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없는 대통령을 등에 업고 최순실이 국정을 농당했던 불행에 대해 역사는 일찍이 이를 예언했었다.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모습으로 경고했건만 우리는 간과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백 여 년 전, 같은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명성황후의 비선실세 진령군으로 알려진 무당 이성녀, 그녀의 푸닥거리에 망국으로 향해가던 조선은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왕과 왕비를 등에 업은 그녀는 십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당시 칠천으로 괄시받던 무당임에도 양반을 비롯한 모든 이가 머리를 조아렸고 관리의 임면권까지 손에 쥘 정도로 온갖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렸다. 혜안이 흐려진 왕과 왕비는 충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불쌍한 민초들의 고혈을 쥐여 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픈 상처를 살뜰히 어루만지기는커녕 차갑게 외면하고 잔인하게 탄압하였다. 외세의 압력과 개화의 물결로 혼란한 조선은 그녀가 푸닥거리를 할 때마다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쓰러져가고 그녀의 흉물스런 곳간에는 더 많은 재물이 쌓여갔다. 나라의 근간인 백성들을 저버린 지도자는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고 진령군 여대감으로 위세 등등하던 무당 이성녀도 그에 합당한 역사의 심판을 받아들였다.
작금의 기쁨을 누리는 것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수치스러워 떠올리기 조차 싫은 과거의 상처를 수없이 되새기며 백 년 전 이 땅에 일어난 같은 비극이 백 년 뒤 또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늘 깨어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한 시대를 살아가고 한 역사를 만들어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하기에 이 책의 목적 또한 또 다시 반복되는 역사를 겪지 말자는 것이다. 그 불행한 시간을 다시 되돌려 온전히 이야기로 되살려 다시 보여주는 이유는 또렷이 각인하여 다시는 역사의 비극을 겪지 말자는 하나의 노력이다. 백 여 년 전의 일을 담고 있지만 지난 해 대한민국의 모든 이의 가슴을 후벼 판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강도에는 징과 제금소리로 가득하다. 배고픔에 지친 백성들이 물비린내가 가득한 강을 향해 손바닥이 찢어질 정도로 치성을 올리고 화려한 홍천륙을 걸친 무녀가 무아지경에 빠진 듯 검무를 추고 있다. 이윽고 방금 갓 지은 밥수레들이 하나 둘씩 굿판으로 들어오자 다 죽어가는 얼굴로 치성을 올리던 가련한 이들의 눈에 살기가 어리기 시작한다.
수레 가득 실은 밥들이 검푸른 강 위로 쏟아지자 누구랄 것 없이 강으로 뛰어들기 시작하며 난장판이 된 굿판과 밥을 주워 먹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참혹한 광경, 모두가 당황하나 단 한 사람, 신명나게 검무를 춘 진령군 만이 흐뭇하게 웃고 있다. 미소 짓는 신어미를 보며 진저리를 치는 신아들 길생, 은밀한 비밀을 지니고 관왕묘에 숨어든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달콤한 제안에 손을 내민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하는데...
소설가, 각본가, 칼럼니스트(시니어 신문 역사 칼럼 연재 중). <출간작> <시나리오> <저작권자 ⓒ 신문고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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