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바꼴르 수상마을에서 핀 꽃

이태호 | 기사입력 2018/08/04 [10:47]

필리핀 바꼴르 수상마을에서 핀 꽃

이태호 | 입력 : 2018/08/04 [10:47]

 

 

 


필리핀 바꼴르 수상마을에서
연꽃 봉오리가 물 바깥으로
살며시 얼굴을 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쓰레기 더미로 꽉 찬 물속에 담겨서
잎이 펑퍼짐하게 불어터진 채
환한 꽃봉오리를 내 보이고 있다


이천 일십 팔년 칠월 스무하룻날 
내가 두 번째 그 수상마을에서 가서
위문하듯 꽃봉오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연꽃은 일생을 어떻게 심사숙고(深思熟考)하는지 
어떻게 청결하고 고귀하게 마음을 여닫는지
그 일거수일투족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저 연꽃처럼 나의 시간도
느리디 느린 속도로 구멍에서 나왔을 것이고
저 연꽃처럼 나의 길들도
구멍끼리 소통하며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져서는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고 싶어
천천히 더 천천히 견디었을 것이다.


늘 혼자였을 것이다
사랑을 잃은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온밤을 견디었듯이
얼굴을 무릎사이에 묻고 외로움에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 언젠가 집이 울 때 아! 하고 우리 집 기둥이 울 때
부르튼 입술로 거리에서 탁발을 한 승려처럼
나도 보시를 핑계 삼아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사람들아!
눈이 있으면 귀가 있으면
이곳 바꼴르 수상마을에 와서
저 피어나는 꽃봉오리를 보라


움막 밑 쓰레기더미에서 맨발을 담그고 있는  
하루 종일 맨발로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한 냄새가 풀풀 나는 움막으로 돌아와서도
울고 있는 것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지 못해서
캄캄하게 더 캄캄하게 울음을 삼키고 있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저 처참한 광경을 보라 


아침이 되어서야
오직 가슴으로 가슴으로만
환한 금빛을 열고 있는
저 연꽃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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