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인장 지킴이, 한국인장박물관

작가 체취가 물씬 베어있는 문화유산...한국 인장 한 자리에

이호 | 기사입력 2007/12/31 [14:22]

사라져 가는 인장 지킴이, 한국인장박물관

작가 체취가 물씬 베어있는 문화유산...한국 인장 한 자리에

이호 | 입력 : 2007/12/31 [14:22]
▲ 우리나라 최고의 인장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인장박물관의 인장들.     © 박물관뉴스
입질이 좋아 조사(釣士)들의 입문 코스로 불리는 충남 예산군의 예당저수지 인근에는 국내 유일의 인장 테마박물관인 한국 인장박물관이 있다.
 
인장이란 문인들이 자신이 낸 책 뒤에 마무리로 찍어 낙관처럼 사용하던 것으로, 그 문인의 책이라는 증거가 되는 상징이자 문인들만의 개성과 향취가 드러나는 예술품이기도 하다.
 
‘작가의 체취와 인격과 지문이 묻어 있는 문화유산’이라는 박물관의 설명은 과장이 아니리라. 하지만 지금 찍어내는 출판물들을 보면 빨간 인주 찍힌 인지가 드물다. 바야흐로 전자 시스템이 인장을 밀어내는 시대인 것이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닌 인장이 문학의 뒤편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사라질 인장문화 유산을 수집하고 보관하기 위해 2000년에 한국문인인장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박물관 안에는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등 청록파 시인들의 인장을 비롯해 김동리, 서정주, 오영수 등 국내의 대표적 문인들의 인장이 전시되어 있다.
 
어떤 문인의 인장인지 확인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장의 종류 또한 다양한데, 막도장이라 불리는 단순한 모양과 서체에서부터 원형, 사각, 큰 인장, 아름답게 꾸민 인장 등 다채로운 모양과 색깔이 눈을 사로잡는다.

한국인장박물관 관장 이재인(소설가.경기대 교수)은 ‘요즘은 인장도 필요 없고 사인 하나로 모든 것이 통하는 시대다. 어쩌면 사인조차 필요 없는 시대가 곧 닥칠지도 모른다. 더구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인장이 가진 예술적 가치에 무관심하다. 선인들이 하나의 멋으로 간주했던 인장예술이 과거의 유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어렵사리 수집한 인장들이 우리 문화의 전통 자료라는 아름다운 열매로 남게 될 것 같아 더욱 더 무거운 책임감이 내 어깨에 얹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인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특정인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특히 서양에서는 반지에 도장을 새기고 그것을 문서에 찍어 효력을 발휘하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도장의 역사가 가장 오래 계승 유지되면서 일종의 예술 및 기호품으로까지 발전한 것은 역시 동양 문화권의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도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에는 인장, 도서, 낙관, 관지, 투서 등 종류가 다양하다. 재질로는 나무나 뿔조각, 돌 등에 문자나 그림을 전각 형태로 새긴 것이 많았다. 서양에서 필사 글씨가 단순한 정보전달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 것과 달리 동양에서는 붓글씨가 하나의 예술양식으로까지 발전했다.
 
서양에서는 그 글씨의 기능성이 결국 금속활자로 이어진 반면, 동양에서는 그 글씨의 조형성과 예술성이 도장과 서예, 금석문으로 연결됐다. 도장은 대량정보전달의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은 동양 고유의 인쇄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조촐한 규모의 테마박물관인 이곳에는 한국 근대문인들이 사용하던 낙관을 중심으로 국내외 희귀인장 10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처음에는 문인들의 인장수집과 전시로 시작한 이 곳은 점차 그 수집의 폭을 확대해 지금은 인장 전반에 관한 문화와 세계 각국의 희귀인장은 물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인장으로 넓혀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인장은 오랫동안 신분, 관직, 품계를 나타내는 일종의 신표였다. 하지만 이제 서양의 사인 문화와 첨단 전자결재에 밀려 신표로서의 기능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과거 스테인레스 그릇이 등장하면서 싸구려 폐품으로 엿장수 등에게 팔려갔던 방짜 그릇이 요즘에는 거의 금값으로 대접받는 현실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전통문물이 그 실용성을 상실한 때가 바로 그 문물이 역사적 가치를 지닌 예술품으로 자리잡는 그 때 아닐까?

박물관 밖에는 유명 문인들의 시비와 문학비들 20여기가 서 있다. 문학비의 글자들을 한 자 한 자 읽어가다 보면, 돌에 글을 새긴 이의 마음이 전달되는 듯하다. 이 박물관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터라 그 규모는 작지만,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인 인장이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인장박물관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 안에 칠갑산이 있고, 밤에 몰래 서로의 볏짚단을 옮겨 놓았다던 의좋은 형제 마을이 있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촬영했던 전통가옥 조응식가가 있다. 또한 예산에 가면 빼놓지 않고 들러야 할 곳이 바로 수덕사다. 수덕사 대웅전 앞뜰을 거니노라면 들끓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예산 부근은 또 온천으로 유명한데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쌓인 피로를 말끔히 풀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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