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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 '혼풀이 춤'이 각각 다른 이유
임귀성 군산예도원 원장 “춤은 천근만근 무겁게 춰야”
 
조종안   기사입력  2017/10/31 [10:45]

 

 

▲ 오성산 정상에서 바라본 금강 하류, 왼쪽은 군산, 오른쪽은 서천군 장항이다.     © 조종안


 

다섯 개 봉우리로 이루어진 오성산(五聖山·227m), 전북 군산시 성산면 금강하굿둑 부근에 자리한 지역의 명산(名山)이다. 이곳에서는 그 옛날 백제인들과 '오성인'(五聖人)의 호국충절 정신을 기리는 '오성문화제전'이 매년 가을에 열린다.

 

옛 문헌에 따르면 오성산 일대는 1400여 년 전 당나라군과 백제군 사이에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또한, '오성인 묘' 부근에서 백제 양식의 테머리식 산성이 발견되고, 칼끝처럼 뾰쪽한 도진봉(刀津峰)에 남아 있는 봉화대 흔적은 이 지역이 백제 시대 금강 하구를 감시하던 군사적 요새였음을 암시한다.

 

진혼을 위한 넋풀이, 도살풀이 한마당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비단물길 금강(錦江). 그 금강 하류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오성산 산정에서 도살풀이춤 한마당이 펼쳐진다. 진혼을 위한 넋풀이다. 이곳은 사비성(부여)을 향해 진격하는 당나라장수 소정방에게 항거하다가 죽임을 당한 다섯 노인이 묻힌 곳이다. 이름하여 '오성인 묘'다.

 

▲ 진혼을 위한 넋풀이, 도살풀이춤(임귀성)     ©조종안

 

 

가냘픈 손끝과 애절한 몸짓에 발 디딤새가 아스라하다. 자박자박 걷는가 싶더니 긴 수건을 쥔 손끝이 허공을 향해 곡선으로 흩뿌린다. 정중동(靜中動)의 미가 조화를 이룬다. 손끝에서 어깨까지 여섯 관절을 꺾고, 틀고, 당기고, 밀어내고, 잡아채는 곰삭은 춤이다. 호흡이 멈췄는가 싶은 순간 버선코 발끝은 사뿐히 추임새를 놓는다. 손끝, 발끝, 머리끝까지 흥과 신명, 애절함을 함께 녹여내는 완벽한 춤사위다.

 

3~4분쯤 지났을까, 무대위 춤꾼은 영매(靈媒)가 된다. 그리고 소망을 빌어 축원하고 해원을 빌어 상생한다. 발끝, 손끝 모든 춤사위에 인간사 희로애락이 담긴다. 나라를 지키다가 숨져간 백제 병사들과 산정에 묻힌 다섯 노인의 혼령을 위로한다. 고혼들에게 인사하면서 떡이랑 과일이랑 많이 들고 가시라고 권한다. 평화와 풍요의 물결이 더 큰 회오리로 일어나길 소원한다.

 

이날 혼령들과 인간을 매개해준 춤꾼은 임귀성(62) 군산예도원 원장이다. 임 원장은 1999년부터 매년 이 행사에 초대되어 한스럽게 눈감은 영혼들을 위로해오고 있다. 그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이면서 '제97호 살풀이춤 이수자'이다. 지난 9월에는 전남 신안군에서 개최된 '2017 인동초 국악대전'에서 살풀이춤으로 종합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추모제마다 소품이 다른 '혼풀이 춤'

 

▲ 임귀성 원장의 지전춤(왼쪽), 살풀이춤(가운데), 도살풀이춤(오른쪽)     © 조종안

 

군산문화원은 선조들의 충절과 호국정신을 기리는 추모제 및 충혼제 행사를 해마다 5~6회 개최한다. 그중 앞서 소개한 '오성문화제전'을 비롯해 매년 5월에 개최되는 '최호 장군 시민추모제', 6월에 개최되는 '항일의병장 임병찬 선생과 의병 35인 충혼제' 등이 대표적이다.

 

군산의 추모제 및 충혼제는 국민의례에 이어 봉제 선언(충혼 선언), 신위 봉안, 헌공다례, 초헌례·아헌례·종헌례, 독축 등의 순으로 엄숙하고 경건하게 진행된다. 여기에서 무겁고 딱딱해진 행사장 분위기를 온화하고 부드럽게 반전시켜주는 순서가 있다. 임귀성 원장의 '진혼풀이(혼풀이 춤)'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고이 잠들게 한다는 '혼풀이 춤'임에도 행사 때마다 춤사위가 다르고 손에 쥔 소품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에 임 원장은 "최호 장군 추모제 때는 흰 창호지로 만든 지전(종이돈) 다발을 쥐고 추는 <지전춤>을, 오성문화제전 때는 긴 수건을 이용하는 <도살풀이춤>을, 의병장 임병찬 선생과 의병 충혼제 때는 <살풀이춤>을 춘다"며 "행사를 주최하는 군산문화원 요청으로 춤이 각각 다른 것으로 아는 분이 있는데 사실은 개인(임 원장) 영감으로 정해진다"고 부연한다.

