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1998년 6월 16일 현대그룹 故정주영 명예회장은 소떼 5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가면서 "이번 방북이 단지 한 개인의 고향 방문을 넘어 남북이 같이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감회가 서린 표정으로 말했다.
이어 그해 10월 정 명예회장은 또 501마리를 이끌고 다시 판문점을 넘었다. 그리고 당시 정 명예회장은 북한 방문길에서 현대와 북한의 전격적인 '금강산관광 사업에 관한 합의서 및 부속합의서'를 체결, 금강산관광시대의 문을 열었다. 정 명예회장이 북한으로 이끌고 간 총 1001마리의 '소떼'가 한반도 화해 분위기의 촉매제였으며 한국전쟁 후 금강산을 남측 사람들이 밟아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998년 11월 18일 금강호가 동해항에서 남한의 관광객들을 태우고 첫 출항을 한 뒤 2003년 9월 금강산은 버스에서 승용차로 까지 갈 수 있도록 하여 금강산 육로관광 시대를 열었다.
2004년 6월부터 1박 2일이나 당일 관광 상품도 나오기 시작했으며 2005년 관광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2007년 6월부터 금강산 내금강 관광도 시작된 가운데 2008년 3월 관광객이 직접 승용차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금강산으로 향하는 관광시대가 펼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7월 11일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 초병의 총격으로 사망한 이른바 ‘박왕자씨 피격 사망사건’ 터졌다. 사건 다음 날 정부는 금강산 관광을 금지했고, 이틀 후에는 금강산 내 관광객을 전원 철수시키면서 금강산 관광은 전면 중단됐다. 그때까지 북한을 방문한 관광객수는 총 196만 명이었다.
금강산은 그래서 지금 더욱 '그리운 금강산'이 되었다.
따라서 이번 선경석 6.15유럽위 상임대표께서 제공한 금강산 사진은 더욱 가치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절경이라도 개인의 초상권 때문에 관광객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은 게재할 수 없어 아쉽다. (아래의 사진과 사진 설명은 물론 부연된 해설은 모두 선경석 대표가 쓰신 것이다) 금강산 구룡연 오르는 이야기
신계사는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금강산 구룡연 오르는 초입에 있는 절이다. 유점사의 말사로 신라 23대 법흥왕 519년에 보운이 창건했다, 그 후 여러 차례 파손된 것을 손질했다. 신계사에서 바라보는 동석동 계곡은 가히 신선의 집터라고 할 만 해 보인다. 운무가 가렸다가 걷히길 수차례..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신비의 계곡으로 우리 일행은 오르기 시작이다.
ㅇ코스 온정리→술이넘이 고개→창터솔밭→신계사터→목란관 주차장(여기까지 차량으로 이동)→목란관→수림대(미인송군락)→앙지대→삼록수→금강문→옥류동→연주담→비봉폭포→은사류→구룡폭포(관폭정)
삼록수는 구룡연구역의 신계동에 있는 샘이다. 금강문 가까이에 있다. 세존봉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수정같이 맑은 이 샘물은 산삼록용이 녹아 흘러내리는 물이라고 한다.
옥류동 계곡을 흘러내린 물이 구룡연과 비봉폭포를 거처 옥류교 밑으로 흐른다. 맑은 물은 구슬이 되고 비단 필을 편 듯 반짝이며 미끄러저 저 아래 깊은 담소에 흘러내린다.
금강산 절경에게 큰 실례를 했다. 카메라를 놓고 나와 핸드폰으로 찍은 것이 천하절경 금강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런 사건으로 인하여 어설픈 사진이 됐다.
김삿갓 -옥류동에서....-
높이 솟은 세존봉은 동남으로 안아 막고, 부르기 좋은 옥녀봉은 서북으로 반겨 섰네, 앞에 솟은 천부대야 뒤에 솟은 소옥녀야, 뽀쪽하거든 곱지나 말거나, 험준하거든 기특하지나 말았으면, 한가운데 희맑게 내려드린 숫돌 같은 한 장 바위는 옥소반 같고, 그우로 흐르는 물은 구슬을 굴리는 듯, 그 앞에 담긴 물은 넓거든 깊지나 말거나, 깊거든 맑지나 말았으면, 어쩌면 이다지도 보는 사람의 가슴을 풀어헤쳐 주는가.
김삿갓 -금강산-
한걸음 두걸음 걸음마다 서서 정신 잃고 바라보니, 산은 푸르고 돌은 흰데 사이사이에 꽃이 반겨 웃는구나. 만약 저 경치를 본 따서 화공에게 그림을 그리라 한다면 , 시내가의 물소리, 새소리는 또 어떻게 할고....
어느 여행객이 금강산을 보고...
금강산의 물줄기가 천길 벼랑에서. 뚝 떨어지면 폭포여! 누워 흐르면 비단 필이여! 부서져 떨어지면 구슬이여! 날리면 안개여! 고이면 담소여! 마시면 약수라..... 금강산에 오르기를 벼르고 벼르기를 몇 해였던가! 작심하고 올랐던 객의 심사... 수준 한참 미달인 것을 고백 하지 않을 수 없네....... 우뚝우뚝 뽀쪽뽀쪽 야릇하고 기이하고, 산모습 사람인듯 신선인듯 귀신인듯, 금강산 들어와 좋은 시 써보고자 평생을 벼려왔는데 이제 이 산 오고보니, 너무도 좋은 경치 시로 담긴 어림없네.
저 폭포는 구정봉에서 뻗어내린 구정대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 벼랑의 두 봉우리 사이에서 폭포벽을 따라 물안개를 이루며 떨어진다. 화강암 절벽 위에 패인 우묵한 곳으로부터 은빛 물방울을 흩날리면서 쏟아지는 폭포수는 ,흰 비단필을 드리운 듯하며 이곳에서 울리는 폭포소리는 우레소리와 같다.
폭포 밑에는 돌절구 모양으로 깊이 패인 '구룡연(九龍淵, 깊이 13m 정도)'이라 부르는 폭호가 발달해 있으며, 옛날 금강산을 지키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상팔담으로 가는 길 폭포 위에는 여덟 개의 맑고 푸른 못이 층층으로 있는데 이것이 '금강산 8선녀'의 전설로 유명한 상팔담(上八潭)이다. 그러나 금강산 상팔담을 현재로서 보기는 절대 어렵다.
금강산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게 없으니 굳이 각도 재면서 찍을 필요가 없었다. 아쉬움이 가득한 마음으로 쳐다보고 또 쳐다 본다. 언제 자유롭게 이곳을 다시 찾아 올 수 있을런지...
금강산 온정리에서 속초 방향으로 남행. 저 초록색 울타리 길을 따라가다 삼일포는 좌측으로. 초록색 울타리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까지 이어진다. 남북이 통일행사나 상봉 때 저 도로를 이용한다.
마식령은 말이 고갯길에서 휴식을 취하여 유래된 것으로, 부근에는 말과 관계되는 마전리(馬轉里)·마식리(馬息里)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신평, 황해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신평군(新坪郡)은 북쪽은 평안남도 양덕군, 남쪽은 곡산군과 수안군, 동쪽은 강원도(북한) 법동군과 판교군, 서쪽은 연산군과 평안남도 회창군과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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