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36] 이집트에서의 성가정

강명준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5/05 [17:39]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36] 이집트에서의 성가정

강명준 변호사 | 입력 : 2018/05/05 [17:39]

 

[번역 강명준 변호사    편집 추광규 기자]

 

 

 

 

1944. 1. 25. (자정에)

 

성가정에 대한 달콤한 환상.

 

여기는 이집트다. 사막과 피라미드가 보이므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새하얀 작은 단층집이 하나 보인다. 극빈자들의 초라한 집이다. 그 집의 벽은 겨우 초벽 칠 위에 회칠 한 번만을 덧칠해 놓은 것이다. 이 작은 집에는 두 개 밖에 없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 두 개가 나란히 나 있다.

 

나는 지금 당장은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집은 모래 섞인 작은 땅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고, 갈대를 땅에 박은 울타리가 집 주위로 둘러쳐져 있는데, 이것은 도둑을 막기에는 너무 약한 울타리다. 그 울타리는 고양이나 떠돌이 개를 막는 데나 도움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재물의 그림자도 없을 것 같은 곳에서 누가 무언가를 훔쳐갈 생각을 하겠는가?

 

갈대 울타리로 둘러싸인 작은 땅 조각이 비록 토양은 메마르고 보잘것없지만 참을성 있게 가꾸어져 작은 정원이 되어 있다. 울타리가 더 두꺼워 보이고 덜 듬성듬성해 보이도록 하기 위해 그 울타리에는 메 덩굴 같은 덩굴 풀을 가꿔 올려놓았고 한 쪽 귀퉁이에는 꽃이 만발한 재스민 관목 한 그루와 흔한 종류의 장미나무를 여러 그루 모아 심어 놓았다.

 

텃밭 한가운데 이름을 알 수 없는 오래된 큰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는 햇볕이 내리쬐는 땅과 작은 집에 약간의 그늘을 만들어 준다. 그 밑에 있는 텃밭에는 보잘것없는 채소들이 보인다. 이 나무에는 흰색과검은색이 섞인 작은 염소 한 마리가 매여 있는데, 그놈은 땅 위에 던져 준 나뭇가지 몇 개의 잎들을 뜯어먹고 나서 되새김질한다.

 

땅에 펼쳐져 있는 돗자리에는 아기 예수가 있다. 두 살 혹은 기껏해야 두 살 반쯤 되어 보인다. 아기는 양이나 말 모양으로 깎인 나무 조각과 그의 금발머리보다는 덜 곱슬거리는 리본 모양의 가벼운 나무 조각을 가지고 논다. 포동포동한 손으로 짐승들의 목에 나무 목걸이를 걸어보려고 애쓴다.

 

아기는 조용하게 미소 짓고 있다. 매우 아름답다. 숱이 많은 컬이 있는 금발의 작은 머리에 살갗은 희고 약간 불그레하며, 짙은 파란색 눈은 생기가 있고 반짝인다. 물론 표정은 다르지만 나는 예수의 눈 색깔을 알아본다. 마치 두개의 아름다운 짙은 색 사파이어 같다. 아기는 긴 흰 옷을 입고 있는데, 그것은 속옷이다. 소매는 팔꿈치까지 온다.

 

아기는 발에 아무것도 신지 않았지만 조그마한 샌들이 자리 위에 놓여 있는데, 이 샌들 역시 아기의 장난감이 된다. 샌들을 짐승들의 목에 메자 그놈들은 그것이 조그마한 짐수레라도 되는 것처럼 가죽 끈으로 끈다. 매우 단순한 샌들이다.

 

바닥 가죽 끈 두 개로 된 것인데, 그 가죽 끈 두 개 중 하나는 코에 달려 있고, 하나는 뒤축에 달려 있다. 코에 달려 있는 가죽 끈은 얼마만큼 와서는 두 가닥으로 갈라진다. 그래서 한쪽 끈은 뒤축에서 오는 가죽 끈에 있는 구멍으로 들어가 발목에 고리처럼 둘려 있는 다른 가닥에 가서 걸리게 되어 있다.

 

조금 떨어져 있는 나무 그늘에 성모님이 앉아 있다. 마리아는 촌스러운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짜며 아기를 살핀다. 나는 그녀의 가냘픈 흰 손이 날실 사이로 북을 던지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며, 베틀의 페달을 움직이는 샌들 신은 발을 본다. 마리아는 접시꽃 색깔과 비슷한 분홍색을 띤 보랏빛 웃옷을 입고 있다. 그녀는 머리에는 아무것도 쓰고 있지 않아서 금발을 앞가르마를 타서 머리 위에서 갈라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단순하게 땋은 머리카락은 목덜미 위로 기분 좋게 늘어뜨려져 있다.

