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론 경청하는 청렴한 대통령 뽑아야”

군산 전통시장 상인들 "최순실 국정농단 반면교사로 삼아야"

조종안 | 기사입력 2017/03/25 [17:04]

“국민 여론 경청하는 청렴한 대통령 뽑아야”

군산 전통시장 상인들 "최순실 국정농단 반면교사로 삼아야"

조종안 | 입력 : 2017/03/25 [17:04]


 

▲ 군산시 어느 커피 전문점 입구에 내걸린 안내문과 시의원이 내건 환영현수막     © 조종안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아래 헌재) 재판관 8명은 국회가 제출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인용을 만장일치로 선고했다. 곧바로 이어진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92%가 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답했다. 여·야 정치권도 승복, 통합, 치유의 메시지를 내놨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1600만 개 촛불이 새로운 역사를 쓴 날로 기록될 2017년 3월 10일. 그날 이후 전북 군산 거리에는 '국민이 이겼습니다!'란 문구가 들어간 환영 현수막이 나부꼈다. 어느 커피 전문점은 출입구에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기념해 커피를 세일 판매한다는 안내문을 내걸었다. 또한, 많은 시민이 가족·친지와 축하 전화, 축하 문자 등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대통령은 헌재 최후변론 서면 진술에서 '어떠한 상황이 오든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적었다. 그러나 그는 헌재 판결 이틀이 지나도록 침묵했다. 12일 저녁 청와대 관저를 떠나 삼성동 사저에 도착해서도 지지자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손을 흔드는 등 모순된 언행으로 국민을 실망시켰다. 특히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대독한 메시지에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말한 대목은 자기모순의 극치였다.


기자는 지난 1월 하순 군산의 전통시장(신영시장, 공설시장, 역전시장 등)을 취재했다. 당시 상인들은 불경기의 첫 번째 원인으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탄핵 정국)을 꼽았다. (관련 기사: 설 대목은 옛말, "나라가 뒤숭숭하니 사람들이 안 나와") 지방의 소도시 전통시장 민심조차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 같은 지역 현안보다 탄핵정국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통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탄핵에 대해 다양한 반응
 

▲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뉴스를 시청하는 군산 전통시장 채소가게 주인     © 조종안


지난 11일과 13일에도 군산 전통시장을 찾았다. 상인들에 따르면 2017년 설 대목 매출은 작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11일 현재 멸치, 김 등은 지난 대목장 때보다 20% 올랐고, 각종 나물(고사리, 도라지, 취나물, 시금치 등)과 곶감, 밤, 대추 등은 비슷했다. 홍어, 조기, 아귀, 주꾸미 등 주요 어종은 20%~30% 하락했다. 생선가게 30년 경력의 최강복(65)씨는 하락 이유를 날이 풀리면서 어선들이 계속 출어하고, 설 대목 때 팔다가 남은 재고량 때문으로 분석했다.


특검 수사와 헌재 발표,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사저에 도착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전통시장 상인들은 "당연한 결과다", "좀 안 됐다", "측은하다", "실망했다", "촛불이 태극기를 이겼다" 등 다양한 반응을 나타냈다. "부모(박정희·육영수)가 모두 비명횡사했고 자식도 없이 혼자 사는 여성 대통령이어서 동정심이 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로 바뀌었다"는 소리도 들렸다.
 

▲ 생선건조장에서 토론하는 양병우, 백근상, 서상준 씨(오른쪽부터)     © 조종안


시장 상인들이 이용하는 생선건조장에서 만난 양병우(71·건어물 가게 주인)씨는 박 전 대통령을 태극기에 비유하며 "박근혜 탄핵은 촛불이 태극기를 이긴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후에도 특검 조사에 불응하는 등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대통령을 광장에 모인 촛불의 힘으로 끌어내렸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씨는 "민심은 천심이다. 박근혜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자숙하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한편 불쌍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동정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에 백근상(68·건어물 가게 주인)씨는 "불상(쌍)은 절에나 있는 것"이라며 "그동안 밝혀진 비리만 해도 용서받기 어렵다, 죄를 지었으니 합당한 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 무엇이 불쌍하냐"고 따지듯 되물었다.
 

▲ 박 전 대통령 성장 과정을 설명하는 김점순 할머니     © 조종안


김점순(77·반찬가게 주인)씨는 "박근혜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고생을 모르고 공주처럼 살아온 사람이다. 구중궁궐 청와대에서만 지냈기 때문에 바깥세상을 잘 모른다. 남편을 공양한 경험도, 자식 뒷바라지를 해본 경험도 없다. 고집도 왕고집, 아버지보다 세다고 들었다. 그렇게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사람이 어떻게 서민들 고충을 헤아릴 수 있겠나. 나는 박근혜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부터 걱정스러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50대 아주머니(소금가게 주인)는 "나는 정치를 잘 모르지만, 언행이 믿음성 있게 보였고, 우리나라 첫 여성 대통령이어서 기대를 했었는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 안타깝다"며 "탄핵을 당한 사람이 지지자들을 향해 여유롭게 웃고 손을 흔드는 걸 보면서 현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스러웠고, 화도 났다"고 말했다. 장을 보러 나왔다는 70대 할머니도 거들었다.


