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성인소설] 욕망의 상그릴라를 찾아서

1부. 한석규, 레테를 찾아 프라하로 떠나다. (2회)

전철현 | 기사입력 2017/08/26 [14:17]

[본격 성인소설] 욕망의 상그릴라를 찾아서

1부. 한석규, 레테를 찾아 프라하로 떠나다. (2회)

전철현 | 입력 : 2017/08/26 [14:17]

1부. 한석규, 레테를 찾아 프라하로 떠나다. (2회)

 

체코는 1차 세계대전, 특히 구 체코슬로바키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시절부터 '제국의 공장'이라 불릴 만큼 경제적으로 탄탄한 나라였다. 더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전쟁 참화를 상대적으로 적게 겪은 터라 곳곳에 문화유산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편이다.

    

이후 <프라하의 봄(Pražské jaro)> 영화로도 유명할 만큼 민주화의 내홍을 겪었던 탓에 상대적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 비해 경제발전은 더딘 나라이다.

    

공항청사를 빠져나온 석규는 긴 비행시간 내내 참았던 니코틴의 욕구를 해소했다. 잠시 후 공항 택시 한대가 석규 앞에 섰다. 30대 안팎의 젊은 운전기사가 서투른 영어로 석규를 맞이한다. 석규는 관광명소를 여행하러 온 여행객이 아닌 만큼 딱히 말이 필요 없었다. 택시기사에게 프라하의 까를교 근처 무스텍 지하철 역(Můstek Metro Station)에 내려 달라는 쪽지를  보여주었다.

    

"OK...OK..."

    

두 번을 연발한 택시기사는 익숙한 운전 솜씨로 공항을 빠져나간다.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운전기사는 서투른 영어로 석규에게 프라하의 명물인 관광명소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프라하의 명소인 성 비투스 대성당이며, 야경으로 유명해서 종종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까를교 전망대며, 프라하 성 그리고 구시청사의 시계탑 등등 메뉴얼화 된 관광코스를 소개하는 듯했다.

    

택시 뒷좌석 창문 넘어 보이는 크고 작은 유럽식 중세건축물들이 석규의 무심한 시야 속에서 스치듯 지나간다. 문득 석규는 "아~ 내가 동유럽 프라하에 오긴 왔구나."를 실감하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목적지까지 오는 동안 쉴새없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 프라하 시내 구식 건물들...편집부 자료사진    

 

물론 석규도 가끔 무의미하고 기계적인 목소리로 맞장구를 쳐 주었다. 사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것도 아닌 낯선 외국인들이 주고받는다고 해도 서로의 말을 알아듣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택시는 어느덧 무스텍 지하철 역 앞 광장 도로에 도착했다. 석규는 미리 환전해 두었던 체코 돈 500코루나를 운전기사에게 건넸다. 젊은 운전기사는 순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잔돈을 이리저리 계산하는 것이 석규의 눈에 보였다. 하지만 거스름 돈을 제대로 돌려주지 않을 심산인 것도 석규는 알고 있었다. 사실  500코루나면 체코에선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석규는 손짓으로 거스름돈은 필요 없으니 그냥 가라고 했다. 창문 너머로 횡재했다는 택시기사의 표정에서 석규는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동서고금 할 것 없이 뜻밖에 행운에 기뻐하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인간이란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에 희망을 두며 살아가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석규는 인터넷 검색으로 예약한 중세 오래된 석조양식의 조그만 호텔로 들어갔다. 유서 깊은 호델이라든가 관광명소의 호화호텔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러브모델 규모의 호델이었다.

    

전형적인 서양 시골의 아주머니가 프런트에 꾸벅꾸벅 졸며 앉아 있다가 석규를 맞이했다. 프런트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는 낯선 동양 이방인의 방문에도 표정의 변화 없이 무덤덤한 모습이었다. 석규가 볼 때는 사회주의 시절 문화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손님에 대한 기본적인 서비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석규는 간단하게 숙박명부 기재를 끝내고 주인 아주머니를 따라 들어간 곳은 무스텍 지하철역 앞 광장이 보이는 복도 끝 2층 객실이었다. 삐걱거리는 낡은 침대, 허름한 화장대, 낡고 물때가 낀 욕조 등 체코어로 된 달력의 글씨가 이 호텔이 체코에 있음을 나타내줄 뿐 우리나라 80년대 역 앞에 있는 여관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석규는 장시간 비행기 여행의 여독을 풀고자 욕실로 향했다. 욕실 벽에 고정된 샤워기 쪽으로 고개를 돌린 석규는 물 상태가 이상함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수돗물과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석규는 두 손으로 물을 받아서 냄새를 맡아보고, 조심스레 얼굴을 씻었다.

    

석규는 예전에 중국 유학 중인 친구 위로 방문차 중국에 갔을 때, 느꼈던 석회질 성분이 녹아 있는 물임이 확실했다. 체코의 수돗물 역시 지하수에 석회암 성분이 녹아있는 물이었다.

