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북미협상과 빌리 브란트, 그리고 고르바초프와 호치민

브란트의 ‘평화·공존’, 고르바초프와 호치민의 ‘개혁·개방’ 정신으로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시켜야 한다

권혁시 칼럼 | 기사입력 2018/04/24 [06:32]

남북·북미협상과 빌리 브란트, 그리고 고르바초프와 호치민

브란트의 ‘평화·공존’, 고르바초프와 호치민의 ‘개혁·개방’ 정신으로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시켜야 한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8/04/24 [06:32]

독일 사민당(Social Democratic Party, 사회민주당)은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며 평등의 진보적 이념을 대변하고 실천한다. 그리스도교 윤리를 모토로 하는 기민당과 기사당은 1949년, 건국 이후에 창당한 이래 연합정권을 수립하여 20여 년 동안 경제부흥을 통한 국가의 기반을 확립하는 데 결정정적으로 기여하였다(‘라인강의 기적’). 1965년, 비로소 사민당은 이들 여당과 연정(연립정부 구성)하였고 1969년에는 마침내 정권교체를 성공시킨다.


수상(총리, 1969~1974년)이 된 연대·평화의 정치인 빌리 브란트는 원대한 ‘독일통일’의 비전이며, 냉전체제로 대립하던 유럽 동서진영의 데탕트를 이루는 이른바 ‘동방정책’(Ostpolitik)을 강력하게 추진, 실행하였다. 1970년, 브란트 총리는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유럽평화’의 초석을 놓았다. 1970년 3월, 그는 독일 분단 후 최초로 동독의 에어프르트를 방문하여 빌리 스토프 동독 서기장과 회동하였다.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를 만나는 빌리 브란트(왼쪽)


하지만 브란트를 열렬히 환대했던 동독인들과는 달리 서독 국민들은 스토프의 답방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만큼 서독과 동독의 ‘화합·상생, 평화·연대’로 향하는 브란트의 행로는 결코 순탄치만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사회주의를 신봉하면서 자본주의의 가치 또한 중시했던 그는 신념과 비전의 정치지도자답게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독일통일·유럽평화의 정책 목적을 기필코 실현하기 위하여 ‘상호존중·교류’의 원칙을 굳게 지켜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1971년 12월 21일, ‘동서독일 기본조약’ ㅡ ①공존의 인정, ②상주 대표단의 교환, ③권리의 평등, ④독립 및 영토보존의 존중, ⑤내외정 불간섭, ⑥자결권 인정 등 ㅡ 투철한 신념과 불굴의 의지로 협상을 타결시켜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통일 대업의 튼튼한 기초를 다졌던 것이다. 그러던 끝에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 붕괴.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는 전격적으로 ‘독일연합 10단계계획’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그는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비롯한 주변 국가의 정상들과 담판을 지어 동독의 지위보장을 끌어내며 차질 없이 독일통일의 역사적 과업을 완수하였다. 콜 총리는 기민당 소속이었으나, 사민당 출신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이어받아 이를 간단없이 줄기차게 추진해 나갔던 결실이었다. 이념과 정파를 초월하여 국가 중대사의 일관성·연속성을 견지함으로서 시대적 사명을 다하였고 ‘통일의 주역’으로 칭송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서독과 동독의 극적인 통일은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등, 국가 최고책임자들의 투철한 신념과 의지, 탁월한 지도력은 물론, 국제정세의 대변동이 화학작용을 일으킨 역사적 소산이기도 한 것이다. 그 중심에서 가히 인류역사의 일대 전환을 주도한 세계적인 정치인이 소련 최후의 서기장이며 최초의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다.


그가 위대한 것은 자발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며 세계 최고의 권력, 기득권을 과감하게 포기해서이다. 그는 노멘크라투라(공산당 귀족)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이념을 망각, 역행할뿐더러 민중을 궁핍과 불안의 질곡에 빠뜨린 부패한 기득권 세력의 전횡을 혁파하고, 경직되고 퇴행하여 극도의 혼란과 위기에 처한 국가 통치체제를 혁신하기 위하여 고심을 거듭하던 끝에 대결단을 내렸다. 그리하여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glasnost·perestroika, 개혁·개방 정책)를 단행하였던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와, 이로 인한 납북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두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교훈삼아야 할 바는 1986년, ‘핵 겨울’(nuclear winter)을 경고할 정도로 ‘신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에 고르바초프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하고 그해 10월, 대소 강경책을 고집하는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에게 세계평화를 위한 ‘핵군축’을 전격 제안한 사실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에 망설이던 미국은 거부할 수 없는 대의명분에 승복하여 1987년 12월, INF(중거리미사일 폐기)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고르바초프 혁명’은 유라시아를 축으로 서유럽에서는 정치혁명, 동유럽에서는 독립과 공산독재체제의 종식을 가져왔고, 세계적으로는 미소의 탈냉전을 끌어내어 절정에 달했던 신냉전의 불안과 위기를 일거에 해소시켰던 것이다. 이렇듯 희대미문(稀代未聞)의 트랜스포머 고르바초프는 세계정세가 격동하는 ‘위기시대’의 징후임을 직시하고 통찰하여 고정관념을 깨고 기득권을 버림으로써 ‘개혁·개방’을 결행하여 냉전체제를 종식시키고 세계평화를 지켜냈던 선구자이며 위대한 정치지도자다.

