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안철수의 상승세와 문재인의 하락세, 그 이유
 
김양수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4/07 [02:32]
▲ mbc 토론 프로그램 광고화면 캡쳐  

 

[신문고 뉴스] 김양수 칼럼니스트 = 택시나 버스를 탔을 때, 운전기사가 깔끔한 유니폼에 넥타이와 정모(正帽)까지 쓰고 있다면, 사람들은 만족하며 안심하게 된다.

 

비록 그 운전기사가 면허를 어제 딴 초보라고 해도 우리는 운행 중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지 그의 운전 실력에 대해 의심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반면 베테랑 운전기사가 찌든 옷에 담배냄새 풀풀 풍기며 운전대를 잡고 있다면 우리는 웬만하면 그 차에 타지 않으려 한다. 그의 뛰어난 운전실력 덕분에 불의의 사고로부터 내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이것이 제복의 힘이다. 전쟁과 관련된 제네바 협약에 의하면 전쟁포로는 인도적 대우의 권리를 보장받지만, 그 권리는 어디까지나 군복을 입은 군인에게만 적용된다. 제복을 입지 않은 군인은 스파이로 간주되어 간첩죄를 적용하여 처형해도 협약에 저촉되지 않는다. 이 경우 제복의 의미는 피아간 교전상대임을 확실히 하여 애꿎은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데 있다.

 

장미대선까지 한 달 가량 남았다. 대선을 보도하는 언론의 프레임은 기본적으로 보수-진보의 대결구도이다. 하지만 2017년 봄. 대한민국에서 의미 있는 지지기반을 확보한 정파 중 진정한 의미의 보수와 진보가 과연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언론은 과거 새누리당의 클론들-자유한국당과 바른 정당-을 보수라 분류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이들을 영국 보수당이나 미국 공화당과 동급 보수정치세력으로 인정해야 할까? 천만에, 고상하게 표현해도 이들은 ‘수구’ 보수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친일부역, 유신, 5공 잔당’에 불과한 무리이다.

 

그렇다면 문재인을 수장으로 하는 친노 정파를 진보라 분류할 수 있을까? 긴말 필요 없이 같은 당 경선후보였던 이재명의 평가를 5분만 살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결국 보수와 진보의 딱지를 붙이는 언론의 분류는 ‘상대적’이라는 개념을 감안한 편의적인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붕어빵에 붕어가 안 들어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보수와 진보를 참칭하는 유력 정파에게 보수와 진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판 기득권 세력들은 언론으로부터 아주 편하게 보수와 진보라는 완장을 얻어 차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나는 이러한 특혜의 이유가 제복의 힘과 의미를 간파한 주류 언론의 이미지 메이킹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에 진영논리로부터 100% 자유로운 언론이 없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국민상식에 속한다. 이념적, 정파적, 계급적, 경제적 이해득실에 따라 선거시즌만 되면  언론들은 알아서 선호하는 후보에 줄을 선다. 언론사마다 노골적이냐 은밀하냐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언론은 공정 보도라는 미명 아래 알아서 특정 후보를 밀어준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런 현상을 무조건 나쁘다, 잘못된 것이라 비난하지 않는다.

 

법과 상식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특정 후보를 비토하고 지지하는 논조를 견지하는 것이 반드시 저널리즘의 본분에 어긋나진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평가는 언론을 소비하는 우리들 자신의 몫이니 말이다.

 

