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2019년 북한의 이모저모 5-3편. 금강산

임두만 | 기사입력 2019/06/26 [00:49]

사진으로 본 2019년 북한의 이모저모 5-3편. 금강산

임두만 | 입력 : 2019/06/26 [00:49]

[신문고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1998616일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은 소떼 5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가면서 "이번 방북이 단지 한 개인의 고향 방문을 넘어 남북이 같이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감회가 서린 표정으로 말했다.

 

이어 그해 10월 정 명예회장은 또 501마리를 이끌고 다시 판문점을 넘었다. 그리고 당시 정 명예회장은 북한 방문길에서 현대와 북한의 전격적인 '금강산관광 사업에 관한 합의서 및 부속합의서'를 체결, 금강산관광시대의 문을 열었다. 정 명예회장이 북한으로 이끌고 간 총 1001마리의 '소떼'가 한반도 화해 분위기의 촉매제였으며 한국전쟁 후 금강산을 남측 사람들이 밟아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9981118일 금강호가 동해항에서 남한의 관광객들을 태우고 첫 출항을 한 뒤 20039월 금강산은 버스에서 승용차로 까지 갈 수 있도록 하여 금강산 육로관광 시대를 열었다.

 

20046월부터 12일이나 당일 관광 상품도 나오기 시작했으며 2005년 관광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20076월부터 금강산 내금강 관광도 시작된 가운데 20083월 관광객이 직접 승용차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금강산으로 향하는 관광시대가 펼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2008711일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 초병의 총격으로 사망한 이른바 박왕자씨 피격 사망사건터졌다. 사건 다음 날 정부는 금강산 관광을 금지했고, 이틀 후에는 금강산 내 관광객을 전원 철수시키면서 금강산 관광은 전면 중단됐다. 그때까지 북한을 방문한 관광객수는 총 196만 명이었다.

 

금강산은 그래서 지금 더욱 '그리운 금강산'이 되었다.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는 것이 곧 남북이 화해의 손을 잡았음을 대내외에 표시한 것이며, UN(미국)의 대북한 경제제재가 완화된 것을 알려주는 것이 된다. 즉 우리에게 금강산은 북한 경제제재 완화라는 가시적 성과가 나와야 다시 볼 수 있는 절경으로 나타난다는 말이므로 더욱 그리운 곳이란 얘기다.

 

따라서 이번 선경석 6.15유럽위 상임대표께서 제공한 금강산 사진은 더욱 가치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절경이라도 개인의 초상권 때문에 관광객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은 게재할 수 없어 아쉽다.

그분들이 누군지 모르므로 일일이 초상권에 관계된 사진을 사용하겠다고 허락을 득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인물이 들어간 사진이라도 뒷모습이나 또는 최대한 확대 클릭이라도 알아보기 힘들다고 판단된 사진은 선별하여 게재한다. 이점 선 대표님은 물론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아래의 사진과 사진 설명은 물론 부연된 해설은 모두 선경석 대표가 쓰신 것이다)

금강산 구룡연 오르는 이야기

 

신계사는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금강산 구룡연 오르는 초입에 있는 절이다. 유점사의 말사로 신라 23대 법흥왕 519년에 보운이 창건했다, 그 후 여러 차례 파손된 것을 손질했다신계사에서 바라보는 동석동 계곡은 가히 신선의 집터라고 할 만 해 보인다. 운무가 가렸다가 걷히길 수차례..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신비의 계곡으로 우리 일행은 오르기 시작이다.

 

▲ 금강산에 있는 신계사  입구

 

 코스

온정리술이넘이 고개창터솔밭신계사터목란관 주차장(여기까지 차량으로 이동)목란관수림대(미인송군락)앙지대삼록수금강문옥류동연주담비봉폭포은사류구룡폭포(관폭정)

 

▲ 구룡연 오르는 길 안내도

▲ 목란관 다리를 지나다.

▲ 금강산 구룡계곡 입구에 있는 목란관. 구룡연 절경을 감상하고 들렸던 목란관, 봉사원들의 서비스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다. 마치 잃어버린 우리 문화를 되찾은 느낌이었다.

