보게 될 터인데, 거기서는 깊은 고통을 겪지 않고는 그녀를 쳐다볼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강한 시선일 것이다.

 

부모는 마리아에게 축복하고 한 번, 두 번, 열 번 입을 맞춘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싫증날 수 없다. 엘리사벳은 말없이 울고 즈카르야는 눈물을 참으려고 애쓴다.

 

그들이 밖으로 나간다. 아까처럼 마리아가 아빠와 엄마 사이에 있다. 앞에는 즈카르야와 그의 아내가 간다. 그들은 이제 성전 담 안으로 들어왔다.

 

“저는 대사제에게 갑니다. 형님 가족은 큰 정원까지 올라가세요.”

 

그들은 마당 셋과 현관 셋을 잇달아 지나 꼭대기가 금으로 덮인 매우 큰 대리석 입방체 밑에 와 있다. 거대한 오렌지 반쪽 같은 볼록한 돔 하나하나가 오정 때가 되어서 태양 빛에 불타고, 장엄한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마당에 반사광을 곧바로 내리비추고, 성전으로 가는 넓고 엄청나게 큰 계단을 눈부신 빛으로 가득 채운다. 다만 정면의 층계를 마주보고 있는 현관만이 그늘져 있고, 청동과 금으로 된 거대한 문은 한층 더 어두워서 환한 빛과 대조가 되어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토록 밝은 햇빛 아래에 서 있는 마리아는 한결 더 눈같이 희다. 마리아가 계단 밑에 가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이 세 사람의 가슴은 얼마나 뛸 것인가! 엘리사벳은 안나에게서 반걸음쯤 뒤에 서  있다.

 

은 나팔 소리가 울리고 문의 돌쩌귀가 돌아간다. 문이 청동 공 위에서 돌고 있는 동안 현악기 소리가 난다. 저 안쪽으로 등불들이 켜진 성전 내부가 보이고 안쪽에서 행렬이 문을 향하여 나온다. 은 나팔 소리와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향과 불빛을 곁들인 장엄한 행렬이다.

 

행렬이 이제 문지방에 와 있다. 맨 앞에 대사제가 있다. 아주 고운 아마포로 만든 옷을 입고, 그 위에 역시 아마포로 만든 더 짧은 웃옷을 입고, 또 그 위에 제의와 부제복 중간치 같은 일종의 제의를 입은 엄숙한 노인이다. 그 제의 같은 옷은 여러 가지 색으로 되어 있다. 주홍과 금빛, 자주와 흰빛이 번갈아가며 있는데, 햇빛에 보석처럼 반짝인다.

 

진짜 보석 두 개가 어깨 높이쯤에서 한층 더 선명하게 반짝인다. 그것들은 아마 귀금속을 물린 고리들인 것 같다. 가슴에는 금사슬로 지탱되는 보석들로 번쩍거리는 넓은 판이 달려 있다. 늘어뜨린 보석 장신구와 다른 장식들이 짧은 웃옷 아래쪽에서 빛나고 이마의 관 위쪽에서 금이 빛나고 있다. 가톨릭의 주교관처럼 위가 뾰족하지 않고 둥근 그 관은 정교회 신부들의 관을 생각나게 한다.

 

장엄한 인물이 혼자 현관 앞 계단이 시작되는 데까지 나와 황금 햇빛을 받으니 한층 더 찬란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문밖의 그늘진 현관에 둥그렇게 늘어서서 기다린다. 왼편에는 흰옷을 입은 처녀 한 떼가 여예언자 한나와 나이 든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있는데, 그 여자들은 선생들인 모양이다.

 

대사제가 어린 소녀를 내려다보며 미소 짓는다. 이집트의 신전에도 어울릴 만한 현관 앞 계단 밑에 있는 이 소녀는 몹시도 작게 보일 것이다. 그가 기도하며 하늘로 팔을 치켜든다. 모든 사람이 엄위하신 분과 영원히 함께하는 사제의 위엄 앞에서 겸손하게 머리를 숙인다.

