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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 양성 여생바친 채금석은 축구영웅"
채정룡 군산대 체육학과 교수에게 듣는 축구인 ‘채금석의 삶’
 
조종안   기사입력  2017/02/27 [17:47]


 
"고대 문헌에 따르면 한국의 축구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늘날의 축구와 비슷한 축국(蹴鞠)이 삼국시대에 성행했다고 합니다. 그 시대 청소년들이 가죽주머니 속에 쌀겨나 털을 넣기도 하고, 소 오줌통에 바람을 불어넣어 시합했던 것이죠. 주로 겨울에 많이 했는데,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과 김춘추가 축국 놀이를 했다는 기록도 있어요.


서양식 축구는 19세기 말 인천에 상륙한 영국함정 수병(水兵)들에 의해 처음으로 이 땅에 소개되죠. 보급은 서양선교사들이 들어와 근대식 학교를 세우고, 기독교단체(YMCA)를 만들면서 시작됩니다. 공식적인 보급 연도는 1905년으로 전해집니다. 이듬해(1906) 3월에는 현양운(궁내부 예식원 주사) 등 30여 명이 대한체육구락부를 조직하죠. 이때부터 일정한 규칙 없이 경기를 했으니 우리나라 축구팀의 효시로 볼 수 있겠습니다."
 
채정룡(64) 군산대학교 체육학과 교수가 전하는 한국 축구의 유래이다. 채 교수는 전북 군산에 축구가 처음 전래된 시기도 서울과 비슷할 거라고 했다. 1896년 봄 군산에 정착한 서양선교사 전킨(한국명 전위렴)이 1902년 지금의 구암동에 설립한 영명학교(제일고 전신) 학생들과 교사가 축구를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는 것. 영명학교는 1911년 축구부가 창단된다. 한국 축구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채금석(1904~1995) 선생도 영명학교 출신이다.


채금석 모르는 젊은이들 위해 흉상건립 제의   
 

▲ 제1회 금석배 시축을 위해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채금석(오른쪽)     © 군산시 축구협회


축구 꿈나무들의 등용문인 '2017 금석배 전국학생축구대회'(2월 11일~23일)가 군산에서 성황리에 치러졌다. 전국에서 111개(초등부 72개, 고등부 39개) 팀이 출전, 자웅을 겨룬 이번 대회에서 고등부는 제주 유나이티드U-18팀이, 초등부는 수원 삼성 U―12팀이 각각 대망의 우승컵을 차지했다. (중등부와 고등부는 격년제로 시행)
 
금석배는 여생을 후진 양성에 바쳤던 채금석(蔡金錫)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 우수선수 발굴을 목적으로 1992년에 창설됐다. 첫 대회는 채 선생 고향인 군산에서 펼쳐졌다. 이후 익산, 전주 등을 순회하며 열리다가 2009년 대회부터 군산에서 개최해오고 있다. 금석배는 국내 유일의 초중고 학생 종합대회로 그동안 참가한 선수만 7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올 대회에는 차범근 U-20월드컵조직위 부위원장도 채금석 선생 추모식에 참석하고 선수들을 격려했다. 금석배는 26회까지 개최되는 동안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했다. 눈에 띄는 선수로는 PSV에인트호벤 소속으로 2011년 미국 프로축구리그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던 박지성과 국가대표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조재진, 아스널 소속 박주영 등. 이제는 한국축구의 미래를 책임지는 전국대회로 자리매김하였다.
 

▲ 채금석 흉상과 기념비에 대해 설명하는 채정룡 교수     © 조종안


군산의 축구 역사와 채금석 선생의 발자취 등을 알아보기 위해 채정룡 교수를 두 차례(11일, 22일) 만났다. 첫 만남 장소는 금석배 대회 때마다 추모행사가 열리는 채금석 흉상 앞. 채 교수는 채금석 흉상 기념비 설치를 처음 구상하고 제의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대회 때마다 운동장을 찾았는데, 뭔가 아쉽고 한쪽이 허전해요. 그러던 어느 날 채금석을 모르는 세대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과 조형물(흉상, 기념비 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거예요. 해서 체육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채의석 전 이리시장)에게 말씀드렸죠. 아버지도 좋은 생각이라며 시의회에 건의했고, 군산시와 축구협회가 추진해서 2005년 흉상과 기념비가 세워지게 됐습니다. 매년 개막전에 앞서 추모식이 열리고 있죠."


