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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근 詩線] 《개화산의 가을》 ▪︎ 작시: 유호근(예종)
개화산에 가을이 오면 버드나무 잎 하나씩 어린 날을 내려놓는다.
붉은 진달래 피던 산허리, 노란 개나리 웃던 둑길, 초가의 낮은 지붕 위로 저녁 연기 하나씩 피어오르던 시절. 신작로를 따라 학교를 오가며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작은 피리 하나 만들었다.
입술을 대면 서툰 음 하나가 흘러나왔고, 나는 그 소리를 따라 집으로, 학교로 걸었다.
악기도 없었고 노래를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지만 산과 들과 바람이 내게 처음 음악을 가르쳐 주었다.
거북바위 곁에 앉으면 옛 신선의 이야기가 들리고, 김포 뜰 너머 평야는 한강까지 가을빛으로 번졌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걷던 흙길이 언젠가 그리움의 길이 되고, 버드나무 피리 소리가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내 어린 날의 노래가 될 줄을.
이제 다시 개화산에 선다. 붉던 꽃은 기억이 되고 노랗던 봄은 바람이 되었으며 버드나무 잎은 하나둘 강물처럼 떨어진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사라지는 것은 계절이 아니라 우리 안에 쌓이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러나 잎이 져도 나무는 뿌리를 버리지 않는다.
한강이 흘러가도 하늘을 품듯, 나도 떠나온 길을 돌아 어린 날의 피리 소리를 듣는다.
아득한 그 소리 하나 가을바람을 타고 돌아와 오늘의 나를 다시 그 아이로 만든다.
개화산, 꽃이 피어 이름이 된 산. 그리고 내 안에서는 한 아이의 노래가 아직도 피어나고 있다.
《개화산의 가을》 ― 작가의 노트
내게 개화산은 고향의 이름이기 전에, 한 아이가 세상을 처음 듣고 바라보고 걸었던 기억의 산이다.
나는 어린 시절 개화산 아래에서 자랐다. 그때의 개화산은 지금처럼 도시의 풍경 속에 놓인 산이 아니었다.
붉은 진달래가 산허리를 물들이고, 노란 개나리가 둑길과 담장 너머로 피어나면 봄이 왔음을 알았다. 신작로 양옆으로 버드나무가 서 있었고, 초가집 굴뚝에서는 저녁 연기가 피어올랐다. 김포의 넓은 들과 평야는 한없이 펼쳐졌고, 멀리 한강은 어린 내 눈에 세상의 끝처럼 보였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학교를 오갔다. 그리고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작은 피리를 만들었다. 잘 다듬어진 악기도 아니었다. 음계도 몰랐다. 누가 음악을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버드나무 껍질에 구멍을 내고 입술을 대면, 서툴지만 분명한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학교에 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내 생애 최초의 음악이었다. 악기가 없었던 시절, 자연이 내게 악기가 되어 주었다. 음악을 배울 수 없었던 아이에게 바람이 첫 선생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이 시에서 버드나무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버드나무는 어린 시절의 가난과 놀이, 자연과 음악, 그리고 잊히지 않는 기억을 이어 주는 하나의 생명줄이다. 세월이 흐른 뒤 다시 그 시절을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거창했던 것들은 먼저 사라진다. 그러나 작은 것들은 오래 남는다.
버드나무 껍질을 벗기던 손끝의 감촉, 피리에 입술을 대던 순간, 흙길을 밟던 발걸음, 저녁 초가집 굴뚝에서 올라오던 연기, 거북바위 곁에서 듣던 이야기, 김포 뜰 너머로 길게 흐르던 한강.
인생의 깊은 기억은 대개 크고 화려한 사건보다 작은 감각 속에 숨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이 시를 봄이 아니라 가을에 세웠다.
봄의 개화는 시작의 계절이다. 그러나 가을은 돌아보는 계절이다. 어린 시절에는 꽃이 피는 것만 보았다. 이제는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본다. 그때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몰랐다. 이제는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 안다.
그래서 가을의 버드나무를 바라보며 나는 한 문장을 마음에 새겼다.
“사라지는 것은 계절이 아니라 우리 안에 쌓이는 시간이다.”
하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빼앗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잎은 떨어져도 나무는 뿌리를 버리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가도 하늘의 모습을 품고 간다. 사람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향을 떠나고, 어린 날을 떠나고, 수많은 사람과 계절을 떠나보낸다. 그러나 떠나온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기억이 되고, 어떤 것은 노래가 되고, 어떤 것은 한 사람의 삶을 이루는 뿌리가 된다.
내게 개화산이 그렇다. 그곳에서 보았던 꽃과 들판, 버드나무와 한강, 흙길과 초가의 풍경은 오래전 사라진 장면들이지만, 내 안에서는 아직 현재형이다.
특히 어린 내가 불었던 버드나무 피리의 서툰 한 음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쓰고 시를 쓰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는지 모른다.
말보다 먼저 자연의 소리를 들었고, 책보다 먼저 들판의 풍경을 읽었으며, 악보보다 먼저 바람의 음률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의 마지막에서 나는 다시 어린아이를 만난다.
“아득한 그 소리 하나 가을바람을 타고 돌아와 오늘의 나를 다시 그 아이로 만든다.”
이것이 내가 《개화산의 가을》에서 말하고 싶었던 가장 깊은 이야기다. 나이가 들어 고향을 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장소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그곳에서 처음 웃고, 처음 놀고, 처음 노래했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다. 개화산은 내게 그런 산이다.
꽃이 피어 이름이 된 산. 그리고 한 아이의 마음에도 자연과 시간과 기억이라는 꽃을 피워 준 산. 이제 나는 그 산을 떠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가을바람이 불면 어딘가에서 다시 버드나무 피리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리고 그 소리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선다. 한때 그 산길을 걸었던 아이가 아직 내 안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 유호근(예종) <저작권자 ⓒ 신문고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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