▲ 일행과 함께 구룔연을 향해 오르는 길, 이런 시절이 언제 다시 오려나?  금강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환영 안내판이 우리를 더욱 새롭게 했다.

▲ 무대바위로 가는 만경다리...만경(萬景)이란 이름이 말하듯 만가지 경치를 보러 간다. 

▲ 무대바위다. 넓다란 암반이 계곡 한복판에 제대로 차련진 무대처럼 몇백년을 자리잡고 있다 

▲ 삼록수 

 

삼록수는 구룡연구역의 신계동에 있는 샘이다. 금강문 가까이에 있다. 세존봉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수정같이 맑은 이 샘물은 산삼록용이 녹아 흘러내리는 물이라고 한다.

▲ 생명의 위대함...바위를 뚫고 생존하는 나무들이 경이롭다 

 

▲ 구룡연을 향해 오르는 길...삼록수를 지나 금강문을 통과하다. 흡사 구도자 같다.

 

▲ 옥류동 안내석...맑은 물이 구슬이 되어 흘러내린다 하여 옥류동이다라고 불렀다한다. 

 

▲ 옥류동 계곡을 흐르는 물...이름 그대로 옥류(玉流) 물이 옥색이다. 

 

옥류동 계곡을 흘러내린 물이 구룡연과 비봉폭포를 거처 옥류교 밑으로 흐른다. 맑은 물은 구슬이 되고 비단 필을 편 듯 반짝이며 미끄러저 저 아래 깊은 담소에 흘러내린다.

▲ 계곡의 물은 청정하다. 산에서 흘러내린 자연 그대로의 물... 


옥반지를 물 속에 떨어뜨리면 구분해 낼 수 없을 정도... 옥 빛의 물은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 저 물 한모금 입에 물면 육신이 옥으로 변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다.

▲ 옥류동을 뒤로하고 다음 연주담으로 오르다 

 

▲ 구룡연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금강산의 4대 절경의 하나로 불리우는 옥류동에 이르며, 다시 실개천과 합류하여 동해로 흘러간다. 절경을 보러 오르는 길이 힘든줄도 모르게 한다.

 

 

▲ 금강산 계곡 물은 옥색일변도다.

 

▲ 절경 1 

 

▲ 절경 2 

 

▲ 절경 3 

 

 금강산 절경에게 큰 실례를 했다. 카메라를 놓고 나와 핸드폰으로 찍은 것이 천하절경 금강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런 사건으로 인하여 어설픈 사진이 됐다.

▲ 절경 4 

 

 김삿갓 -옥류동에서....-

 

높이 솟은 세존봉은 동남으로 안아 막고,

부르기 좋은 옥녀봉은 서북으로 반겨 섰네,

앞에 솟은 천부대야 뒤에 솟은 소옥녀야,

뽀쪽하거든 곱지나 말거나, 험준하거든 기특하지나 말았으면,

한가운데 희맑게 내려드린 숫돌 같은 한 장 바위는 옥소반 같고,

그우로 흐르는 물은 구슬을 굴리는 듯,

그 앞에 담긴 물은 넓거든 깊지나 말거나,

깊거든 맑지나 말았으면,

어쩌면 이다지도 보는 사람의 가슴을 풀어헤쳐 주는가.

 

▲ 절경 5 

 

김삿갓 -금강산-

 

한걸음 두걸음 걸음마다 서서 정신 잃고 바라보니,

산은 푸르고 돌은 흰데 사이사이에 꽃이 반겨 웃는구나.

만약 저 경치를 본 따서 화공에게 그림을 그리라 한다면 ,

시내가의 물소리, 새소리는 또 어떻게 할고....

 

▲ 비봉폭로 안내석 

▲ 비봉폭포를 또 봉황이 춤추는 것 같아서 춤출무자를 써서 무봉폭포로도 부른다는 안내문 

▲ 이곳에서 구룡폭포와 상팔담으로 가는 길이 갈린다. 

 

어느 여행객이 금강산을 보고...

 

금강산의 물줄기가 천길 벼랑에서.

