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32] 예수를 성전에 봉헌하다

강명준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4/22 [08:25]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32] 예수를 성전에 봉헌하다

강명준 변호사 | 입력 : 2018/04/22 [08:25]

 

[번역  강명준 변호사     편집  추광규 기자]

 

 

▲  사진 = 픽사베이

 

 

1944. 2. 1.

 

나는 몹시 초라한 집에서 한 쌍의 남녀가 길을 떠나는 것을 본다. 집 바깥에 있는 작은 층계를 통해 아주 젊은 어머니가 흰 배내옷을 입힌 아기를 안고 내려온다.

 

나는 우리 어머니(Our Lady)를 알아볼 수 있다. 얼굴이 희고 금발이고 날렵하며, 모든 몸짓이 아주 얌전한 마리아다. 그녀는 흰 옷 위에 엷은 하늘색 겉옷을 입고 머리에 흰 베일을 쓰고 있는데, 아기를 매우 조심스럽게 안고 있다.

 

요셉은 층계 밑 작은 회색 나귀 곁에서 기다리고 있다. 엷은 밤색 옷과 겉옷을 입고 있는 그는 마리아를 쳐다보면서 빙그레 웃는다. 마리아가 나귀 가까이 다가오자 요셉은 고삐를 왼손으로 옮겨 잡고, 마리아가 안장에 잘 앉을 수 있도록 조용히 자고 있는 아기를 받아 안았다가 마리아에게 돌려주고 나서 출발한다.

 

요셉은 여전히 마리아 곁에서 나귀의 고삐를 잡고 걸으며 나귀가 비틀거리지 않고 똑바로 걸어가도록 살핀다. 마리아는 예수를 품에 안고, 아기가 추울까 봐 겉옷을 덮어 준다. 두 부부는 말 없이 자주 미소를 교환한다.

 

계절로 인해 황량한 들판 사이로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는 길이 구불구불 나 있다. 다른 길손들이 그들을 만나거나 앞서가는 일은 드물다.

 

어느덧 집들이 나타나고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이 나타난다. 두 부부는 어떤 성문으로 들어가 몹시 부서져 울퉁불퉁한 포석이 깔린 도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앞으로 나가기가 훨씬 어려워졌는데, 교통이 혼잡하여 나귀가 자꾸만 걸음을 멈추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걸음을 멈추게 하는 돌과 돌이 빠져나간 구멍으로 인해 나귀가 줄곧 흔들리는 바람에 마리아와 아기가 편치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길은 평탄하지 않고 약간 오르막이다. 길은 높은 집들 사이로 좁게 뚫려 있는데, 집들의 출입문들은 작고 좁고 낮으며, 거리 쪽으로 몇 개의 창문이 나 있다. 위쪽의 집들 사이로, 아니 옥상 정원들 사이로 조각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아래쪽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몹시 소란하게 떠든다. 그들은 걸어가거나 나귀를 타거나 짐 실은 나귀들을 몰고 가는 사람들도 만나고, 낙타가 끄는 무거운 포장마차를 따라가는 사람들도 만난다. 한번은 로마군대의 순찰대가 말굽 소리와 무기 소리를 요란스럽게 내며 좁고 돌이 많은 길 위에 세워진 아치 너머로 사라진다.

 

요셉은 왼쪽으로 돌아 더 넓고 더 아름다운 거리로 접어든다. 거리 저 안쪽으로 내가 잘 아는 감시구가 뚫린 성벽이 보이는데, 거기가 이 거리의 끝이다.

 

마리아는 나귀들을 위한 일종의 마구간이 있는 문 앞에서 나귀에서 내린다. ‘마구간’이라는 것에는 헛간 또는 지붕이 있고 밀짚이 깔려 있는 네 발 짐승들을 매놓는 고리가 달린 말뚝들이 있다.

 

요셉은 달려온 총각에게 여물을 사오라고 돈을 주고, 한 구석에 있는 불안전한 우물에서 물 한 동이를 나귀에게 가져다준다. 그런 다음 마리아를 만나 두 사람은 성전 구내로 들어간다.

