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31] 즈카르야의 방문

강명준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4/22 [08:14]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31] 즈카르야의 방문

강명준 변호사 | 입력 : 2018/04/22 [08:14]

 [번역  강명준 변호사  / 편집 추광규 기자]

 

▲ 사진 = 픽사베이    

 

 

1944. 6. 8.

 

나는 전에 보았던 동방박사들이 예수를 만나고 경배했던 큰 방을 본다. 나는 성가정을 맞아들인 인심 좋은 집에 즈카르야가 도착하는 것을 본다. 엘리사벳은 즈카르야와 함께 오지 않았다.

 

집의 여주인은 오는 손님을 맞으러 밖으로 달려 나간다. 여주인은 손님을 낮은 문 가까이로 인도하고는 문을 두드린 다음 조용히 물러간다.

 

요셉이 문을 열고 즈카르야를 보고는 기쁨의 환성을 지르고, 즈카르야를 복도와 같이 좁은 방으로 안내한다.

 

“마리아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피곤하실 테니 앉으십시오.”


그는 손님에게 침대를 내주고 자기도 그의 곁에 앉는다.

나는 요셉이 어린 요한의 소식을 묻는 것을 듣는다.

즈카르야가 대답한다.


“그 애는 작은 망아지처럼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빨 때문에 고통을 좀 겪고 있어요. 그래서 그 애를 데려오지 않았지요. 게다가 날씨가 몹시 차서 엘리사벳도 오지 못했습니다. 엘리사벳은 그 애에게 젖을 먹이지 않은 채로 둘 수 없어요. 그 때문에 그 사람은 몹시 섭섭해 하면서도 워낙 날씨가 매서워서…!”

“사실 날씨가 대단히 춥습니다.”


요셉이 대답한다.

 

“당신들이 보낸 사람들 말로는 아기가 태어날 적에 집을 구하지 못했다고 하던데, 두 분이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예, 정말 고통이 심했지만 저희가 걱정한 것보다는 덜했습니다. 우리는 아기의 건강이 괜찮을지 염려했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그곳에 그대로 있어야 했지만, 부족한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목자들이 기쁜 소식을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전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가져왔으니까요.

 

그렇지만 저희에게는 방도, 침대도 없었어요. 그래서 사방에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예수가 몹시 울었어요. 내가 불을 조금씩 피우곤 했습니다만 연기 때문에 아기가 기침을 해서 많이 피울 수는 없었습니다. 어쨌든 여전히 추웠습니다. 두 짐승이 덥게 해 주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특히 찬바람이 사방에서 들어올 때는 더했지요. 더운 물이 없어 아기를 씻길 수도 없었고, 갈아 줄 마른 기저귀도 없었습니다.

 

아아! 아기는 정말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아기가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괴로워했습니다. 저도 괴로웠습니다. 아기 어머니인 마리아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형님도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아기에게 젖과 눈물을, 젖과 사랑을 주었지요. 지금은 형편이 나아졌습니다.

 

나는 대단히 편안한 요람을 만들어 놓았고, 마리아는 거기에다 부드러운 매트를 깔아 놓았지만 그 요람은 나자렛에 있습니다! 아! 아기가 거기서 태어났더라면 형편이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했어요. 예언자들이 그렇게 예고했거든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마리아가 들어온다. 마리아는 흰 모직 옷을 입고 있다. 여행할 때와 동굴에서 입었던 짙은 색 옷은 입고 있지 않다. 마리아는 내가 전에 이미 여러 번 본 아주 하얀 옷을 입고 있다. 마리아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 흰 배내옷에 감싸여 젖을 배불리 먹고 잠든 예수를 안고 있다.

 

즈카르야는 공손히 일어나서 존경심을 가지고 상체를 숙인 채 다가와서 지극히 큰 경의를 표하며 예수를 들여다본다. 그가 상체를 숙이고 있는 것은 예수를 잘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예수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다. 마리아가 예수를 즈카르야에게 내주자 그는 지극한 흠숭의 표를 보이며 받는데, 마치 성광을 들고 있는 것과 같다. 사실 그가 안고 있는 것은 희생제물이다. 이미 바쳐진 제물, 그것이 사람들에게 사랑과 구속의 양심으로 주어졌을 때에 그 제사가 완성될 제물이다.

 

즈카르야가 예수를 마리아에게 돌려준다. 모두가 앉은 다음 즈카르야는 왜 엘리사벳이 오지 못했으며, 그 때문에 얼마나 마음 아파했는지를 마리아에게 다시 말한다.