문제는 언론이 법과 상식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토하는 테크닉이다. 나는 이 테크닉의 베이스가 바로 보수와 진보로 선거를 다루는 언론의 프레임이라고 본다. 상식 이하의 언행으로 연일 화제를 몰고 다니는 홍준표를 언론은 ‘보수 진영’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후보로 보도한다. 깡패처럼 막말을 서슴지 않는 홍준표가 ‘보수 후보’라는 완장을 차는 순간, 그는 초보 운전사임에도 승객에게 믿음과 안도감을 주는 말끔한 유니폼의 운전수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보수 후보’라는 표식은 박근혜 몰락 이후 누구에게 표를 주어야 할지 방황하는 보수 성향 부동층에게도 선택의 바로미터로 기능할 수 있다. ‘고민하는 당신, 당신의 아군은 보수 군복을 입은 저 분입니다.’라는 메시지. 언론이 이보다 더 ‘은밀하고 위대하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문재인 대세론의 핵심 또한 단 하나. 그가 진보 딱지가 붙은 정파 중 패권을 장악한 정파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대통령 비서로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재인이 유의미하게 보여준 정치적 성과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멋진 유니폼을 걸쳤을 지라도, 운전대를 잡은 문재인을 본 순간, 사람들은 그 차량이 어떻게 굴러갈지 대충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언론의 편의적인, 어쩌면 언론의 은밀하고도 위대한 선거운동의 결과로써, 문재인은 여전히 진보 완장을 찬 대선 후보로 대접을 받는다.

 

선거를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으로 규정한 순간부터, 진영논리는 완벽하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진영논리가 완벽하게 작동하면 그 이후 후보의 자질, 역량, 도덕성 등은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래의 대통령 지망생에게 필요한 요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수, 혹은 진보라 행세할 수 있는 정파의 패권을 차지하는 일 단 하나로 귀결될 것이다. 이게 나라일까, 이게 정치일까?

 

수요는 공급을 낳는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 언론의 프레임 또한 결국 그 프레임이 대중의 언론 소비 취향에 가장 부합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다시 말해 우리들 또한 선거에서 누군가를 선택할 때 그 인물이 어떤 완장을 찼는지부터 따져보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 프레임에 기대었던 국민의 선택은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의 통치를 평가하면 완벽한 실패작이었다는 진실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초라한 결과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며 개헌론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유권자가 인물을 선택하는 방법론의 문제,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 진영논리에 있지 않을까?

 

지지율 상위권을 싹쓸이 하던 후보들을 제치고 문재인이 민주당 후보가 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는 대세론의 화룡점정으로 작용해야 맞다. 반면,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으로 유추하자면 문재인의 본선 진출은 대항마인 보수 후보 홍준표의 반등으로 이어져야 맞다. 하지만 결과는? 난데없이 안철수의 급부상이다. 이 기현상의 이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언론과 언론의 소비자 모두 오랜 세월 익숙하게 의지했던 정치의 진보와 보수 프레임이 마침내 붕괴되었다는 의미는 아닐까.

 

박근혜의 파멸은 정치를 피폐화 시킨 친박 패권에 대한 국민적 혐오를 불러일으켰다. 반사 이익의 수혜자는 대세론의 주인공 문재인이었다. 그러나 대세론을 만끽하며 치러진 민주당 경선은 기나긴 시간 진보 유니폼으로 유권자를 기만했던 민주당의 민낯을 확실하게 드러낸 과정이기도 했다.

 

문자폭탄과 18원 후원금으로 경쟁자 안희정과 이재명에 가한 집요한 마타도어는, 이를 경쟁의 감칠맛 나는 양념이라 변명한 문재인의 뻔뻔한 태도는 민주당이 더 이상 진보 정파도 민주주의 정당도 아닌, 그저 진보의 제복을 걸친 친노 정파를 위한 패권 정당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보수를 사칭하는 친박 패권과 진보를 참칭하는 친노 패권이 이렇게 대한민국 정치를 피폐화 시켜버린 상황에서 안철수 현상의 재림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즉, 앞으로 정치를 보수와 진보의 낡은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관점인지, 대한민국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진정 영양가 있고 생산성 있는 자세인지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거다.

 

보수 성향 유권자는 냉전 논리와 탐욕의 지배를 받았다. 반면 진보 성향 유권자는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과 자존심이 정치적 선택의 이유였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를 독과점 하며 그들의 맹목적 지지를 강요한 친박과 친노가 보여준 정치적 결과물은 무능과 무책임과 부패로 범벅된 실패한 정권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무엇을 이룩하겠다.’는 말을 하는데 있어서  만큼은 ‘천재적인 웅변가’들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완성되는가’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다시 말해 15년 가까운 세월,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에 갇힌 유권자들은 철저하게 사기를 당해온 것과 다르지 않다.