 

남북한과 주변 강대국 지도자들의 발상의 대전환과 신사고
세계비전을 향한 브란트의 ‘평화·공존’, 고르바초프와 호치민의 ‘개혁·개방’의 정신구현

 

지금, 우리 한겨레와 한반도는 남북분단 70년 이래 사상초유의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그런 까닭은 오는 4월 27일, 분단의 한이 서린 판문점에서 개최되는 남북정상회담이 우리 한민족의 미래가 달려 있고, 한결같은 염원인 ‘평화통일’의 첫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없이 희망적인 것은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3대의제, ‘비핵화, 한반도 평화정착, 남북관계 획기적 개선’이 타결됨으로써 대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다.

 


“우리는 북한과 접촉해 왔으며, 5월 중이나 6월 초에 그들을 만날 것이다” “양측은 상당한 존중을 표할 것이며,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de-nuking)에 대한 타협(deal)을 이루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4월 9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각료회의’ 발언) 게다가 17일, 미국 대통령이 남북한이 휴전을 넘어 ‘종전’ 논의를 통해 평화체제를 보다 진전시키는 데 대하여 지지의 뜻을 표명하였다. “남북의 종전 논의를 축복한다”


그리고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이후 18년 만에 미국정부의 고위급 인사가 북한 최고지도자와 회동하였다. “마이크 폼페이오(CIA국장, 국무장관 지명자)가 지난주 북한에서 김정은을 만났다” “회동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좋은 관계가 이루어졌다” ‘비핵화는 세계뿐 아니라 북한에도 대단한 일이 될 것이다“ (18일,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메시지) 이렇게 남북은 물론,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도 의외로 급진전을 이루는 가운데 지나친 기우로 생각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대통령은 지금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13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대통령 단독회담’ 발언) 아울러 북한이 결코 핵·미사일전략 포기, 즉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주장도 제기된다. 첫째 이유는 북한의 지배층이 이라크의 후세인(핵개발 실패)과 리비아의 카다피(비핵화 동의)가 처참하게 최후를 맞았던 과거의 전례를 역사적 교훈으로 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논거다.


이와 연관하여, 둘째는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이 북한 정권의 안전과 체제보장을 확약하더라도 불가피한 사태, 즉 리비아의 경우와 같이 내란(유혈혁명)이 발생하여 대규모 살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부득이하게 개입하여 무력진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다(우크라이나가 보유했던 소련의 핵무기를 반납했음에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 합병 사실도 이와 유사한 사례로 본다). 셋째는 약소국인 북한이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과 대등한 관계유지의 유일한 수단, 즉 ‘기본적 외교력’을 상실하기에 비핵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측면이 없지 않으므로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견해의 핵심 논리는 후세인과 카다피의 종말인데, 그 데자뷔에만 초점을 맞춘 편견이다. 외교수단으로써 핵·미사일이 북한에 대한 확실한 체제보장(정권유지), 진전된 민생안정(경제발전) 보다 중요할 수는 없고, 더욱이 궁극적 통치목적(지배 이데올로기) 실현의 방책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게다가 분명한 것은 (부정만 할 수는 없더라도) ‘비핵화 불가’의 문제점을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조건과 저력을 북한은 충분히 갖춘 것으로 비교(yardstick)입증을 통하여 판단할 수 있다.


이라크와 리비아는 확고한 통치이념과 국정철학을 결여하였을 뿐 아니라 극히 불안정한 정치체제와, 집권자의 정치경륜이 미흡한데다가 정치적 기반(국민적지지, 결속)이 극도로 취약했으나, 북한은 그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외교전략의 대전환에 대하여 트럼프의 ‘협박외교’ ㅡ 무력충돌에 의한 치명적 손상,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적 타격 ㅡ 그러한 위험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평화공세’로 치부하는 것 또한 단견이고 오판이다.

