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그 다음, 이제 북한 핵은 어찌할 것인가

김양수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2/12 [17:34]

평창 그 다음, 이제 북한 핵은 어찌할 것인가

김양수 칼럼니스트 | 입력 : 2018/02/12 [17:34]

[신문고뉴스] 김양수 칼럼니스트 = 1945430. 나치 독일의 패망이 임박했을 때, 히틀러는 베를린 지하벙커에서 자살한다. 그는 후계자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람을 지목한다. 후계자는 정치와는 별로 인연이 없던 해군의 되니츠 제독이었다. 되니츠는 딱 1주일간 나치 독일의 총통을 역임했는데, 그가 총통으로서 의미 있게 완수한 일은 독일의 무조건 항복 단 한가지뿐이었다.

 

히틀러의 자살 당시, 상식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치 독일의 멸망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상태였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도 나치독일의 존속을 믿었던 사람들이 극소수 존재했다. 친위대장 히믈러와 공군 원수 괴링이 그런 망상에 사로잡힌 인물에 속한다. 그들은 베를린에 고립된 히틀러 대신 연합군과의 단독강화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고 실제로 이를 실행에 옮기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망상은 히틀러가 되니츠를 후계자로 지명함과 동시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군통수권과 최고지도자라는 정통성을 상실한 히믈러와 괴링은 순식간에 전범으로 지목되어 히믈러는 체포 즉시 자결하고, 괴링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은 직후 역시 감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런데 히믈러와 괴링은 무슨 근거로 그들의 단독강화가 성공하리라 확신했을까? 만약 히틀러가 되니츠 대신 히믈러나 괴링을 후계자로 지목했다면 정말로 단독강화가 가능했을까?

 

히믈러와 괴링이 희망을 걸었던 것은 연합국 중 미국과 소련의 분열이었다. 그들은 독일이 패망하면 전쟁은 소련과 미국의 패권 다툼으로 이어질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다면 미국을 부추겨 소련을 견제하는데 자신들을 유용한 도구로 사용해달라고 제안하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 연합국은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 계산했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 우리는 그 답을 명백히 알고 있다. 답은 천만에.’이다. 세상만사 타이밍이 중요하다. 만약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직후, 혹은 승승장구하던 서방 연합군의 공세를 격파한 마켓가든 작전 직후에 독일이 서방측에 단독강화를 제안하여 소련을 견제하자고 제안했다면(물론 그랬다 해도 서방은 독일의 강화 제안을 묵살했을 것이지만) 454월보다 강화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히믈러와 괴링이 단독강화를 제안하려 했을 즈음의 독일군은 군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리만치 괴멸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그렇게 거덜 난 국가와 군대를 상대로 강화협정을 한다? 불쌍하게도 히믈러와 괴링은 이미 그들에겐 협상의 상대방에게 내밀 수 있는 카드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2018년 새해 벽두.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은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깜짝 제안을 한다. 하지만 김정은의 파격적 제안보다 나를 더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북의 발표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반응이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전광석화로 진행되었다. 올림픽 개막식에는 주최국의 국기 대신 한반도 기가 나부꼈고, 정유라의 이대입학을 적폐로 규정했던 문재인은 단일팀이라는 명분으로 아이스하키팀에 북한선수들을 낙하산으로 꽂았다. 1억원 가까운 혈세를 써가면서 북한 체제 선전의 도구로 지목되던 마식령 스키장에 우리 선수들 훈련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올림픽이 개막되자 김여정을 비롯한 북한 최고위 인사들이 남한을 방문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극적인 화해 무드를 조성하기까지 한다. 그 결과 수구보수의 비아냥 대로 평양올림픽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창올림픽은 평화올림픽이라는 이슈에 매몰되어 버렸다.

 

 

▲ 극립극장 북한 삼지연예술단 공연을 북한 김영남 김여정 등 고위급 대표단과 함께한 문재인 대통령 부부.     © 청와대 공동사진단

 

 

나는 문재인 정부의 고충을 이해한다. 죽은 권력인 이명박과 박근혜를 향한 이른바 적페청산 비즈니스는 순항 중이지만 부동산 폭등, 최저인금 인상, 가상화폐 폭락, 연이은 대형 참사 등 국민 실생활에 직결되는 문제에는 해가 바뀌어도 가시적 성과는 커녕 악재만 이어지는 상황에서 하락세로 돌아선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한 이벤트가 절실했을 것이다.