 

무일푼 신용불량자에게 거액 대출을 해주는 바보 은행은 없다. 담보가 없다면 신용이라도 있어야 대출이 가능하다. 개인의 신용은 어떻게 평가받는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수입, 재산 상태, 대출과 상환 기록 모두가 신용평가의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신용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어렵지 않다.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보면 된다. 안철수, 의사로서, 사업가로서, 교수로서, 그리고 정치가로서 그는 그가 투신한 분야에서 배경과 유산 없이 오로지 자신의 역량 하나로 모두 눈부신 성공신화를 쌓아온 인물이다. 교육, 사업, 정치, 다방면을 아우르는 성공신화, 이보다 더 확실한 보증수표를 가진 정치인이 있을까.

 

안철수 현상의 재림은 현재 출전한 선수들 중 이처럼 그의 신용이 최고라는 사실을 유권자들이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런지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 유지만이 유일한 정치적 동력인 친박과 친노 정파는 익숙한, 하지만 이제는 너무도 지겹고 역겨운 진영논리로 다시 안철수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비난에 따르자면 안철수는 얼치기 진보 혹은 좌파이자, 적폐세력의 동조자란다. 백보를 양보하여 그들의 비난이 100% 맞다 치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안철수가 과거 대통령들처럼 공약 불이행의 사기꾼이라는 증거는 절대로 되지 못한다. 

 

무능한 진보와 부패한 수구의 집권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에 필요한 대통령은 신용 만점에 무엇이든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능력자이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반공투사’나 ‘민주투사’들의 전성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비록  ‘좌익의 반동’, ‘우익의 빨갱이’가 안철수라 할지라도, 대한민국은 그의 신용과 역량과 비젼에 미래를 맡기게 될 것이다. 제복에 안주하던 무능력자들의 시절은 저물었다.

 

그래서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문재인 대세론은 허망할만큼 쉬이 무너지고 있다. 반면 사라진 것 같았던 안철수 신드롬은 조용히 나타나 전세를 장악하고 있다.

배너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7/04/07 [02:32]  최종편집: ⓒ 신문고뉴스
 
예리하고 꼼꼼한 글 정치학자 17/04/07 [04:00] 수정 삭제
  안철수로 인해 완전하게 새로 쓰여지는 이 사회의 정치사를 (일단 미시적으로 그리고 서서히 거시적으로) 정밀하게 조명한 글이군요.
문준용과 정유라의 차이가 무엇인가? 반문반박 17/04/07 [12:03] 수정 삭제
  문재인 아들이 이력서에 정장은 커녕 귀걸이까지 한 사진을 붙인 것과 최순실 딸이 이대 면접에서 노랑머리에 짙은 화장을 한 것의 차이가 무엇이란 말인가?

둘다 금수저로 합격을 확신해서 그런 것 아닌가?
안철수는 끝장토론 제의를 그만 두어라.^^ 한국기행 17/04/07 [19:40] 수정 삭제
  3D가 뭔지도 몰라서 삼디라고 하는 사람하고 어떻게 토론을 한다는 말인가?

설사 토론을 한다고 해도 기본적인 용어도 모르는 문재인에게 일일이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문재인을 꼭 개망신시켜야 하겠는가?

안철수는 배운 사람답게 상대후보의 수준을 고려할 것이라고 믿는다. 모두가 당신처럼 똑똑한 것은 아니다.ㅋㅋㅋ
문재인의 패권의식도 하락세에 기여합니다. 호남사랑 17/04/11 [22:58] 수정 삭제
  문재인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의 비판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것이 친문패권의 시작이다. 자신들만 옳고 비판자의 생각 따위는 모두 그르다는 인간들의 헤게모니가 '패권'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배너
배너
주간베스트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