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킴과 안나는 올바른 양심으로 일생을.."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9] 요아킴과 안나의 죽음

강명준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1/28 [07:22]

"요아킴과 안나는 올바른 양심으로 일생을.."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9] 요아킴과 안나의 죽음

강명준 변호사 | 입력 : 2018/01/28 [07:22]

 

 [번역 강명준 변호사  편집 추광규 기자]

 

 

 

 

 

1944. 8. 31.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마치 살을 에는 바람이 하늘에 구름을 모아 놓는 겨울의 빠른 황혼처럼, 내 조부모는 그분들의 태양이 성전의 거룩한 휘장 앞에서 빛나려고 거기에 자리 잡은 다음부터 급속히 쇠약해졌다. 그러나 이런 말이 있지 않느냐?

 

‘지혜는 자기의 아들들을 기르고, 자기를 찾는 자들을 보호한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지혜를 기다리는 사람은 그 평화를 즐길 것이다. 지혜를 섬기는 사람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만일 그가 자신을 지혜에 의탁하면, 그의 자손들은 지혜를 소유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혜는 시련 중에 그와 동행하기 때문이다. 맨 먼저 지혜는 그를 선택하여, 두려움과 혼미함을 그에게 가져와, 지혜의 훈계로 그를 갈아엎는데, 그의 생각을 시험하여, 그를 믿을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한다. 결국 지혜는 그를 견고케 하여, 그를 곧은길로 돌아오도록 인도하고, 그래서 그를 기쁘게 한다.

 

지혜는 자신의 비밀을 그에게 드러내고, 지식의 보물들과 정의의 지식을 그 안에 넣어준다(집회 4,11-18).’ 그렇다. 이 모든 말이 쓰여 있다. 지혜의 책들은 거기서 자기 행동을 위한 빛을 얻는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지혜를 영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나는 나의 인성의 친척들 중 현인들에게 둘러싸였었다. 안나, 요아킴, 요셉, 즈카르야, 엘리사벳, 세례자. 이들이 진짜 현인들이 아니냐? 지혜의 거처(the abode of Wisdom)인 내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다.

 

지혜는 내 조부모에게 젊었을 때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뜻에 맞는 생활방식을 알려 주었다. 지혜는 자연의 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천막처럼 그분들을 죄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였다.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은 지혜 나무의 뿌리와 같다. 그 나무는 우뚝 솟고, 가지를 멀리 넓게 뻗는데, 그 꼭대기에는 평화 속에 고요한 사랑이, 안전 속에 평화로운 사랑이, 충실 속에 안전한 사랑이, 그 강한 힘 속에 충실한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은 성인들의 전적이고, 너그럽고 효과적인 사랑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을 유산으로 소유한다(집회 4,12)’고 집회서는 말한다. 이 문장은 ‘나로 인해 생명을 잃는 사람은 그것을 구할 것이다(마태 16, 26)’라는 내 말과 연결되어 있다. 가련한 이 세상의 생명에 대한 말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한 말이며, 한 시간 동안의 기쁨에 대한 말이 아니고 불멸의 기쁨에 대한 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아킴과 안나는 지혜를 사랑하셨고, 지혜는 시련 중에 그분들과 함께 있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고통스럽거나 울 일이 없기를 원하고 있다. 단지 너희 스스로가 완전히 악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저 두 의인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으셨느냐! 그리하여 마침내 그분들은 마리아를 딸로 가질 자격을 얻으신 것이다. 정치적인 박해로 인해 그분들은 다윗 가문의 땅에서 쫓겨나셨고, 극도로 가난해지셨다. ‘제가 두 분을 계승합니다’ 하고 말할 꽃 한 송이 없이 자신들이 늙어 가는 슬픔을 느꼈다.

 

또한 그 다음에는 늙어서 그 꽃을 얻었기 때문에 그분들이 그 꽃이 활짝 피어나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는 걱정, 그 꽃을 마음에서 억지로 떼어내 하느님의 제단으로 가져가야 하는 일, 그리고 또 그 귀여운 멧비둘기의 노래와 작은 발걸음 소리와 자기들의 딸의 미소와 입맞춤 따위에 익숙해졌는데, 더 무거운 정적 속에서 살면서 그 추억과 더불어 하느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 병, 기후 불순에서 오는 재난, 권력자들의 오만 따위가 그분들의 조촐한 재산이라는 약한 성을 치는 파성추의 타격들이었다.

 

이것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홀로 가난하게 멀리 떨어져 있고, 자기들의 정성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얼마 안 되는 재산밖에 가지지 못하게 될 딸에 대한 염려. 그리고 마리아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러 해 동안 경작되지 않고 방치된 채로 남아 있으면 마리아가 돌아올 때 그 재산은 어떤 상태일 것인가 하는 걱정, 두려움, 시련, 그리고 유혹. 그런데 항상 하느님께 충실하고, 충실하고, 또 충실하셨다.

