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필 후계자 자임 정창교, 관악구청장 출마 선언

임두만 기자 | 기사입력 2018/03/02 [14:16]

유종필 후계자 자임 정창교, 관악구청장 출마 선언

임두만 기자 | 입력 : 2018/03/02 [14:16]

[신문고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3월이 시작되면서 지방선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성남시장직을 사퇴했으며, 앞서 성남시장직 도전을 위해 은수미 청와대 비서관이 사퇴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뉴스 말고도 전국에서 유무명 후보들의 출마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 관악구청장 선거에 정창교(57) 전 관악구청 정책실장이 출마를 선언했다.

 

정씨는 자칭 타칭 관악의 스티브 잡스-스티브 창교‘로 불린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스티브 창교로 불리는 것은 그의 외모 이미지가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를 닮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풍부한 아이디어로 관악의 변모를 이끌어 왔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 정창교 전 관악구청 정책실장의 출마선언 예고 포스터     © 임두만

 

우선 정 전 실장은 자신이 총선의 낙선 경험자임에도 자신의 낙선 경험과 민주당 당료생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 등을 역임하여 연구한 선거 자료집 당선노하우99'라는 명저를 낸 베스트셀러작가다. 그래서 그동안 각종 선거에서의 예비 출마자들에게 선거 선생님으로 불리며 강연요청이 쇄도하기도 했다. 이에 정씨의 출마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지난 228일 재직하던 관악구청에 공식적으로 사표를 낸 정창교씨는 지난 8년간 현 유종필 관악구청장과 동고동락(同苦同樂)’했다. 유종필을 만나 공무원이 되었으므로 그 스스로 자신을 어공(어쩌다 공무원)...(반대말은 늘공....늘 공무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지난 8년간 관악구를 인문학 도시 관악, 도서관구 관악, 메니페스토실천구 관악의 명성을 갖게 만든 일등공신으로 자부한다. 그래서 자신의 공무원 생활 8년을 담은 저서 관악에서 만난 유종필과 정창교를 내고 오는 14일 저자 사인회 겸 출판 기념회도 개최한다.

 

또 관악구 정책실장 직을 사임하면서 공식 출마선언을 한 그는 자신의 출마의 변 또한 유종필의 계승자로 말할 정도로 유종필 현 구청장과 밀접한 관계를 인정한다.

 

실제 정창교씨의 관악구청 정책실장 8년은 그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터닝포인트로 볼 수 있다. 그 이전의 그는 운동권 출신 노동운동가에 선거 낙방거사라는 이미지가 강했으나 지금은 아이디어가 풍부한 지방행정가 이미지가 훨씬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씨는 자신이 직접 출마하여 낙선한 제17대 총선 출마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 기반으로 노동자, 야학교사, 민주노총 인천지부 실무자, 인천 택시노조 사무국장 등을 지내는 10년 동안 감옥을 세 번 다녀왔다. 1992년 결혼했으나 당시 인천지역노조협의회에서 받는 월급 3만원으로 생활하기가 힘들어 새벽에 우유배달을 했다고 한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그의 아내는 노조 매점에서 물건을 팔았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1961년생인 정씨는 전남 구례가 고향이다. 구례중앙초에 입학했다가, 광주계림초등학교로 전학 졸업한 뒤, 광주동신중학교, 광주고등학교를 나왔다. 구례 산골 출신이 광주의 명문 광고를 졸업하고 1981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에 입학, 동네와 부모의 자랑이 되었다.

 

하지만 80년 광주의 아픔을 아는 그는 서울대 입학 후 곧바로 전두환 군부정권에 대항하는 학생운동권 활동을 하다가 대학 1학년 때 강제징집을 당해 강원도 양구의 백두산부대에서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제대 후 다시 복학했지만 이후 세 차례의 제적과 복학 끝에 15년만인 1995년에 졸업했다.

 

그가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한 이유도 바로 대학을 15년 다닌 때문이다. 그는 대학 제적 뒤 1985년 인천 부평구 백마교회에서 야학교사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15년간 인천지역 노조협의회 교육부장, 전국택시노조 연맹 인천시지부 사무국장 등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 당시 이런 활동 등과 관련 세 차례의 옥고를 치른다. 이 때문에 그는 지금 민주화운동유공자다.

 

정창교가 정치에 입문하고 낙방거사가 된 인연도 남다르다. 그는 제 1회 지방선거가 치러진 1995년 택시기사 출신을 인천 시의원에 출마시켜 당선되게 만든다. 이후 민주당에 입당, 지구당 사무국장, 국회의원 보좌관, 시당 정책전문위원으로 활동한다그리고 이 활동이 중앙정치권에 알려지면서 2000년부터 10여 년 간 민주당 중앙당 기획조정국장, 정세분석국장, 국회정책연구위원(차관보급) 등으로 일하게 된다.

 

이때 민주당은 정당 사상 최초로 전자투표(2000), 국민경선제(2002), 모바일투표(2007) 등을 실시한다. 이런 혁신적인 아이디어 창고가 정창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2003년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으로 분당되었으며, 2004년 총선은 노무현 탄핵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이때 정창교는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민주당 후보로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탄핵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낙선한다.

 

이후 다시 2005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 정치 컨설턴트로 활동을 시작, 2006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연수원장으로 매니페스토운동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국회매니페스토연구회 실행위원으로 입법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 자신이 관악구청 정책실장이 되면서 관악구를 메니페스토 실천 1위 자치구로 만들어 내는데 기여했다.

 

유종필-정창교 콤비의 관악 8년은 달동네 관악’ ‘가난한 관악이미지를 전국 제1의 도서관구로 만들면서 인문학도시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지난 7년간 관악구에서 진행된 인문학 강의는 강의에 참여한 인원만 11만여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끓었으며,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을 통해 독서동아리에 도서구입비 문화체험비 등을 지원하거나 어르신 자서전 출판 등을 지원하는 등으로 구민들을 흡족하게 했다.

 

또 사법시험 폐지로 인한 원룸 공실로 주변 상권이 죽어가는 대학동(신림동) 고시촌의 문화촌으로의 변신을 위해 입주 문화인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시도, 신림동영화제 등이 활성화 되면서 관악구가 단편영화 제작 메카가 되도록 하기도 했다. 그 외 주변 관악산과 낙성대 등의 유휴 토지 빈터를 이용한 도시농업을 시도, 구민들에게 각광을 받으면서 도시농업을 선도하는 관악구 이미지를 심거나, 전체 주민의 39.3%20~30대 청년으로 구성돼 있는 청년도시관악의 미래를 위한 사업도 전개 중이다.

 

즉 사법고시 폐지로 위축돼 있는 고시촌 활성화 사업’, 2017 마을관광사업 일환으로 조성된 박종철 거리 활성화 사업등 청년들의 창의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지원하고 마을공동체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청년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공모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아이디어가 풍부한 그는 지금 페이스북을 바탕으로 한 sns선거운동에 승부를 걸고 있다. 그래서 그 자신의 구청장 출마선언도 페이스북 생중계를 통해서 하겠다고 예고, 수많은 지지자들의 좋아요공세와 댓글지지 공세를 받고 있다. 따라서 그의 구청장 출마선언도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가 구청장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관문은 가파르다.

 

우선 민주당 공천 관문인 당내경선 통과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유종필 관악구청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현역 프리미엄이 사라진 관악구청장에 출마의사를 밝힌 이는 정경찬 전 관악구 부구청장과 박준희·신언근·허기회 시의원으로 이들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아이디어 뱅크로 인정을 받아 자칭타칭 관악 스티브잡스로 불리는 정 전 실장의 도전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매우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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