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옥경’ 마담(?), “3.1운동 정당한 평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 민족대표 33인 폄훼 해명 요구

추광규 기자 | 기사입력 2017/03/26 [10:05]

'주옥경’ 마담(?), “3.1운동 정당한 평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 민족대표 33인 폄훼 해명 요구

추광규 기자 | 입력 : 2017/03/26 [10:05]

 

[신문고뉴스] 추광규 기자 = 한국사 스타 강사인 설민석 씨가 1919년 3·1 운동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하면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기념사업추진위. 상임대표 박남수)는 지난 24일 공개질의서 등을 통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공개질의서를 통해 설민석씨의 강의 내용을 지적하면서 ▲태화관은 ‘최초의 룸살롱’인가? ▲손병희 선생 및 부인인 주옥경의 호칭과 명예훼손 ▲민족대표 대부분이 변절했다 ▲민족대표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평가를 각각 따져물었다.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박남수 상임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설민석 씨의 강의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물어 보았다. 인터뷰는 25일과 26일 이메일 인터뷰와 전화 보충취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3.1 독립선언서. 독립기념관 소장자료 사진집 이미지 캡처    

 

 

-설민석 씨의 어떤 강의가 문제가 되고 있는 건가?

“설민석 씨는 그동안 여러 매체와 강의를 통해 흥미로운 시각과 다양한 표현을 통해 역사를 친근하게 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설민석 씨의 강의 영상 ‘설민석의 십장생 한국사’(2015.3.1.)‘과 단행본 ‘무도 한국사 특강 초판본’의 내용을 접하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속에는 역사 해석의 영역을 넘어서는 오류와, 당사자는 물론 그분의 후손이나 후학에게 모욕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민족대표 33인의 역할에 대한 설민석 씨 본인의 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허위사실과 억측을 동원하여 강변한 것은 본인이 주장하는 의도와는 달리 3.1운동의 의의 전체를 희석시키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이 되었던 3.1운동 정신을 왜곡하는 데로 나아간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설민석 씨는 자신의 강의 내용에 대해 사과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문제제기를 하였고, 특히 33인 유족회를 비롯한 후손들의 강력한 항의에 대하여 설민석 씨는 16일자로 본인의 입장과 사과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또 그는 ‘제 의도와는 다르게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유족 분들께 상처가 될 만한 지나친 표현이 있었다는 꾸지람은 달게 받겠다. 저 때문에 상처받으신 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허위사실의 적시를 통해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에 대한 본인의 논지를 정당화하고자 한 서술(강의) 방법론에 대한 분명한 ‘정정’과 명확한 사과를 필요로 하는 사안이다. 이미 발표한 입장문 정도로는 결코 설민석 씨로 인하여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입은 후손과 후학들이 납득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3.1운동이라는 민족의 기념비적 역사의 정당한 평가와 계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류와 왜곡,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에 대하여 명백한 사죄와 정정 필요”

 

-설민석 씨가 말한 ‘태화관’ 관련 논란은 그렇다면 어떤게 진실이라는 것인가?

“‘태화관’을 ‘룸살롱’으로 표현한 것은 명백하게 민족대표들의 회합장소에 대한 ‘폄하’를 바탕으로 민족대표의 역할을 축소하고, 그분들을 비난하기 위한 왜곡이라고 본다. 시대적 맥락 속에서 태화관의 용도를 정확하게 소개하고, ‘요릿집’이었다고 해서 민족대표들의 거사의 의의가 축소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손병희 선생 및 부인인 주옥경의 호칭과 명예훼손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설민석 씨는 강의에서 기미년 당시의 주옥경을 태화관 ‘마담’으로 표현하였다. 이것이 실상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파악하였을 것으로 안다. 기미년 당시 주옥경은 손병희 선생의 부인이자 비서로서 민족대표들 간의 연락과 안내를 맡아 진행하는, 독립선언의 숨은 주역의 한 분이며 또한 여성운동의 선구자로서도 큰 공헌을 한 분이다.

