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명진스님 갑작스러운 입적에 “평등·평화·자비의 삶 오래 기억”김민석 “큰 스님이자 큰 개혁가·민주지도자”…추미애 “정의가 목마른 중생의 따뜻한 기둥”...박홍근 “평화·통일 선도하고 약자와 동행"
|
![]() |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SNS에 ‘명진 스님의 입적을 애도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명진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 소식에 놀랍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대한민국 불교계의 큰 어른을 떠나보내게 된 슬픔을 온 국민과 함께 나눈다”고 애도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지난해 7월 명진스님과 오찬을 함께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명진스님이 “빈부격차 속 고통받는 노동자들까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 남북 평화를 위해 대통령이 길을 열어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이어 “돌이켜보면 그 말씀에는 평생 스님께서 걸어오신 수행의 길과 세상을 향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며 “‘현장이 곧 수행터’라는 신념으로 세상의 아픔이 있는 곳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셨고, 늘 뜨거운 청년의 마음으로 더 나은 세상과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셨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평등과 평화, 그리고 중생을 향한 자비의 마음을 품고 살아오신 스님의 삶과 뜻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며 “삼가 명진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민석 “큰 개혁가이자 큰 민주지도자…어려운 이들의 병풍”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깊은 애도를 표했다.
김 대표는 SNS를 통해 “명진스님의 갑작스런 입적에 다시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며 “큰 스님이자 큰 개혁가이시고, 큰 민주지도자이셨다”고 평가했다.
이어 “어려운 시절, 어려운 이들을 많이 도와주신 병풍이셨다”며 자신의 어머니 역시 명진스님을 자주 언급했다면서 “재야의 큰 어른이셨다”고 회고했다.
김 대표는 “표표히 가셨지만, 그 따뜻한 모습을 잊지 않겠다”며 “스님, 편히 영면하시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추미애 “불의한 권력에 죽비…정의 목마른 중생에 따뜻한 기둥”
추미애 경기도지사도 명진스님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종일 허탈하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추 지사는 명진스님이 과거 권력을 향해 거침없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것을 떠올리며 “찌렁찌렁한 울림으로 혼탁한 검찰 파시스트 정권에 죽비를 내려치던 명진스님의 갑작스런 비보에 종일 허탈하다”고 밝혔다.
이어 “속세에 엄격한 경계를 두지 않으시고 소탈하게 민생의 무게를 나누어 지시려는 자비심과 정의로움”을 강조하며, 그런 모습이 “정의가 목마른 중생에게는 다정하고 따뜻한 기둥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감사했다. 이제 짐 내려놓으시고 부디 극락왕생하소서”라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박홍근 “평화·통일 선도하고 약자와 동행…불의한 권력에 침묵하지 않아”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도 “명진 큰스님께서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소식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명진스님에 대해 “평화와 통일을 선도하셨고 약자와 동행하셨으며 불의한 권력에 침묵하지 않으셨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명진스님이 국가정보원의 불법 민간인 사찰 대상이 됐던 사실을 거론하면서 “저 역시 국회의원 시절 스님에 대한 불법사찰의 진상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일에 함께했던 인연이 떠오른다”고 회고했다.
이어 “시대의 질곡과 중생의 고통을 늘 함께 나누시던 스님의 뜻과 말씀, 오래 기억하겠다”며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실제로 명진스님은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의 불법 민간인 사찰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봉은사 주지 시절부터 당시 정부와 조계종 지도부를 향해 공개적인 비판을 이어갔다.
“명진스님답게 가셨다”…각계서 특별했던 삶 회고
서의현 전 조계종 총무원장도 명진스님의 독특하고 호방했던 면모를 회고하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는 “명진스님은 명진스님답게 가셨다”며 생전 명진스님이 춘성스님의 다비식에서 보여준 일화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고인의 다비식 역시 엄숙함만 가득한 자리가 아니라 “즐겁고 유쾌하게 보내드리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불교계에서도 안타까움이 이어졌다.
조계종 선명상위원장 금강스님은 SNS를 통해 약 20일 전 명진스님과 만났던 기억을 전하며 “무산소 바다 20m를 말씀하시더니 기어코 바다에서 입적하셨다”고 애도했다.
명진스님이 최근 몇 년간 머물렀던 제주 남선사의 주지 도정스님은 고인이 수심 20m 잠수에 도전하면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두려움을 수행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전했다. 도정스님에 따르면 명진스님은 수행자로서 두려움의 근원을 찾아 직면하고 이를 극복해 깨달음에 이르고 싶다는 뜻을 자주 밝혔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시민사회와 협의해 봉은사에서 사회장 형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장례 장소와 방식 등 구체적인 절차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현장이 수행터’…민주화운동·종단개혁·사회참여 앞장선 실천승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명진스님은 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했으며 1974년 탄성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이후 전국 선방에서 수행 정진하며 40안거를 성만한 수행승이면서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대표적인 실천승으로 평가된다.
1987년 민주항쟁에 참여했으며 1994년 조계종 종단 개혁을 주도했다. 제11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과 1998~2002년 중앙종회 부의장을 거쳐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 봉은사 주지를 지냈다.
봉은사 주지 시절에는 도심 사찰을 수행도량으로 만들겠다며 2006년 12월부터 2009년 8월까지 1천 일 동안 매일 세 차례 1천 배 기도를 이어갔다. 사찰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개혁에도 나섰다.
그러나 조계종 지도부와 당시 이명박 정부를 향해 거침없는 비판을 이어가면서 갈등을 겪었다. 이후에도 종단 지도부를 공개 비판하다 2017년 조계종으로부터 승적 박탈 징계를 받았다.
명진스님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고 1·2심 법원 모두 스님의 손을 들어줬다. 올해 초 명진스님 측과 조계종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기로 하면서 오랜 법적 분쟁이 마무리됐고 승적도 회복됐다.
일흔이 넘어서도 새로운 수행에 도전했던 명진스님은 최근 몇 년 동안 5월부터 12월까지 제주 남선사에 머물며 프리다이빙 훈련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권력에는 거침없는 쓴소리를 던지고 사회적 약자에게는 손을 내밀었던 명진스님. 그의 갑작스러운 입적 소식에 정치권과 불교계, 시민사회의 추모가 이어지면서 평생 강조했던 ‘현장이 곧 수행터’라는 그의 삶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명진스님 #명진스님입적 #극락왕생 #이재명 #김민석 #추미애 #박홍근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불교계 #종단개혁 #불교개혁 #사회참여 #민주화운동 #실천승 #제주 #프리다이빙 #평화 #자비 #사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