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불유경(行不由徑) '안 될 일은 하지 말며 올바로 살자' (下)

이정랑 언론인 | 기사입력 2019/07/16 [09:42]

행불유경(行不由徑) '안 될 일은 하지 말며 올바로 살자' (下)

이정랑 언론인 | 입력 : 2019/07/16 [09:42]

 

“세상에 무엇이 값지다 해도 인명만큼 값진 게 없고, 세상에 무엇이 귀하다 해도 사람만큼 귀한 게 없다. 세상을 다 준들 어찌 인명을 살 수 있을 것이며, 우주를 다 준들 어찌 사람을 살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지난날(공화당 시절) ‘하면 된다.’는 시대를 산 일이 있었다. 그리고 ‘잘 살아 보자’는 구호를 들으며 산일도 있었다. 이는 물론 하면 안 될 일이 없으니 용왕매진(勇往邁進)하자는 뜻이요, 하도 배곯고 살았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배 좀 채우고 살아보자는 뜻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전자는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세 글자가 없다’는 나폴레옹 식 발상이요, 후자는 진저리나는 가난을 유산처럼 이어왔으니 어떡하던 이 가난을 물리쳐 보자는 절규임에 틀림없었다. 때문에 이 두 슬로건이나 좌우명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져 일부 국민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소기의 목적을 어느 정도는 달성했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면 뜻은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우선 ‘하면 된다.’가 그것인데 사람에겐 하면 안 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이럼에도 ‘하면 된다.’는 건 결국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 방법도 관계없다는 논리와 직결된다. ‘잘 살아 보자’는 말도 이와 같아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던(예컨대 양심과 도덕을 저버려서라도) 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되는 셈이다.

당장 먹기엔 곶감이 좋을지 모르지만 원대한 국가 장래와 국민 덕성의 윤리를 생각했다면, 하면 된다는 것을 ‘안 될 일은 하지 말자’, 로 해야 했고, 잘 살아 보자는 ’올바로 살자‘로 했어야 옳았다.

하기야 뭐 언제 구호가 나빠서 실패했는가?

저 5공(제5공화국)때의 구호는 기막히게 좋아 ‘정의 사회 구현’과 ‘복지 사회 건설’이 아니던가.

정의 사회 구현과 복지 사회 건설, 이 얼마나 기막히게 멋진 말인가. 모르긴 하되 이 지상에 존재하는 나라치고 이처럼 멋진 구호를 가진 나라는 없을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 면면촌촌 어딜 가나 관공서 현판에 붙어 있던 이 구호.

그런데, 이 멋진 구호가 왜 실패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행불유경’ 못했기 때문이다.

이 구호를 만든 사람들이, 그리고 이 구호를 써 붙인 사람들이 ‘행불유경’ 못한 채 지름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민이 ‘행불유경’ 못하고 지름길 걷는 거야 당연한 일 아닌가?

국민이야, 백성들이야 바람 앞의 풀과 같아 바람이 이리 불면 이리 쏠리고 저리 불면 저리 쏠린다.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지, 웃물이 흐린데 어떻게 아랫물이 맑을 수 있겠는가. 이를 우리는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라 하여 꼭뒤에 부은 물이 발치까지 내려감에 비유한다.

논어에는 ‘군자불기(君子不器)란 말이 있다. 군자는 그릇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군자는 그릇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세태는 어떠한가?

하나같이 그릇을 만들려고 아우성치지 않는가. 그릇을 만들기 위해 전쟁을 하고 있지 않는가. 내 아들 내 딸만은 일류대학 명문대학에 보내 좋은 그릇을 만들려 하지 않는가.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효충과 신의와 예지를 가르쳐 인간을 만드는 일이지, 남을 거꾸러뜨려서라도 일류대학 나와 입신출세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진작부터(초등학교 때부터) 효충, 신의, 예지의 인간 교육만 제대로 시켰다면 오늘과 같은 지름길은 결단코 없었을 것이다. 물은 트는 대로 흐르는 법이요, 바람은 막는 대로 부는 법이어서 심성이 형성될 초등학교 때부터 효충, 신의, 예지의 인간 교육을 시켰다면 이 아이들이 절대로 지름길로 가지 않으며 좀 더 자란 후(중, 고등학교) 인간의 최고 가치는 정신(공존‧공생)에 있다고 가르쳐보라! 그러면 이들이 성인이 된 다음에도 가정은 물론 사회와 국가에 훌륭한 사람으로 이바지 해 정도(正道)만 걷는 ‘행불유경’의 실천자가 될 것이다.  

한데도 이 쉬운 이치 하나 깨닫지 못한 채 백 날 천 날 비인간화의 교육(敎育) 아닌 사육(飼育)만 시키니 이 아이들이 자라 무엇을 할 것인가. 남을 속이고 짓밟고 거꾸러뜨려서라도 자기만 잘 살고 출세하면 그만이라는 극도로 야비한 이기주의만 팽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 또 이뿐인가?

자기를 낳아준 부모, 자기가 낳은 자식들까지 돈을 위해 속이고 짓밟고 거꾸러뜨려서도 직성이 안 풀려 폭력을 휘두르고 살육까지 자행한다.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가 된 것이다.

이 나라 최고통치자란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가 돈과 권력을 위해 저지른 행위를 보라! 그리고 사법부 최고 수장이라는 양승태를 보라. 우리는 그들과 그들의 하수인들(崇日 賣國의 獨裁 殘黨)이 한 통속이 되어 저지르고 있는 맘몬이즘(mammonism)과 아베이즘(abeism)의 중병이 도져 미친개가 주인을 짖어대 듯 더러운 입을 벌려 하루가 멀다 하고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이들 패악집단은 만고무이(萬古無二)한 패악도 모자라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반역으로 일제의 충견이 되어 주인을 물고 뜯는 상처 내기에 더욱 혈안이 되어 광분하고 있다. 참으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이는 또 무엇 때문인가?

인간 교육, 다시 말해 인성 교육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 빨리 돈을 벌고, 좀 더 빨리 출세하여 권력을 잡기 위해 저지르는 짓거리다. 그러므로 이는 정신이 황폐해진 까닭이요, 심성이 악랄해진 까닭이다. 요컨대 절대가치의 그 높은 ‘행불유경’의 도가 무너진 까닭에서다. 어쩔 것인가?

진정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오늘부터라도 ‘행불유경’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고 실천해 나가는 길 밖에 딴 도리가 없다.

지금 바로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사회 각계각층의 양심적인 지도자들부터 ‘행불유경’에 솔선수범하라! 국민들이 이를 따라 같이 가면 우리는 분명 일등 국가 일등 국민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며 문화민족으로 우뚝 서서 세계를 선도하게 될 것이다. 분명 그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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