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증거다.” - 생명권과 생리대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홛동가 네트워크 ‘젠 | 기사입력 2017/09/16 [12:20]

“내 몸이 증거다.” - 생명권과 생리대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홛동가 네트워크 ‘젠 | 입력 : 2017/09/16 [12:20]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여성건강이 열쇠이다!’ ....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여성건강권 증진을 위하여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있을 수 없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맡겨진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과 위치를 생각할 때 ...... 여성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임신과 출산, 육아 관련 건강지원서비스를 ...... 여성의 건강은 개인의 수준을 넘어 미래세대의 건강을 좌우하는 중요한 가치......”

 

“특히, 건강한 출산을 위해 소녀기, 청년기의 건강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확산 되고, 노인인구집단에서 여성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애주기별 여성의 건강을 위한 기반 마련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 워싱턴 100만 명의 여성과 세계 30개국이 함께하는 여성권리행진>사진 출처 - 구글    

 

 

2012년 <여성 건강권 확립을 위한 법/제도 토론회> 축사들의 내용이다. 위 글들만을 본다면, 여성의 건강권은 국가존립에 상관관계가 있는 인구의 재생산과 결합되어 논의되며, 질병에 노출되기 쉬운 노인집단에서 여성비율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노인여성에 대한 국가적 질병치료비용의 증가와 이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부담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인간의 건강은 인간의 생명이 중요한 만큼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중요한 인권의 영역이다. 어떤 이유로도 그 권리는 유보되거나 양도되어서는 안 된다. ‘000때문’ 이거나 ‘000하는 조건하에서’ 라는 옵션이 붙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독 여성의 건강권은 ‘임신, 출산, 양육의 주체’ 라는 “조건”이 ‘여성인간’ 이라는 “존재”, 혹은 “실존”의 전제가 된다. 인구의 재생산이라는 전제조건 없는 ‘인간’, ‘시민’, ‘사회정치적 주체’로 불려진 적이 없다.

 

‘생리대 위해성 문제’가 불거지고, 3000여명이 넘는 여성들이 이 문제를 제기한 여성단체에 이상증세를 증명하였다. 이들이 거리로 나와 ‘생리대가 인권이고 내 몸이 증거이다’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역학조사를 하겠다는 대답은 아직 없다.

 

그동안 인체에 직접 닿는 생리대 안전기준이 변기 세정제보다도 못했다(뉴스1 2017. 9. 12)는 소식을 접하면서, 여성의 몸, 건강, 생명이 남성과 분리된 상황에서 어떻게 취급되는지를 여실히 알게 된다. 가습기 살충제, 달걀 살충제에 이어 생리대 발암물질은 이 물건들이 남성들의 영역에 속해있지 않은, 즉 가사노동 내에 속해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소위 공적영역이 아닌 ‘여성들의 영역’인 사적인 영역 내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사용 및 관리하는 주체가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변기는? 여성과 남성 공용이다. 식약처의 관리대상인 생리대가 환경부가 관리하는 변기보다 안전기준이 미비하다는 것은 환경이 여성인간에 비해 좀 더 공적인 영역에 가깝다는 의미이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가 관리하는 유아용 기저귀보다는 낮은 수준이라는 점 또한 마찬가지이다. 산업/통상/자원은 공적영역으로 남성들의 관리를 받는다. 너무나 이분법적이고 궤변적인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여성들에겐 그렇게만 보인다.

 

또 하나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 것은 출산과 여성의 연결성이다. 백번 양보해서 인구재생산을 여성이 없으면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더욱 더 여성의 생리대는 임신, 출산, 양육을 위해 엄격하고 엄밀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건강한 재생산을 위한 전제가 건강한 모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건강 따로, 출생아의 건강 따로인 정책과 관념은 어떻게 가능한 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재생산, 즉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여성에 대한 존재에 대한 존엄성(?)마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 <출산을 위한 여성의 건강권>이라는 것도 듣기 좋고, 보기 좋은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애초에 여성의 건강권은 국가정책자들이 머릿속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생리대의 위해성이 자녀의 건강, 나아가 여성들과 성관계를 하는 남성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역학조사가 나온다면 아마도 생리대 문제는 단박에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여성들은 언제까지 임신, 출산, 양육의 주체로만 규정되어야 할까? 페미니즘이 극성이라고 욕을 먹는 이면에는 ‘엄마들처럼 면 생리대를 써라!’ 라는 석기시대식 답변이나 ‘소변이나 대변처럼 참았다가 한꺼번에 해결하라!’는 무식의 도를 넘는 남성들의 댓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과연 페미니즘 전성시대가 맞을까? 여성들은 똑똑해지고 남성들은 아둔해지고 있을까? 아니면 아둔했던가? 부디 이 간극이 더 커지길 바라지 않는다. 연애, 결혼, 출산 파업은 이 간극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해결은 요원하다. 지금이라도 생리대 위해물질에 대한 엄격한 관리와 표기, 역학조사를 전면 실시하여야 한다. 여성의 권리는 모든 이의 권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인권연대] 수요산책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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