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촌형님을 보내드리면서

박오영 교수 | 기사입력 2026/10/01 [01:57]

[칼럼] 사촌형님을 보내드리면서

박오영 교수 | 입력 : 2026/10/01 [01:57]

 

박산부인과의 건정 형님은 당초 파킨슨병이 있었고, 거기에 치매가 진행되어 왔다. 몇 년 전 전화를 했을 때 예전에 이야기했던 것들을 잊어버리고 있구나 생각했다. 더욱이 마지막에는 폐렴까지 와서, 아마도 급성폐렴이 아니었나 생각하는데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셨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내가 어린 시절 큰집에 놀러 가면, 그때 건정 형은 신장이 안 좋아서 다니던 의과대학을 휴학하고 있었다. 링거병에 소변을 받아놓고 색상을 구분하는 것으로 병의 진행 여부를 알 수 있도록 링거병을 여러 개 가져다 놓고 있었다.

 

나는 그때 초등학생이었는데 아마도 초등학교 3, 4학년 때였을 것이다. 건정 형과 나는 둘이서 세상 살아가는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뒤돌아 생각하면 나는 어렸지만 두 사람은 대화가 잘 통했던 것 같았고, 건정 형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많이 전해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는 의과대학에서 공부하는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의과대학의 두꺼운 책을 펼쳐놓고 하나하나 설명해주어서 참 고마웠던 시절도 있었다.

 

의과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이 사람의 신체에 관한 것들이어서 아무래도 어린 나에게는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신체, 여자의 신체 그리고 장기에 대해 영어로 된 책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해주었는데 흥미를 가지면서 들었다.

 

형님의 성품이 워낙 조용조용하셔서 설득력도 있었고, 나는 관심이 더욱 배가 되기도 했다. 내가 여자아이였더라면 그렇게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나는 건정 형님 방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고 있었다.

 

아스라이 먼 옛날 이야기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떠오른다. 사람의 인체에 관한 사진과 설명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아마도 초등학교 때 내 성적으로는 의과대학은 꿈에도 들어갈 수 없는 대학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어린 시절 나는 노는 데 전력을 다했고 공부는 아예 담을 쌓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랬던 내가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 새롭게 공부하게 되고, 지금도 매일 공부하는 일이 하루의 일과가 되어 있다. 어쩌면 인생은 철이 드는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이구나 생각한다.

 

어제는 모처럼 건정 형의 여동생인 금주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건정 형은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조금 어려웠고 거기에 치매가 있어서, 금주 누나가 건정 형 집에 연락도 안 하고 불쑥 찾아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오빠와 여동생 사이에 굳이 연락하고 찾아갈 필요는 없겠지만, 건정 형이 여동생에게 “어떻게 알고 찾아왔노”라고 뜬금없이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것이 몇 년 전 일인데, 그때가 살아생전 오빠와 여동생의 마지막 대면이었다고 했다.

 

대구라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 살아가고 있어도 한 식구였던 형제들이 오히려 이웃사촌보다 서로 살아가는 근황을 모르고 지내고 있구나 생각했다. 대구의 번화가는 크지 않아 거리를 걷다가도 만날 수 있는 곳인데도 오빠와 여동생 사이에 서로 모르고 지내는 것이 새삼스럽게 여겨진다.

 

한집에서 성장하고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있을 때가 식구이고 가족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부모님이 떠나시고 난 후에는 형제들에게 식구라는 개념도 의미가 없어지는가 생각한다. 물론 더 가깝고 절친하게 지내는 가족들도 있겠지만.

 

건정 형님이 떠나고 난 후 금주 누나에게 어떠냐고 물어보았는데 “아이고, 그냥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특별한 아쉬움도 연민도 없어 보였다. 작은 도시 대구에 다 함께 살아가고 있어도 특별히 만남이 없었으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살아 있을 때는 작은 일로 다투기도 하고, 가끔씩 명절에 만나 차례를 지내기도 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금주 누나도 건강이 크게 좋지는 않은지 그냥 뜨거운 흙침대 바닥에서 몸을 지지고 있다고 했다. 그 말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이가 들고 늙어서인지 오빠가 돌아가셔도 그냥 그렇구나, 그래서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는구나 싶었다. 살아 있을 때 열심히 일하고 건강할 때 시간을 내어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여행도 다녀야겠구나 생각한다.

