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 12. 12 국방부 데자뷔(deja vu)...‘2020. 1. 22’ 서울중앙지검

추광규 기자 | 기사입력 2020/01/26 [15:32]

1979. 12. 12 국방부 데자뷔(deja vu)...‘2020. 1. 22’ 서울중앙지검

추광규 기자 | 입력 : 2020/01/26 [15:32]

# 1979년 10.26 직후로 비상계엄이 내려진 12월 12일 저녁 7시 10분. 국방부장관 노재현은 자신의 공관에 인접한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성이 나자 곧 바로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담을 넘어 단국대학교 체육관으로 피신했다.

 

총성은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날 저녁 허삼수·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하여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제압한 후 정승화 육참총장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한 것.

 

이들은 대통령 최규하의 재가 없이 이 같은 행위를 저지른 후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하여 대통령을 압박했다. 그럼에도 대통령 최규하는 거듭해서 국방장관 노재현의 재가를 받아오라면서 거절했다.

 

 

 12.12 직후인 이틀 후 기념사진을 찍은 전두환 노태우 등 쿠데타 세력들

 

 

이때 국방장관 노재현은 한미연합사 상황실에 도착한 직후였다. 앞서 그는 피신한 직후 승용차로 강북도로를 배회하다가 저녁 9시 10분 경 육본 B-2 벙커로 갔다. 그는 상황을 들은 후 신변의 안전을 위해 미 제8군 영내에 있는 한미 연합사령부로 이동했다.

 

그는 한미연합사 상황실에 도착 직후 대통령에게 전화해 군 지휘계통상에 혼선을 이유로 들면서 보고를 하러 가겠다고 말했다. 저녁 10시 20분 경이었다.

 

또 이때는 전두환측 장성들이 대통령의 재가를 강요하고 있던 때였다. 국방장관과 대통령의 통화내용을 듣던 유학성 중장이 대통령의 수화기를 건네받은 후 ‘급히 공관으로 와 달라’고 말했다. 노 장관은 유 중장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국방부로 돌아오라’고 지시하였다.

 

그럼에도 이들은 장관의 지시에 불복했다. 이에 노 장관은 전화로 제1, 3군사령관에게 자신의 명령 없이는 병력 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또 전두환 에게도 자신에게 와서 보고를 하라고 했으나 이에 따르지 않자 다음날 새벽 1시 25분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와 상황장악을 시도했다. 이어 1시 35분경 대통령에게 가려고 나섰을 때 제1공수여단병력이 국방부 청사에 진입해오면서 총격전이 전개되는 바람에 지하상황실로 피신했다.

 

이어 새벽 3시 50분경 제1공수여단 제5대대장 박덕화 중령에 의해 보안 사령관실로 연행되어 그 곳에서 정 총장 연행조사 문서에 결재한 후, 전두환과 같이 총리 공관으로 가서 대통령에게 재가를 건의하면서 그 날의 상황이 마무리 됐다.

 

41년 전 발생한 이 사건을 군부 내 하나회가 주도한 12.12쿠데타라고 부른다. 나라를 지키라고 명을 받았던 군인들이 국민에게 총을 겨눴던 군사 반란이다.

 

 

 

 

◆ 2020. 1. 22. 윤석열 vs 이성윤... 이성윤 vs 송경호

 

고위공무원인 최강욱 비서관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밑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고위공직자 복무동향 점검 등 공직기강을 맡으면서 이번 검찰 인사를 검증했다.

 

그런 최 비서관을 윤석열 검찰이 정조준 했다. 대학원 입시를 방해했다는 엄청난 범죄혐의다.

 

즉 그가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로 일하던 2017년 10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 조모(24)씨의 인턴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발급해줘 조 전 장관과 함께 대학원 입시 업무를 방해 했다는 것.

 

윤석열 검찰은 이와 관련 최 비서관이 조 전 장관 아들이 2017년 1∼10월 자신의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문서 정리와 영문 번역 업무를 보조하는 인턴활동을 했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써주고 지도 변호사 명의 인장도 찍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혐의에 대해 조국 전 장관 수사팀 고형곤 반부패수사2부장은 22일  이성윤 중앙지검장에게 검찰총장의 지시가 있었다며 최강욱 공직기강비서관을 기소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이 지검장은 ‘기소를 하지 말자는 취지가 아니라 현재까지의 서면조사만으로는 부족하여 보완이 필요하고, 본인 대면조사 없이 기소하는 것은 수사절차상 문제가 있으므로 소환조사 후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구체적 지시를 했다.

 

언론에 보도된 이후 벌어진 당일 상황을 정리해보면 그럼에도 고 부장은 22일 밤늦게까지 퇴근하지 않고 이 지검장에게 기소가 타당하다는 의견을 거듭 밝혔다. 이 지검장은 이 같은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밤 10시 반쯤 퇴근했다.

 

그럼에도 고 부장은 밤늦게까지 퇴근하지 않고 이 지검장에게 계속해서 기소의견을 전했다. 이 같은 의견대립은 자정 무렵까지 이어졌다. 퇴근했던 이 지검장은 자정무렵 사무실로 돌아오기도 했다.

 

이 지검장이 다음날까지 결정을 하지 않자 송경호 3차장과 고 반부패2부장은 인사발표 30분 전인 23일 9시 30분경 위와 같은 지시를 어기고 지검장의 결재·승인도 받지 않은 채 기소를 하였다.

 

한편 검찰청법에 따르면 지방검찰청 검사장은 그 검찰청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

 

위 규정에 따라 사건 처분은 지검장의 고유사무이고, 소속검사는 지검장의 위임을 받아 사건을 처리한다. 특히 이 건과 같은 고위공무원에 대한 사건은 반드시 지검장의 결재·승인을 받아 처리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검찰청법 및 위임전결규정 등의 위반 소지가 있다.

 

그렇다면 2020년 1월 22일 하루 밤낮 서초동 중앙지검에서 벌어진 일은 1979년 12월 12일 이태원동 국방부 청사에서 벌어진 12.12 쿠데타의 데자뷔인 셈이다.

 

전두환이 군대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앞세워  12.12쿠데타를 일으켰다면 윤석열은 검찰 내 자신의 사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윤석열 사단'을 앞세워 1.22쿠데타를 일으킨 셈이다.

 

 

 

 

◆ '윤석열' 공수처 수사 대상 오를까?

 

최강욱 비서관은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밝힌 의견서를 통해 입장을 밝히면서 "명백한 직권 남용으로 윤석열 총장과 관련 수사진을 고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최 비서관은 "그간 윤석열 총장을 중심으로 특정세력이 보여 온 행태는 적법절차를 완전히 무시하고, 내부 지휘계통도 형해화시킨 사적 농단의 과정이었다"면서 "그 과정에서 피의사실공표는 물론, 직권남용에 해당하는 행위를 저뿐 아니라 대검참모와 지방검사장에게도 반복했던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련자들을 모두 고발하여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직권남용이 진정 어떤 경우에 유죄로 판단될 수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겠다"면서 "법무부와 대검의 감찰조사는 물론, 향후 출범하게 될 공수처의 수사를 통해 저들의 범죄행위가 낱낱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결기를 곧추 세웠다.

 

재임중의 범죄행위와 관련해 대법원의 수장인 양승태의 형사처벌에 이어 대검찰청의 수장인 윤석열의 형사처벌이 현실화 될지 지켜볼 일이다. 화무십일홍이다. 즉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것이 1979. 12.12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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