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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페미니스트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요리할 줄 아나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기사입력  2017/10/03 [14:33]

엄마는 페미니스트. 맞다. 책 제목이다.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후배가 선물한 책이다.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제목보다 더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엄마는 페미니스트>는 아디치에가 친구에게 편지형식으로 쓴 글이다. 자신의 딸을 페미니스트로 키우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친구에게 아디치에는 열다섯 가지의 제안을 했다. 제안 하나하나에 공감했고, 인종과 문화가 달라 무척이나 낯설어야 하는 제안마저도 내겐 교집합이 보였다. 밑줄 치고 외우고 싶을 만큼 지금 나에게 필요한 내용들이었다.

 

처음엔 아디치에가 자신의 딸에게 쓴 편지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딸에게 페미니스트로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 편지를 쓸까 잠깐 생각하였으나, 그건 너무 어렵다. 아디치에만큼 잘 쓸 자신도 없다. 솔직히 아이를 낳아 키우는 7년 동안 여자로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딸을 ‘한국에서’ 키워야 하는 것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왔다.

 

어떤 때는 너무 한심해서, 또 어떤 때는 너무 억울해서, 또 어떤 때는 너무 화가 났다. 딸에게 편지를 남기는 것보다 주위의 아빠, 엄마들과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나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고 그러려면 사회 전체가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딸의 어린이집 부모들, 교사들, 내 주위의 또 다른 부모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내재된 의식에 대해, 통념과 상식으로 여겨져 온 많은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 틈만 나면 이야기하고 써야겠다. 때로는 내 발언으로 분위기가 가라앉더라도, 내가 싸움꾼처럼 여겨진다 해도, 아니 그렇게 여겨지면 뭐 어떤가. 여자들은 지금까지 너무 침묵해왔다. 더 크게 문제제기하고, 스스로든 타인에 의해서든 교묘하게 가리고 숨긴 것들을 신랄하게 까발려야 한다.

 

▲  사진 출처 - 민음사  

 

 

나는 요리에 크게 취미가 없다. 맛있는 걸 찾아다니는 행위나 맛집 평가 같은 데 별로 관심이 없다. 당연히 미식가가 아니다. 타고난 미식가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감각은 어릴 때부터 먹어온 음식에 따라 키워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요리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누구든 무슨 음식이든 나 대신 차려주는 음식에 불만이 없다. 불행히도 집에서 (내가 하기 힘들어하는) 요리-반찬과 국, 찌개, 일품요리-를 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남편이 할 수 있는 반찬은 계란후라이, 냄비에 물과 밥 넣고 끓이기, 베이컨이나 소세지 굽기이다. 한 가지 과정 이상을 거쳐야 하는 반찬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집에 반찬이 없거나 국이 없는 채로 며칠이 지나면 나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그것도 몇 중으로. 하나는 왜 나 말고는 이 집에서 반찬을 만들지 않는가, 둘째는 이런 스트레스를 받는 내 마음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데’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나에게 화가 난다. 이 집에 사는 성인 남자 (아이는 빼고) 둘은 반찬이 있건 말건 아무 생각이 없는데, 직장생활로 가장 시간에 얽매어 있는 나만 왜 그 생각을 해야 하는가.

 

우리 집 남자 중 한 사람은 이십대고 한 사람은 오십대인데, 삼십 년의 격차가 무색하게도 두 사람 다 자라면서 누군가가 해주는 데 익숙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요즘 말하는 심한 한남에 속하지는 않는다. 집안일도 할 만큼 하고, ‘시키면’ 군소리 없이 다 한다. 문제는 ‘시키지 않아도’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 대목에서, 한국 남자들은 ‘도와준다’라는 의식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같은 공간을 쓰고 같이 밥 먹고 같이 더럽히는 데 누가 누굴 도와준다는 말인가. (여기에 아이의 일까지 엄마가 다 책임져야 한다면, 정말 억소리가 절로 난다) 자신이 먹고 싸고 입는 그 일상을 책임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어른이 아니다. 적어도 십대부터는 자신이 놀고 먹고 싸고 입기 때문에 해야 하는 기본적인 일들을 책임져야 한다.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

 

최근에 딸의 친구와 그 부모가 우리 집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아빠가 자신의 할머니와 얽힌 추억을 꺼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예전 본인이 귀대할 때 골목길까지 따라 나와 용돈을 주머니에 넣어 주시던 장면 등. 그러자 우리 집 오십대의 남자가 엄마는 항상 자신만 보면 구십이 다돼가는 지금도 ‘밥 먹었냐’라고 묻는다며, 엄마들은 언제나 그렇다고 하는 것이다. 아, 그 엄마로부터 십 년 간 한 번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어쨌든 나는 속이 불편했다.

 

“‘당신들’한테 밥 먹었냐고 물으셨겠지. 아마 딸들한테는 그런 소리 안 하셨을 거야. (딸에게도 안 하는 말을 며느리한테 할 리가 없는) 대신 뭐라고 하셨을까? 오빠 (남편 혹은 손주) 밥 차려줬냐고 물으셨겠지. 당신들의 그 낭만 어린 엄마의 밥 이야기는 엄마든 당신의 누이든, 누나든 누군가의 노동이고 희생이라고!” 당연히 분위기 싸해졌다. 싸해지거나 말거나.

 

누구는 태어나면서 요리할 줄 아나. 대부분의 여자들이 결혼하면서부터 요리를 하게 된다. 타의반 자의반. 그 자의라는 것도 여자가 요리해야 한다(그것도 ‘잘’해야 한다)라는 말을 무슨 사회 규범으로 알고 자라거나 혹은 집에서 엄마만 음식 만드는 걸 보고 자라서 내재화된 여자의 모습에 순응하는 것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것도 나는 타의라고 주장하고 싶다.

 

하여간 부엌에서 평등이 이루어져야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온 만큼, 내 집 부엌이 그렇지 않다는 것에 나는 또 스트레스다. 스스로 너무나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돌려서 얘기해도 남편은 직접 요리를 시도하지 않고, 갑자기 내가 “왜 나만 반찬을 다 만들어야 해!!!!!”라고 폭발할까 봐 집에 반찬이 일주일 가까이 없으면 얼른 반찬을 사다 놓는다.

 

심지어 국도. 어쨌든 내가 반찬과 국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나름 신경을 쓰긴 한다. 직접 노동은 안 하고 돈으로. 그렇게 거의 십 년. 얼마 전에 그런 남편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 줄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성산2동 마을공동체에서 ‘요리왔수다’라는 아빠들이 요리도 같이 배우고 이야기도 나누는 교실이 열린 것이다. 두 번 째 수업에 갔다 온 남편은, 그날 잔뜩 받아온 재료들로 그 다음날 드디어, 요리를 했다. (물론 다 준비된 재료를 팬에 다 붓고 섞기만 한 것이지만) 알리오 올리오. 최근엔 태어나 처음으로 생선도 구웠다. 오십 몇 년 만에. 그래,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  

 

 

인권연대 수요산책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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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03 [14:33]  최종편집: ⓒ 신문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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