 

그녀의 옷소매는 길고 좁은 편이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얼굴의 지극히 부드러운 표정이 그녀의 장식품이지 그밖에 다른 장식품은 없다. 그녀의 살갗, 머리와 눈의 색깔, 얼굴 모습 모두가 늘 내가 보는 모습이다. 그녀는 매우 젊어 보이는데, 아마 스무 살쯤 되는 것 같다.

 

얼마 후 마리아가 일어나 아기에게로 가서 상체를 숙여 샌들을 신기고 정성스럽게 끈을 맨 다음 아기를 쓰다듬어 주고 머리와 눈에 입을 맞춘다. 아기가 떠듬거리며 말하자 그녀가 대답하는데, 나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런 다음 그녀는 베틀로 돌아가 짜여진 옷감과 날실 위에 린넨 천을 펴 덮어 놓고, 자기가 앉아 있던 걸상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아기는 엄마를 지켜보며 노는데, 혼자 남겨두어도 성가시게 굴지는 않는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저녁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가 나무 없는 모래사막 위로 내려오고, 멀리 보이는 피라미드 뒤로 하늘이 온통 불붙은 것처럼 보인다.

 

마리아가 돌아와서 예수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운다. 아기는 군소리 없이 복종한다. 엄마가 장난감과 매트를 거두어 집으로 들여가는 동안, 아기는 작은 다리로 종종걸음을 쳐서 염소가 있는 데로 뛰어가 염소 목에 팔을 얹는다. 염소는 울면서 주둥이를 예수의 어깨에 비빈다.

 

마리아가 돌아온다. 그녀는 머리에 긴 베일을 쓰고 있고, 손에는 항아리를 들고 있다. 마리아가 귀여운 예수의 손을 잡고, 작은 집 주위를 돌아 집의 반대편으로 간다.

 

나는 그 우아한 광경을 감상하며 그들을 뒤따라간다. 성모님은 아기의 걸음에 자기의 걸음을 맞추고, 아기는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나는 아이들 발걸음의 특별한 맵시로 아기의 불그레한 발뒤꿈치가 들렸다가 오솔길의 모래로 내려지는 것을 본다. 자세히 보니 아기의 작은 옷이 발까지 내려오지 않고 종아리 중간까지만 내려온다. 그 옷은 대단히 깨끗하고 단순하며, 허리께에서 흰 끈으로 졸라매져 있다.

 

나는 집 앞쪽 울타리에 촌스러운 사립문이 달려 있는 것을 본다. 마리아가 그 사립문을 열고 거리로 나간다. 그 거리는 도시나 보잘것없는 마을 끝에 있는 초라한 거리로, 소도시와 들판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마리아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들판 쪽을 보지 않고 마을 중심 쪽을 바라보다가 몇 십 미터 위쪽에 있는 못인지 우물인지가 있는 곳을 향해 간다. 그 위로는 종려나무들이 둥그렇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고, 땅에는 약간의 파란 식물들이 있다.

 

어떤 남자가 걸어오는 것이 보이는데,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체격은 다부지다. 나는 그가 요셉인 것을 알아본다. 그는 빙그레 웃고 있다. 그는 천국에 관한 환상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 젊어 보인다. 나이는 많아야 마흔쯤 되어 보인다. 수염과 머리털은 숱이 많고 검으며, 살갗은 꽤 햇볕에 그을었고, 눈은 짙은 색깔이다. 그 얼굴은 정직하고 유쾌한 얼굴,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얼굴이다.

 

그는 예수와 마리아를 보고 빠르게 걷는다. 그는 왼쪽 어깨에 톱과 대패 같은 것을 메고 있고, 손에는 다른 연장들을 들고 있는데, 지금 연장들과는 다르지만,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 그는 개암색과 밤색의 중간 쯤 되는 색상의 옷을 입고 있는데, 길지는 않고―발목 조금 위까지 내려온다―소매는 팔꿈치까지 내려온다. 그는 허리에 가죽으로 만들어진 듯한 허리띠를 매고 있다. 진짜 일꾼의 옷이다. 그는 발목에서 엇갈리는 끈이 달린 샌들을 신고 잇다.