채금석은 천부적으로 재능을 타고난 분   
 

▲ 채금석 생가로 알려졌던 구암동 건물(2008년 촬영). 지금은 이조차도 볼 수 없게 됐다     © 조종안


채 교수는 전북 최초 체육학 박사이기도 하다. 제6대 군산대 총장도 지냈다. 2009년에는 군산문화원이 주최한 포럼에서 경성축구단 선수로 활약하다가 은퇴 후 고향의 축구 발전과 꿈나무 육성에 매진했던 채금석 선생의 발자취를 정리하여 발제하였다. 그는 축구인 채금석이 태어난 자란 고향 이야기와 영명학교 선수시절 활동상도 들려주었다. 
 
"채금석 선생의 축구 인생은 영명학교에서 시작됩니다. 임피군 북일면(지금의 군산시 성산면 도암리)에서 부친 채규식과 모친 황씨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나 자랐는데, 신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할아버지가 영명학교에 입학시키죠. 가게가 넉넉한 편이어서 구암리(구암동)에 집을 마련해 가족 모두가 이사합니다. 그래서 구암동 집을 채 선생 '쌈 터'(생가)로 아는 분들이 많죠. 태어난 해도 1904년으로 알려져 있는데 1908년(호적)이 맞습니다.
 
채 선생은 영명학교에서 축구 기초를 다집니다. 작달막한 다부진 체격에 주력이 뛰어나 곧바로 선수단에 합류하죠. 영명학교 축구팀은 호남지역 기독교계 학교 및 청년회 팀과 대항전을 갖는 등 활동이 활발했습니다. 3년(1922, 1923, 1924) 연속 전 조선축구대회에 참가했는데 이렇다 할 성적은 거두지 못했죠. 하지만 개인 채금석은 그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채 선생은 천부적으로 재능을 타고난 분 같습니다."
 

▲ 군산 평화축구단 소년팀,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채금석     © 군산시


채 교수 말마따나 열정과 기량을 겸비했던 채금석은 1920년 창단된 평화축구단 선수로도 활약한다. 평화축구단은 선수 20여 명으로 구성된 군산 최초 조선인 체육단체였다. 연습은 영명중학교 운동장, 화강정미소 마당 등에서 하였다. 채금석이 이끄는 소년팀은 1923년 4월 이리(익산)에서 개최된 전라북도 부군대항(府郡對抗) 소년축구대회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룬다. 평화축구단은 1930년 7월 출범하는 군산체육회의 모체가 되기도 하였다.
 
올림픽 후보로 발탁되지만, 일경 구타사건 밝혀져 탈락
 
채금석이 전국으로 명성을 떨치는 시기는 1923년이었다. 그해 열린 전조선 축구대회에 출전, 뛰어난 패스 감각과 빠른 주력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것. 실력을 인정받아 서울 YMCA 청학관을 거쳐 1925년 경신중학(5년제)에 입학한다. 청년 채금석은 김용식과 함께 경신중학 축구를 이끌었다. 조선축구대회 2년 연속 우승을 견인, 유망주로 평가받는다.
 

▲ 채정룡 교수     © 조종안

"경신중 주 공격수로 전국대회를 몇 차례 석권하는 등 김용식과 함께 큰 활약을 보이다가 4학년 때 일경을 구타한 사건으로 퇴학당하죠.(1985년 모교를 빛낸 인물로 선정되어 경신고에서 명예 졸업장 받음.)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운동에 전념, 1930년 11월 경성운동장에서 열린 경·평전(경성·평양 축구대항전)에 레프트윙(LW)으로 뜁니다. 그때 경성팀 우승(전적 2승 1패)에 일조하죠. 1933년 4월 평양에서 열린 경·평전(전적 1승 1무 1패)에서도 선전을 펼칩니다. 그 후 볼(ball)보다 발이 빠른 선수라고 해서 '오토바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녔죠.