 

먼저 그들은 나중에 예수께서 호되게 매질하신 상인들이 있는 회랑 쪽으로 간다. 그 상인들은 멧비둘기와 어린양들을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이다. 요셉은 큰 비둘기 두 마리를 사고 돈은 바꾸지 않는다. 그가 필요한 것은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요셉과 마리아는 여덟 단이 있는 층계로 올라가는 옆문 쪽으로 간다. 모든 문들 뒤에는 이렇게 층계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성전 중심의 바닥이 주위 땅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이 문 안에는 커다란 홀이 있다. 현대 도시의 집 큰 대문 안에 있는 홀과 같은데, 더 넓고 더 잘 장식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거기에 좌우에 제단처럼 보이는 것, 즉 장방형으로 쌓아 올린 것이 두 개 있다. 나는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용도의 것인지  몰랐었다. 바깥쪽 시울보다 안쪽이 몇 센티미터쯤 낮은 것으로 보아 얕은 수반처럼 보인다.

 

요셉이 불렀는지 자신의 판단에 따른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제 한 사람이 다가온다. 마리아가 가엾은 두 마리의 비둘기를 바친다. 그들의 운명을 아는 나는 눈을 딴 데로 돌린다. 나는 매우 육중한 큰 대문과 천장과 홀의 장식을 살펴본다. 나는 옆을 보다가 사제가 마리아에게 물을 뿌리는 것을 본 것 같다. 마리아의 옷이 얼룩지지 않은 것을 보면 그것은 틀림없이 물일 것이다. 비둘기와 함께 돈을 조금 사제에게 주었던(이 말을 하는 것을 잊었었다)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사제를 따라 엄밀한 의미의 성전으로 들어간다.

 

나는 사방을 둘러본다. 장식이 대단히 화려한 곳이다. 종려나무 가지 장식들과 함께 천사의 머리 조각상들이 기둥과 벽과 천장에 놓여 있다. 햇빛은 물론 유리도 없고 벽에 비스듬히 설치한 길고 이상하며 좁은 창문으로 빛이 들어온다. 비스듬히 설치한 것은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마리아가 어떤 장소에 들어가서 걸음을 멈춘다. 마리아에게서 몇 미터 거리에 또 다른 단이 몇 개 있는데, 그 위에는 일종의 제단이 또 있고 그 너머에 또 다른 구조물이 있다.

 

나는 성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실은 엄밀한 의미의 성전, 즉 그 너머로는 사제 이외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는 성전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성전이라고 생각한 것은 성막이 들어 있는 성전을 세 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담으로 막은 현관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내 생각을 잘 설명하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건축가도 기술자도 아니다.

 

마리아가 아기를 바친다. 아기는 태어난 지 며칠 밖에 안 되는 갓난아기들과 같은 놀란 순진한 작은 눈을 두리번거리며, 사제를 본다. 사제는 아기를 두 팔로 받아서, 계단 위에 있는 제단을 향해 서서 성전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팔을 펴서 아기를 치켜든다. 의식이 끝났다. 아기는 다시 어머니에게 돌아오고 사제는 물러간다.

 

거기 한 무리의 관중이 있다. 그들 중에서 지팡이를 짚고 힘들게 걷는, 등이 굽은 작은 노인이 앞으로 나선다. 그는 대단히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내 생각으로는 80세가 넘은 것 같다. 그 노인이 마리아에게 가까이 와서 잠시 아기를 자기에게 달라고 청하자, 마리아가 미소 지으며 그의 청을 들어 준다.

 

노인은 시메온이다. 나는 그가 사제 계급에 속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지금 그의 옷을 보고 판단하자면 평신도다. 시메온은 아기를 안고 입 맞춘다. 예수는 갓난아기들의 불확실한 표정으로 노인에게 미소 짓는다. 작은 노인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이 주름 사이로 흘러내려 얼굴에 구슬로 장식한 것 같은 무늬를 만들며 예수가 손을 내밀어 붙잡으려고 하는 길고 흰 수염에 떨어지자 예수가 신기한 듯 노인을 살펴본다. 아기는 예수다. 그러나 갓난 아기일 따름이다. 그래서 아기는 자기 앞에서 움직이는 것에 주의가 끌려 그것을 붙잡아서 무엇인지 더 잘 보려고 한다. 마리아와 요셉이 빙그레 웃는다. 아기가 잘 생겼다고 칭찬하는 사람들도 미소 짓는다.

