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옥탑방문제아들' 출연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 아내 만난 것"

조현진 기자 | 기사입력 2021/12/01 [01:28]

이재명 '옥탑방문제아들' 출연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 아내 만난 것"

조현진 기자 | 입력 : 2021/12/01 [01:28]

[신문고뉴스] 조현진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사랑꾼'임을 고백했다.

 

30일 방송된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이재명 후보는 "제일 즐거운 시간이 아내하고 장난치고 놀 때"라고 말한 뒤 "출근할 때 아내가 엘리베이터까지 배웅을 해준다. 향수를 뿌려주는데 이렇게"라며 몸을 흔드는 동작을 취하는 등 사랑꾼 모습을 보였다.

 

▲ 이재명 후보가 옥탑방 문제아들에 출연했다.     ©방송화면 갈무리

 

이날 이 후보는 자신의 아내가 사고를 당한 뒤 돌았던 루머도 '예능스럽게' 해명했다.

 

이날 정형돈은 "짬 내기도 바쁘실 텐데 어떻게 예능 프로에 나오게 됐냐"고 묻자, 이재명 후보는 "제가 뿔난 사람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라며 "찔러도 피도 안 나올 것 같고. 소위 추진력이라는 게 잘못 인지되면 탱크로 밀어버릴 것 같은 느낌도 들지 않냐. 실제로는 아닌데.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기회가 필요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김용만은 "토크 수위를 정해달라"고 말하자 "최고 수위로 편하게 자유롭게 하시면 된다"라며 곧바로 아내의 사과와 관련된 얘기를 내놨다.

 

즉 아내 김혜경 씨의 낙상 사고에 대해 "토하고 이러다 보니까 심하면 의식을 잃는 경우가 있다. 화장실에 넘어져서 (눈 위쪽을 가리키며) 여기가 찢어졌다. 제가 어찌했다는 썰이 있었다"라고 루머를 언급했다.

 

이에 송은이가 "그런 썰 들을 때마다 어떤 기분이시냐"라고 묻자 이 후보는 "처음에는 무지하게 화가 났다. 요즘은 별로 화 안 난다. 너무 일상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라며 "'요 기회를 이용해서 어떻게 되치기 할까' 이런 생각을 한다. 저는 그걸 믿는다. 과하면 반작용이 있다. 지나치게 넘어오면 반격할 기회다"라는 등 웃으며 설명했다.

 

 

그리고 이 후보는 "'왜 경호 인력이 있는데 못 봤겠냐. 이상한 짓 한 거지'라고 했다"는 루머를 소개하고는 "'우리는 사생활에 경호 인력 쓰지 않는다'라고 했다. 신분을 안 밝혀서 (출동한 구급 대원) 그 친구들이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더라. 그런데 보고 안 했다고 혼났다더라. 제가 혼낸 것처럼 이미지를 만들려고 해서 '우리는 신분을 밝히고 뭘 요구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재명 후보는 조폭 연루설에 대해 "시장실에 아무나 와서 사진 찍으라고 했다. 어느 사람이 책상에 다리 올리고 찍었다. 많이 찍어 갔다. 그걸 올렸는데 '이재명이 조폭인 증거'라고 하더라"라며 일화를 공개했다. 

 

진행자 김용만이 "꼭 어필하고 싶은 이미지가 있냐"라는 질문에 이 후보는 "매우 다정다감하고 사람들과 교감도 잘 되는 편이고 그런 측면들이 전혀 안 보이고 일방적으로 보이고 일을 할 때도 세게 하니까. 성과를 내려면 세게 할 수밖에 없지 않냐. 인간이다. 보통의 인간. 용만 씨하고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인간적인 면이 어필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이날 김용만은 이 후보가 일기를 오래 썼다는 말을 하자 "인생살이하면서 잘한게 있다. 제일 잘한게 아내를 만난 것이고 일기를 쓴게 잘한 것 중 하나다"라며 "매일매일 저를 되돌아본 계기가 됐다. 78년에 검정고시 공부 시작 직후부터 사법시험 합격해서 연수원 간 시점까지 10년정도 썼다"고 말했다.

 

이에 김용만이 "사모님한테 프러포즈 하면서 일기장을 줬다더라"라고 묻자 "결혼하고 싶어서 매일 쫒아다니다가 나흘만에 청혼했다"는 깜짝 고백을 했다.

 

이어 "그런데 답을 안하더라. 나름 도박을 했다. (일기장을 통째로 준 것은) 지금 생각하면 위험한 도박이었다. 내가 어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건지 내면을 통채로 보여주고 처분을 맡기겠다 한거다. 당황하더라. '다이아도 아니고 이걸 왜 주지?' 했는데 그걸 보고 청혼 받아주기로 했다더라"라며 "읽고 답하는데 오래 걸렸다"고 초고속 결혼 스토리를 말했다.

 

또 이날 문제풀이 시간에 환경미화원의 산재보상과 관련 담당 변호사가 직접 청소일을 하고 그것을 증거로 산재를 인정받게 했다는 설명을 듣고 "여동생이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다가 새벽에 목숨을 잃었다. 소송까지 갔는데 산재 인정을 못 받았다"고 공감했다.

 

그는 "제가 보기에는 새벽에 출근해야되니까 그것 때문인것 같은데 산재인정을 못 받아서 소송까지 갔다가 패소하고 포기했다"며 "제가 그때 그 마음이 들었다. '판단하는 사람이 이렇게 한번 해봐라'고. 새벽에 근무시간 바뀌어서 5시에 출근하고 일하는데 누적되면 쓰러질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고하며 산재보상 재판을 승소하도록 도운 변호사를 두고 '훌륭한 변호사'라고 칭송했다.