 

그런 다음 그가 마리아에게 어떤 신호를 한다. 마리아는 아빠와 엄마를 떠나 홀린 듯이 계단을 올라간다. 마리아는 성전의 그늘진 곳, 귀중한 휘장이 내려오는 곳에서 미소 짓는다. 마리아가 현관 앞 계단 위로 올라가서 대사제의 발 앞에 서자 대사제가 그의 머리에 두 손을 얹는다. 희생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성전은 이보다 더 깨끗한 제물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다음 대사제는 몸을 돌이켜 티 없는 어린양인 마리아를 제단으로 데려가려는 듯이 한 손을 마리아의 어깨에 얹고 성전 문을 향하여 데려간다. 마리아를 성전에 들여보내기 전에 대사제가 묻는다.

 

“다윗의 후손 마리아야, 이것이 네 서원이냐?”

 

“예.”

 

은처럼 울리는 대답이 들리자 대사제가 외친다.

 

“그럼 들어오너라. 내 앞에서 걷고 완전하게 되어라.”

 

마리아가 들어가고 어둠이 그를 집어삼키자 동정녀와 선생들의 떼와 그 뒤를 따라가는 레위 인들이 마리아를 가리고 떼어 놓는다. 마리아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문의 돌쩌귀가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며 문이 닫힌다. 점점 좁아져 가는 열린 틈으로 지성소를 향하여 걸어가는 행렬을 볼 수 있다. 좁은 틈으로 실처럼 가늘게 보이다가 이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문이 닫힌 것이다.

 

문의 돌쩌귀가 내는 마지막 소리 후에 두 노인의 흐느낌과 오직 두 마디 외침이 들린다. “마리아야! 내 딸아!”

그런 다음 서로를 부르는 두 신음소리가 들린다.

 

“안나!”

“요아킴!”

 

마지막으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마리아를 당신 집에 받아들여 당신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미합시다.”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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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대사제가 말했다. ‘내 앞에서 걸어라. 그리고 완전하여라.’ 대사제는 완전함에 있어서 하느님 바로 다음인 여자에게 말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였기에 그의 명령은 신성한 것이었다. 그것은 항상 신성한 것이었지만, 특히 지혜가 가득한 그 여자에게 그러하였다.

 

마리아는 ‘지혜가 그녀 앞에서 인도하며, 맨 먼저 그녀에게 나타나게 할 만한’ 자격을 얻었다. 그것은 ‘인생의 시초부터 지혜의 문을 주시하고, 사랑을 위하여 배우기를 갈망하며, 완전한 사랑을 얻고, 지혜를 선생으로 모실 자격을 얻기 위해 순결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겸손하기 때문에 자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혜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과, 지혜와의 결합은 천국에서의 숭고한 박동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마리아는 그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하느님께서 그에게 숭고한 말씀을 하실 때 그녀는 그것이 교만에서 오는 생각이라 여기고, 하느님께로 죄 없는 마음을 들어 올리며 말씀드리는 것이었다.

 

‘주님, 당신의 여종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아아! 참으로 지혜로운 여자, 영원한 동정녀는 인생의 시작부터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가지지 않았다.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 기도하면서 주님을 위해 파수보며, 그의 겸손이 확신케 하는 대로 자기 마음의 약함에 대하여 용서를 청하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그것이 나중에 십자가 밑에서 죽어가는 자기 아들과 함께 하게 될 죄인들의 용서를 비는 일을 미리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위대하신 주님께서 원하실 때 지혜의 성령을 가득히 받게 되어’ 마리아는 자기의 숭고한 사명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어린 계집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성전의 거룩한 평화 속에서 하느님과의 관계와 애정과 기억들을 점점 더 긴밀하게 형성하고 재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작은 마리아야, 너를 위해서는 선생이 말할 특별한 것이 아무 것도 없겠느냐? ‘내 앞에서 걸어라. 그래서 완전하게 되어라.’ 나는 거룩한 말을 약간 바꾸어서 너에게 명령으로 준다. 사랑에 있어 완전하고, 너그러움에 있어 완전하고, 인내에 있어 완전하게 되어라.

 

다시 한 번 내 어머니를 보아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는, 무시하기를 원하는 고통에 대하여 묵상해라. 고통은 그들의 구미와 영혼에 너무 기분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인생의 시작부터 고통을 당하였다.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완전하다는 것은 완전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희생의 고통이 더 심하였고, 그래서 그 희생이 더 공로가 되기도 하였다. 순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랑을 가지고 있고,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너그러움과 영웅적인 용맹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누구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십자가가 네 몸을 휘게 하고, 너를 부수고 죽이기 까지 하더라도 네 영혼을 들어 올려라. 하느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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