 

“엘리사벳은 지난 몇 달 동안 당신의 축복받은 아기의 속옷을 준비했어요. 그것은 지금 저 아래 마차에 있어요.”

 

그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가 큰 꾸러미 하나와 다른 작은 꾸러미 하나를 가지고 돌아온다. 요셉이 꾸러미를 받아 바닥에 놓자 즈카르야가 선물들을 꺼내는데, 손으로 짠 폭신한 양모 담요 한 장과 내의류와 작은 옷들이다. 둘째 꾸러미에서는 꿀과 아주 하얀 밀가루와 버터와 마리아를 위한 사과, 그리고 엘리사벳이 반죽해서 구운 빵, 그밖에도 많은 물건들을 꺼낸다. 그것들은 어린 마리아에게 감사하는 사촌언니의 어머니 같은 애정을 말해 주는 것이다.

 

“언니에게 제가 대단히 고마워하더라고 말씀드려 주세요. 그리고 형부께도 감사드립니다. 제가 언니를 보았으면 참 좋았겠지만 언니가 오지 못한 이유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저는 어린 요한도 많이 보고 싶었는데….”

 

“하지만 봄에는 보게 될 거요. 우리가 당신을 보러 올 테니까.”

“나자렛은 대단히 멀어요.”


요셉이 말한다.

 

“나자렛이오? 아니 당신들은 여기 남아 있어야 해요.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자라야 합니다. 여기는 다윗의 도시잖아요. 지극히 높으신 분이 카이사르의 뜻을 통하여 다윗의 땅, 유다의 거룩한 땅에서 태어나게 하기 위해 당신들을 데려오셨습니다. 왜 아기를 나자렛으로 데려갑니까? 당신들은 유다인들이 나자렛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지요. 장차 이 아기는 그 백성의 구세주가 되어야 합니다. 수도 사람들이 자기들의 임금님이 자신들이 업신여기는 지방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를 업신여기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산헤드린이 얼마나 반발심이 강하고, 세 개의 주요 특권계급들이 얼마나 사람들을 멸시하는지 당신들도 잘 알지요?

 

당신들이 여기 내 곁에 있으면 나도 당신들을 어느 정도 도울 수 있을 것이고, 내가 가진 것 모든 것, 물질적인 재산뿐 아니라 정신적인(moral) 재능도 이 갓난아기를 돕는 데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아기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내 아들과 같이 그에게도 선생 노릇을 해서 자라난 다음에 나에게 축복을 주도록 하면 나도 기쁠 것입니다.

 

우리는 아기의 위대한 운명을 생각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아기가 시합에서 쉽게 이기기 위해서는 모든 강점을 가지고 세상에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아기는 지혜를 가지고 있겠지요. 하지만 사제가 그의 선생 노릇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까다로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그의 전도가 쉬워질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서로를 쳐다본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는 발그레한 아기의 천진난만한 머리 위로 침묵 중에 질문들이 오간다. 이 질문들은 슬픈 기색을 띠고 있다. 마리아는 자기의 작은 집을 생각하고, 요셉은 자기의 일을 생각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고장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었던 자신들은 여기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기를 위해 많은 사랑을 가지고 마련해 둔 소중한 물건이 여기에는 하나도 없다.

 

마리아가 말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지요? 저희는 모든 것을 거기 남겨 두었거든요. 요셉은 내 예수를 위해서 수고와 돈을 아끼지 않고 많은 일을 했어요. 요셉은 낮에는 다른 사람들이 맡긴 일을 하고, 예수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려고 가장 아름다운 나무와 가장 고운 양털과 가장 흰 아마포를 살 돈을 벌기 위해 밤에도 일했습니다. 요셉은 벌통들도 만들었고, 집을 개조하여 요람을 제 방에 두어서 예수가 장성할 때까지 거기 남아 있게 하고, 침대 놓을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끔 미장이 일까지도 했답니다. 예수가 성인이 될 때까지 저와 함께 있을 테니까요.”

 

“요셉이 나자렛으로 가서 당신이 그곳에 남겨 둔 것들을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손 치더라도 그것들을 대체 어디에 놓아 두겠습니까? 형부도 아시지만 우리는 가난해요. 우리는 일과 집 밖에 가진 것이 없어요. 두 가지가 다 있어야 우리가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요. 일은 여기서도 얻을 수 있겠지만 저흰 여전히 집 걱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친절한 부인이 우리를 언제까지나 유숙시켜 줄 수는 없어요. 그리고 요셉에게 저를 위해 지금까지 희생한 것 이상으로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어요.”