 

"충혼제나 추모제는 일반적인 무대공연과 달리 '혼풀이 춤'이잖아요. 그래서 연락을 받으면 곧바로 느낌이 옵니다. 영혼들과 영적인 교감 상태에서 아, 이번에는 이 춤을 춰야겠구나. 이번에는 저 춤으로 해야겠구나 하고 영감이 떠오르죠. 마음이 정해지면 구상에 들어갑니다. 중간에 바뀌는 경우도 있어요. 우천으로 무대가 야외에서 실내로 변경되거나 연습 중 춤사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죠.

 

제가 매년 참여하는 공연 중에는 군산, 특히 혼풀이에 관계된 게 많습니다. 군산은 항구도시여서 그런지 크고 작은 국내외 전쟁, 의병활동, 삼일만세운동, 농민항쟁 등에 참여했다가 희생당한 분이 많습니다. 한스럽게 죽은 원혼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지요. 그러한 이유로 실제 생활에서도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하늘의 영혼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지요."

 

'춤은 묵직하게··, 천근만근 무겁게 춰야'

 

▲ 자신의 춤꾼 인생을 이야기하는 임귀성 원장     © 조종안

 

임귀성 원장은 서울 토박이다. 초중고 대학을 서울에서 다녔다. 그의 춤 경력은 30년 남짓. 춤은 결혼 후 임이조(1950~2013) 선생에게 처음 배웠다. 1990년대 초 군산으로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 왔다가 눌러앉았다. 서울에서 춤을 배우던 임 원장은 이삿짐을 풀기 무섭게 군산국악원을 찾아가 등록한다. 그리고 흥남동에서 국악원을 운영하는 월산 최란수 명창에게 <흥부가> 한바탕을 배웠다. 모두 남편의 지원과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임 원장은 한국 전통춤의 거목 우봉 이매방(1927~2015) 명인의 애제자이기도 하다. 스승 관련 중앙무대 경험도 풍부하다. 대표적인 공연으로 <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춤 인생 70년 기념공연>(2004), <우봉 이매방 춤 전수관 기념공연>(2005), <우봉 이매방 팔순 기념공연>(2006) <한국의 명인 명무전>(2007) <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춤 대공연>(2009) <우봉 이매방 전통춤 대공연>(2010) 등을 꼽는다.

 

▲ 이매방 선생님과 찍은 마지막 기념사진(2015년)     © 조종안



"제가 처음 이매방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군산에서 왔다며 인사하니까 눈빛이 달라지면서 무척 반가워하셨어요. 그때 선생님이 군산 영화동에서 무용연구소를 3년(1951~1953) 정도 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죠. 선생님은 군산비행장(미군기지) 쇼 무대에서 삼고무, 오고무 등을 공연했던 이야기와 군산 제자들(박문자, 김옥순, 양향옥, 채영옥 등)과 첫 발표회를 전남 광주에서 가졌다며 저를 조카처럼 대해주셨지요.

 

군산에서 왔다고 특별히 애정이 있으셨는지 인사만 하면 '자고 가거라, 자고 가거라' 하셔서 사모님 방에서 자고 오곤 했지요, 아마 제가 선생님 댁에서 숙식을 가장 많이 한 제자일 겁니다. 2년 전 여름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나흘 밤을 꼬박 새우면서 빈소를 지켰지요. 선생님은 공연을 앞두고는 회초리(장구채)를 들 정도로 지엄했지만, 인정이 넘치고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였죠. 집에 오는 제자는 꼭 밥을 챙겨 먹여서 보냈으니까요."

 

임 원장은 "(이매방) 선생님은 '춤은 추는 사람의 몸과 마음과 행동의 짓'이라며 '춤은 연륜과 공력이 필요하다. 출수록 맛이 나고 곰삭아야 제맛이 나는 법이다 그러려면 항상 정직하고, 욕심을 버리고 특히 마음이 고와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도 '춤은 묵직하게···, 천근만근 무겁게 춰야 한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춤꾼의 길을 열어준 스승을 떠올렸다.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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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31 [10:45]  최종편집: ⓒ 신문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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