 

마리아는 미소 짓고, 아기는 좋아서 소리를 지르며 엄마에게 잡혀 있지 않은 다른 한쪽 팔을 요셉에게 내민다. 세 사람이 한데 모이자, 요셉은 상체를 굽혀 아기에게 과일 한 개를 주는데, 모양과 빛깔이 사과 같다. 아기는 엄마 손을 놓고 요셉의 팔에 안겨 몸을 웅크리며 머리를 요셉의 어깨 오목한 곳으로 숙인다. 요셉은 아기에게 입을 맞추고 아기의 입맞춤을 받는다. 그것은 우아한 애정이 넘쳐흐르는 몸짓이다.

 

마리아가 서둘러 요셉의 연장을 받아 요셉이 아기를 안아 줄 수 있게 했다는 말을 나는 잊을 뻔했다.

 

예수의 키 높이에 맞추느라 쪼그리고 앉아 있던 요셉이 일어서서 왼손으로 연장을 들고, 오른팔로는 어린 예수를 튼튼한 가슴에 껴안는다. 마리아가 손잡이 달린 항아리에 물을 채우기 위해 샘으로 가는 동안 요셉은 집 쪽으로 간다.

 

집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요셉은 아기를 땅에 내려놓고, 마리아의 베틀을 들어 안으로 들여가고, 염소젖을 짠다. 요셉이 집 한편에 지어져 있는 작은 헛간에 염소를 가두는 것을 예수는 주의 깊게 바라본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모래 위에서 자줏빛을 띤 황혼의 붉은 빛을 살펴본다. 더위로 인해 모래 위에서는 공기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피라미드는 더 어둡게 보인다.

 

요셉이 집안의 한 방으로 들어가는데, 그 방은 작업장도 되고 부엌 겸 식당도 되는 것 같다. 다른 방은 쉬는 방으로 생각되지만 나는 그 방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 방에는 방바닥 높이에 불을 피운 아궁이가 있고, 목수의 작업대와 같은 탁자와 등 없는 걸상들과, 몇 개의 그릇과 두 개의 기름등잔이 얹혀 있는 선반들이 있다. 한 구석에 마리아의 베틀이 놓여 있다. 매우 가난해 보이지만 아주 질서정연하고 매우 깨끗한 집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다. 예수의 인간 생활과 관계가 있는 모든 환상에서 내가 눈여겨 본 것은 예수와 마리아는 요셉과 요한과 마찬가지로 몸과 복장이 항상 잘 정돈되어 있고 깨끗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수수하고 단순한 옷을 입고 있지만 깨끗해서 품위 있어 보인다.

 

날이 빨리 어두워지기 때문에 마리아가 손잡이 달린 항아리를 가지고 돌아와 문을 닫는다. 방은 요셉이 불을 켜서 작업대 위에 올려놓은 등불로 밝혀진다. 요셉은 마리아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자질구레한 일을 좀 더 하려고 작업대 위로 상체를 숙인다. 등불이 방안을 밝히고 있다. 예수는 작업대에 손을 얹고 머리를 들고 요셉이 하는 일을 지켜본다.

 

그들은 서서 기도드린다. 그들은 분명히 십자 성호를 긋지는 않는다. 요셉이 기도를 선창하고 마리아가 응답하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 없다. 그들이 암송하는 기도는 시편의 어떤 구절인 것 같은데, 그 언어는 도무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가족이 앉는다. 램프가 식탁 위에 놓여 있다. 마리아는 예수를 안고 염소젖을 먹인다. 마리아는 둥그스름한 빵에서 잘라 낸 빵조각들을 양젖에 담근다. 빵은 껍질도 검고 속도 검은데, 호밀이나 보리로 만든 것 같다. 밀기울이 많이 들어간 갈색 빵이다. 요셉은 빵과 치즈를 먹는다. 그는 치즈 한조각과 많은 빵을 먹는다.

 

그런 다음 마리아는 예수를 자기 앞에 있는 조그마한 걸상에 앉힌다. 마리아는 익힌 야채를 가져와서―그 야채는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맹물에 익혀서 양념을 한 것 같다―요셉이 먹은 다음 자기도 먹는다. 예수는 조용히 사과를 먹으면서 작은 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식사는 올리브인지 대추야자 열매인지 잘 모를 것을 마지막으로 해거 끝난다. 그것은 올리브 치고는 빛깔이 너무 엷고, 대추야자 열매라면 너무 단단하다. 포도주는 없다. 가난한 사람들의 식사다.

 

그러나 이 방 안에는 큰 평화가 있다. 호화로운 왕궁에서도 이런 평화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얼마나 화목한 집안인가!

