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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무 이효성 탁현민 사태를 보는 소회
[외부기고] 문 대통령, 권위는 '법'이 지켜주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전상현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7/17 [16:56]

[신문고 뉴스] 전상현 칼럼니스트 = 방산업체 옹호, 대형로펌에서의 고액임금 수수, 음주운전 같은 흠결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혼쭐이 나고, 야3당이 '절대불가'를 외쳤던 송영무 국방장관 후보자가 함께 불가 대상자로 지목되었던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사퇴 덕(?)에 임명되었다.

 

그라고 지금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의 부동산 관련 의혹과 위장전입 의혹등을 제기하면서 "5대 비리 전관왕 달성 전에 자진사퇴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이들은 지금 이 후보자에게 목동 위장전입 축소·거짓 해명, 다운계약서, 세금탈루, 개포동 위장전입, 아파트 투기, 병역법 위반 및 특혜, 자녀 미국국적, 전관예우 등 전방위적 문제제기에 나섰다.

 

그러면서 "현재 논문 표절로 의심되는 구체적 자료는 확보했으며 검증이 끝나는 대로 곧 공개하겠다"며 "만약 논문 의혹까지 사실로 밝혀진다면 '5대 인사원칙 위반, 전(全)관왕'을 달성하는 문재인 정부의 첫번째 인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 외에도 친문진영 전체가 지키기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 탁현민 선임행정관 문제는 지금 문재인 정권의 순항을 더디게 할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란 직위에 법이 부여한 권력으로 이 같은 여러 문제에 정면돌파를 시도하면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국가를 이끌어가는 리더로서 그 권위를 법이 부여한 법적 힘과 여론조사 지지율이란 '국민성원'의 힘으로 지탱하려는 것이다.

 

리더의 힘, 리더의 권위, 가족이든 집단이든 사회든 국가든 심지어 교회든 조직 리더의 권위는 그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힘이기에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그 힘이 정당성을 부여받을 때는 힘이 주는 권위가 공동체 안에서 무소불위가 되기도 한다.

    

가족에서의 리더, 즉 가장은 가족의 의식주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삶까지도 무한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권위와 책임의 한계를 분리하기 힘들다. 따라서 가족에서 가장의 권위가 무너진다면 그 가족은 모든 구성원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일반 집단이나 사회는 너무나 다양하고 저마다의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조직 리더의 권위를 특정하기란 힘들다.

    

하지만 국가의 경우는 다르다. 국가 간 무한 경쟁시대에 한 나라 국가지도자의 능력과 권위는 대단히 중요하다. 과거 우리나라는 '권위주의 시대'에 살면서 강제된 '권위'에 짓눌려 온 국민이 위축되어 살던 때가 있었다. 또 우리나라 대통령 대부분은 제왕적 권위를 잘못 휘두르다가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기도, 불명예스러운 모습으로 퇴장하기도 했다.

    

물론 세상의 권위는 자발적이라기보다는 힘, 권력, 조직, 능력 등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힘, 권력, 조직, 능력 등은 조건과 환경이 변하면 금새 사라져 버리고 만다.

    

우리나라 속담에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또 權不十年(권불십년)은 권력을 멋대로 휘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의 의미도 담겨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권위는 어디서 나올까?

    

권위란 떫은 감물을 우려내듯 숱한 세월 동안 꾸준한 노력, 자기 인내와 솔선수범을 한 끝에 나오는 결과물이다. 더구나 진정한 권위는 몇 사람 힘 있는 패거리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또한 지도자가 단순히 어떤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많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교회 지도자의 권위는 하나님 나라의 권위를 앞세워  스스로 권위를 높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 지도자는 성도들을 위해 낮은 자리에서 섬길 때, 진정한 권위를 가질 수 있다.

    

만약 예수의 제자들이 성서의 권위만을 내세우려 했다면, 이 세상에 오늘날 기독교는 없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며 겸손한 섬김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 땅에 교회와 하나님의 진리가 전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교회 지도자의 권위는 제도나 절차 등 형식이나 교회법에 의해서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내용, 즉 믿고 따를 수 있는 신뢰와 사랑 그리고 진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국가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법이 권위를 지켜주지 않는다. 법에 의존한 지도자의 종말이 처참한 것은 이를 확연하게 말한다. 법이 아니라 국민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행위의 진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권위 있는 지도자는 불의(不義)와 타협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쫒지 않고, 남을 탓하지도 않으며, 결정을 내리되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권위적인 사람'은 많지만 진정으로 '권위 있는 사람'은 드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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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17 [16:56]  최종편집: ⓒ 신문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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