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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氏, 장애인 인권교육은 어디로 가나이까?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기사입력  2017/05/20 [13:09]

 

아빠가 담배를 비벼 끄고는 새 담배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 슈나이더 씨의 말을 들으며 계속 머리를 흔들었다. “슈나이더 씨, 평화를 믿지 마세요.

한스 페터 리히터(Hans Peter Richter)의 『그 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중에서』

 

 

 

 

 

# 인권교육가는 인권적인 사람인가?, 인권의 전문가인가? 교육의 전문가인가?

 

글쓴이가 인권교육이란 이름을 걸고 강의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5년 즈음부터이다. 특수교육 등 장애인 교육법 시행으로 학교 현장에서 장애인 통합을 위해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인권교육을 시작하였고 장애인 활동보조인교육에서 비장애인 대중들에게 장애인 인권을 알렸다.

 

그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렇게 10년 넘게 심한 장애인 당사자로서 ‘인권’이란 이름으로 교육을 했지만 그동안 세상은, 사람들은 과연 인권적인 세상으로 인권적인 사람들로 변화하였는가?

 

보수 정권을 지나면서 인권은 정책도, 예산도, 인식도 모든 것이 퇴행하고 인권교육은 인성교육이란 이름으로 왜곡되기도 했지만 장애인 분야에서 인권 교육은 매일매일 터지는 학대와 착취, 시설비리등으로 양적으로는 많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소식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 도가니(2011)로 환기된 사회적 인식에도, -당시 사건 피해자가 다른 시설로 간 이후에도 최근에 다시 폭행을 당하는 등 또다시 인권침해가 불거졌다- 장애인 시설, 기관에서의 성범죄는 더 창궐하고 더 잔인해진 것만 같고 사람들은 인권침해와 차별을 더욱 은폐하고 교묘해졌다. 

 

그렇게 인권교육은 오히려 처벌하고 단죄해야 할 인권의 문제를,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단순히 인권교육으로만 무마하려는 것은 아닌가? 개인의 인격의 문제로만 풀어내려는 것은 아닌가? 장애인 인권교육이 반대로 장애인 인권을 저해한 것은 아닌가?

 

그러나 장애인 인권교육을 통해서 그동안 비장애인들이 외진 곳까지 찾아가야만 겨우 만날 수 있는 장애인들을 이제 우리는 지역 사회에서 주민으로 직장 동료로 만나고 갈등하고 심지어 경쟁한다. 과거에는 차별 혹은 무시를 당할 기회조차도 없었던 장애인들의 인권적인 등장이 많아졌다.

 

또한 그 장애인이, 사적이든 공적이든 당사자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며 큰 소리로 외치며 차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가장 큰 저항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인권유린의 소식이 많이 들린다고 해서 무작정 슬퍼하거나 절망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사회에게 장애와 장애인에 대하여 더 많이 더 크게 더 자세히 시시콜콜 모조리 다 이야기해야 한다.

 

인권은 인권적 성찰과 인권적 공감과 인권적 실천의 반복적인 과정 그 자체이다. 바위로 계란을 쳐서 바위를 깨뜨리는 결과 아니라 바위에 던져진 계란의 흔적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저 차별과 반인권의 바위를 깨드려야 하는 것을 깨닫고 무엇인가를 던지게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늘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이런 원칙을 스스로 잘 지키고 있는가? 나는 장애인이자 남성으로서 이성애자로서, 비장애인이나 여성이나 동성애자 성소수자의 문제와 고통 차별을 공감하며 실천하고 있는가? 사적이든 공적이든 누구랑 있든, 혼자 있든 항상 매 순간 인권의 스위치를 켜고 행동하고 있는가? 그것을 끌어내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늘 반성하고 질문 하면서도 지레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 어떤 교육이 장애인 당사자에게 자부심을 주는가?

 

인권침해와 차별을 구조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교육으로 방지하고 구제할 수 있는가?있다면 어떤 교육이, 어떤 교육가가 그런 교육을 할 수 있는가? 작금의 장애관련 인권교육이 그것에 충실한가?

 

남성들이 여성학을 열심히 공부만 한다고 해서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가사 분담과 육아를 공동으로 잘 실천할 수 있는가? 그리고 여성들이 여성학을 공부하고 페미니즘을 알면 자신이 여성인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하고 도리어 남성이 되길 원하는가? 아니면 여성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지는가?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장애는 예방되어야 하고 고통이자 불행이라고 하면서, 장애인을 존중하라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장애인을 공포의 존재로 만들고 있지 않는가? 과연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자고 90년대부터 시작한 ‘장애인인식개선’ 이라 이름붙인 운동이나 교육들이 실제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 시켰는가?