 

오늘 밤 예수님은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이 광경을 설명해 주시지도 않는다. 환상으로 나를 가르치실 뿐인데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분은 항상 변함없이 찬미 받으시기를. 
  


--------------------------------------------------------------------------------

 

1944. 1. 26.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보는 것들이 너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친다. 겸손과 체념과 완전한 화합의 교훈이다.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들, 특히 고통스러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 가정들에게 실례로 주는 교훈이다.

 

너는 초라한 집을 보았다. 더욱 서글픈 것은 그 집이 외국에 있는 초라한 집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성찬례 때 성체 안에서 나를 받아먹는다. 그들은 그 기도와 영성체를 자신들의 영혼의 필요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필요를 위해서 하면서-사실 이기적으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자기들은 꽤 괜찮은 가톨릭 신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번영하고 행복하고 물질적으로 편한 생활, 최소한의 고통도 받지 않는 생활을 바란다.

 

요셉과 마리아는 참 하느님인 나를 자기들의 아들로 가지고 있었지만, 고향에서도 가난해서 작은 만족조차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고향에서는 그들이 알려져 있고 적어도 ‘그들의’ 작은 집 한 채는 있었기 때문에, 많은 문제들에 주택 문제까지 겹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들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일거리를 얻고 생활수단을 얻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그들은 나를 데리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해 망명자가 되었다. 풍토도 다르고, 갈릴래아의 기분 좋은 들판과 비교하면 몹시 쓸쓸한 나라에서 그들이 알지 못하고 말과 풍속도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피난민들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으레 가지는 경계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은 집에 있는 편리하고 정든 가구들과 소박하면서도 필요한 많은 물건들을 그들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거기서는 그렇게 소중해 보이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아무것도 없고 보니 그것들이 마치 부잣집의 기분 좋은 사치품과 같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들은 고향과 집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남겨 두고 온 보잘것없는 물건들, 이제는 아마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을 텃밭, 포도나무, 무화과나무와 그 밖의 다른 유익한 식물들의 안위를 염려한다.

 

그들은 매일 양식과 옷과 불, 그리고 자기들이 먹는 음식과 같은 것을 먹을 수 없는 어린 나를 위해 음식을 마련해야 한다. 게다가 마음에는 슬픔이 있다. 향수도 그렇고, 미래의 불확실성도 그렇고, 특히 처음에는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일을 시켜 달라는 청을 쉽게 들어 주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의 불신임도 그렇다.

 

그렇지만 너도 보다시피 이 집에는 평화와 미소와 화합이 감돌고, 두 부부가 일치하여 집을 더 아름답게 만들려고 애쓰고, 보잘것없는 채소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떠나온 집과 같게 하고, 더 쾌적하게 하려고 힘쓴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생각 밖에 없다. 그것은 그 땅이 하느님에게서 온 나에게 덜 적대적이고 덜 불유쾌한 땅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것은 여러 면으로 나타나는 신자와 부모로서의 사랑이다. 가외로 많은 시간 일을 해서 사 온 염소와 나무 조각 남은 것을 파서 만든 작은 장난감들과 자기들의 한 조각 음식까지 희생하면서 나만을 위해 사온 과일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오, 내 사랑하는 이 세상의 아버지, 아버지는 하느님께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으셨습니까! 하늘 높은 곳에 계시는 아버지 하느님과 이 세상의 구세주가 된 아들 하느님의 사랑을 말입니다.

 

이 집에는 성마름도 없고, 무뚝뚝함도 없으며, 서로 비난하는 것도 없고, 그들에게 물질적인 안락을 크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는 하느님에 대해서 조금의 원망도 없다. 요셉은 마리아 때문에 힘들다고 비난하지 않고, 마리아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요셉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거룩하게 사랑한다. 그뿐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그들 자신의 편안함이 아니고 상대 배우자의 편안함이다. 참다운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다. 참다운 사랑은 순결함에 있어 이 동정 부부의 사랑만큼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항상 순결하다. 사랑과 결합한 순결은 다른 성덕들의 다발을 열매 맺으며, 순결하게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은 완전하게 된다.

 

마리아와 요셉의 사랑은 완전하였다. 이 사랑은 모든 다른 덕행으로 이끌어 갔고, 특히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이끌어 갔다. 하느님의 거룩한 뜻이 자신들의 육체와 마음에 고통스러워도 그들은 항상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이 두 성인 안에서 영혼은 더 활기차고 강하였으며, 그들은 주께서 당신의 영원한 아들의 보호자로 자신들을 택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며 주를 찬미하였다.