뚝 떨어지면 폭포여!

누워 흐르면 비단 필이여!

부서져 떨어지면 구슬이여!

날리면 안개여!

고이면 담소여!

마시면 약수라.....

나는 그러면 금강산에서 무슨 시를 한 수 읊을까나.


금강산에 오르기를 벼르고 벼르기를 몇 해였던가!

작심하고 올랐던 객의 심사...

수준 한참 미달인 것을 고백 하지 않을 수 없네.......

우뚝우뚝 뽀쪽뽀쪽 야릇하고 기이하고,

산모습 사람인듯 신선인듯 귀신인듯,

금강산 들어와 좋은 시 써보고자 평생을 벼려왔는데 이제 이 산 오고보니,

너무도 좋은 경치 시로 담긴 어림없네.

 

▲ 구룡폭포의 자태  수십척의 폭포는 하루도 마를 날 없이 계속 하얀 물줄기를 시원스럽게 뿜어 내다. 우측 바위에 새겨진 '미륵불'이란 글씨가 오늘 따라 작게만 느껴지는 건 왜 일까요..

 

저 폭포는 구정봉에서 뻗어내린 구정대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 벼랑의 두 봉우리 사이에서 폭포벽을 따라 물안개를 이루며 떨어진다. 화강암 절벽 위에 패인 우묵한 곳으로부터 은빛 물방울을 흩날리면서 쏟아지는 폭포수는 ,흰 비단필을 드리운 듯하며 이곳에서 울리는 폭포소리는 우레소리와 같다.

 

폭포 밑에는 돌절구 모양으로 깊이 패인 '구룡연(九龍淵, 깊이 13m 정도)'이라 부르는 폭호가 발달해 있으며, 옛날 금강산을 지키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위쪽 다리에서 아래로 바라보면 시원한 풍광이 말을 잊게 한다.    

▲ 오밀한 바위들과 어우러진 시원한 풍광    

 

상팔담으로 가는 길 폭포 위에는 여덟 개의 맑고 푸른 못이 층층으로 있는데 이것이 '금강산 8선녀'의 전설로 유명한 상팔담(上八潭)이다. 그러나 금강산 상팔담을 현재로서 보기는 절대 어렵다.

이에 구룡폭포에서 하산, 삼일포와 해금강을 보기로 했다. 하산 길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절박함에 한 번이라도 더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금강산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게 없으니 굳이 각도 재면서 찍을 필요가 없었다. 아쉬움이 가득한 마음으로 쳐다보고 또 쳐다 본다. 언제 자유롭게 이곳을 다시 찾아 올 수 있을런지...

▲ 온정리 별금강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했다. 

 

▲ 해금강 가는 길.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관광객인지 주민인지... 

 

▲ 속초 68km 이정표가 너무 선명하다. 이정표로만 보면 여기가 북인지 남인지... 

 

금강산 온정리에서 속초 방향으로 남행. 저 초록색 울타리 길을 따라가다 삼일포는 좌측으로. 초록색 울타리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까지 이어진다. 남북이 통일행사나 상봉 때 저 도로를 이용한다.

▲ 해금강은 북측 강원도 통천 총석정에서 남측 화진포까지 동해안을 말한다. 

 

▲ 해금강 경치의 일부 

 

▲ 마식렬 스키장 가는 길 

 

마식령은 말이 고갯길에서 휴식을 취하여 유래된 것으로, 부근에는 말과 관계되는 마전리(馬轉里마식리(馬息里)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 마식령호텔은 전체 시설과 운영에서 외국의 호텔 특급과 1급 사이 고급 호텔이었다. 

▲ 다시 평양으로 향하다. 옆으로 가면 신평.. 

 

신평, 황해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신평군(新坪郡)은 북쪽은 평안남도 양덕군, 남쪽은 곡산군과 수안군, 동쪽은 강원도(북한) 법동군과 판교군, 서쪽은 연산군과 평안남도 회창군과 접하고 있다.

 

▲ 신평 휴계소에서 본 절경

▲ 이 길을 따라 평양으로...이렇게 또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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