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청소년들의 말할 자유를 허하라”

사상적 도단(道斷)으로 청소년 인권 침해하는 교육당국 반성해야

이영일 | 기사입력 2013/12/31 [05:35]

“대자보 청소년들의 말할 자유를 허하라”

사상적 도단(道斷)으로 청소년 인권 침해하는 교육당국 반성해야

이영일 | 입력 : 2013/12/31 [05:35]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공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청소년이 미래 한국사회의 잠재적 구성원으로서 이 시기에 학업과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동시에 청소년의 꿈과 이상이 미래가 아닌 현재 이 당대에도 충분한 보호와 육성의 환경속에서 구체적으로 발현되어야 하는 뜻도 담고 있다.

나아가 대학 지상주의에서 능력 중심주의로 전환해 가는 사회를 통해 수동적 공부벌레형 학벌 인재가 아닌 창의적 민주시민형 능력을 갖춘 리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국가가 제반 환경적 시스템을 어떻게 얼만큼 준비하고 갖추어 가야 하는지의 중요성도 같이 함축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청소년의 건강성이 그 사회의 발전적 척도를 진단하는 지표의 상징으로 보는 너무나도 당연한 국가와 우리 사회의 노력을 전제로 한다. 새삼 헌법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기에 청소년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한민국 청소년들을 비정상적인 학벌 지상주의와 입시위주의 파탄 교육으로 내 몰아 온 기성세대들과 특히 교육당국은, 시대를 선도하는 시선으로 청소년의 인권과 사회참여를 그들이 스스로 학습하고 체득해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의무가 있다.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은 현 시대의 중요한 구성원이기도 하기에 그들의 건강한 성장과 인권의 보장됨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 시스템과 안전망이 작동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자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지역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생활지도라는 명목으로 차단하는 교육부와 일부 지역교육청, 일선 학교들의 처사는, 청소년의 표현의 자유를 새삼 거론하지 않는다 해도 그들의 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정신, 창의적이고 민주적인 토론 문화의 발산을 반인권적으로 저해하는 매우 고압적이자 통제적인 사상적 도단(道斷)이 아닐 수 없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던간에, 우리 사회가 부정부패로 들끓거나 갈등과 분열속에 생채기가 나도 그저 너희 청소년들은 눈막고 귀막고 관심 끊고 하라는 공부만 하던가 취직할 생각만 하라는 것이 그렇게 인재양성을 외쳐대던 글로벌 시대 대한민국 교육당국의 교육관이자 인권관인지 조소(嘲笑)를 금할 수 없다.

면학분위기를 저해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대자보가 아니다. 진정으로 학교의 면학분위기를 저해하는 것은, 청소년들이 대자보를 쓸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의 현실에 대해 토론하고 자신의 의사를 조밀히 표현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고 훈련할 수 있도록 조력(助力)하기는커녕, 권위에 빠져 아이들의 목소리를 건방지고 규칙에 어긋나는 행위로 매도하는 자칭 교육자들이다.

그들의 교육은 도대체 청소년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가. 아직도 청소년을 지시하고 통제받아야 할 무식하고 미진한 존재로 보고 있는가? 역사의 물줄기속에서 그들 청소년이 해 온 일들을 정녕 모르는 것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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