 

가장 심한 유혹은 끝나가는 자신들의 생애에 딸이 곁에 있음으로써 받는 위안을 거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녀들은 부모에게 속해 있기 전에 먼저 하느님께 속해 있다. 그래서 어떤 자녀라도 내가 어머니께 말씀드린 것과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제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하고 말이다.

 

모든 아버지와 모든 어머니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배우기 위해서는 성전에서는 마리아와 요셉을, 나자렛의 집에서는 요아킴과 안나를 보아야 한다. 나자렛의 그분들 집은 날마다 점점 비어가고 쓸쓸해져 갔지만,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커가는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두 마음의 거룩함과 결혼의 거룩함이었다.

 

몸이 불편한 요아킴과 애달픈 아내 안나에게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길고 고요한 저녁시간을 밝혀 줄 어떤 빛이 남아 있었느냐? 멀리 떨어져 있는 어린 딸의 작은 옷들과 처음에 신었던 작은 샌들, 가엾은 장난감들과 추억들이다. 그리고 그 추억들과 더불어 그분들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는 평화다. ‘나는 괴롭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에 대한 내 사랑의 의무를 다하였다.’

 

그 때 천상의 빛으로 빛나는 초인적인 기쁨이 왔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그 기쁨은 무거운 눈꺼풀이 죽어가는 두 눈에 덮일 때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쁨은 마지막 시간에 더 빛났고, 그분들의 일생을 통하여 그들 안에 숨어 있던 진리를 빛나게 하였다. 마치 고치 속의 나비처럼 그분들 안의 진리는 그 진리의 존재에 대한 희미한 암시만을 주고 부드럽게 비추기만 했었는데, 이제 태양을 향해 날개를 펴고 그 아름다운 장식들을 보여 준다. 그분들의 입술에 하느님에 대한 마지막 찬미가 피어나는 동안 그분들과 그분들의 후손들을 위한 복된 미래를 아는 가운데 목숨이 꺼져 갔다.

 

내 조부모님의 죽음은 이러하였다. 그분들의 거룩한 삶에 합당한 죽음이었다. 거룩함으로 인해 그분들은 하느님께 사랑받는 여인의 첫 번째 보호자가 되는 자격을 얻으셨다. 더 큰 태양이 와서 그분들의 생애 끝 무렵에 그분들을 비추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분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은총을 깨닫게 되었다.

 

그분들의 성덕으로 인해 안나는 해산의 고통을 겪지 않으셨는데, 그것은 티 없는 아기를 잉태한 여인의 황홀이었다. 두 분 모두 임종의 고통을 겪지 않으셨고, 새벽에 해가 뜰 때에 별이 부드럽게 사라지는 것처럼 꺼지는 생명의 무기력만을 겪었다. 그리고 요셉처럼 사람이 된 지혜인 나를 소유하는 위로는 받지 못하셨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 현존으로 그분들 곁에 있으면서, 승리의 날이 올 때까지 평화 속에 잠드시게 하기 위하여 그분들의 머리맡에 몸을 숙이고 숭고한 말을 속삭여 드렸다.

 

‘그들도 아담의 후손이었는데 출산할 때와 죽을 때 어떻게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할 것이다.

 

내 대답은 이렇다. ‘세례자도 아담의 후손이었고, 원죄를 가진 채 잉태되었는데도 단지 내가 그 어머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는 이유만으로 그 어머니의 태 안에서 나에 의해 미리 성화되었는데, 거룩하고 흠 없는 분(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에게 아무런 은총이 허락되지 않았겠는가? 그 분은 하느님에 의해 보존되고, 신성한 영혼과 지극히 깨끗한 마음 안에서 하느님을 낳고, 성부에 의해 태 안에서 창조되고 수태되었으며, 영광 중에서 영원히 하느님을 소유하도록 하늘에 받아들여진 분인데, 그분의 어머니에게 아무런 은총이 없었겠는가 말이다.”

 

나는 또 대답한다. ‘올바른 양심은 평온한 죽음을 주고 성인들의 기도는 너희에게 그 같은 죽음을 얻어 준다.’

요아킴과 안나는 올바른 양심으로 일생을 사셨다. 죽는 순간에 그 올바른 삶이 아름다운 정경처럼 일어나 그분들을 하늘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그분들에게는 하느님의 성막 앞에서 기도하는 거룩한 딸이 있었다. 그 딸은 부모님을 최고의 선(Summum Bonum)이신 하느님 다음 자리에 놓고, 율법과 그녀의 감정이 명하는 대로 사랑하되 완전한 초자연적 사랑으로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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