 

“나야 뭐! 나는 괜찮아요. 나는 마리아 마음의 고통을 생각합니다. 자기 집에서 살지 못하는 마음의 고통을…”

 

마리아의 눈에 커다란 눈물 두 방울이 맺힌다.

 

“나는 마리아에게 그 집이 천국처럼 소중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일어났던 신비로 인해서 말입니다. 나는 말은 별로 하지 않지만, 이해는 썩 잘합니다! 이 문제가 아니라면 나는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은 곱절로 하면 그만입니다. 저는 힘이 세고 젊으니까 지금까지 하던 것을 곱절로 해서 모든 것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과히 괴로워하지 않고, 또 형님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신다면 저는 좋습니다. 저는 두 분이 가장 옳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것이 예수에게 유익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확실히 유익할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해 보시오. 그러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메시아가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마리아가 반박한다.

 

“맞아요. 하지만 적어도 아기가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유다에서 키우시오. 예언자는 ‘너 베들레헴 에프라타야, 너에게서 구세주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네가 가장 위대할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예언자는 나자렛에 대해서는 말이 없어요. 그 명칭은 아마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구세주에게 주어졌나 봅니다. 그러나 그의 땅은 이곳입니다.”

 

“사제인 형부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희는, 저희는 마음 아파하며 형부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믿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슬픕니다! 제가 예수를 잉태한 그 집을 언제나 다시 보게 될까요?”

 

마리아가 조용히 운다. 나는 마리아의 슬픔을 이해한다. 암! 이해하고말고!
마리아의 울음과 함께 이 환상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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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마리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이해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너는 내가 더 슬프게 우는 것을 볼 것이다. 지금 당장은 우리는 너에게 요셉의 성덕을 보여 주어서 네 영혼을 높이 올려 주겠다. 요셉은 사람이었다. 즉 자신의 성덕을 제외하고는 그의 영혼을 위한 다른 도움이 없었다. 나는 티 없는 여자의 처지에서 하느님의 모든 은혜를 누리고 있었다. 내가 티 없는 여자인 줄을 나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내 영혼에는 활동적인 자원, 나에게 영적인 힘을 주는 자원이 있었다.

 

그러나 요셉은 티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성이 그 모든 무게를 가지고 그의 안에 있어서, 그는 그 모든 짐을 지닌 채 완덕에 도달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완덕에 도달하여 하느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하였다.

 

아아! 거룩한 내 남편! 그는 어떤 일에도, 생활의 가장 하찮은 일에도 거룩하였다. 천사와 같은 순결로 거룩하였고, 인간적인 정직성으로 거룩하였으며, 참을성으로, 일에 대한 열의로, 언제나 한결 같은 침착성으로, 겸손으로, 그 모든 것으로 거룩하였다. 그의 거룩함은 이 사건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한 사제가 그에게 ‘당신은 여기 정착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고 말하자 그는 자기가 얼마나 더 큰 피로를 향해 가는지를 알면서도 말한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나는 마리아의 마음 고통만을 생각합니다. 그것만 아니라면, 나를 위해서는 고민하지 않겠습니다. 이 일이 예수에게 유익하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예수, 마리아가 그의 천사와 같은 사랑의 대상이었다. 내 거룩한 남편은 이 세상에서 다른 것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았고, 종처럼 이 사랑에 자기를 완전히 희생했다.

 

교회는 요셉을 그리스도인의 가정들과 근로자들과 많은 부류의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삼았다. 그러나 요셉은 임종하는 사람들과 부부와 근로자들의 수호성인일 뿐 아니라, 봉헌된 영혼들의 보호자로도 정해져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봉헌된 모든 사람들 중 누가 요셉이 한 것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재빠르고 명랑하게, 끊임없이 좋은 기분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데 자기 자신을 봉헌하였겠느냐?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지적하고 싶은 것이 또 한 가지, 아니, 두 가지가 있다.

 

즈카르야는 사제이고 요셉은 사제가 아니지만, 사제가 아닌 요셉이 얼마나 자기의 영혼을 사제보다 더 하늘로 향하고 있는지 보아라. 즈카르야는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성경을 인간적으로 해석하는데,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이 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인간적인 양식(human sense)에 너무 끌려간다. 그 때문에 그는 벌을 받았다. 그런데도 비록 덜 중대하기는 하지만 그는 이 장면에서 또 다시 그런 잘못을 저지른다. 요한의 탄생에 대해서 그는 말했었다. ‘제가 늙었고 제 아내가 석녀인데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그가 말한다.


‘그리스도는 그의 길을 평탄하게 하기 위해 이곳에서 자라야 합니다.’

