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문칼럼] 세월호 침몰 그날, 대통령의 靑 관저에서는

검찰 4년 이어진 질문에 한층 진전된 답은 ‘7시간의 봉인’이 마침내 풀린 셈

이강문 영남본부장 | 기사입력 2018/04/16 [02:26]

[깡문칼럼] 세월호 침몰 그날, 대통령의 靑 관저에서는

검찰 4년 이어진 질문에 한층 진전된 답은 ‘7시간의 봉인’이 마침내 풀린 셈

이강문 영남본부장 | 입력 : 2018/04/16 [02:26]

2014년 4월16일 탑승객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했다. 그러나 304명이란 소중한 생명들이 침몰하는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동안 세월호로 인한 많은 비평이 있었지만, 국가 위기사항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은 관저 침실에 있었고 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 누구도 대통령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날은 공휴일이 아니고 평일이었음에도 대통령은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있었다. 세월호 침몰이 문제가 되니 혹자는 여행가다 죽은 것을 가지고 두고두고 울려먹느냐고 하면서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다 배가 침몰해 죽었는데 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하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맞다. 우리는 수없는 사건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에 대해 국가의 위기사항 대처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대통령의 행적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 골든타임 10시 17분까지 대통령은 침몰사실을 몰랐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도대체 대통령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28일 검찰이 4년 동안 이어진 이 질문에 한층 진전된 답을 내놓았다. ‘7시간의 봉인’이 마침내 풀린 셈이다.

  

김기춘 실장이 대통령에게 전화를 두 번씩이나 해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보고서를 작성해 대통령 관저로 보냈다. 그 보고서도 층층시하 몇 단계를 거쳐야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나라, 보고서가 탁자에 오른 시각은 10시19분~20분 사이로, 골든타임이 막 지나 더는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된 뒤였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진도 앞바다는 탑승객 일부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던 생사의 갈림길이었으나 대통령이 있는 관저는 언성을 높일 일 없는 평화로운 ‘평시’였다. 청와대가 침몰 사고를 인지한 이후 우여곡절 끝에 1시간이 걸려 도착한 보고서를 박 전 대통령이 읽었는지는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의 조사 거부로 확인할 수 없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이 실시간으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매 시간 보고서를 받고 검토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날 비서실장도 국가안보실장도 대통령 대면보고를 못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관련자들을 조사해 보니 ‘대통령 보고가 통상 그래 왔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막상 대통령을 움직이게 한 건 청와대 참모들이 아닌 ‘40년 지기’ 최순실씨였다.

  

비서실장조차 쉽게 드나들 수 없을 만큼 문턱이 높았던 관저에 최씨는 검색 절차로 없이 발을 들였다. 오후 2시15분이었다. 박 전 대통령 재직 때 경호실에 출입기록이 남지 않는 이른바 ‘보안손님’은 에이(A)급과 비(B)급으로 구분됐는데, 에이(A)급은 최씨를 비롯해 김영재 원장과 그의 부인 박채윤씨 등 딱 3명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관저 앞마당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관저에 도착한 최씨는 곧바로 박 전 대통령과 대기하고 있던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과 함께 세월호 참사 관련 ‘5인 회의’를 열었다. 대통령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이 결정된 것은 ‘수석비서관 회의’ 등 공식기구가 아닌 이 ‘5인 회의’였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참모들을 불러 상황 파악을 하지 않고 ‘올림머리’ 단장을 위해 미용사인 정송주·정매주씨를 불렀다.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이 오후 2시53분 정매주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출발하시면 전화 부탁드립니다. 많이 급하십니다.”라고 적혀 있어 당시 급박함이 묻어난다.

  

정작 급한 건 따로 있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올림머리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배가 가라앉아 사람이 죽어가는 마당에 올림머리를 할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 또 한 번 경악스럽다. 머리 손질을 끝낸 박 전 대통령은 오후 4시33분 이날 처음으로 관저 밖으로 나왔다.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그는 5시15분 중대본에 도착해 처음으로 이렇게 물었다.

  

당시엔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의아했지만, 이날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을 보면 이런 의문은 쉽게 해소된다. 저녁 6시 청와대 관저로 복귀한 박 전 대통령은 평소처럼 계속 그곳에 머물렀다. 이후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된 시각을 ‘골든타임’ 이전을 꾸몄다. 촌음을 다투는 시간에 청와대는 분주했다. 보고된 시간을 오전 10시17분으로 당기고, 청와대 책임을 일선 부처로 미루려고 했던 것이 검찰에서 드러났다. 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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