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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 껶인 '탄핵무효’30만? 대한문앞 2개 차로...
탄핵무효 대한문앞 집회 "좌파,우파 분명하게 가리자! 가짜보수 조심!"
 
조대현   기사입력  2017/03/19 [08:04]

 

[신문고뉴] 조대현 기자 = 박근혜 지지 세력의 기세가 확 껶였다.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국민저항본부)는 대통령선거까지 탄핵무효집회를 끌고 간다는 방침이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저항본부측은 박근혜 탄핵후 두 번째 주말을 맞는 18일 대규모 인원 동원을 장담했지만 현저하게 참여 인원이 줄어들면서 동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 18일, 안국역 앞에서 친박계 인사들이 묵념을 하고있다.     ©조대현

 

 

18일 정오 서울 중구 대한문 앞 집회는 지난 10일 헌재 판결 당일 시위에 참가했다가 사망한 김모(72)씨, 이모(74)씨, 김모(67)씨에 대한 영결식과 추모제를 함께 치르는 자리로 마련 됐다.

 

친박단체는 이들을 ‘열사’로 칭하고, 유족들의 심경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 추도식은 행사 중간 중간마다 기도와 찬송가를 부르면서 치러져 기독교장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한 목사는 탄핵무효 주장 세력은 예수의 오른쪽에 앉은 올바른 세력이며 이와 반해 좌파 종북세력은 나쁜 세력인 왼쪽이라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이어 '그 세력에 의해 박근혜 대통령을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며 '반드시 억울한 열사들의 뜻을 쫒아 결연히 일어나야 한다‘며 폭력을 조장했다. 해당 목사의 발언에 대해서는 경찰의 수사가 필요한 것으로 보였다.

 

주최 측은 추도사에서 “함께 탄핵 반대를 외치던 장소는 그대로인데, 왜 우리는 열사님들을 사진으로만 볼 수 있나. 빼앗긴 열사님들의 고귀한 생명에 대한과 보상을 반드시 실현시키겠다”면서, “너무나 억울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열사님들을 위해 우리가 더욱 강하게 뭉쳐 파괴된 법치를 되찾고, 종북을 몰아낸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열변 했다.

 

연단에 올라온 또 다른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 회복을 강조하면서 “이번 대선은 빛과 어둠의 싸움이고, 보수와 좌파 종북의 싸움”이라며, "우리의 심경을 대표하는 후보자가 있다. 구체적인 언급은 선거법 위반이 된다"면서 사실상 김진태 의원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또 주최 측은 추도사를 통해 ‘열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으로 헌재와, 언론, 국회 등을 지목하고 "지금 청와대를 나와 사저에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박 대통령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추도식은 이 같이 마무리된 후 거리행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전 집회와는 달리 이날의 집회에서는 구호를 공식적으로 외치는 일 없이 서울광장에서 을지로를 거쳐 운현궁 앞과 안국역 앞까지 애국가에 맞춘 행진으로만 이어졌다.

 

행렬이 운현궁 앞을 지날 때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임시 문을 닫는다'라는 안내문 때문에 가족단위로 운현궁을 찾은 시민들이 태극기 행렬에 불만을 표시하다가 참가자들과 시비가 일기도 했다.

 

장례행사 도중 크고 작은 소란이 끊이지 않았다. 태극기를 들지 않은 시민과 박사모 회원이 의견 충돌로 주먹다짐이 일어났다. 안국역 앞에서는 여성 참가자 한명이 경찰이 자기가 가려는 방향을 막았다며 십여 명의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다.  

 

 

▲ 태극기와 성조기가 낙원상가로 나란히 들어가고 있다. 예상과는 달리 참여인원이 그리 많지 않았다.     ©조대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기수 변호사는 “세 분의 사망자가 시위 현장에서 사망한 것은 광주사태 이후 처음이고 시위 현장에서 시민이 현장에서 즉사한 것은 6.10 항쟁 당시 이한열 이후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안국역 앞에 도착해 화단에 주최 측에서 나눠준 태극기를 꽂는 행사를 가졌다. 이날 집회에는 서석구 변호사는 물론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등 친박계 정치인들과 사회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

 

또한 이 자리에는 지난 10일 일어난 사고 목격담도 이어졌다. 당시 현장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 여성은 경찰 발표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 여성은 사망사고는 사고 당시 앞으로 나가려는 자신들과 이를 막는 경찰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면서 압사라고 주장했다. 이어 자신은 반대로 넘어져 그나마 덜 다쳤다는 것이며 그날 자신 말고도 다친 사람이 많았다고 증언했다.

 

이날 주최 측은 30만 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으나 경찰추산은 그 보다 훨씬 적었다. 실제 경찰은 대한문앞 인근 2개 차로만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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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19 [08:04]  최종편집: ⓒ 신문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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