 

설민석 씨가 강의에서 주옥경을 ‘마담’ 운운한 것 역시 ‘과도한 표현’이나 ‘사실(史實) 해석’의 범주를 넘어서는 ‘명백한 왜곡’이자 ‘명예훼손’이며 ‘역사의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할 인물과 그의 역할을 폄훼하는 망발이다. 이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명백한 사죄를 해야 한다고 본다” 

 

▲ 박남수 상임대표    

-설민석 씨의 ‘민족대표 대부분이 변절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민족대표 33인이 대부분 변절했다’는 주장도 진실을 왜곡한 것이며, 본인이 펼치는  민족대표의 역할 축소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다. 민족대표 중 일부가 일제 말기에 친일행위를 하였고, 이에 대해 광복 후 이들에 대한 뚜렷한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은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사의 크나큰 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한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역사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수십 년간의 노력 끝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기준으로 할 때, 민족대표 33인 중 최종적으로 친일인사로 판명된 인물은 3명이다.

 

그 밖의 인물들 중에서도 구체적인 행적을 놓고 ‘민족문제연구소’의 결정과 관계없이 ‘친일행위’를 했다고 평가할 수는 있겠으나 이때는 그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대다수’라는 표현이 야기할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 

 

특히 설민석 씨는 ‘일본 제국주의와 싸운 수많은 학생들의 노력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름 모를 대중들의 숭고한 죽음’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라고는 했지만, 그것이 대부분 변절했다는 허위사실을 공포하고 ‘민족대표 33인의 역할’을 폄훼한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하여 명백히 사죄하고 정정해야 한다”

 

민족대표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평가

 

-설민석 씨가 평가하고 있는 민족대표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그렇다. 민족대표 33인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평가의 문제에서 역사적 사실의 ‘평가’는 역사 해석과 사관의 문제이기에 쉽게 진위와 가부, 시비를 재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편중된 사료에 의존하여 내린 기존의 평가에 대해, 새롭게 제기되는 사료와 주위의 충언을 반영하여, 본인의 입장을 수정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역사학도의 올바른 자세이며 대중, 특히 학생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강사로서의 정당한 책무라고 본다”

 

-민족대표 33인의 평가에 있어서는 그 평가가 엇갈린다는 주장도 있다.

“인정한다.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이미 당대에도 있었다. 학생들이 모여 있는 현장에 나와 지휘하지 않은 것과 스스로 잡혀 간 것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일단 ‘소극적’ 독립운동을 했다고 해서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민족대표의 역할이 3월 1일의 ‘현장지휘’보다 더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탑골공원에서 시민, 학생이 모였을 때 태화관과 교류가 없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천도교의 이병헌, 승동교회의 김원벽, 한위건 등 학생들과 계속해서 교감을 하며 학생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3.1운동 당시 당일 서울을 제외하고 평안도와 함경도의 6개 도시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3월 10일을 전후한 시기까지는 전국 주요 도시에서 잇따라 3.1운동이 전개되었다. 이처럼 동시에 만세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33인을 주축으로 3개 교단(천도교, 기독교, 불교)에서 체계적으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조직적 동원을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직적 활동은 적어도 천도교 교단만 놓고 볼 때 3월 1일 전까지 민족대표들이 촘촘하게 짜 놓았던 계획과 준비와 동원의 결과이다”

 

-3.1운동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평가도 문제라는 것인가?

“그렇다. 3.1운동의 성격과 방법론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 ‘일원화’ ‘대중화’ ‘비폭력’이라는 3대원칙이다. 일제의 ‘폭력적 진압’과 그에 대항한 ‘최소한의 자위권의 발동’이 있었다고 해서 3.1운동을 폭력(무력)항쟁이었다고 하는 일각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일원화, 대중화라는 원칙이야말로 3.1운동에 학생과 시민,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의 민중(시민, 농민)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원칙이었음을, 실제 지역에서의 3.1운동 기획과 전개과정을 세세히 검토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여 적재적소에 분배하고, 조선독립신문을 간행하는 등 독립운동을 대내적으로 전파 하거나 대외적으로 선교사 들을 통한 해외보도 등, 민족대표 33인과 그 예하(48인) 대표자들, 또 그들과 연결된 각 지역의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은 각각 그 맡은 바가 일사불란하게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준비를 완료하였기에 민족대표들은 2월 28일 밤에 이미 ‘거사는 성공’이라고 자평할 수 있었으며, 태화관에서 ‘축배’를 들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3월 1일 이후의 민족대표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살펴보았다면 이들의 역할과 태화관에서의 ‘선언문 발표’의 의의를 쉽게 폄하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독립선언 후에 어떻게든지 자신들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여겼다. 다행히 ‘사형’은 면하였으나 대부분의 민족대표들은 재판정에서 ‘기회가 되면 다시 독립선언을 할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독립기념관 소장 자료 사진집.     

