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 이거 싹이 안났네 다 골았네벼”

[무늬만 농촌출신 농사일 체험기] 벼농사 시작 ‘못자리 내기’

이민선 기자 | 기사입력 2008/05/05 [03:37]

“어허 이거 싹이 안났네 다 골았네벼”

[무늬만 농촌출신 농사일 체험기] 벼농사 시작 ‘못자리 내기’

이민선 기자 | 입력 : 2008/05/05 [03:37]
 
▲ 볍씨 뿌리기     © 이민선
고향 가는 발걸음은 늘 가볍다. 농사일 돌보기 위해 가는 발걸음도 마차가지. 금요일(5월2일) 오후, 일찌감치 일을 마치고 고향집(충남예산) 으로 가족들과 함께 출발했다. 11살 하영 이는 개구리 잡는 꿈에 부풀어 있고 4살 호연 이는 빵빵(자동차) 타고 여행 하는 것이 그저 즐겁다.

부모님 연세 올해로 팔순이다. 농사일이 힘에 부치는지 작년 추수를 끝내고는“이제 그만 두어야 할까 보다” 를 입버릇처럼 되뇌셨다. “제가 도와 드릴게요” 라는 말이 입안에서 빙빙 돌았지만 쉽사리 하지 못했다.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바쁜 도시생활을 하며 농사일을 돕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올초, 용단을 내렸다. “제가 도와 드릴게요” 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농사일손 부족하면 만사 제쳐두고 무조건 ‘고향 앞으로‘ 하기로 했다. “제가 도와 드릴게요” 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 늘 마음 속 짐으로 남아 있었다. 평생 농사만 지으신 부모님 ’정년퇴직‘ 시키는 것도 자식 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인데! 라는 마음도 있었다.

드러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기뻐하는 모습은 얼굴에 스치는 흐뭇한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조카 녀석이 “할아버지 저도 도울 게요” 라며 힘을 보태줬다. ‘기특한 지고’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조카 경진대회 같은 것이 있으면 틀림없이 대상감일 것이다.

“제가 도와 드릴게요” 못한 것이 늘 마음 속 짐으로 

▲ 싹이 트지 않은 볍씨(왼쪽) 싹이 튼 볍씨(오른쪽)     © 이민선

지난 토요일(금요일 날 가서 일은 토요일 날에) 못자리 내는 일을 했다. 논에 모를 심기 위해서는 모판에 씨를 뿌려서 20일정도 모를 키워야 한다. 사람 손으로 모를 심을 때는 못자리를 논에 만들었다. 음력 3월(절기상 곡우(穀雨)) 논 한편에  씨를 뿌렸었다.

‘이앙기’ 라는 기계가 보급되고 난 후 프라스틱 모판이 등장했고 못자리도 논이 아닌 집근처 비닐하우스로 옮겨졌다. 지금부터 벼농사의 시작,  못자리 내는 일을 소개한다.

“얘들아 빨리 일어나라 늦었다” 아침 6시에 아버지 불호령이 떨어졌다. 새벽 5시부터 일하기로 약속돼 있었다. 모판이 쌓여 있는 비닐하우스에 들어가니 일 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 수도꼭지에 호스도 연결됐고 볍씨도 큰 양동이에 이미 부려져(‘와그르 하고 쏟아붇다’ 충청도 사투리)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1시간 동안 한 일이다.

잠시 후 농사일 고수 두 분이 도착했다. 못자리를 만들 때는 마을 사람들 끼리 지금도 품앗이를 한다. 한 분은 올해 일흔 다섯인 아버지 5년 후배 칠성(가명) 아저씨고 또 다른 한분은 마을에서는 그래도 젊은 축에 속하는 올해 예순 정도 된 정환(가명) 형님 이다. 두 분 모두 농사일로 잔뼈가 굵었으니 분명 고수다.

“아침들은 드셨나?
”아 먹었지유 해 뜬지가 언젠디, 아즉 안 허셨슈?“
“우리만 안 먹었네 그려 주인은 굶어 죽어도 괜잖여, 바쁜 사람들 왔으니 그냥 일 허자구”

이런 때 보면 아버지 유머감각도 괜찮은 편이다. 아버지 세대에서는 통할 법 하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담겨있는 유머다. 장정이 두명(나와 조카)이나 있는 것을 보고 예순 정도 된 형님은 바쁜 일이 있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 볍씨 뿔니 모판은 두꺼운 비닐 등으로 싸서 보온 해야 한다.     © 이민선

난 모판에 물을 뿌리고 조카와 어머니는 날랐다. 아버지와 칠성 아저씨는 씨 뿌리기 용이하도록 바닥에 모판을 정렬했다. 모판에는 고운 흙(상토)이 가득 담겨있다. 이미 열흘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텃밭에 있는 흙을 ‘체’로 걸러서 담아놓은 것이다.

