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vs ‘혜경궁 김씨’

김태철 (416교육연구소 소장, 문학박사) | 기사입력 2018/11/20 [02:09]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vs ‘혜경궁 김씨’

김태철 (416교육연구소 소장, 문학박사) | 입력 : 2018/11/20 [02:09]

이재명 경기지사의 아내 김혜경씨에 대한 트위터 계정 소유자 진위여부의 문제로 대한민국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경찰의 검찰 송치만으로 김혜경씨가 트위터 계정의 소유주라고 예단하고 마녀사냥을 지속하고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토론을 지도하며 항상 두 편의 영화로 토론학습을 시킨다. 한편은 영화 《위대한 토론자들 (The Great Debaters)》이다. 이 영화는 텍사스 동부 마샬에 위치한 흑인대학 와일리 칼리지의 멜빈 B. 톨슨 교수는 ‘말의 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대학 동아리로 ‘토론 팀(debate team)’을 구성한다.

 

그는 특이한 방식으로 대학생들을 지도하며 당시의 인종차별 분위기에도 맞서 나간다. 1935년, 마침내 ‘토론 전국대회’에 출전한 와일리 대학 팀은 하버드 대학교의 엘리트팀에 도전하여 우여곡절 끝에 성공을 한다는 감동적 영화이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것은 메카시선풍이다. 농민조합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흑인들을 빨갱이로 몰아 경찰력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짓밟고 탄압을 하는 상황이 배경으로 설정된다. 비이성과 야만으로 가득찬 흑인에 대한 차별을 합리적 이성과 실천을 바탕으로 한 말의 힘으로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 영화 '12 Angry Men' 이미지 컷    

 

 

또 한 편의 영화는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이다. 이 영화는 1957년 미국의 배심원 제도를 다룬 법정 영화이다. 살인 혐의를 쓴 한 소년에 대한 재판에서 11명의 배심원이 그의 유죄를 인정하는데 단 한 명이 반론을 제기, 토론을 하여 무죄로 풀려나는 이야기이다.

 

현존하는 대다수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제1의 정치원리로 내세우지만,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으며 때로 비효율적이다. 대의제에서 주권자의 의사는 자주 왜곡되고, 소수의 의견은 쉽사리 지워지고, 여론은 자극에 취약하며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종종 권력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선다.

 

이렇게 불확실하고 때로 위험하기까지 한 제도에 대한 혼란한 감정을 현재를 사는 많은 시민들이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금번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에 대한 여론의 마녀사냥도 이와 마찬가지다.

 

“혜경궁김씨” 트위터계정 진위여부를 둘러싼 상황에서 나는 두 가지 안타까운 한국 민주주의의 현 단계를 발견한다. 하나는 숙고하지 않는 다수의 의견 혹은 무관심이 정치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정치인이나 권력의 상층부가 공권력의 맹목적 과잉충성에 자기 겸손을 상실하는 문제이다. 또 하나는 사회의 압도적 독점자본이 미디어 권력을 활용해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장면이 연출될 때 민주주의에 회의를 느낀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매력적이게 만드는 ‘합리적 의심’을 조곤조곤 보여주는 영화다. 왜 우리 모두의 의견이 중요한지, 그리고 왜 의견을 나누는 것이 필요한지 매력적으로 설파한다.

 

영화에서 엘리트 계층을 대표하는 변호사와 재판관은 이미 피고인의 범죄 사실을 기정하거나 변호를 포기했다. 그 성급한 결정을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한 사람의 합리적인 의심에서 시작되고, 장시간의 토론을 거쳐 나온 신중한 결론이었다.
 
영화는 한 사람의 ‘어떤 배심원도 확신 없이 유죄를 판결해서는 안 된다’는 합리적 의심에서 시작된다. 무죄가 아니라, ‘유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 한 사람의 ‘합리적 의심’이 종국에 성급한 사형 판결을 저지하는 씨앗이 되었다.

 

확신에 찬 열한 명 대 의심뿐인 단 한 명의 싸움은 처음에는 무모하고, 가망 없어 보였다. 불안한 시작이었던 만큼 이후의 판도를 뒤집는 전개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용기는 분명 대단한 것이었지만, 혼자서 해낸 일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사적인 감정으로 피고인의 유죄를 고집하던 배심원이, 아들의 사진을 보고 흐느끼며 ‘Not guilty’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민주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는 개인으로서의 나를 분리시켜 현실을 공정하게 바라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경찰의 이른바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08__hkkim) 소유주로 판단하는 과정과 언론의 보도는 합리적 의심이 존재하는가?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김 씨가 안드로이드 단말기를 아이폰으로 바꾼 시점과 ‘혜경궁 김씨’ 트위터 글이 작성된 휴대전화가 안드로이드 단말기에서 아이폰으로 바뀐 시점이 일치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혜경궁 김씨’ 계정으로 트위터에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대통령 등을 비방하는 글을 올린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및 형법상 명예훼손) 등을 받고 있는 김 씨를 19일 검찰에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경찰은 이른바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08__hkkim) 소유주로 판단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부인 김혜경 씨가 아이폰을 제출하라는 경찰의 요구를 거부했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김 씨가 2016년 7월부터 이 아이폰을 사용해 ‘혜경궁 김씨’ 계정으로 트위터에 글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생각을 해보자. 대권도전을 꿈꿔온 이재명지사 측에서 무엇하러 일베 수준도 되지 않는 악성 트윗을 백주 대낮에 올리겠는가? 김혜경 씨 측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올해 4월 전화번호가 외부에 알려지면서 김 씨가 악성 문자와 전화에 시달려 번호를 바꾸며 다른 아이폰으로 기기를 교체했다.”고 진술했다.

 

뿐만 아니다. 김혜경 씨가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이 지사는 지사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다수의 판단이 정치를 파국으로 이끌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그런 무모한 짓을 했겠는가? 합리적으로 의심하자. 적어도 이지사 부부는 아니다. 

 

세상을 정의롭게 하는 지혜는 누군가의 내부에 갇혀있지 않다. 최고 권력자를 희롱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도  최고권력자를 등에 업고 세상에 갑질하는 호가호위(狐假虎威)도 가능한 시대가 아니다.

 

모든 권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온다. 12인의 성난 배심원 개개인은 완성된 시민들이 아니었다.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일 정치적 인내심이 부족했고, 정의보다 사적 관심사에 몰두했다. 질서 없고 때때로 폭력까지 동반한 토론장은 미성숙한 시민 의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길고 지루한 토론을 거쳐서 마침내 보다 정의로운 합의점을 도출했다. 무심하고, 사고를 태만히 하고, 편견에 기초해 판단을 내렸던 집단에서 보다 신중하고 합리적인 이성으로 ‘정의’를 생각하는 변화를 스스로 경험했다. 영화가 보여준 그 변화의 가능성이 다시 한 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성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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