 

반면 숨 가쁘게 핵 무력 확보를 향한 벼랑 끝 행보를 이어오던 북의 김정은 또한 그간의 무모하고 저돌적인 전술을 대신할 치고 빠지기 차원의 외교적 제스처가 필요함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하나다.’ 라는 감성을 자극하는 남북의 밀월 무드는 결국 이러한 양측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게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정상회담까지 거론되는 남북대화의 급진전, 하지만 이는 그동안 북핵 확보 저지를 위해 유엔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제제 움직임과 미국과 일본의 강경한 입장을 고려한다면 명백히 문재인 정권의 대북 단독강화에 해당하는 외교정책이다.

 

나는 문재인 정권의 단독강화 시도를 잘못된 것이라 평가 절하할 생각은 없다. 때로 정치는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경우가 적지 않다. 외교의 경우라면 결과론의 위력은 더욱 커진다. 명분과 과정이 아무리 부정의하고 불합리하더라도 그 외교가 우리의 안녕과 번영을 담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선택과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문재인 정권이 시도하는 대북 단독강화도 마찬가지다.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위협을 일소하고 남과 북이 평화공존하며 통일을 이를 수 있다면 나는 한미일 공조나 대북 국제제제 따위는 쓰레기통에 처넣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재인은 김정은과의 단독강화로 과연 아름다운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목표 실현이 가능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되니츠는 연합국을 상대로 독일에는 그 어떤 카드도 남아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국민의 생명을 하나라도 더 구하기 위해 무조건 항복을 선택했다. 반면 히믈러와 괴링은 정반대의 망상 속에서 자신들이 서방을 상대로 강화협상을 성사시키리라 믿었었다. 협상 파트너인 연합국은 그들을 이미 전범으로 단정하고 단죄할 날만을 벼르고 있었는데 말이다.

 

문재인의 단독강화가 성공하려면 전 세계가 북에 요구하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다름 아닌 북의 핵 포기선언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권에게는 북의 핵 포기를 견인할 비장의 카드가 있을까? 당연히 나는 그 카드가 무엇인지, 아니 존재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북한 정권에게 있어 핵이 의미하는 바가 자신들 체제수호의 의미와 직결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그러면 단독강화를 위해 우리가 치러야할 대가의 크기 또한 어렵지 않게 짐작 가능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우리가 내밀어야 하는 카드는 단일팀에 북한 선수 몇 명 넣어주는 것이나, 김여정을 서울로 불러 좋은 밥 대접하며 환대하는 차원과는 비교 불가능한 성격이 되리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에 속한다. 문제는 그 정도 엄청난 카드를 과감하게 내밀 수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 사회의 북한에 대한 인식과 통일에 대한 담론이 큰 균열 없는 합의를 이루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 문재인 정권이 야당에 취하고 있는 스텐스를 보면 어렵지 않게 도출할 수 있다고 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문재인 정권은 그들 친문, 친노 정파가 아닌 다른 정파에 대해 평창 올림픽을 통해 북한 정권에게 보여주고 있는 평화의 자세와 화해의 메시지를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보낸 적이 있었을까. 답은 역시나 천만에이다.

 

남남 갈등도 치유하지 못하는 문재인 정권의 대북 단독강화. 까칠한 시각으로 보자면 지금 문재인 정권의 대북 단독강화는 지지율 상한가를 유지하는 대통령과 여당이 정국을 주도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상쇄하기 위한 친문세력판 북풍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마 노무현이 그랬던가. ‘다른 것은 다 깽판쳐도 남북관계만 잘되면 된다.’라고. 나는 문재인의 단독강화가 부디 그 연장선에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명박의 단죄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그럼 도대체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집요한 댓글 놀이를 이어갔던 것으로 안다. 그래서 나는 문재인의 대북 단독강화를 지켜보며 더도 말고 딱 한마디 질문만 남기려 한다. ‘그럼 도대체 북핵은 어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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