 

건정 형님은 마지막에는 중환자실에 오랫동안 계셨는데, 아마도 돌아가시고 싶어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돌아가실 때도 본인이 가고 싶지 않으면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면서 오랫동안 지내는 분들도 있구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건정 형님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일에 남들보다 관심도 많았고 못다 한 일들도 많았기에 살아생전에도 무언가를 하고자 하셨던 분이었다.

 

영어를 잘하니 외국의 도서들을 인터넷으로 받아 연구하면서 뭇사람들도 세상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들어보면 알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이 어쩌면 한심하게 생각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건정 형과 나는 어린 시절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었기에 아쉬운 작별이라고 생각한다. 살아 있을 때 가깝게 지냈고 어른이 되어서도 서울에서 자주 만나기도 했다. 나에게 건정 형님과의 작별은 서운한 헤어짐이다. 서로 정신이 있을 때 대화가 되고 애틋한 정이 오가는 것이기에 더욱 아쉽게 생각된다.

 

나의 아버지께서 건강이 안 좋으셔서 서울의 나의 집에 오셨을 때도 건정 형님과 형수님이 우리 집까지 오셔서 1박 2일을 하셨다. 그다음 날 서울 삼성병원에 119구급대를 불러 건정 형이 119 차량에 선탑해서 모셔드린 적도 있었다.

 

삼성병원 원장님이 건정 형님의 경북대 의대 친구분이셔서 입원을 쉽게 할 수도 있었는데 정말 고마웠고 든든했다. 내가 힘들고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큰 도움이 되었다.

 

추석날을 핑계로 대구 장례식장에 못 간 것이 내내 마음이 아프다. 대구 가는 차편이 없었고, 있다고 하더라도 차를 타고 대구까지 가야 했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조화를 보내드리기는 했지만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는 아니었구나 생각한다.

 

 

나의 딸 은혜가 태어났을 때, 그 당시 내가 정말 돈이 없었던 시기였다. 박건정 산부인과에 가서 아이를 낳았는데 무료로 받아주었다. 부끄럽지만 그때 나는 정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열심히 살지도 않았지만 생각하면 돈도 없고 제대로 사람 구실도 못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고맙다는 이야기도 한 번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수십 년 전의 일들이지만 마음속에서 그 감사함을 잊어본 적은 없다.

 

뒤돌아보면 오늘의 내가 이렇게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나를 걱정해주신 부모님과 주위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뒤돌아보면 모두 다 꿈 같은 일이다.

 

생각해보니 추석이어도 건정 형 장례식에는 가봤어야 했는데 하는 미안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물론 은혜가 태어났을 때 무료로 아이를 받아주셨지만, 나의 어머니께서 나를 대신해 건정 형수님과 형님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하셨을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한평생 어머니를 비롯해 모든 분들에게 폐만 끼치고 살았구나 생각한다.

 

이제 누군가부터 차례차례 돌아가시겠구나 생각하니 덧없는 인생이구나 싶다. 하늘이 부여해주신 소명을 다하고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더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아가야겠구나 생각한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부지런하게 살아가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건정 형님의 명복을 빌어드리고, 살아생전에 고맙게 해주신 일들에 대해 감사하다고 인사 한 번 제대로 못 했던 일들이 죄스럽게 여겨진다.

 

지난번 충무로에서 형제들의 마지막 모임을 하고자 했을 때 건정 형수님도 형님도 서울로 올라오시기로 약속했는데, 서울의 형님들 일정이 맞지 않아 못 오시게 된 일이 마음 아프다.

 

이제 모두 다 끝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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