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문칼럼] 우리 사회 덮친 특효약 없는 '인구병'의 압박

이강문 영남본부장 | 기사입력 2018/10/11 [22:14]

[깡문칼럼] 우리 사회 덮친 특효약 없는 '인구병'의 압박

이강문 영남본부장 | 입력 : 2018/10/11 [22:14]

 

 


인간의 간은 중요한 장기 중 하나다. ‘화학공장’이라는 별칭처럼 온갖 고되고 수고로운 신체기능을 전담하는 소중한 기관이다. 특히 활동 능력과 재생능력이 뛰어난 게 특징으로 알려졌다.

 

다만 고맙지만 또 소홀하기 쉬운 게 간이다. 간이 치명적인 병에 걸려도 이를 알아챌 증상이 없거나 모호해서다. 무엇보다 아픈 원인을 간으로 특정해 지적하기 힘들다고 한다.

 

간이 원인으로 지목되면 이미 때가 늦어진 경우가 많아 그만큼 평상시에 조심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비유하면 인구문제는 간질환과 비슷하다. 사회구조 및 경제상황에 미치는 역할 및 비중도 그렇다. 문제가 불거지면 이미 심각한 지경에 달했을 확률이 높다는 점도 같다. 간은 기타 장기와는 달리 드물게 재생능력이 있다.

 

아쉽게도 인구문제는 삐걱대는 순간 이전단계로 되돌리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위험이 확인되고 경고가 잇따를 때가 인구악재를 논하고 풀어낼 최적의 타이밍이다. 선제적인 정책대응이 인구병을 극복할 유일무이한 대책이다. 증상이 없거나 미미하다고 무시하면 그 대가는 쓰리고 가혹하다.

 

한국의 인구문제는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체감적인 아픔을 못 느낄지언정 문제발생을 예고하는 통증신호는 충분히 위협적이며 반복적이다. 못 깨닫는 게 오히려 비정상일 정도다. 거액의 예산과 자기추진 필요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성과 도출이 힘들어 정치인 및 관료입장에서는 추진동기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게 정책의 한계가 있다.

 

‘인구병’이라는 말이 화제다. 저출산 ·고령화의 인구감소가 야기하는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문젯거리를 총칭해 인구병으로 부른다. 인본 매스컴에도 자주 사용해 한국에도 알려졌는데, 인구감소가 가져오는 불편, 불안, 축소, 폐색의 일상생활이 그만큼 고질적인 질병이라는 의미다. 한국보다는 그나마 일찌감치 인구정책을 시작한 일본이다.

  

요컨대 효과적인 유일한 방법은 문제 발견 최초단계에서 적극적인 대응체계 마련이다. 많은 돈에 긴 시간이 걸려도 완치될지 여부는 미지수라 더더욱 초기대응이 결정적이다. 선진국에서 이미 경험한 공통된 의견이다. 때를 놓치면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 처방전에 뒤따를 마땅한 약조차 별로 없다.

 

그럼에도 인구병 증후는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안 태어나고 덜 죽으면 잠깐은 인구유지가 될지언정 결국엔 수명한계를 못 넘는 순간 해일처럼 밀려오는 인구감소는 불가피하다. 즉 출산감소에 따른 청년증발이 미래사회에 더 구체화 되면서 디스토피아의 출현은 기정사실이다. 살아내는 게 힘들어 지는 불행사회의 본격예고다.

 

아쉽게도 한국은 조만간 인구병 확진이 확실시 된다. 시간이 문제일 뿐 피하기도 어렵고 돌리기도 힘든 상태이다. 사전징후가 너무나 명확하고 뚜렷하기에 여기저기서 확인된다. 군소지역의 시·군에서부터 인구감소가 드러나고 있다. 나쁜 예감일수록 틀리지 않는다. 인구학에서 경고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풍경은 성큼성큼 다가온다.

 

인구감소는 거대한 조류다. 막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고작 가능한 건 최대한 파고를 낮추고 충격을 저지할 흡수장치를 갖추는 것이다. 그나마 단기간에는 이것조차 어렵다. 높은 관심과 많은 돈을 투입한다 한들 결코 우호적인 정책결과를 내주지는 않는다. 원하는 당장의 결과가 없다고 포기하기보다 휘둘림 없는 긴 호흡으로 밀어붙이는 강단이 필요하다.

 

인구감소를 막을 처방전은 없다. 대중요법적인 발상을 내놓기 위한 유혹은 있겠지만 그 끝은 생각보다 허무하다. 감소추세를 완화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계획과 실천만이 유효할 뿐이다. 어떤 선진사례를 봐도 인구감소를 저지하고 방어할 매력적인 처방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특효약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아직은 시간이 있다. 사전경고가 다각적이고 반복적이라는 점은 모르고 당할 황당한 미래 충격을 막아줄 것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위협경고는 받아들이고 대응해줘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사회적 대타협을 기반으로 한 이해조정과 실체적인 제도개혁을 위한 진지한 첫걸음이 필요한 시점이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