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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정치참여에서 여성정권 창출로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자네트워크 ‘젠더고물상’   기사입력  2017/05/21 [07:41]

 

새 대통령의 ‘파격’행보에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산적한 수많은 질문들 -무엇을, 어떻게, 언제, 누가 할 것이고 어떤 가치와 관점, 즉 어떤 왜?를 가지고 진전해갈 지에 대한- 은 기대 속에서 묻히는 듯 보인다.

 

과거 두 번의 대선결과에 비해 암울함과 암담함이 걷힌 것은 사실이지만, 개운치는 않다. 여성들이 바라는 대통령을 검색해봤다. ‘성 평등’, ‘페미니스트’, ‘젠더의식, 감수성’을 가진 대통령이 되어, ‘소통’을 통해 ‘여성폭력’, ‘젠더폭력’, ‘차별’, ‘혐오문화’를 극복하고 ‘안전’을 보장하고, 나아가 ‘낙태죄 폐지’, ‘차별금지법’, ‘여성장애인 정책’, ‘일자리’, ‘정규직’, ‘공/보육’ ‘여성대표성확대’ 등의 구체적 정책을 통해 실현했으면 하는 기대들이 보인다.

 

대통령은 내각 30%에 여성을 등용하겠으며, 점차로 남녀동수내각을 공약화했다. ‘민주주의가 성평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여성들의 주장을 적극 반영해 ‘성평등이 보장되는 민주주의’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여성들은 ‘할당제’ 등을 통해 ‘성 평등’이 구현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요구 및 실천해왔다. 그 결과 지난 총선에서는 전례 없이 많은 여성들이 국회에 진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할당제 이후 국회의 정치문화나 국가의 성정책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여성들의 정치참여가 정치문화와 구조를 조금씩 성평등하게 바꾸어내고 있고 ‘페미니스트 대통령’에의 의지는 그 연장선에 가능한 긍정적인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개운치가 않다. 

 

정권이 바뀌고 새 대통령이 여성 친화적 인사와 정책을 펼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지난 대선토론 과정에서 심상정 후보를 보면서 ‘여성(주의)정치’와 ‘여성(주의)정치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반여성적, 여성차별적인 인사나 언행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당당함, 거침없이 비판하는 솔직함, 필요하면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 근성, 이미지에 연연하지 않은 원칙주의 등을 표출하는 심 후보를 보면서 적어도 저런 모습을 갖춰야 여성정치와 여성정치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당의 대표이자 당선권 밖에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은 일면의 평가일 뿐이다. 다른 여성들도 그러한 처지에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러 연구들에서 여성들이 할당제 등의 제도변화를 통해 수적인 확대는 이뤄냈지만 ‘질적인 확대’는 아직 미흡하다는 여성정치연구 결과는 ‘여성정치’와 ‘여성정치인’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게 한다.

 

‘민주주의가 저절로 성평등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여성주의적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즉 ‘어떤 민주주의?’라는 질문과 그것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질문은 ‘성평등이 보장되는 민주주의를 실현해라!’ 가 아닌 ‘민주주의를 견인하는 여성정치’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변화에 좌지우지되는 여성정치참여는 바람 앞의 등불일수 밖에 없다. 여성들이 스스로 창출할 수 있을 때, 스스로 정치권력의 주인이 될 수 있을 때 (남성)정권의 변화에 휘둘리는 여성정치참여가 아닌 ‘민주주의를 한발 더 견인하는 여성주의정치’로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가진 남성(화된)정치인들 눈치 보기, 그들의 간택을 바라는 방식이 아닌, 여성주의라는 신념, 여성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와 비전, 그 실천과정에 대한 원칙, 원칙을 고수하려는 고집과 투쟁성이 어쩌면 정치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자질과 참여경로가 되어야 한다. 신입 정치인, 특히 여성 등 소수자의 정치입문은 보통 ‘비례’건 아니건 당의 권력집단의 승인인 ‘경선’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이 ‘민주주의적’ 과정이 아니라는 건 다 알고 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같은 어려운 관문을 뚫고 재/다선에 성공한 여성정치인들, 정치구조 안에서 여성주의정치를 펼치고자 하는 여성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주의정치가 그러한 위계적, 비민주적인 남성정치문화를 개혁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 왜 여성정치가 그러한 경로를 당연시 하면서 정치참여를 확대하고자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원칙, 여성주의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정치진입경로는 이후 여성정치를 그 정치구조에 종속되게 만든다. 여성들-여성정치인, 당원, 여성단체, 여성 집단 등-의 힘으로 여성들이 정치에 진입 및 참여하게 만드는 주체적인 방법이 뭐가 있을지 지금부터라도 고민이 필요하다. 정권의 변화가 여성들에게 개운한 결론이 안 되는 이유다.

 

▲사진 출처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내일이 벌써 강남역 사건 1주년이다. 여전히 고려대의 ‘난파’사건은 진행 중이고, 디지털 성폭력도 기승중이고, 이들에 대한 피해여성들은 정신적 심리적 충격에 갇혀있고, 대다수 여성들은 불안해한다. 일베들이 자신들의 게시글을 삭제해달라고 한다지만, 그들의 글이 삭제된다고 그들이 삭제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정치는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통령만 소통할 것이 아니라, 여성정치도 수많은 여성현장들과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연대하고 지원할 때 양 쪽 다 권력을 창출할 힘을 가질 수 있다. 여성정치참여를 ‘내’가 아닌 ‘여성들’이란 관점에서 볼 때 앞으로 30%든 50%든 여성주의정치를 펼쳐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조현옥 인사수석의 위치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앞으로 5년, 문재인 정권의 가능성보다는 정권이 열어놓은 틈을 여성정치가 얼마나 더 활짝 열어내고 굳건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으로서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인권연대] 수요산책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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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5/21 [07:41]  최종편집: ⓒ 신문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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