 

 

-민족대표의 변절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인가?

“그렇다. 각각의 민족대표는 재판 후 1년에서 3년에 이르는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양한묵 선생은  재판을 받는 도중 순국하였고, 박준승 선생은 복역 기간 중에 순국하였다. 손병희 선생은 회생 가능성이 없을 만큼 병이 깊어진 뒤에야 병보석으로 풀려나와 투병 중 순국하였다. 이종일 선생과 이종훈 선생 역시 고문의 후유증으로 몇 년 뒤에 순국하였다.

 

또 살아남은 분들도 변절한 3명을 제외하고는 출감 후에 일제에 대한 비타협적 태도로 일관하거나 만주로 진출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 정도의 고통을 겪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민족대표들을 ‘태화관 술자리’의 이미지로 평가 절하하는 것이 이 민족에게 도움이 되는지, 역사의 정당한 평가와 부합하는지 심사숙고하고 적절한 해명을 할 것을 요구한다”

 

-설민석 씨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특정한 인물이나 집단에 대한 지나친 미화는 엄중히 경계하고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단편적인 몇 개의 사안이나 한두 명의 사견이나 야사에 의존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을 비난하고 결과적으로 명예를 훼손하였다면, 이에 대해서는 이해 당사자는 물론 특히 설민석 씨를 믿고 지지하는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명백한 사실을 전달한 다음 본인의 평가와 해석을 덧붙이는 것이 정당하다고 본다. 이 부분에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성의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설민석 씨가 그토록 ‘재조명’하고자 하는 당시 시위의 주역인 ‘학생’과 ‘시민’들 중 다수는 바로 천도교, 기독교, 불교의 신도들이거나 민족대표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대중이었다. 그분들은 한편으로 ‘민족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섰지만, 대부분 민족대표 33인과 그들에 의해 미리 조직된 지방 지도자의 지도에 따라 이 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민족대표 33인과 3.1민중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이며, 기미년 당시 각자의 역할과 처변이 달랐을 뿐인 것이다.

 

우리가 설민석 씨의 구체적이고 명백한 해명, 사죄, 답변을 요구하는 것은 이번 사태가 3.1운동의 의의를 다시금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설민석 씨 또한 바라는 바일 것으로 믿으며, 다시 한 번 조속한 답변과 대응을 촉구한다”

 

한편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기미년 당시 3.1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었던 기독교, 불교, 천도교는 물론 국내 7대 종단의 주요 교역자 및 시민사회단체의 지도급 인사들과 종교인, 시민들이 참여하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기구로서 2015년에 결성되어 연차적으로 100주년을 준비하고 있는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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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독립단 2017/03/27 [09:56] 수정 | 삭제
  • 약속한대로---*---*---*---신문고뉴스/앞편의/기사에---*---*---*---댓글을/올려놓겠습니다.
  • 설씨 괘안아 2017/03/27 [09:24] 수정 | 삭제
  • 설민석씨 33인에 대한 해명성 들을 올렸더군요 전체가 아니라 한 부분만 가지고 전체를 평가하거나 매도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공과 과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도 공만 평가되지만 보릿고개 뛰어난 근면성 ,성실성, 우수성이 우리나라의 산업화 식량문제 등을 해결한것입니다 서양의 농약, 화학비료, 경운기 트랙터 등등 신문물 덕이죠 새마을 운동도 황토흙집, 한국적 풍경을 파괘한 군사적전 하듯이 한국적 친환경적 한옥들을 전부 밀어버리고 단열이 전혀 되지 않는 시멘트뱍체와 암물질 스레트지붕등등 난방비, 아토피등 지금생각하면 미친짖인 부분도 있지ㅛ 좋은 우리것을 밀어버리고 우리민족 공유 명절인 설날도 없애버리고 서양의 설을 들여온 것 등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