    

석규는 80년대 학부 시절을 회상했다. 80년대 의대 예과생 시절, 우리나라 대학생들 사이에 생수병을 들고 다니는 방랑자 백팩 패션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필경 수질이 안 좋은 지역이나 국가로 유학을 간 일부 유학생들의 생활방식이 반영된 소품의 유행이었다. 

    

석규는 미끈거리는 물로 간단히 샤워를 하는 둥 마는 둥 끝내고 바로 호텔 밖으로 나왔다. 지하철역 입구 식품점에서 생수와 간단한 간식을 사기 위해서였다. 석규는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 당직 근무를 하면서  먹는 달달한 과자와 커피, 흡연 가능한 곳에서 피우는 담배가 주식이자 간식이다.

    

지하철역 조그만 광장은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큰소리로 웃으며 지나가는 여자들, 백팩에 이어폰을 끼고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지나가는 청바지 청년, 무표정하게 삶의 찌들어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걷는 서울 지하철역 풍경과는 달리  여유가 있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석규는 광장에 서서 오랜 시간 지나가는 많은 사람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석규가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것처럼 지하철 역 주변을 배회하는 아가씨들을 발견했다. 스모키 화장을 한 젊은 아가씨도 있었고, 풍만해 보이는 중년의 여자, 긴 머리에 슬랜더형의 평범한 서양 아가씨들도 보였다.

    

석규는 직감적으로 그녀들이 '밤의 꽃'이란 확신했다. 이른바 꽃 파는 처녀들. 하지만 석규의 눈에 비친 그녀들의 모습에선 한 점 죄책감이 없는 생기발랄한 도시의 아가씨들처럼 보였다.

    

지금은 태국에 정착하여 밤문화 사업을 하는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 한 녀석이 동유럽 가족 여행을 다녀오면서 찍은 한 장의 쇼킹한 사진을 석규에게 보내준 적이 있었다. 바로 프라하 어느 길거리에서 나체로 퍼포먼스를 하는 젊은 여성의 사진이었다.

    

물론 그 친구는 석규에게  체코 퍼포먼스 나체녀와 같이 찍은 사진도 보내주었다. 특히 체코의 경우, '성매매도 합법일뿐더러 폴란드처럼 조용한 느낌보다는 더욱 다양하고 화려한 유흥을 즐길 수 있는 나라'라고 했다. 당시 석규에게 문화충격이었지만 지금의 석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석규로선 놀라운 발전이었다.

    

석규는 생각했다. 왜  독재에 항거하고 자유로의 갈망을 노래한 작품 <프라하의 봄> 같은 영화의 주인공이 하필 바람둥이 외과의사 토마스였겠느냐는 해묵은 의문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유의 끝은 성해방에 있다'라는 어느 급진성해방론자의 주장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때, 석규의 눈에 지나가는 사람들과 해맑은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거리의 여자, '밤의 꽃'인 아가씨의 모습이 보였다. 한 손에는 풍선을 들고 할머니 손을 꼭 잡고 걷는 꼬마에게 다가가 활짝 웃고 할머니와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아가씨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낮에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우리나라 홍등가의 꽃 파는 아가씨들처럼 지나가는 남성에게 매달려 호객행위를 하여 불쾌감을 유발하는 그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곳 체코에서는 비록 '밤의 꽃'인 아가씨라 할지라도 인간으로서 최소한 몸과 행동의 자유,  생각과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 같았다 예전의 석규가 아니었기에 그녀들에게 다가가고자 하였으나 언어적 소통에 무리가 있을 것 같아서 이네 맘을 접었다.

    

"여긴 이태원 성문화하곤 다르다. 정신 차렷!! 한석규"

    

석규는 혼자 중얼거렸다. 석규는 가끔 외국 문화와 외국인에 대한 잘못된 환상에 빠져서 이태원 외국인 거리를 배회하는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을 다룬 신문기사가 생각이 났다. 하지만  체코는 '한류 문화'에 열광해 우리나라 사람에 대하여 특별히 호의적인 나라는 아니었다.

    

석규의 독백처럼, 체코는 동유럽의 OECD 최하위국이었지만, 섹스에 대해 개방된 '포르노의 천국' 네덜란드 수준은 아니었다. 더구나 체코 프라하의 무스텍 지하철역 앞 광장을 배회하는 젊은 아가씨들을 체험하기 위해 체코어를 배우기에 석규는 성에 대한 욕망이라든가 섹스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다. 석규는 이제 오십 대에 들어선 중년의 아저씨였기 때문이다.

    

체코는 최근까지 만성재정적자에 시달린 탓에  독일이나 덴마크 등 선진국과 달리 체코 여성들이 '밤의 꽃'인  밤문화 사업에 나서는 비율은 유럽 여러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금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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