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지사 아들 차영조 씨 "일제찬양금지법 제정, 윤서인 엄벌"

이명수 기자 | 기사입력 2021/02/26 [23:53]

독립지사 아들 차영조 씨 "일제찬양금지법 제정, 윤서인 엄벌"

이명수 기자 | 입력 : 2021/02/26 [23:53]

'일제찬양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시작된 농성이 나흘 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 농성은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가 시작했으며, 이에 취지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하나 둘 농성장에 들러 응원하는 등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26일 백발이 성성한 한 노인이 지난 1962년 윤보선 대통령 당시 받은 건국공로훈장증을 확대한 사진을 담은 피켓을 들고 국회 앞 농성장이 나타나 1인 시위로 백 대표의 농성에 힘을 실었다.

 

▲ 훈장증을 확대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선 차영조 씨 ©이명수 기자

 

노인은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의 아들인 차영조 씨
 
차 씨는 26일 오전, 이미 고인되 된 부친 故 차리석 독립지사에게 수여된 건국훈장 독립장을 확대한 피켓을 들고 나타나, “국회는 하루 속히 일제찬양금지법을 제정,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을 능멸한 윤서인 같은 자를 강력 처벌해야 한다”고 분개했다.
 
차 씨의 부친 차리석 독립지사는 1911년 초대총독인 데라우치 총독 암살 모의사건 가담자로 일제에 의해 8년을 언도받고 3년을 복역하였다. 이후 3·1 운동이 진압되면서 1919년 상해로 망명, 독립당 간부로 활동하다 192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193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193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서장,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비서장, 1944년 또다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겸 비서장에 선출되어 활동했다. 하지만 차 지사는 정작 독립된 대한민국에는 입국하지 못했다.

 

1945년 8월 광복 후 중경에서 환국준비를 하던 지사는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였으나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9월 9일 환국 직전 별세했기 때문아다. 이에 차 지사는 사망하기 직전 ”광복이 되었는데 왜 귀국하지 못하고 죽어야 하느냐“며 병상에서 애통해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이승만 정권은 선생을 곧바로 독립지사로 추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4.19이후 들어선 민주당 정부의 윤보선 대통령 재임시이던 1962년에야 국가 훈장인 독립장이 서훈되었다. 그런 다음 뒤늦게 1995년 9월 이 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에 이날 일제찬양금지법 농성장에 1인 시위로 동참한 차 지사의 유일한 아들인 차영조 씨는 “윤서인이란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려서 말을 하기도 힘들다”며 “윤서인 같은 자를 엄하게 처벌하기 위해서도 ‘윤서인법’으로 ‘일제찬양금지법’이 속히 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와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 아들 차영조 씨가 일제찬양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이다.     ©이명수 기자

 

아래는 이날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와 차영조 씨의 대담을 정리한 내용이다.

 

백 : 차리석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의원과 비서장을 역임하신 애국지사인데 오늘 그 지사님 자제분이신 차영조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어서오세요. 일제찬양금지특별법 제정이 빨리 안 되고 있는데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어떻게 보시는지 한 말씀 해주시죠

 

차 : 일제찬양금지특별법 제정은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순국하신 순국영령들의 명령입니다. 일제의 부역자들이 오래 정권을 잡고 와서 이 시기까지 왔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서 선열의 명령을 받들어서 이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죽어서 선열을 뵐 면목이라도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백 : 일제찬양금지특별법에 대해 반대도 많습니다. 민주당 내에서도 이게 마땅치 않아가지고  이미 제정하기로 약속도 한 건데 안 되고 있습니다. 이 법은 민주당 양향자 의원 대표발의로 작년 6월1일 제출되었습니다. 그런데 광주항쟁 왜곡법(5.18 특별법)은 됐는데 이법은 쫒겨났거든요. 이 부분에 대해서 들어보셨는지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차 : 우리나라가 1945년에 광복됐다고 하지만 그때 조선총독부 앞에 게양됐던 일장기를 내리고 대한민국 태극기가 올라간 것이 아니고 미국 성조기가 올라가서 우리를 지배하는 세력이 교대된 역사가 발생됐습니다. 대한민국 국기가 게양됐다고 하면 당연히 민족 정기를 바로 세워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발전되어 나가야 할텐데 강대국의 반대에 의해 우리 뜻대로 가지 못했습니다. 역사를 바로잡을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 이제라도 우리 후손들이 부끄럽지 않을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것입니다.