"옛말에 '목을 벨 죄인도 용서를 빌면 상투만 자른다'고 했어요. 잘못을 뉘우치면 사형수도 살려준다는 뜻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의 착한 심성을 표현한 속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박근혜도 진정으로 사과했으면 탄핵은 피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비판 여론도 지금처럼 높지 않았을 거고요. 그 점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박근혜는 누구의 도움 없이는 사과문 하나 작성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하고 의심했어요. 그때는 '측은지심'이 들기도 했죠."
 

▲ 해망동 선창가 민심을 전하는 최강복 씨     © 조종안


지난번 취재 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도 문제지만, 꽁꽁 얼어붙은 소비 심리가 더 걱정된다'고 했던 생선장수 최강복씨. 그는 "군산수협 해망동 공판장 중매인과 부근 생선가게 주인들은 대한민국 경제는 세 사람이 망쳤고, 서민들의 자그만 희망마저 꺾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군산 선창가 민심을 전했다.


"오늘(13일) 아침에도 해망동에 나갔다 왔는디 만나는 사람마다 이구동성으로 '우리 경제는 박근혜, 최순실, 조윤선이 망쳐먹었다'며 불만을 쏟아내더라고요. 그중 구속된 조윤선 전 장관 있죠. 모두가 그 사람을 욕해요. 그 사람 1년 생활비가 5억이었다고 그래요. 그럼 어떻게 됩니까, 세상에 한 달 생활비로 4천만 원 이상을 쓴 셈이죠. 우리는 몇 년을 고생해도 모으기 어려운 금액이니 나부터도 맥이 떨어져 일할 맘이 안 나죠.


더 큰 문제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억울하다고만 하지 잘못했다고 사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특검이 밝혀낸 사실도 부정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고, 특히 박근혜는 억울하게 엮였다고나 하고... 그러니 더 화나죠.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밝혀질 것으로 믿는다'고 하는 걸 보면서 두 손 들었습니다. 이제는 역겨워서 얼굴 보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어졌어요."


상인과 고객 대다수가 청렴한 대통령 원해
 

▲ 전통시장 내에 있는 분식집 풍경,     © 조종안


전통시장 분식집에서 만난 직장인 최아무개(30대, 남)씨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헌재에서 만장일치로 인용되던 날 우리 회사 사무실은 대규모 사업을 따냈을 때처럼 축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그는 "침체된 서민 경제도 살리고 중소기업을 육성할 대통령이 꼭 필요한데 합당한 야당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50대 남자 손님은 "대통령이 청렴하고 정책이 투명해야 경제도 살아나고 적폐청산도 이루어질 수 있다"며 "다음 대선에서는 민의를 겸허히 받드는 정직하고 청렴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5월에 치러질 대선에서는 후보들을 철저히 검증해서 서민의 고충을 해결해줄 정직하고 청렴한 후보를 선택해야 합니다. 서민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는 대통령은 국정도 투명하게 펼치기 마련이죠. 대통령이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 국정에 반영하면 그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 사회 불안도 해소되고 죽었던 경제도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국민과의 소통은 물론 적폐청산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다른 40대 손님은 "대통령 비선 실세가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는 시스템에서는 기업을 100개 설립하고 공장을 120개 지어본들 국민의 혈세만 축내고 외화만 낭비할 뿐 서민 경제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화융성, 창조경제 등 아무리 화려한 명분을 내걸어도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는 것.
 

▲ 자신의 심경을 전하는 소금가게 주인 소이영씨     © 조종안


탄핵정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썰렁했던 '설 대목장'을 박 전 대통령이 몰고 온 '재난'이라고 표현했던 소금가게 주인 소이영(60대)씨. 그는 헌재 판결이 있던 날 고향에 사는 사촌 동생이 축하 전화를 해왔다며 그동안 느낀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탄핵당하던 날(10일)은 정신이 없었을 것이니 그렇다 치고, 이틀이 지나도록 아무 말이 없었죠. 청와대를 나오던 어제(12일)는 뭐라고 사과하는지 궁금해서 TV 속보를 쭈~욱 지켜봤는데 충격을 받았어요. 사저 앞에서 기다리는 지지자들과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고 손을 흔드는데 어이가 없더라고요. 자기(박근혜)가 탄핵 당하던 날 친박 집회에서 사망자가 3명이나 발생했는데 웃다니요. 박사모 회원은 아니지만 배신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날도 춥고 그래서 촛불집회도 몇 차례만 허고 그만두기를 바랐던 사람입니다. 그란디 갈수록 그게 아닌 겁니다. 나이 좀 먹었다는 사람들이 분별력 없는 애들처럼 성조기를 흔들면서 악다구니를 쓰질 않나. 최순실도 박근혜도 뉘우치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억울하다, 아니면 책임을 떠넘기는 말만 하고, 그러니 누가 용서하겠습니까. 다가오는 5월 대선에서는 거짓말 안 하고 국민 여론을 경청하는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전통시장 상인 대다수는 5월에 치러질 대선에서는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정을 투명하게 펼칠 청렴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 침체된 서민경제를 활성화시킬 대통령, 국민 여론을 존중하고 우선시하는 대통령, 강대국(미국, 중국, 일본)에 당당한 외교를 펼칠 대통령, 양극화 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대통령, 남북교류 활성화로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통일 초석을 다질 대통령 등을 바라고 있었다.


기자가 만난 시장 상인과 고객은 모두 40여 명. 박근혜 전 대통령을 법과 원칙에 따라 '구속수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불구속 수사'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중 세 사람은 다음 정부는 특검을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정비(한반도대운하) 사업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부연해서 눈길을 끌었다. 
  


덧붙임: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올랐습니다.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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