 

나는 거룩한 노인의 말을 듣고 요셉의 놀란 시선과 깊이 충격 받은 마리아의 표정 그리고 거기 있는 소수의 사람들의 반응을 본다. 어떤 사람들은 노인의 말에 놀라 충격을 받고, 어떤 사람들은 웃는다. 웃는 사람들 중에는 수염 난 사람들과 머리를 설레설레 흔드는 거만한 산헤드린 위원들이 있다. 그들은 빈정대며 동정의 눈초리로 시메온을 쳐다본다. 그들은 그를 노망한 늙은이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시메온이 고통을 언급하자 마리아의 미소가 창백한 표정으로 바뀐다. 마리아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이 말이 그녀의 영혼을 꿰뚫는다. 마리아가 위로받기 위해 요셉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아기를 정열적으로 꼭 껴안는다.

 

그녀는 목마른 사람처럼 한나의 말을 수용한다. 한나는 여자인 만큼 마리아의 고통을 동정하고, 영원하신 분이 초자연적인 힘을 주셔서 그 고통의 시간을 완화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한다.

 

“아기 엄마, 당신 백성에게 구세주를 주신 분이 당신의 울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틀림없이 당신에게 그분의 천사를 보내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여자에게 주님의 도우심이 없었던 적이 결코 없었는데, 당신은 유딧과 야엘보다 훨씬 크신 분입니다. 우리 하느님은 고통의 폭풍우를 견딜 수 있도록 지극히 순수한 금 같은 마음을 당신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여자, 즉 그 어머니(the Mother)가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가, 네 사명의 때에 나를 기억해 다오.”

 

여기서 환상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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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2. 2.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두 가지 교훈이 네 글에 나타난다.

 

첫째 교훈은 이것이다. 진리는 의식(儀式)에는 몰두하지만 영혼은 결여된 사제에게 드러나지 않고 평신도에게 드러난다.

 

하느님과 항상 관계를 가지고 있고 하느님과 영적인 모든 것에 바쳐진 사제는 그날 아침 성전에 바쳐지기 위해 온 아기가 어떤 아기인지 즉시 알아차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알려면 그가 살아 있는 영혼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죽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잠자고 있는 영혼을 감싸고 있는 사제복만으로는 사제로서 충분치 않다.

 

하느님의 성령은 만일 원하기만 하면, 천둥치는 소리를 내서 가장 둔한 영혼이라도 벼락이나 지진과 같이 흔들어 놓으실 수 있다. 하느님의 성령에게는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느님께서 그 모든 위격에 있어, 그리고 그 행동 방식에 있어 질서이시고 하느님의 성령은 질서의 영이시므로, 그분의 은총을 받기에 충분한 공로를 가진 영혼에게 계시하시는 것이 아니라―왜냐하면 이렇게 된다면 계시가 극히 희귀할 것이고, 너마저도 그 빛을 알지 못할 것이다―그러한 계시를 받기에 합당한 ‘착한 뜻’이 있는 영혼에게 영감을 주시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이 착한 뜻을 키울 수 있느냐? 가능한 한 온전히 하느님께 헌신하는 생활, 즉 믿음, 순종, 순결, 사랑, 너그러움, 기도로 키운다. 행동(practices)이 아니라 기도로 키운다. 행동과 기도 사이에는 밤과 낮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가 있다. 기도는 영혼의 하느님과의 통교(communion)인데, 사람들은 여기서 새로운 힘을 얻고 점점 더 하느님의 것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나오게 된다. 외적인 행동은 여러 가지 목적, 항상 이기적인 목적을 가진 어떤 습관이다. 외부적인 행동은 너희를 원래 그대로 두거나 거기에 거짓말과 게으름의 죄를 보태기까지 한다.

