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적으로 예측한 통일 이후의 미래상

[요즘 이책] 이증준 장편소설 '국가의 사회상'

최재천 변호사 | 기사입력 2009/07/30 [05:50]

비관적으로 예측한 통일 이후의 미래상

[요즘 이책] 이증준 장편소설 '국가의 사회상'

최재천 변호사 | 입력 : 2009/07/30 [05:50]
이응준 지음, 민음사 펴냄
“상상력은 창조력의 시작이다. 바라는 것을 상상하고 상상한 것을 의도하고 마침내 의도한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버나드 쇼) 그래서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작가 이응준에게 2011년 5월 9일 오후 4시께 갑자기 통일이 찾아왔다. “통일정부의 999가지 실수들 가운데 최고의 흥행작은 의무 복무 기간이 10년에서 13년가량인 과거 북한의 120만 대군에 대한 서투른 처리였다.” 무기는 분실됐고, 군인들은 하층민이 되거나, 조직폭력배가 됐다.
 
조폭들은 ‘통일된 나라의 사생활’이 됐고, 누아르와 스릴러, 역사와 추리로 교직되면서 소설 <국가의 사생활>의 얼개가 됐다. 작가는 소설을 위해 300여 권의 책을 읽고 새터민을 인터뷰했다.
 
여기에다 마치 논저처럼 참고문헌을 달았다. 황장엽 선생의 책만도 2008년 최근작까지 5권이다. 작가의 상상력은 독서와 지식을 뛰어넘어 창조로 이어졌다.
 
2016년, 한국전쟁 이전의 부동산 소유권을 주장하는 남쪽 사람의 소송은 줄을 이었고, 부동산 투기꾼들은 북으로 북으로 몰려들었다. 통일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을 전부 주민등록화하는 데 실패했다.
 
주민등록이 없는 이른바 ‘대포 인간’들이 생겨났다. 이북 난민에게는 하루 한 끼 식사를 제공했다. 서울에만 20여 군데의 통일급식소가 운영되고 있었다. 유언비어의 백미는 식인귀가 출몰한다는 것이었다. 고난의 행군기에 배가 고파 인육에 입을 댔던 한 사내가 그 맛을 잊지 못해 사람을 죽이고 심장만 파먹고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통일은 이루어졌다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분단 상태였고,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보다 더 지독한 지역감정 하나가 추가되었다.” 김일성 주석 탄생 기념일인 4월 15일 태양절을 맞아 술을 마시며 향수를 달래던 호위사령부 출신 친목 단체가 경찰서를 습격, 방화한 것으로 폭동이 발생했고, “정부는 계엄령 선포를 놓고 고심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북한의 핵탄두는 미국이 인수해갔다.
 
지나친 일상성, 스토리의 부재, 자기 독백, 은유의 과잉, 상상력의 빈곤…. 최근 들어 필자가 읽은 우리 소설의 특징이다. 무엇보다 작가적 상상력의 부족은 당뇨병 환자의 식후 공복감으로 다가오곤 했다.
 
작가의 상상력은 우리 소설계에 역사적 상상력이라는 인슐린을 공급한다. 상상력이 결코 공상과학 소설 같은 허구에 깃들지 않는다는 점도 다행스럽다. 남북의 현실에 대한 묘사는 쉽게 쓴 논문 같다. 독일 통일과 비교하며 통일한국의 미래를 예지하는 방식도 놀랍다.
 
영화감독 출신이라는 작가의 경험이 새로운 전형의 창조로 이어졌다. 장면 묘사가 그러하거니와 49개 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의 전환은 마치 영화를 예정한 듯하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 영화처럼 잠시 딴전 피우다간 다시 앞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미래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왕복하기도 쉽지 않다. 작가는 영화감독처럼 때론 순간으로, 때론 유장함으로 호흡을 조절하며 독자들의 손에 땀을 묻힌다.
 
통일의 과정이 잘 짜인 한 편의 영화처럼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비관적으로 예측할 수밖에 없는 통일 이후의 미래상이 극사실풍으로 펼쳐지는 소설 속 미래가 편치만은 않다. 워 게임(war game)에도 가상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듯, 통일 이후에도 상상은 필요하다. 통일 정책의 하나로서 상상력을 구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상을 통해 ‘이후’를 대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상상력을 한계지운다. 그래서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 리강의 입을 빌려 “답을 구하지마. 세상은 주체철학 용어 사전이 아니야. 답을 구하니까 네가 세상보다 더 혼란스러워지는 거야”라고 말한다.

68운동의 슬로건은 이랬다. ‘상상력에게 권력을’.
 
 
이글은 <위클리경향> 823호 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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