 

 

그리고 이날 이 후보는 사법고시 준비를 준비한 이유에 대해 "탈출하고 싶었다. 너무 환경이 나쁘니까.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이 공부해서 인정받는 거었다"설명하고는 "대학을 장학금 받고 갔다. 제일 안정적으로 많이 주는 대학을 선택했다. 거기서 커트라인 높은게 법대였다. 갔더니 사법고시가 있는데 그걸 합격하면 고위 공무원이 될수 있다더라. 제가 장애가 있어서 취업은 어렵다고 생각해서 이것만이 갈길이라 생각했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또 사시 성적과 연수원 성적이 좋아서 판검사를 할 수 있었는는데 판사가 아닌 변호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객기일수 있다. 그때가 80년대였다. 젊은 마음에 군사정권에 임명받을수 없다, 군사정권에 어떻게 부역하냐고 임용 거부를 한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26살에 노동자를 위한 법률사무소를 차렸다고 말하며 "제가 노동자 출신이기도 하고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도로 알아서 제 입으로 비난을 많이했다. 대학 가보니 반대였다. 죄책감도 많이 들었다"면서 "짧게 판검사 하면 전관예우를 해준다는 권유 많이 들었다. 그래도 안 한 이유는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올 자신이 없었다. 못 나올 것 같았다. 욕망과 의지가 충돌하는거지 않나. 욕망을 이겨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세상이 좀 공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인권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자연스럽게 시민운동에 참여하게 됐다"면서 "시립 의료원만들기 운동을 하다 두번째로 수배가 됐다. 시립의료원 조례안을 냈는데 날치기로 폐기하더라. 화가 나서 거기서 엉엉 울었다. 그게 점거가 된 거다. 특수 공무집행 방해라고 구속되게 생겨서 교회 지하실에 숨었다. 그때 같이 면회 온 운동가랑 '이래서 세상이 바뀌겠냐. 우리가 시장 돼서 직접 하자'고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이 후보는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얼마전 후보 선출하고 출범식을 했다. 행사중 가족들 사진 몇개가 나왔는데 어머니 사진이 딱 나오니까 참았는데 눈물이 흘러내리더라. 작년에 돌아가셨다"면서 "아픈게 참 많다. 세상 사람들한테 속을 다 공개했으니 어머니가 계속 고통스러웠다"고 형님관 관련된 일도 언급했다.

 

이 후보는 즉 "형님이 시정에 관여하려고 하니 차단했고, 어머니를 이용해서 저한테 접근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막으니 어머니에게 가해를 한 거다"라며 "어머니 입장에서는 7남매 중 가장 효성스럽던 아들이 변해서 골육상쟁이 벌어지는 상황을 눈으로 보시고 해결도 안된상태에서 돌아가셨다"고 말하면서 눈가에 눈물을 찍어 내 잠시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또 부친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과거에 사이가 안 좋았다. 갈등이 심했다"면서 "아버지는 대학을 중퇴하고, 할아버지 모시러 귀농해서도 남의 밭을 봐주셨다. 그러다 못살게 돼서 성남으로 와서도 청소부를 했다. 또 제가 공부하는것도 탐탁치 않아 했다. 본인 인생을 반추해보니 많이 배워봤자 쓸데없더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저는 공부를 정말 하고싶었고 그것 때문에 충돌이 발생해서 안 좋았는데 시간 지나고 제가 아버지가 되어 보니까 아버지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그때는 아프니까 원망 많았는데 굳건하게 어려운 상황을 잘 견뎌내고 포기하지 않은 건 아버지의 도움 같다. 아버지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꼭 도와줬다. 검정고시할 때 야간학원 다녔는데 학원비를 주시고, 고시공부할 때도 사법고시 떨어져서 장학금을 못 받는 바람에 공부하기 어려울 때 몰래 숨겨놨던 돈을 보내주셔서 1년 공부 더 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졸업 하면서 아버님이 지원해줘서 사법고시 공부를 다시시작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86년 3월에 위암이 재발해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합격할 때까지만 살아달라고 했다. 그게 6~8개월 정돈데 실제로 살아주셨다"면서 "제 생일날 제 출생시에 돌아가셨다. 의식도 거의 없던 상황이었는데, 마지막에 합격소식 알려드린 걸 인지하신 것 같았다. 눈물을 흘리시더니 가셨다"고 말하고는 "화해를 제대로 못했다"고 후회했다.

 

그리고 다시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린 이 후보는 "말로 화해를 했어야 하는데 못했다"며 "지금의 저를 보신다면 매우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다. 대학 갈때까지도 반발심에 학과도 마음대로 정했다. 도움 받은 것도 아니고 장학금 받고 생활비를 대줬으니 아버지도 말 못했는데 어느 순간 동네 어르신한테 자랑을 하고 계시더라. 그걸 우연히 들었다. 그때 '나를 미워하는 게 아니구나. 뿌듯해 하시는구나'라는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이 후보는 "이루고픈 꿈이 있냐"는 질문에 "기다리는 답이 대통령일 수 있지만 아니다. 합리적이고 공정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재밌지 않나. 희망도 있고 과감히 도전해도 불안하지 않고 누군가 듬직하게 버텨주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언젠가 죽을텐데 마지막 순간에 '재밌었어. 후회되지 않아'라고 말할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워낙 기대하지 않은 것들을 많이 성취해 왔다. 과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어떤 경우보다 빨리 여기까지 와서 지금상태로 충분히 만족한다. 가능하면 내가 꿈꾸는 세상을 좀 더 빨리 만들었으면 좋겠다. 시장이라는 호미로 농사를 지었는데 그거 믿고 사람들이 쟁기를 맡겨줘서 쟁기로 농사 짓다 이제는 트랙터를 구한다면 훨씬 농사를 잘지을수 있다. 못한다 해도 다른거 할거 많으니까 상당히 여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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