 

남북·북미 ‘정삼회담’을 통한 ‘대타협’ 성공, 
남북 화해교린·평화통일, 세계평화·인류공영의 길

 

북한의 핵전략은 ‘생존전략’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강력하고 적극적인 핵·미사일 전략(시위)과 미국의 초강경 대응(위협)이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며 섣부른 평화공세가 아닌 생존전략의 대성공 가능성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그런 까닭은 이번의 타협이 성사된다면, 북한의 오랜 숙원인 ‘체제보장’(정권안정)은 물론, 정상 국가로 위상과 입지를 일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하여 미국과의 수교를 발판으로 세계적 경제교류(글로벌경제)를 통하여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실현하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 위원장은 부강국가 건설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단숨에 도약’을 꿈꾸는 게 확실한 듯하다. ‘단번 도약’의 의지로 과학기술을 통한 고속의 경제난 극복을 표명하였다(2012년 4월 15일, 최초 공개연설). 그러면서 선대와의 확실한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국정 슬로건) 이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정치세력은 앞서 제기된 비핵화 문제의 우려를 불식하고 북한과 거의 모든 점이 동질적인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의 건재와, 경제발전을 비핵화에 대한 확신의 근거로 삼는 동시에 국정운영 방식을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다.

 

호치민

 

베트남이 독립·통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혁·개방’을 통한 체제안정과 경제부흥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기반이며 동력은 혁명가, 독립운동가이며 탁월한 정치지도자 호치민(胡志明 호지명)의 확고한 통치이념과 투철한 실천의지의 소산이다. 호치민은 청렴결백, 공평무사하여 정권의 정당성인 ‘도덕적 위상’을 정립하였고, 양립하기 어려운 개혁적 ‘민족주의’와 개방적 ‘국제주의’를 치열하게 추구하였다. 그로써 오늘날, 국가의 입지강화와 경제의 부흥발전을 이룰 수 있는 국정지표의 확립과 국가경영의 토대를 튼튼하게 다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김 위원장은 호치민의 정치신념과 실천의지를 롤 모델삼아야 할줄 안다(그런 관점에서 청소년기의 교육, 의식형성이 대단히 중요한데 김정은과 호치민은 다같이 유럽(스위스, 프랑스) 유학을 했다는 점이 적잖은 기대를 갖게 한다). 아울러 브란트와 고르버초프의 정신과 행적을 전술한 연유를 깊이 헤아려 ‘평화·연대, 개혁·개방’을 자신감과 용기를 갖고 강력히 추진, 실행했으면 한다. 또한 (미국도 마찬가지로) 피차간의 신뢰와 완전한 ‘상호호혜’(give and take)에 입각해야만 협상을 성공시킬 수 있으며, 그 핵심은 비핵화(북한)와 북한의 체제보장(미국)인 것은 만인 주지의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미국·중국·러시아를 비롯한 주변 강대국의 정치지도자들 역시 앞장서서 실행해야 할 세계사적 사명임을 명철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의 대타협이 실패하면 국제안보는 파국을 초래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이야말로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진작을 뛰어넘어 ‘세계평화·인류공영’ 실현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빌리 브란트, 미하일 고르바초프, 호치민 등, 세계적인 정치지도자들이 자각하여 몸소 실천했던 발상의 대전환, 신사고(new thought)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앞서 거론했듯이 국내 일각에서 일고 있는 부정적, 비관적인 예단과 회의주의·냉소주의는 일소해야 마땅하다. 그러한 불신과 열패의식은 모든 가능성과 희망을 송두리째 자포자기하는 자신감 결여의 무기력한 패배주의의 소치다. 


반면에 고무적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조하여 완전 비핵화의 전제조건인 ‘CVID’(완전·검증가능·불가역적 폐기) 실행을 공언함으로써 확고한 신념과 결연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게다가 이에 호응하듯 북한이 엊그제(20일) 노동당 전원회의를 개최하였고, 김 위원장은 핵실험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선언하면서 경제건설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한 사실이다.


부디, 남북한이 비전을 향한 이런 의지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남북·북미정상회담에서의 대타협을 통하여 국운상승의 호기를 놓치지 말고 기필코 붙잡기 바란다. 그래서 남북한 정부와 온 겨레가 의기투합, 연대하여 북한은 예의 국정슬로건으로 천명한 그 원대한 희망과 목표 실현에 진력하고, 남한은 ‘동서독일 기본조약’을 전범삼아 북한과의 평화교린과 경제협력·문화교류을 추진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역사적 사명, ‘평화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데 일로 매진해야 할 것이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서울의소리]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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