 

가장 훌륭한 사람에게도 남아 있는 그 교오의 뿌리로 자기가 예수에게 유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셉이 하려고 했던 것처럼 예수를 섬김으로써 유익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선생 노릇을 해서 유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즈카르야의 착한 의향 때문에 그를 용서하셨다. 그러나 ‘선생님(Master)’에게 선생들이 필요하겠느냐?

 

나는 그에게 예언에서 빛을 보게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나보다 더 유식하다고 믿고 있어서 자기 해석을 자기 방식에 적응시켰다. 나는 내 주장을 밀고 나가서 그를 이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제를 그의 지식 때문이 아니라 그의 품위 때문에 존경했다. 이것이 너의 주의를 끌기를 원하는 둘째 논점이다.

 

일반적으로 사제는 항상 하느님께 비춤을 받는다. 나는 ‘일반적으로’라고 말했다. 참 사제라면 비춤을 받는다는 말이다. 사제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그 복장이 아니라 영혼이다. 어떤 사람이 참 사제인지를 판단하려면 그의 영혼에서 무엇이 나오지를 살펴야 한다. 내 예수가 말한 것처럼 거룩하게 하거나 타락시키는 것들은 영혼에서 나오는데, 그것들이 어떤 사람의 전체 행동을 특징짓는다. 어떤 사람이 참 사제라면 그는 일반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우리는 참 사제가 아닌 사람들에 대해 초자연적인 사랑을 가져야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내 아들이 이미 너를 이 구원사업에 봉사하게 했으니, 나는 더 길게 말하지 않겠다. 고통당하는 것을 기뻐해라. 그렇게 해서 참 사제의 수가 늘어나도록 말이다. 너를 인도하는 이의 말을 평화롭게 의지하고 믿고 따라라. 순종은 언제나 사람을 구원한다. 우리가 받는 조언이 전적으로 완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순종하였다. 이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 헤로데가 그 살육을 베들레헴과 그 근방의 아기들로 제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탄이 그러한 증오를 널리 확대시키고 멀리 전파하여 유다 인들의 미래의 임금을 없애기 위해 팔레스티나의 모든 권력자들을 부추겨 그와 유사한 죄를 짓게 할 수는 없었겠느냐? 사탄이 그런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아마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 즉 반복된 기적들이 대중과 권력자들의 주의를 끌었을 때에 일어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났더라면 어떻게 그 먼 나자렛을 떠나 온 팔레스티나를 가로질러 박해받는 히브리인들을 환대하는 이집트에 갈 수 있었겠으며, 어떻게 박해가 맹위를 떨치는 동안에 갓난아기를 데리고 여행할 수 있었겠느냐? 똑같이 고통스러웠다 하더라도 우리가 베들레헴에서 도망하는 편이 더 쉬웠다.

 

순종은 항상 우리를 구원해 준다. 이것을 기억해라. 그리고 사제에 대한 공경은 언제나 그리스도인의 성숙의 표시다. 사도적 정열을 잃은 사제들은 불행하다! 예수도 그렇게 말했다. 사제를 업신여기는 사람은 불행하다. 사제는 참된 빵을 축성하고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전적으로 거룩하지 못하더라도 이 접촉이 그들을 성작(聖爵, sacred chalice)과 같이 거룩하게 한다.

 

그들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 해명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오로지 그들을 사제로만 보고, 그 나머지는 상관하지 마라. 너희 주 예수보다 더 엄격한 사람이 되지 마라. 예수는 그들의 명령에 의해 그들의 손에 들려지도록 하늘을 떠나 내려온다. 예수에게서 배워라. 사제들의 눈이 멀고 귀가 먹었다면, 그들의 영혼이 마비되고 그들의 생각이 병들었다면, 그들이 자신들의 사명과 대립하는 죄로 가득한 나병환자들이라면, 그들이 무덤 속에 있는 시체들이라면, 그들을 고쳐 주시고 다시 살려 주시도록 예수를 불러라.

 

희생하는 영혼들아, 너희의 기도와 고통으로 예수를 불러라. 영혼 하나를 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가도록 운명 짓는 것이다. 그러나 사제의 영혼 하나를 구하는 것은 많은 영혼들을 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거룩한 사제는 영혼들을 하느님께로 데려오는 그물과 같기 때문이다. 사제를 구하는 것, 즉 사제를 거룩하게 하는 것, 사제를 다시 거룩하게 하는 것은 이 신비한 그물을 만드는 것이다. 그 그물에 걸리는 영혼 하나하나가 너희의 영원한 관에 더해지는 빛이다. 평안히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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