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힌츠페터와 김사복만 영웅인가

[임두만의 영화평] 전두환 노태우도 관람했다면...그들도 전율을 느꼈을까?

임두만 | 기사입력 2017/08/15 [17:59]

'택시운전사'..힌츠페터와 김사복만 영웅인가

[임두만의 영화평] 전두환 노태우도 관람했다면...그들도 전율을 느꼈을까?

임두만 | 입력 : 2017/08/15 [17:59]

[신문고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송강호는 배우다. 그런데 그가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하는 연기는 배우가 하는 연기 같지가 않다. 그래서일까? 영화관을 나온 지 몇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그의 환영에서 나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 영화 택시운전사 속의 송강호...유투브 캡쳐     © 임두만

 

나는 그동안 송강호가 출연한 영화를 여러 편 보았다. 그가 주연한 영화만이 아니라 그가 대중 배우로 얼굴을 알리는 계기가 된  ‘초록물고기(1997년 작)’는 물론 그가 각종영화제 신인상을 탄 ‘넘버 3(1997년 작)’, 우리 영화사상 최초의 블록버스터로 평가 받는 ‘쉬리(1999년 작)’ 또 다른 히트작인 ‘공동경비구역 JSA (2000년 작)’.... 특히 쉬리(582만 명 동원), 공동경비구역 JSA(583만 명 동원)는 당시로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이므로 빼놓지 않고 보았다. 그런 다음 ‘변호인(2013년 작)’에서 만났고, 그 이후 가장 최근 스크린으로 송강호를 만나 것이 ‘밀정(2016년 작)이다.

    

초록물고기의 양아치 판수,  조폭두목 배태곤(문성근)의 부하로 세상을 겁 없이 살아가는 막동(한석규)과의 주차장 싸움씬에서 나타난 송강호의 연기, 이에 대해 문성근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와 죽인다’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나도 당시 송강호의 연기 몰입도에 깊이 취했다.

    

넘버3의 3류킬러 조필, 서태주(한석규)나 마동팔(최민식) 박재철(재떨이 박상면)보다 어쩌면 송강호가 연기한 조필이 더 각광을 받을 만큼 이 영화에서 송강호는 자신을 관객에게 각인시켰다.

 

무식하지만 있는 폼은 다 잡는 허세, 성격이 매우 급해 조금이라도 화가 나거나 흥분하면 말을 심하게 더듬거리는 허당, 그러면서도 헝그리 정신을 말하는데 말을 끊는다고 부하를 사정없이 때리는 장면이나 무대뽀 정신을 말하면서 최영의가 소뿔을 부러뜨린 이야기를 비유하는 등의 연기는 오래도록 송강호란 연기자를 기억하게 했다.

    

쉬리의 이장길 실장, 공동경비구역 JSA의 북한군 오경필 중사, 변호인의 송우석(노무현) 변호사, 밀정의 이정출까지 늘 그렇지만 송강호가 연기한 인물들은 그때마다 내 눈에는 완벽하게 주인공으로 빙의한 모습이었다. 즉 나는 매번 송강호의 영화를 볼 때마다 영화배우 송강호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실존인물의 현재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는 말이다.

    

영화 택시운전사도 마찬가지다. 김만섭(김사복)...그의 본명이 김사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영화 속 김만섭이자 은정아빠인 택시운전사는 자신이 혹여 드러나 하나밖에 없는 딸 은정을 돌보자 못할까봐 연락처와 이름을 남겨 달라는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요구에 허위 전화번호와 가명을 남겼다. 당시의 은정아빠 표정은 그것을 말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비오는 2017년 광복절에 만난 택시운전사 은정아빠는 앞서 언급한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한동안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1980년 광주,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만섭은 방세 10만원을 밀린 소시민이다. 사우디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자부심과 11살 외동딸 은정이는 그를 지탱하게 하는 두 축이다.

 

열사의 나라에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아내를 병으로 잃고 돈까지 잃은 뒤 친구 택시운전사의 집에 세들어 산다. 그런데 그 친구집의 세돈 10만원을 밀려 친구 부인에게 닦달을 당하지만, 남편인 친구에게 10만 원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로 주변에 인심은 잃지 않고 있다.

    

영화 속 김만섭은 이렇게 돈이 필요하다. 아내 병원비로 진 빚은 다 갚았지만 은정이에게 상구네보다 좋은 집을 사줘야 하고, 우선은 상구엄마에게 약속한 방세 10만원을 벌어서 갚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이 시끄러워 학생들이 데모나 하고 있으므로 길이 늘 막혀서 돈을 마음대로 벌 수가 없다. 이에 만섭은 '공부하라고 대학 보내놨더니 데모나 하고 앉았고' 등의 레파토리를 수시로 늘어놓는다.