 

백 : 윤서인이란 자 들어보셨죠? 그 윤서인이가 독립운동가를 모독하고 조롱한 이런 것들이 있는데 어제 광복회에서 손배소송을 냈습니다. 2억 얼마를....그런데도 이 윤서인이란 자는 자신이 글 쓴 것이 있음에도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고 “어차피 안 될 거다”라며 의기양양 자세인 것 같습니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 판사들이 친일 성향이 많아서 바로 처벌을 안 할 거다 이런 믿음을 갖는 것 같아요.

 

따라서 일제찬양금지법이 제정되면 이런 자들이 꼼작을 못할텐데...5.18 특별법에 광주민주화운동 폄하 왜곡 조롱 등은 법정형이 최하가 징역 7년이거든요. 과거의 어떤 잘못을 처벌하자는 게 보복차원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앞으로 그러지 말자라는 게 이 법취지입니다. 이 부분에서 일제를 찬양하는 자들, 즉 요즘 램지어 교수 논문 사태에서 보듯  류석춘, 이영훈 등등 드러내놓고 역사를 왜곡하는데...이들이 이런 짓 하는 것...사실 박정희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차 선생님은 이런 사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차 : 그렇습니다. (그런 발언을 생각하면)치가 떨려서 연결의 말을 하기가 힘듭니다만 (한참 동안 말 없음)...숨좀 쉬고 말하겠습니다.

 

백 : 천천히 말씀하세요.

 

이때 보수단체 시위자들이 마이크로 "문재인 북한으로 꺼져" 등을 외치며 시끄럽게 하는 것으로 대화를 가로막아 대담이 잠시 중단되었다.

 

이러는 즈음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이 농성장에 나타나 '일제찬양금지법' 제정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일본과 우리가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과거가 청산돼야 한다, 그래서 (이 일제찬양금지특별법은)좋은 법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도 고민해봐야 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숨을 돌린 차 씨가 말을 이었다.

 

차 :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신 항일독립운동 선열들이 하늘에서 아직도 민족정기가 바로서지 않은 조국을 천상에서 내려다보신다면 얼마나 눈물을 흘리고 계시겠습니까? 후손들이 못난 탓에 선열들의 풍부한 희생정신을 기리지 못하고, 고인들을 모독하고 있는 시대를 맞이해서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국가도 잘못한 게 많습니다. 국가가 형식적으로 (제 부친 같은 애국지사들께) 건국공로훈장증만 발행을 했지, 거기에 수반되는 이분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찬양하고 기념하는 정책을 쓰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어른들의 명예가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앞으로는 말로만 순국선열, 순국선열 하지 말고, 그 순국선열의 정신을 이어가는 정책을 세워서 국민들이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백 : 민주당이 최근 국립현충원 친일파 파묘법 당론채택을 거부했어요. 여기에 한 말씀...

 

차 : 국회에는 되도록 안 오려고 합니다. 왜냐면 국회는 입법기관이지만 그와 반대로 양심이 없는 짓거리만 해왔기에, 이 사람들하고 공기를 같이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민족반역행위를 했는데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정부가 그 묘를 관리 해주는 거꾸로 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는데...(숨을 돌린 뒤) 이제라도 친일부역자들의 묘는 당연히 파묘해서 이장해야 합니다. 또 독립유공자들의 묘역을 친일반역자들과 같이 놓아둘 것이 아니라. 독립유공자 묘지를 따로 조성해서 정중하게 모시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들 여러분들도 이점을 유의해서 독립유공자묘지법을 제정해서 독립유공자들을 명예에 걸 맞는 예우를 해드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백 : 아까 못 하셨던 윤서인에 대해...

 

차 : 사실 상대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윤서인 그자 말처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열심히 산 건 맞습니다. 일제부역을 열심히 했다는 것이지요. 또 일제가 물러가면서 친미, 이승만 박정희 등 친일정권 부역 등도 열심히 했지요. 그렇지만 그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열심히 산 건 아니지요. 그런데 이들과 반대로 독립유공자들은 평생을 독립운동하셨습니다. 평생 독립운동하실 때는 자기 재산과 가족을 버리고 희생을 각오하고 독립운동하셨기 때문에 그 후손들이 재산을 불릴 여건이 되지 못해 못사는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우리가...(가슴을 두드리며 더 이상 말을 못 이음)“

 

이후 감정에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하는 차 씨를 위로하며 이 대담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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