 

그들은 이 집에서 기도하였다. 오늘날 너희는 가정에서 너무 적게 기도한다. 새벽과 황혼에, 일을 시작할 때, 식탁에 앉을 때 너희는 새 날을 보게 하시고, 밤을 맞이하게 하시며, 너희 노동에 강복하셔서 인간 생활에 필요한 음식, 불, 옷, 집을 마련할 수 있게 해 주신 주님을 생각하지 않는다. 선하신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은 무엇이든 항상 ‘좋다’. 그 재물이 초라하고 풍족하지 않더라도, 사랑은 그것들에 맛과 풍성함을 부여한다. 영원하신 조물주를 너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로 보게 하는 사랑 말이다.

 

이 가정은 검소하였다. 그들에게 돈이 충분했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살기 위해 먹었다. 그들은 폭식가처럼 게걸스럽게, 그리고 미식가들처럼 변덕스럽게 식도락을 만족시키기 위해 먹지는 않았다. 폭식가들과 식도락가들은 배불리 먹지 못하는 사람이나 음식을 절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이 절제하면 많은 사람에게 굶주림의 고통을 면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몸에 병이 생길 정도로 음식을 먹으며 비싼 음식으로 재물을 낭비한다.

 

이 가정은 노동을 사랑한다. 그들은 돈이 풍부하더라도 노동을 사랑할 것이다. 일함으로써 사람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움직이지 않는 바위 같은 게으름뱅이들을 질긴 담쟁이처럼 꽉 조여 숨 막히게 하는 악습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일을 잘 하고 난 뒤에는 음식이 맛있고 휴식이 기분 좋고 마음이 만족스러우며, 한 가지 일과 다음 일 사이에 한순간의 쉬는 시간을 즐기게 된다. 노동을 사랑하는 사람의 집과 마음에는 여러 가지 악습이 생기지 못한다. 악습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사랑과 존중과 서로에 대한 존경이 자란다. 순결한 분위기 속에서는 미래의 성가정들을 이룩할 다정한 자녀들이 자란다.

 

이 가정에서는 겸손이 지배한다. 오만한 너희를 위한 겸손에 대한 큰 교훈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마리아는 교만해지고 배우자의 숭배를 요구할 만한 수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많은 여자들이 단지 자기가 남편보다 교육을 더 받았다든지, 더 고귀한 집안 출신이라든지, 재산이 더 많다든지 하다는 이유만으로 교만하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고 정배지만, 배우자를 섬기고 배우자로 하여금 자기를 섬기게 하지 않으며, 그에게 온갖 애정을 기울인다. 요셉은 가장으로서 강생하신 말씀과 영원하신 성령의 정배를 보호하라는 책임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인정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마리아에게 일을 덜어 주려고 온갖 주의를 기울여 보살핀다. 그는 할 수 있는 대로 마리아에게 피로를 줄여 주기 위해 집안의 궂은일들은 도맡아 하며, 가능한 한 마리아를 기쁘게 해 주고, 집을 더 안락하게 하고 작은 정원을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애쓴다.

 

이 가정에서는 초자연적, 도덕적, 물질적 질서가 존중된다.

하느님은 최고의 가장이시므로 그분께 공경과 사랑을 드린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질서다.

 

요셉은 가장이므로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에게 복종한다. 이것은 도덕적 질서다.

 

집은 옷과 가구와 더불어 하느님의 선물이다. 무슨 일에든 하느님의 섭리가 나타난다. 양들에게는 털을, 새들에게는 깃털을, 풀밭에는 푸른 풀을, 가축들에게는 여물을, 가금들에게는 낟알과 잎을 주시며 골짜기의 백합들에게는 옷을 주시는 하느님의 섭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들은 집과 옷과 가구들을 주시는 하느님의 손을 찬미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것들을 받고, 주의 선물로서 경건하게 다루며, 그것들이 초라하다고 해서 싫어하지 않고, 섭리를 남용하여 그것들을 망가뜨리지도 않는다. 이것은 물질적인 질서다.

 

너는 나자렛 방언으로 주고받은 대화와 기도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였지만 네가 본 것은 큰 교훈이 되었다. 하느님에 대한 많은 일과 내 어머니와 아버지였던 거룩한 부부가 결코 실패하지 않았던 일에서 실패한 탓으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너희는 이 교훈을 묵상해라.

 

너는 어린 예수를 기억하면서 기뻐해라. 어린이의 작은 걸음을 생각하면서 미소 지어라. 머지않아 그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볼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눈물의 환시가 될 것이다.”
 

 

 

 

원본글 바로가기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