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의 부저추신(釜底抽薪) '정치검찰 왕국을 정벌하다!'

이정랑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0/01/09 [10:38]

추미애의 부저추신(釜底抽薪) '정치검찰 왕국을 정벌하다!'

이정랑 칼럼니스트 | 입력 : 2020/01/09 [10:38]

지난번 칼럼에서는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의 조호이산(調虎離山)’에서 다룬바와 같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8일 검찰수뇌부인사를 혁신적으로 단행, 완벽한 검찰개혁의 성공을 알리는 개선(凱旋)의 낭보를 국민들에게 전해 검찰개혁을 열망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기쁨과 감격을 선사하고 있다.

 

이번에 다룰 부저추신(釜底抽薪)에서는 검찰개혁에 반대하고 장애가 되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검찰들을 발본색원하여 법과 원칙에 충실한 검찰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양심적인 검찰로 바꾸어 새로운 검찰상을 정립하여 참다운 법치국가를 건설하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식

 

 

검찰개혁을 지지하고 열망하는 깨어있는 모든 국민들과 문재인 대통령 추미애 장관 그리고 입법 사법 행정부 언론계 관계자들에게 영원한 축복과 영광이 함께 하기를 충심으로 기원한다!

 

‘부저추신’이란 말은 북제(北齊) 때 위서(魏書)를 썼던 북조삼재자(北朝三才子) 중의 한 사람 위수(魏收)의 양조문(梁朝文)에 근거한 것으로, 그 중의 “불쏘시개를 빼내어 물이 끓는 것을 막고, 풀을 제거할 때는 뿌리까지 뽑아낸다(抽薪止沸, 剪草除根).”라는 글귀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이다. 주로 어떤 사건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서 쓰이고 있다.

 

‘부저추신’과 ‘양탕지비(揚湯止沸)’는 서로 그 뜻은 비슷하지만 의미상으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양탕지비’는 일단 사건이 발생한 후에 방법을 강구해서 사건을 방지하는 일종의 임시방편적 치료방법인데 반해, ‘부저추신’은 사건의 발생을 예방하거나 혹은 발생한 후에라도 근본책을 강구하여 철저하게 해결해 버리는 일종의 근본적인 치료법이다.

 

이를 전투에 응용해 보자면, ‘부저추신’은 하나의 ‘두저전술(兜底戰術)’로 볼 수 있다. 상호간 일촉즉발의 긴장상태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주력을 이용한 정면공격법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의 후면이나 측면으로 돌아가서 후방을 교란시킴으로써,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하는 순간에 어느새 바람 빠진 고무공을 만들어 버리는 기발한 술책인 것이다.

 

전쟁에 사용되는 ‘부저추신’술은 더욱 많다. 전국시대에 연(燕)의 소왕(昭王)은 제나라에 복수하고자 악의(樂毅)를 장수로 임명하고 군사를 크게 일으켰다. 악의는 제나라의 70여 개 성을 계속 함락시키고 즉묵(卽墨)과 거성(苣城)만을 남겨놓게 되었다.

 

악의는 제나라의 민심을 고려하여 너무 심하게 밀어붙이지 않은 채 이 두 성을 그냥 포위만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에 연 소왕이 죽고 새로 혜왕(惠王)이 즉위하게 되었다. 그런데 혜왕은 악의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점을 제나라의 장수 전단(田單)이 간파하고, ‘부저추신’ 책략을 사용하여 악의를 쫓아버리기로 작심했다. 그는 곧 첩자를 연나라에 침투시켜 헛소문을 퍼트리게 했다.

 

“악의는 6개월 만에 제나라의 거의 모든 성을 함락했으면서도, 즉묵과 거성만은 3년 동안이나 포위만 하고 있다. 이는 그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민심을 자기에게 돌려 스스로 제나라 왕이 되려는 음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혜왕은 이 소문을 듣고 정말 그럴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기겁(騎劫)이라는 장수를 대신 보내 악의의 병권을 빼앗았다. 악의는 괜한 죄를 둘러쓸까봐 두려워 조나라로 도망쳐버렸다. 병권을 쥐게 된 기겁은 지금까지의 포위작전을 버리고 성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기겁으로서는 전단의 꾀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전단은 불소(火牛)들을 연나라 진영에 몰아냄으로써, 연군을 대파하고 기겁의 목을 벤 후, 악의에게 잃었던 실지를 모두 다시 찾고 말았다.

 

항우도 유방에게 이 ‘부저추신’의 책략을 사용한 바가 있지만, 장량에게 간파 당함으로써 결국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게 된 적이 있었다. 광무회전(廣武會戰)에서 항우는 유방의 군사를 퇴각시키고자 유방의 부친을 기름 솥 앞에 끌어내놓고 유방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장 퇴각하지 않는다면, 네 부친을 이 자리에서 삶아 죽여 버리겠다.”

 

만약 여기서 유방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약해져 버린다면, 유방은 항우에게 항복하게 되고 항우는 편안하게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는 그런 긴박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장량이 일치감치 유방에게 가르쳐 준 대응방법이 있었다. 유방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고 오히려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결의형제가 아니오? 따라서 내 부친은 당신의 부친이기도 하니 당신이 부친을 어떻게 대하든지 간에 나는 전혀 상관없소. 정 삶아 죽이겠다면 내게도 그 국 한 그릇 보내주시구려!”

 

이렇게 나오니 항우로서도 별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이밖에 공자까지도 이 ‘부저추신’의 술책에 꼼짝없이 당하고 국외로 유랑생활을 떠나게 된 적이 있었다. 인의도덕의 화신이라는 공자가 상대의 간단한 술책에도 견뎌내지 못하고 마는 것을 봤을 때, 이런 속임수의 사용대상으로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역시 그들 ‘도덕군자’나 허황된 검찰공화국을 꿈꿔왔던 ‘패악한 정치검찰’들일 것이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