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이혼한 그대에게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 기사입력 2017/03/27 [09:45]

국가와 이혼한 그대에게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 입력 : 2017/03/27 [09:45]

 

안고 가신다고 했다. 그 모든 결과를 안고 가신다고.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한때 지도자였던 그대를 파면한 이후 꼬박 57시간 만에 대리인의 입을 통해 내뱉은 네 줄짜리 일성(一聲). 거기에 그 말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고 외쳤던 광화문의 오열을 베낀 듯한 마지막 구절에 탄핵 불복이라며 삿대질을 했지만 나는 그대의 세 번째 구절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그 말에 고마웠다.

 

 

 

 

정말로 안고 가시겠다니. 국가와 결혼했던 몸 이제 국가와 이별했으니 얼마나 챙겨갈 것이 많겠는가. 남김없이 안고가시라. 안고가기가 무거우면 그대에게 버림받은 폐지 줍는 노인의 카트라도 빌려줄 터이니 거기에 차곡차곡 실어 끌고 가시라.

 

시꺼먼 안경에 빨간 모자 쓰고 정작 군인들은 입지도 않는 군복을 입고 가끔은 야구방망이도 휘두르는 무뢰배들의 예의 먼저 싣고 가시라. 촛불은 인민, 태극기는 국민, 국가의 상징에 대한 모욕도 모자라 탄핵 재판정에서 조차 국가기관을 조롱했던 그대의 궤변자들도 끌고 가시라.

 

 “헌재로 돌격”, “국회 때려부셔”, “빨갱이놈 죽여” 따위의 험한 구호를 아무렇지도 않게 외쳐댔던 카랑카랑한 여인네의 목소리도 끌고 가시라. 그리고 그날 평생 태극기를 그대의 분신으로 여겼던 그 분, 그대를 구하러 가는 길 결국 그 길에서 일어서지 못한 이름 모를 세분의 영혼도 안고 가시라.

 

비록 그대의 부모를 조국으로 여겼고 성조기 미국을 어버이로 모셨으나 그분들 또한 어느 귀한 자식의 어버이셨으니 그분들의 영혼을 안고 그대의 등짝을 후려치는 죽비로 여기며 평생을 사시라. 그대의 목적지가 굳이 역사의 뒤안길은 아니어도 좋다.

 

“정치는 자원의 권위적 배분” 이라고 했던 데이비드 이스턴의 말을 그대의 입을 통해 듣지는 못했으나 그대의 정치를 통해 뼈저리게 학습했다. 배분은 없고 오직 권위만을 무기로 통치행위에만 전념했던 그대는 “그 어떤 이득도 채운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이득을 채우지 못한 이들은 나로 상징되는 민중들이었다.

 

나의 곳간이 무너져 고작 몇 푼 남은 통장 잔액을 허망하게 바라볼 때 그대의 곳간은 그 비싼 말들이 널뛰는 정경유착의 비열한 빛깔로 채워졌고, 이유 없이 낙방한 대학 재수생들의 한숨은 돈도 실력이라는 그대가 보살피던 어린아이의 비아냥으로 돌아왔다.

 

그대 아비의 친일행적을 감추기 위해 역사교과서까지 바꾸려 했으나 건국훈장 애족장 집안의 후손인 나는 내 할아비가 겪을 모욕감을 감출 수 없어 쓴 소주를 들이켰다. 더 말해 무엇 하랴. 그대는 그대가 수족처럼 부리던 어떤 여인의 잘못이었다고 강변하고 있으나 결국 그대가 저지른 그 모든 일들을 다 안고 가겠다 했으니 꼭 그리 하시라. 그리고 이제 그대의 최종 목적지는 반드시 역사의 뒤안길이 되어야 한다.

 

“혁명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 아니라 낡은 삶의 마침표이며 먼 길을 위해 지불한 비싼 가격이다- 베르자예프”

 

그대의 삶과 정반대에 있는 나는 그대의 태생과 그대의 권위적 삶과 그대를 교주로 모시고 있는 맹목적 신도들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먼 여행에 이미 비싼 여비를 지불해 왔다. 비싼 여비의 실체는 그대가 손에 쥐고 흔들며 살아온 지폐뭉치의 힘에 대항했던 내 청춘이다.

 

몇몇 편중된 자들의 소유가 된 지폐뭉치로 인해 소외되고 핍박받고 때론 노예로 전락했었던 그러나 낡은 삶의 마침표를 갈구했던 민중들의 삶이다. 국가와 이혼했으니 더 이상 그대는 국가를 들먹이지 마시라. 나는 민중이 되어 스스로 국가의 일원임을 자처해야겠다. 나 따위의 보잘것없는 청춘조차 주인으로 품어주는 국가를 기다리며 더 먼 여행을 준비해야한다. “사람의 중심은 아픈 곳 이다” 그대의 사전에는 없었던 이 말을 늘 반복하며.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인권연대] 발자국통신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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