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영장 기각에서 나타난 영장판사의 '소명'에 대한 시각

임두만 | 기사입력 2020/06/09 [14:07]

이재용 영장 기각에서 나타난 영장판사의 '소명'에 대한 시각

임두만 | 입력 : 2020/06/09 [14:07]

국내 최대그룹의 수장인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그리고 이후 법조계는 물론 사회 일각에서 법원의 영장기각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특히 영장을 기각한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기각사유에 대해 뒷말이 많다.

 

▲ 이재용     ©신문고뉴스

 

 

8일 장장 9시간이 넘는 심문절차를 끝내고 영장심사에서 들어간 원 부장판사는 심사 5시간 후인 9일 새벽 2시경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되었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하여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하였다고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하여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하여는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 부회장에게 청구된 영장을 기각했다.

 

물론 함께 영장이 청구된 최지성(69) 옛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김종중(64)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의 영장까지 모두 기각했다.

 

그런데 이 기각사유에 나타난 '소명'이라는 단어를 두고 한쪽에서는 전형적인 재벌봐주기라고 법원을 비판하며, 또 다른 한쪽에서는 검찰의 영장청구가 미흡한 수사에 비해 무리했다고 검찰을 비판한다.

 

이는 이날 법원이 기각 사유로 든 '소명'이란 단어가 주는 함축성에서 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원 부장판사는 일단 검찰수사의 '사실관계 소명'은 받아들였다. 이는 검찰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문제점을 수사를 통해 확인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원 부장판사는 또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검찰, 당신들은 피의자들의 행위를 다 확인했으니 그게 범죄라는 것을 재판정에서 입증하라"이다. 즉  "피의자를 가둬두고 재판을 할 것이 아니라 불구속 상태에서 피의자가 자유롭게 방어하는 재판을 통해 당신들의 수사결과를 입증받으라"라고 말한 것이다.

 

이를 원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확인했다. 증거가 확보된 이상 구속할 사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는 다른 면으로 보면 삼성 측의 대응이 성공했다는 뜻도 된다. 삼성측, 이재용 부회장 변호인단은 그동안 줄곧 "검찰이 장기간의 수사를 통해 대부분의 증거를 수집,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면서 "글로벌기업 총수로서 도주 우려도 없어 구속 사유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를 원 부장판사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원 부장판사는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추어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검찰과 변호인단이 동일한 조건에서 재판을 통해 승부를 가르라라는 뜻이다.

 

때문에 검찰이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영장재청구가 아닌 불구속 기소로 방향을 튼다면 향후 법정에서 검찰과 이 부회장 측의 공방은 치열하게 전개될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지금까지의 구속영장 발부 사례와 상당한 차이가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법원은 영장발부 사유로  '범죄혐의의 사실관계 소명'을 봤다.  법원은 검찰이 제시하는 범죄혐의의 사실관계가 '소명'되었을 시 영장을 발부했다. 특히 범죄혐의에 대한 사실관계가 소명되었다고 판단되면 다른 구속사유인 증거인멸, 또는 도주우려 등과 상관없이 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런데 원 부장판사는 범죄혐의의 '사실관계 소명'보다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하여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한 소명'을 더 중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이 부회장 영장을 기각한 원 부장판사의 기준대로라면 앞으로 우리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기준은 매우 까다롭게 변할 수도 있다. 만약 일반 피의자들에게는 이런 소명사유를 도외시하고 이재용에게만 특별히 적용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때문에 이런 비판을 의식한듯 원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는 문구 대신 '기본적 사실관계가 소명됐다'는 문구를 쓴 것으로 보인다.

 

한편 검찰은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하고 그룹의 지배력을 높일 수 있게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계열사 합병과 분식회계를 계획하고 진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측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면서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합병 비율을 산정하고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시세조종을 했다고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처리 기준을 부당하게 바꿔 4조5천억원의 장부상 이익을 얻었다고 본다.

 

따라서 검찰의 주장대로 이 부회장 측이 조작을 통한 4조5천억이란 천문학적 이익을 얻었음에도 단순히 글로벌기업 총수로서 도주의 우려가 없으니 구속할 필요가 없다고 영장을 기각했다면 이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법원 스스로 인정한 것이 된다. 때문에 앞으로의 재판 추이가 매우 주목된다.

 

임두만 /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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