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독경 '박근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 기사입력 2016/10/14 [04:25]

우이독경 '박근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 입력 : 2016/10/14 [04:25]

 

마크 트웨인은 고전을 ‘좋다고 칭찬은 하지만 읽지는 않는 책’이라고 했다. 제법 그럴듯하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고전이라 부를만한 책이 어디 일이십 권에 불과할 것이며 독서할 엄두는커녕 책 읽을 여유조차 없는 뒤숭숭한 시절이니, 좋은 책이라는 말은 들었어도 정작 읽지 못한 고전들이 즐비할 법하다. 그러나 그럴듯한 말은 그저 그럴싸할 뿐이다. 내가 읽지 못했다고 모두가 고전을 읽지 않는 것은 아니며, 상식적으로도 사람들이 읽지 않는 책이라면 애당초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상 유명한 인물이 모두 역사적 위인인 것은 아니듯이, 유명한 책이라고 해서 전부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은 아니다. 한 권의 책이 고전이 되려면 거기에 시간의 침식을 견뎌내는 힘이 있어야 한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지금 여기에서도 적용 가능한 진리의 메시지가 담겨있어야 한다. 시대를 넘어서는 진리의 메아리가 없다면 고전이 될 수 없다.

 

고전읽기와 관련 깊은 강의를 십여 년 하다 보니, 반복해서 읽게 되는 고전들이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1859)도 그 가운데 하나다. 주관적인 독서 취향을 보태서 하는 말이지만, 「자유론」은 본문의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 밑줄을 칠만한 대목이 나오는 고전 중에 고전이다.

 

 

 

 

 

그럼에도 읽을 때마다 각별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달라진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같은 책도 그것을 읽는 상황이 달라지면 주목하게 되는 대목도 바뀐다는 사정도 이유에 포함될 것이다. 올해 「자유론」을 다시 읽으면서 내 마음에 울림을 자아낸 두 대목이 있다. 그 한 대목은 이렇다. 

 

“큰 원칙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 수 없다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하는 곳, 그리고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곳에서는 인간 역사를 그토록 아름답게 빛내주던 거대한 규모의 정신 활동이 일어날 수 없다.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크고 중요한 문제에 대한 논란을 봉쇄하게 되면 인간 정신의 깊은 곳을 뒤흔드는 일이 생길 수 없다.” -서병훈 옮김, 「자유론」(책세상) 72쪽

 

책 읽기란 단지 텍스트(Text) 읽기가 아니라 그 텍스트가 놓여 있는 상황(Context) 읽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실감한 것은, 내가 이 대목을 우리의 상황에 비추어 이렇게 읽었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 시비를 걸어서는 안 된다고 겁박하는 정부여당이 존재하는 곳, 한반도의 평화와 한국인의 삶에서 가장 긴요한 문제인 분단 극복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정부여당이 있는 곳에서는 우리 역사를 그토록 아름답게 빛내주던 자유와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없다. 한국인이 당연히 알아야 할 크고 중요한 문제-세월호참사의 진상, 고위 권력자들의 비리, 10엔짜리 ‘위안부’ 밀약의 내막 등에 대한 논의가 활짝 열려야만 맹목적 추종과 전도된 시각에 역동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고전이란 지금 여기의 현실과 무관한, 그래서 읽기 힘든 책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여기의 상황을 원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책, 따라서 반복해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물론, 좋은 책을 읽는다고 현실이 당장 좋아지진 않는다.

 

고전이라고 해서 ‘금 나오라고 하면 금이 나오는’ 요술을 부리진 못한다. 그러나 제1급의 고전(古典)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3류 만도 못한 정권 때문에 고전(苦戰)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수는 있다. 대다수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절망에 가까운 파국 상태로 내모는 사대매국 몰이꾼들의 마수에서 벗어날 여지도 커진다.

 

공명을 자아낸 「자유론」의 또 한 대목을 마저 소개하자. 다소 긴 인용문이지만 이 대목을 꼭 새겨들었으면(설사, 그럴 가능성이 없을지라도!) 좋겠다 싶은 사람을 마음속으로 꼽아보며 읽는다면 썩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의 판단이 진실로 믿음직하다고 할 때, 그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다른 사람의 비판에 늘 귀를 기울이는 데서 비롯된다. 자신에 대한 반대 의견까지 폭넓게 수용함으로써, 그리고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어떤 의견이 왜 잘못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해줌으로써, 옳은 의견 못지않게 그릇된 의견을 통해서도 이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가능한 가장 정확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상이한 의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나아가 다양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그 문제를 이모저모 따져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현명한 사람치고 이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지혜를 얻은 사람은 없다. 인간 지성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지혜를 얻을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틀린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는 일을 의심쩍어 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오히려 이를 습관화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에 대한 믿음을 튼튼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 「자유론」 50쪽

 

현대국가의 지도자가 반드시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哲人)이어야 한다고 말하면 강변이겠지만, 적어도 밀이 말하는 ‘현명한 사람’이어야 민주국가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독재자가 아니라 지도자라면, 최소한 사회에는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의견의 차이가 있는 게 당연하다는 것쯤은 능히 알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국론분열’세력이라고 매도하지 않고, 오히려 경청·대화·토론을 통해서 이견과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에이, 우이독경이 될 뿐인 말은 접자. 차라리 권력이란 국민을 대신해서 행사하기 편리하도록 ‘국민의 대리인’ 손에 집중되어 있을 뿐, 그것은 본질적으로 국민의 권력임을 떠올리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바꿔버릴 수 있는 게 대리인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그렇게 하는 것이 권력자가 국민의 이익에 어긋나게 함부로 정치를 하지 못하게 하는 최선의 길임을, 우리가 기억하자.

 

고전이라는 이름의 책은 이렇듯 개인이자 시민으로서 우리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인간적 덕목과 권리를 새삼스럽게/새롭게 환기시켜준다. 바야흐로 언필칭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그간 미뤄둔 고전읽기에 나설 엄두라도 내보자. 함석헌 선생님의 일갈이 귀에 쟁쟁 울리는 듯하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인권연대] 발자국통신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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