제15회 전 조선종합경기대회(1934)와 제1회 전조선축구선수권대회 경성축구단의 우승을 이끌죠. 중국과 일본 원정경기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줍니다. 1935년 일본에서 개최된 제8회 명치신궁경기대회 겸 베를린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2관왕의 주역이 되죠. 그때 베를린올림픽(1936) 후보로 발탁되지만, 일경 구타사건 경력이 밝혀져 탈락합니다. 경신중 시절 의형제를 맺었던 김용식 선생만 출전하죠."


"채금석은 한국 축구의 진정한 영웅"


경성축구단에서 14년 동안 활약한 채금석은 은퇴 후 귀향한다. 그는 군산시 축구팀(일반부), 구암동 축구팀(청소년), 배달성냥회사 축구팀, 영명고등학교 축구팀, 구암초등학교 축구팀 등을 만들고 지도하는 등 고향 축구발전에 매진한다. 새벽마다 볼을 듣고 운동장을 찾았던 채금석, 그는 쉰셋 나이에 전국체육대회 전북대표팀(일반부) 선수로 출전하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남긴다.


"채 선생은 평생을 축구공과 함께 살아온 분으로 고향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비록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운동장을 누볐지만, 승리의 의미만이 아니라 축구 경기의 표상을 뛰어넘어 하나의 정신적 의미를 심어준 것이죠. 지금도 그를 아는 시민과 체육인들에게 벅찬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군산 사람들이 의료계 인물로 농촌 보건에 생애를 바친 이영춘 박사(1903~1980)를, 체육계 인물로 채금석 선생을 꼽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죠."
 

▲ 1960년대 후반, 구암동 집에서 애제자 강철 선수와 기념사진(강철은 한양공고를 거쳐 2년 연속 청소년대표로 뛰었고, 연세대 주장을 지냈으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부상으로 아깝게 탈락한 불운의 선수였다. 1979년 미국으로 이민)     © 강철


채금석은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장래가 촉망되는 가난한 유소년 선수를 발굴 육성하여 서울의 명문고로 진학시키는 등 후진 양성에도 온 힘을 쏟았다. 지도에서 서울 유학까지 모든 경비도 자신이 부담했다. 매니저 역할도 했던 것. 그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키워낸 청소년 및 국가 대표 선수를 지낸 제자만 최재모, 김승철, 정태훈, 박문갑, 강철, 유동춘, 노수진, 김이주 등 20명 가까이 된다. 
 
"해방 후 많은 유혹이 있었음에도 시골로 내려와 활동한 것 자체가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지방 학생의 서울 진출이 지금의 미국 유학보다 어려웠던 시절, 유동춘(제일고 감독), 유동관(횡성 FC U-18 감독), 유동우(우석대 감독), 유동기(은행원), 유동욱(구암초 감독) 등 5형제 모두를 축구인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일화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죠. 그중 4형제가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맏이인 유동춘은 체육훈장(기린장)도 받았죠.
 
채 선생은 젊어서부터 술과 담배를 멀리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아침 일찍 제일고 운동장을 찾아 학생들을 지도했지요. 개인기가 조금만 돋보여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등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칭찬 한마디가 한 젊은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으므로, 학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는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제 교육관이어서 그런지 더욱 가슴으로 다가옵니다."
 
채 교수는 "팔순을 넘겨서도 매일 새벽 운동장을 찾아 어린 선수들을 지도했던 채금석 선생이야말로 한국 축구의 전정한 영웅 아니겠느냐"라며 "진즉 고인이 됐지만, 축구를 지극히 사랑했던 마음과 진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유소년 선수들의 매니저 역할을 자임했던 그 정신은 후세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손자 같은 제자들과 기념사진 찍는 채금석(1970년대)     © 군산시 축구협회


덧붙임: 채정룡 교수는 군산시 성산면 출신이다. 1983년 군산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로 부임, 학생과장, 학생처장 등을 거쳐 제6대(2010,3~2014,2) 총장을 지냈다. 세계조정선수권대회 한국대표팀 단장, 한국 운동과학회 부회장, 대한운동사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운동생리학회 상임이사 겸 편집위원, 전북체육회 감사, 전북애향운동본부 이사 등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스포츠의학 입문>(1997), <인간과 스포츠 의학>(2001), <운동생리학>(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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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2/27 [17:47]  최종편집: ⓒ 신문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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