 

시메온은 그런 착한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일생 동안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지만 착한 뜻을 잃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겪었던 수많은 역경들도 주님과 주님의 약속에 대한 그의 믿음을 손상시키지도 흔들지도 못하였고, 하느님께 점점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그의 착한 뜻을 약화시키거나 흔들지 못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충실한 종의 두 눈이 빛을 보지 못하게 되기 전에 당신 성령의 빛을 그에게 보내시고 그를 성전 쪽으로 인도하시어 세상에 온 빛 자체를 보게 하셨다. 그런 다음 그 두 눈은 내가 수난 후 승천할 때 열게 될 천국에서(in the Heavens) 불타는 하느님의 태양(the Sun of God, 예수-역주)을 다시 보기를 기다릴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라고 복음서는 말한다. 아아! 사람들이 성령께서 얼마나 완전한 벗이신지 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분이 어떤 인도자시고, 어떤 스승이신지를 안다면! 그들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그 사랑, 그 빛 중의 빛, 그 불 중의 불, 그 지성, 그 지혜를 사랑하고 그분에게 구원을 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들이 알 필요가 있는 것들을 얼마나 더 잘 배우게 되겠느냐!

 

마리아야, 보아라. 내 자녀들아, 보아라. 시메온은 ‘빛을 보기’ 전에,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알기 전에 일생 동안을 기다렸지만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희망과 기도 안에서 인내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꾸준하였다. 그래서 사제와 오만하고 눈먼 산헤드린의 위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그에게 따뜻한 체온과 미소를 주는 그 아기의 몸에서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 구세주를 ‘보는’ 은혜를 받았다. 그는 아기인 내 입술을 통하여 정직하고 경건한 자기의 일생에 대한 첫 번째 보상인 하느님의 미소를 받았다.

 

둘째 교훈은 한나의 말이다. 역시 예언자인 한나도 갓난아기인 나를 메시아로 알아본다. 그녀가 예언의 은사를 가졌으므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나가 믿음과 사랑에 이끌려 내 어머니에게 말하는 것을 너도 듣고, 내 자녀들인 너희도 들어라. 그것을 가지고 이 암흑의 때에, 이 빛의 축일에 떨고 있는 너희의 영혼을 위한 빛으로 삼아라.

 

‘구세주를 주신 분에게는 당신의, ‘당신들의’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하여 천사를 보내실 능력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 영혼 안에서 사탄이 한 일을 없애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주셨다는 것을 생각해라. 그분이 너희를 괴롭히고 있는 사탄들을 지금 이기실 수는 없겠느냐? 그분이 저 사탄들을 쫓아 버리시고 당신 그리스도의 평화를 다시 주시어 너희 눈물을 닦아 주실 수는 없겠느냐? 너희는 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그것을 청하지 않느냐? 너희의 수많은 죄로 인하여 분개하시는 하느님의 준엄함이 그 앞에서는 미소와 더불어 사라지는 저항할 수 없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 그 자체가 구원인 용서와, 너희 스스로 원해서 피의 홍수에 잠긴 이 땅 위에 무지개가 되는 축복을 주실 것이다.

 

기억해라. 아버지께서는 홍수로 사람들을 벌하신 다음 당신 자신과 족장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악한 마음을 품게 마련,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다시는 전처럼 모든 짐승을 없애버리지 않으리라(창세 8, 21).’ 그분은 그 말씀에 충실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자신과 하느님께 ‘이번에 우리가 살아나면, 당신이 우리를 구해 주시면, 다시는 결코 전쟁을 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였으며, 그러고 나서 오히려 더 무서운 전쟁을 얼마나 많이 벌였느냐? 오, 거짓말쟁이들아, 하느님을 존경하지 않고 자기가 한 약속도 지키지 않는 자들아, 너희가 얼마나 여러 번 그렇게 했느냐 말이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많은 충실한 사람들이 믿음과 열렬한 사랑을 가지고 그분을 부르면 다시 한 번 너희를 도와주실 것이다.

 

너희의 근심을 하느님의 발아래 가져다 놓아라. 하느님께서 준엄하게 되시도록 만드는 사람들의 무리와 균형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수효가 적은 너희 모두, 머리 위에 매달려서 시시각각으로 더 커지는 현시대의 무서운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계속 충성스러운 채로 남아 있는 너희는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당신의 천사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십자가와 결합하여 있어라. 십자가는 항상 마귀의 계략을 이겼다. 다른 방법으로는 지배할 수 없는 마음을, 사람들의 잔인함과 생활의 슬픔을 통해 절망 즉 하느님과의 분리로 몰고 가려고 애쓰는 마귀의 계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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