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반대’ 허세욱 열사 10주기 추모제...

추광규 기자 | 기사입력 2017/04/17 [12:31]

‘한미FTA 반대’ 허세욱 열사 10주기 추모제...

추광규 기자 | 입력 : 2017/04/17 [12:31]

 

[신문고뉴스] 10년전인 지난 2007년 4월 1일, ‘한미FTA 반대’를 외치며 스스로 몸을 불사른 뒤, 결국 보름 만에 세상을 떠난 허세욱 열사의 10주기를 맞아 열사가 생전 몸 담아 일하고 활동했던 시민사회단체들과 시민들이 추모 일정을 잇달아 가졌다. 지난 13일(금)에 서울 관악구에서 허세욱 열사 10주기 추모의 밤이 열린 데 이어 15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10주기 추모제도 개최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ㆍ참여연대ㆍ평화와통일여는사람들(평통사) 등 열사가 생전 몸 담아 활동했던 시민사회단체들과 일터인 한독운수노동조합이 함께 꾸린 민족민주노동열사허세욱정신계승사업회(회장 구수영,‘허세욱사업회’)는 허세욱 열사의 10주기를 맞아 10년 전 열사가 숨을 거둔 15일 오전 11시에 열사가 잠든 마석모란공원 묘역에서 참여한 단체 회원들과 시민들 100여 명이 함께 한 가운데 추모제를 가졌다.

 

이날 추모제에서 구수영 허세욱사업회 회장은 “열사를 떠나보낸 지 10주기를 맞는 2017년 4월은 박근혜를 파면하고 구속한 촛불항쟁으로 정권교체가 목전이라고 열사 앞에 보고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며, “이 땅의 택시 노동자로서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항상 솔선수범 하셨다. 민주노총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 한독운수분회 조합원으로, 참여연대와 평통사 회원으로, 자랑스런 민주노동당원으로, 정의로운 민주시민으로서 진실의 꽃을 피우는 사람이었다”고 열사를 추억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는 차별이 없는 세상,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 분단과 전쟁이 아닌 평화의 세상”이라며, “10주기를 맞는 오늘 ‘우리 살아있는 전태일이 되자’ ‘실천하자’는 당신의 뜻을 가슴에 깊이 새기겠다”고 다짐했다.

 

황윤미 서울 평통사 대표는 “시간을 쪼개어 공부하던 열사의 모습, 고된 택시 노동의 현장을 실천의 장으로 삼아 유인물을 건네던 모습도 떠오른다”며, “성주 소성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하기 위해 그 곳으로 달려가 ‘사드배치 철회!’를 외칠 열사의 모습이 보인다”는 추모사로 실천을 약속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도 “(지난) 10년이 우리 민중에겐 악몽 같은 10년이었기에 죄송하고 참담했지만, 그나마 최근의 우리 국민들의 불같으면서도 위대한 촛불혁명이 있었기에 선생님께 용기를 내서 ‘이번만큼은 우리 국민들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요’라고 말씀 건넨다”고 추모사를 시작했다.

 

“이번 대선은 선생님의 헌신과 유지를 생각해서라도 반드시 ‘촛불대선’ ‘민생대선’ ‘평화대선’ ‘좋은나라 만들기 대선’이 되어야 한다. 꼭 그런 대선을 만들어내는 것이 억울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선생님에 대한 저희들의 필사적 도리”라고 다짐을 보탰다.

 

2007년 당시 한미FTA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기도 한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진짜 노동자로서 온 몸을 던져 헌신하며 보여준 열사의 열정과 성숙한 면모를 기리며, “그 열정과 정성의 씨앗이 함께 모여 신자유주의 반대와 반전 평화, 그리고 평화통일의 꽃으로 찬란하게 환생하시리라 확신하고 있다”는 말로 열사의 뜻을 되새겼다.

 

이날 추모제에서는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는 허세욱 장학금 수여식도 함께 열렸다. 올해는 한독운소노동조합 조합원의 고3 자녀와 열사가 활동하던 관악주민연대의 추천으로 중3 학생 두 명에게 열사의 뜻이 담긴 장학금을 드렸다.

 

또 반전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던 열사의 정신을 잇는 사드한국배치반대 성주ㆍ김천ㆍ원불교 투쟁위원회에도 투쟁기금이 전달됐다. 2007년 열사의 분신 당시 치료와 이후 생활 보장을 위해 기금을 모았으나, 열사가 운명하신 뒤 허세욱사업회가 구성돼 ‘인간 사랑’,‘실천하는 노동자’로 살다 간 열사의 삶과 정신을 계승하려는 목표에 따라 지난 2010년 3주기부터 허세욱 장학금과 투쟁기금을 드려 왔다. 첫 해인 2010년 7개팀에 모두 600만 원을 수여하기 시작해 올해까지 8회째를 맞으며 37개팀의 학생과 단체들에 모두 2,800만 원이 지급됐다.

 

한편, 지난 13일(금) 오후 7시 30분에는 열사가 일하며 생활하던 서울 관악구의 카페 행복나무에서 허세욱사업회 소속 단체 회원들과 시민들 7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허세욱 열사 10주기 추모의 밤 <허세욱을 그리다 만나다 실천하다>가 열렸다. 10주기 추모 영상이 상영됐고, 열사의 생전 모습과 일화들을 나누는 이야기마당이 펼쳐졌다.

 

허세욱 열사는 1952년 5월 9일 경기도 안성에서 9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1991년 한독운수에 입사해 택시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 1994년 철거 싸움을 겪으며 사회적 실천에 나서면서 관악주민연대, 참여연대, 민주노동당, 평통사 등에 가입해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2002년 신효순ㆍ심미선 두 여중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숨진 뒤, 살인미군 처벌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전면 개정을 위한 촛불집회에 빠짐 없이 참석했고, 2004년부터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에도 그 누구보다 앞장섰다.

 

2006년에는 한미FTA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면서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007년 4월 1일, 최종 시한을 넘기며 진행되는 한미FTA 협상 타결을 막기 위해 협상 장소이던 서울 하얏트호텔 앞에서 “한미FTA 폐기하라!”고 외치며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보름 만인 4월 15일 오전 11시 26분, 한강성심병원에서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4월 18일에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됐다. 열사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삶의 현장에서 가장 많은 촛불을 든 노동자로 살았다. 택시 노동자가 된 뒤 100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도로를 내달렸고, 그 길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자신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연대를 위해 달린 길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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