고운 흙이 담긴 모판에 물을 흠뻑 준 후 미리 발아시킨 볍씨를 뿌리고 그 위에 다시 고운 흙을 덮어 놓으면 모가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보온은 필수다. 모판을 두꺼운 비닐이나 보온 덮개 등으로 잘 덮어 두어야 한다.

고수들(아버지와 칠정 아저씨) 씨 뿌리는 솜씨는 역시 유연하다. 손목 스냅이 부드럽다. 손목을 휘휘 저으면 볍씨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골고루 모판위로 내려 앉는다.

“어허, 이거 싹이 안났네 다 골었네벼”

아버지가 낭패라는 듯 소리쳤다. 팔순 쉰 목소리에 낭패감이 서리자 목소리가 더 갈라진다. 볍씨가 싹이 트지 않은 모양이다. 싹이 트지 않은 볍씨는 버려야 한다. 볍씨는 못자리를 만들기 약 일주일 전에 미리 소금물에 담가서 발아 시킨다. 이날 볍씨 약10kg정도를 버렸다.

“여보게 여기 ‘궁말’ 인디 자네 종자 좀 남나?.....어허  모, 두 번 내게 생겼네”

다급해진 아버지는 작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작은 아버지는 옆 마을(양촌)에 살고 있다. 종자는 있지만 소금물에 담가서 발아시켜 놓은 볍씨는 없는 모양이다. 아버지 걱정대로 꼼짝없이 모 두 번 내게 됐다. 작업은 오전 8시 30분에 끝났다.

논농사 시작은 못자리 내는 일 

▲ 하영이는 구멍을 뚫고 조카는 물을 주고     © 이민선

“아녀 그냥 둬 이건 지가 따라서 지가 마시는 술여”

칠성 아저씨가 캔 맥주를 두고 하는 말씀이다. 일 끝난 후, 캔 맥주에 있는 술을 잔에 따라 주려 하니 손을 휘휘 내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칠성 아저씨는 아버지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고 오랜 세월 이웃에서 살았다.

“만만한 놈 붙잡아 놓고 일 되게 시켰네 그려 힘들었지?”
“아 형님 힘들긴 무슨 큰일 했다고.... 장정들 있어서 금방 했네유”

칠성 아저씨는 일 모두 끝낸 후 약주 한잔 하면서 ‘아버지 농사일 잘 거들어 주라’ 는 당부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내친 김에 고추도 심기로 했다. 텃밭에는 이미 고추를 심기위해 비닐이 씌워져 있었다. 그 비닐에 구멍을 내고 물을 준 후 고추모를 심었다. 비닐에 구멍을 내는 일은 11살 하영이가 맡았다. 농사꾼 피가 흘러서인지 하영이도 흙을 좋아 한다. 비닐에 구멍 내는 일을 하영 이는 재미있는 놀이로 생각했다. 

▲ 고추모 심는 어머니 손     © 이민선

물주는 일은 조카가 맡고 난 어머니가 심어놓은 고추모에 흙 덮는 일을 했다. 고추모를 심는 일은 역시 고수(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했다. 적당한 깊이에 잔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잘 심어야 한다.  어머니 손놀림 에서는 고수의 숨결이 느껴졌다.

고추 심는 일 마무리는 말뚝 세우는 일이다. 고추모가 자라서 올라오면 이 말뚝에 줄을 매서 고추모가 쓰러지지 않도록 붙들어 매야 한다. 올 해 고추가 유난히 맛 이 있을 거란 예감이 든다.

5월말에는 모심으러 간다. 모판에 있는 모를 떼서 이앙기라는 기계로 모를 심어야 한다. 이앙기를 직접 운전하지는 않는다. 기계도 없고 쓸 줄도 모른다. 난 무늬만 농촌 출신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외지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사실 농사에는 ‘젬병’이다.

기정(53) 이 형이 기계로 모를 심을 때 모판 날라다 주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기정이 형은 농사짓는 사람 중, 마을에서 막내 뻘이다. 요즘 농촌 현실이 이렇다. 젊은 사람이 없으니 아기 울음소리도 끊기지 오래다. 2년전 에는 읍내 수퍼로 호연이 녀석 분유 사러 갔다가 허탕 친 일도 있다.

아버지 어머니 평생직업 농사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부모님이 농사지어서 보내준 쌀 과 고추 배추 등을 여태껏 얻어먹으면서도 어떻게 자라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농사일 체험기를 가을 추수 때 까지 작성하려 한다.

▲ 고추심기 마친 텃밭     © 이민선









원본 기사 보기:안양뉴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