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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 한편,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김양수의 영화평] 소녀에게 허락된 시간은 1년, 할 수 있는 일은?
 
김양수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11/13 [00:56]

[신문고뉴스] 김양수 칼럼니스트 =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절대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렸던 어느 군주께서 말년에 ‘나의 삶에서 진정으로 행복했던 날은 보름이 채 되지 않는구나’라는 한탄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이제 반세기를 넘게 살아온 나는 어떨까.

 

돌이켜 보면 나이를 먹어가며 내가 느끼게 되는 아쉬움은 행복하게 살았느냐의 문제 보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세월들을 헛되게 낭비하지 않고 나와 가족에게, 그리고 내가 몸담은 세상에 별로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한세대 전만해도 예순이 넘으면 장수를 축하하며 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남들만큼 산다고 해도 나의 기대 수명은 앞으로도 30년 세월이다. 오래 살 수 있게 된 것은 축복이지만 한 세기 가까운 삶을 여백 없이 가쁘게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자기 학대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방황할 수도 있고, 때로는 일탈도 필요하다. 시쳇말로 한 시절 ‘멍 때리며’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으리라.

 

하지만 나에게 허락된 삶이 20년이 되지 않으며, 그나마 남은 시간이 1년 남짓이라면?  

 

어느 소녀에게 이렇게 잔인한 저주가 내려졌다. 그런데 소녀는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영원한 축복으로 바꾸어 버린다.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1년의 삶을 100년처럼 살고 지고자 했던 시한부 소녀 ‘사쿠라’와, 소녀의 마지막 순간까지 반려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한 소년의 인연을 담채화처럼 맑고 곱게 그린 한 편의 서정시(抒情詩)이다.

 

▲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일본판 포스터    

 

영화의 흐름은 잔잔하다. 유장한 호흡으로 과거와 현재를 천천히 오가며 아름다이 스러져간 소녀와 남겨져 어른이 된 소년의 회상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랑도 우정도 아닌, 그저 비밀을 나눈 친한 사이에 불과(?)했던 소년과 소녀의 교감은 소녀의 버킷 리스트를 함께 하는 에피소드로 시작되어 마침내 서로의 ‘췌장을 먹고 싶어 하는’ 가없이 깊고 너무도 예쁜 공감으로 승화된다.

 

유치한 희극은 집요하게 웃음을 강요한다. 마찬가지로 눈물 짜기에 집착하는 멜로드라마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수 있을지언정 그 느낌은 기름진 음식을 과식한 후 경험하는 거북한 포만감과 다르지 않다. 반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시한부? 그게 뭐 어때서? 라는 소녀의 황당하면서도 어쩌면 발칙한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다. 그래서 시한부 소녀 ‘사쿠라’의 시종일관 그치지 않는 청아한 웃음과 쾌활함은 영화를 벚꽃처럼 화사하게 끌고 간다.

 

이에 이야기 속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깊숙이 빨려 들어간 관객들이 느끼는 비극의 무게는 오히려 눈물보다 더욱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는 먹먹함으로 다가오게 된다.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영화 속 여인들은 언제나 나의 사춘기 감성을 자극하곤 했다. ‘러브스토리’의 ‘제니퍼’가 그랬고, ‘라스트 콘서트’의 ‘스텔라’가 그랬다. 하지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사쿠라는 이전 그녀들과는 확연히 결이 다른 인상으로 나의 가슴을 파고든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제니퍼와 스텔라는 삶의 마지막을 연인에 대한 사랑으로 매조지 했다. 반면 사쿠라는 그저 사랑이 아닌 삶 자체를 남겨진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어 했다. 특히 그녀가 반려로 선택한 남학생에 대한 감정은 사랑이라는 흔하디 흔한 단어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들의 인연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역시 이 한 문장 밖에 없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삶은 유한하기에 아름답고, 아름답기에 빨리 사라지고, 빨리 사라지기에 슬프고, 슬프기에 사무치고, 사무치기에 다시 없이 소중하다. 오래 사는 축복을 허락받은 사람들은 이 평범한 진실을 절감하지 못한다. 오늘도 무료하게 흘러가는 나의 하루는 하루살이 곤충에게는 결국 한평생이 아니던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말라고 했던가. 천만번 맞는 말이다. 슬픔과 노여움을 느낄 수 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살아가며 우리가 사랑하고 배우고 기뻐할 수 있다면, 우리도 언젠가 ‘췌장이 먹고 싶어지는’ 누군가를 찾아내는 축복을 누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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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13 [00:56]  최종편집: ⓒ 신문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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