    

그런데 바로 그날 1980년 5월 20일, 전날 상구와 싸운 은정의 찢어진 이마를 보고 따지러 상구네에 갔다가 되려 상구엄마에게 월세독촉을 받은 만섭은 아침에 다시 또 월세독촉을 받는다.

 

바로 그날, 점심값이 아까워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점심을 해결하던 만섭은 우연히 집주인 상구아빠인 친구 택시기사가 한턱 내는 바람에 고기로 점심을 얻어먹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뒤의 기사들에게 광주 당일치기에 10만원을 받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의 만섭, 재빨리 을지로 국도극장 앞으로 가서 그 손님을 새치기하여 광주로 향한다. 그리고 이후 영화는 철저히 은폐되었던 광주의 진실을 필름에 담아 전 세계에 내놓은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실화를 바탕으로 당시의 처절했던 광주의 참상을 고발한다.

 

▲ 광주의 택시운전사 유해진의 집에서...유투브 캡쳐     © 임두만

 

37년 전의 일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보고 깨닫는가? 독일 언론인 힌츠페터와 서울 택시운전사 김만섭을 광주로부터 빼내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기꺼이 던진 광주의 택시운전사 황태술(유해진 분)이하 택시운전사들, 권총을 머리에 대고 숫자를 세는 보안사 요원에게 목숨을 담보로 잡혔지만 목숨을 버리면서 도망치라고 외치는 대학가요제 출전이 꿈인 대학생 구재식(류준열 분), 마지막 검문소에서 검문 중 택시 트렁크의 서울번호를 보고 검문소를 통과시켜 준 박성혁 중사(엄태구 분)...

    

나는 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에서 그들의 이름을 읽으며 이들이야말로 37년 전 광주의 참상을 세상에 알린 참다운 증언자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제발, 제발 누군가가 우리의 이 억울함을 세상에 널리 알려주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나는 죽어도 좋다. 내가 살아도 광주의 억울함이 묻힌다면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 절절한 기도가 현실이 되려면 힌츠페터와 김만섭은 무조건 광주로부터 빼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 장엄한 죽음은 결국 광주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했다, 그 생생한 필름 덕에 37년이 지난 지금이나마 우리는 광주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그렇다. 김만섭은 살아야 했다. 그래야 힌츠페터도 살고 광주가 알려진다. 37년 만에 '택시운전사'에서 '광주의 진실'을 살려내야 했으므로 은정아빠는 영화에서 살아야 했다.

 

그래서 영화의 종반부로 가면서 극장 안은 고요 그 자체였다. 팝콘봉지를 뒤적이는 소리는 언제부터인지 없어졌으며 극장 안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은정이의 선물로 핑크색 구두를 사면서 맨날 운동화만 사줬다고 자책하던 김만섭, 그 빨간색 구두를 산 만섭은 이제 집으로 향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광주 바로 옆 순천임에도 광주의 참상을 모르고 외부인이 침입, 대학생들을 꼬드겨 군인들에게 대항한다는 시민들의 말에 울면서 광주로 돌아간다. 눈물을 흘리며 국수를 먹는 만섭의 표정은 이 영화의 백미다. 힘차게 핸들을 꺾어 차를 광주로 돌린 그의 행동 때문에 더 극악한 참상을 기록한 필름을 가진 힌츠페터를 일본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 재식은 결국 대학가요제에 나가지 못했다. 유트브 캡쳐     © 임두만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그 참혹했던 광주의 금남로를 비장하고 처연하게 담아냈다. 하지만 실제 그 참상을 경험한 사람들의 눈에는 미흡할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영화에 대한 평을 쓰면서 “80년 광주의 중심으로 휘말려 들어가지 못한다.”고 쓰고 또 “계속 겁에 질린 채 겉돌기만 하는 것이 답답할 정도”라고 썼다. 그리고는 “'택시운전사'는 역사를 다룬 영화로서는 기량을 맘껏 발휘하지 못한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평에 그리 동의하지 못하겠다. 1980년 5월 18일부터 1980년 5월 27일 새벽까지 광주의 열흘을 고스란히 담은 기록필름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에 힌츠페터의 이틀간 기록으로 이만한 파열음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영화 외에는 없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나는 송강호와 유해진과 수많은 무명 배우들, 그리고 조연들과 류준열 엄태구의 연기들을 칭찬한다. 1000만 관객을 눈앞에 둔 영화 택시운전사...이미 내 앞에 800만 명 이상이 지나갔으므로 이 글은 이 영화의 스포일러가 아니다.

 

그리고 뱀발...전두환 노태우 등이 이 영화를 보았다면 그들도 나처럼 전율을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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