 

그리고 비장애인들의 ‘인식’만 개선되면 인식이 개선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차별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사랑과 배려의 마음으로 고용을 늘리고 지역 사회에 특수학교와 생활이용시설을 유치했는가? 인권이란 단어에 대한 거부감과 이념의 알레르기 반응으로 대신 쓰기 시작한 장애이해교육은 진실로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켰을까? 그리고 그렇게 이해가 증진되면 장애인의 억압과 차별은 사라질 수 있을까?

 

넘쳐나는 장애관련 정보들이 오히려 효과적인 차별과 혐오의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가? 명문대학을 다니고 있는 장애인 대학생의 인권과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의 인권은 동일한 것일까? 대학생들이 시설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반성하면서 탈시설을 실천하거나 시설로 들어가 변화시키려 하는가? 장애체험교육은 장애로 인한 고통을 체험하는 것인가? 아니면 장애로 인한 차별과 부조리를 경험하는 것인가?

 

다시 묻는다.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장애인 당사자가 바라보면 장애인으로서 자부심이 생기는가? 아니면 자신의 장애를 부정하고 비장애인으로 환생하기를 꿈꾸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에게 장애인 자녀를 낳는 것도 장애인 부모가 되는 것도 생물학적으로는 슬프지만 사회적으로는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깨닫게 할 수 있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고용할 수 있는 힘과 가치를 주고 있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에게 장애인과 같이 연애하는 법을, 가족으로 함께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하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이 시간이 흘러 여러 가지 일로 장애를 가지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들이며 나름 즐겁게 살 수 있는 힘과 길을 만들어 주고 있는가?

 

다시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인권’변호사가 이제 대통령이 되었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하겠다고 취임사에서 밝혔다. 아직 당신의 입에서 ‘인권’은 공식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그리고 후보시절에는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부정했고, 그의 지지자들은 정권교체를 이유로 인권에게 나중이라고 외쳤다. 그래 원래 정치는 그렇다.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은 늘 그랬고 인권적인 사람이라던 문재인은 정치인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은 원래 그렇다.

 

핵심은 우리다. 인권을 신념으로, 인권을 직업으로, 인권을 활동으로 하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가? 그에 대한 기대가 연예인의 팬클럽처럼 치솟는 지금, 그런 지지자들의 여론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기사 토씨 하나하나 민감한 그들에게, 그들은 인권의 기준으로, 인권의 원칙으로 인권감수성, 장애 감수성을 민감하게 가지도록 설득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부터 인권활동가는 신발끈을 조여야 한다. 주먹을 높이 들고 깃발을 올려야 한다. 그게 인권 대통령을 만드는 길이다. 나중은 없다. 양보도 없다. 모든 사람에게 인권으로 자부심을 가지도록.

 

덧붙임) 2007년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 일명 NAP, 2007~2011)수립 이후 공공기관에서의 인권교육이 의무화되었다. 그러나 포괄적인 인권교육은 국가 정책이나 지침으로 의무화되거나 국가인권위원회법 안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정작 국회를 통과한 인권교육 관련법은 2014년 유승민 의원이 발의하고 스스로 폐기한 이후 단 하나도 없다. 단지 세월호 참사 핑계로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과 같은 국가주의와 가부장주의를 강요하며 만들어진 2015년 인성교육진흥법이 오히려 교육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기관과 단체에서는 법정의무교육이란 이름으로 인권과 관련한 여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물기도 하고 법적인 기관 평가에 반영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직장내성희롱예방교육,개인정보보호교육,성매매,성폭력예방교육 등이 공통적인 교육이고 기관의 특성에 따라 받아야 할 추가 교육 등이 관련 법이나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다.

 

장애인식 교육과 종사자인권교육과 같은 장애인 인권교육은 장애인 복지법, 발달장애인법, 장애인차별금지법, 특수교육법 등에 개별 명시되어 있지만 그 강제성이나 실효성은 낮은편이다. 과태료와 같은 처벌조항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인권교육은 모든 인권교육의 길로 향해 있어야 한다. 장애인 인권교육을 하면 할수록 다른 인권들도 함께 실천되어야 한다. 다른 인권교육이 잘 수행된다면 장애인 인권도 자연스럽게 따라와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에 있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 것인가를 가르치는 데 있다.  

삐디이  

 

[인권연대] 목에 가시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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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5/20 [13:09]  최종편집: ⓒ 신문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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