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헛발질 '盧 전 대통령 부관참시'

“망치로 박살낸 시계”가 '팩트'라면 “논두렁에 버린 시계”와 뭐가 다른가?

김양수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11/18 [17:03]

유시민의 헛발질 '盧 전 대통령 부관참시'

“망치로 박살낸 시계”가 '팩트'라면 “논두렁에 버린 시계”와 뭐가 다른가?

김양수 칼럼니스트 | 입력 : 2017/11/18 [17:03]

[신문고뉴스] 김양수 칼럼니스트 = 유시민. 대한민국 최고의 정치평론가이자 논객이었다. 내가 아는 한 필설(筆舌)로 맞붙어 논쟁에서 그를 압도할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TV 토론회에서 유시민의 맞상대로 섭외된 사람들을 보면 ‘아무리 TV 출연도 좋지만 유시민의 스파링 파트너로 나서는 건 바보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인데’ 라는 생각 때문에 주제넘게 나섰던 그들이 가련하게 여겨져 혀를 끌끌 차기도 했었다.

    

유시민은 스스로를 ‘지식소매상’이라 칭한다. 자신에 대한 기막힌 평가이다. 마음잡고 책 쓰고, 이곳저곳 강의 다니며 ‘지식소매’를 하시면 그는 웬만한 직장인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 매출을 올린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만큼 장사에 성공한 소매상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정치인 유시민의 발자취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었다. 참여정부 시절 국회의원과 복지부 장관으로 발군의 역량을 선보이긴 했지만 김해 보궐선거 당시 이른바 ‘업동이 선거’는 그의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입혔고, 무엇보다 통진당 이정희 세력과 시도한 어설펐던 정치실험은 TV 막장 드라마를 능가하는 참담함으로 막을 내렸다.

 

유시민을 아직도 노무현의 정치적 후계자로 여기는 일부 친노 팬덤의 머릿속에서는 유시민이 여전히 정치유망주로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시민 정도 지적 능력의 소유자라면 다시 정치를 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진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동안 칩거하는 듯 보였던 유시민은 문재인의 집권 이후 정치에 컴백하는 대신 깜짝 선언을 한다. “나는 진보의 어용지식인이 되겠다.” 

 

이후 정말로 유시민은 진보의 어용지식인다운 행보를 서슴지 않는다. 아니, ‘진보’가 아니라 ‘친문’의 어용지식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나는 친문 정파가 진보를 참칭하는 것은 이 땅의 진정한 진보 정치세력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유시민은 우리에게 익숙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여용지식인으로 변신한다. 그는 작가도, 강연자도, 평론가도 아닌 TV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 다시 말해 ‘연예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유시민, 그는 왜 연예인이 되셨을까. 그의 동기를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쉽게 말해 유시민은 ‘딸기향 나는 달콤한 해열제 시럽’을 친문 이데올로기 전파의 수단으로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해열제는 쓰다. 맛이 없다. 그래서 열나고 머리 아프다며 칭얼대는 아기는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해열제를 먹기 한사코 거부한다. 하지만 해열제에 딸기향과 먹음직스러운 붉은색을 입히고 달콤한 시럽을 첨가하면? 아기는 해열제를 쉽게 삼키게 된다.

 

유시민의 글은 매우 훌륭하고 아름답다, 그의 달변은 글 이상의 힘을 가진다. 하지만 책을 읽고 강연을 듣는 것은 이제 고리타분하고 지겨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이 변해 가는데 항상 하던 대로 책 쓰고 강연하고 평론하는 것은 유사 이래 가장 탁월한 어용지식인이 되기로 작정한 유시민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뭔가 확 깨는 방법이 필요했다. 친문 정파의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친근한 방법, 딸기향 나는 달콤한 해열제 시럽 같은 해결책은 무엇일까. 탁월한 두뇌의 소유자 유시민은 가장 확실한 답을 찾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연예인 유시민을 만나게 된다.

 

이후 연예인 유시민은 승승장구 한다.

 

토크쇼에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그는 시청를 저격의 확실한 유망주로 자리매김 한다. 지금은 친문 시대이니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며칠 전 토크쇼에 출연한 유시민은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발언을 쏟아낸다. 이른바 ‘논두렁 시계’의 진실이라는 내용인데, 그 요지는 이렇다.

 

▲ jtbc 썰전 화면 갈무리    

 

유시민은 16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논두렁 시계’ 대해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인, 4월 20일쯤 (봉하마을에) 갔을 땐데 (그때) 들었다”며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회갑을 맞았는데 박연차씨가 (노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를 통해 시계를 선물했다. (노건평씨는 노 전 대통령이) 화를 낼까 봐 이것을 못 갖다 주고 퇴임해서 봉하마을로 오니까 노건평씨 부인이 권 여사에게 줬고, 권 여사는 받아서 감춰뒀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이 시계의 존재를 알게 된 계기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꼽았다. 그는 “(청와대 기록물 관리 시스템인) 이지원 복사 문제로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재산 목록을 만드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시계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라며 “권 여사에게 크게 화를 내고 시계를 망치로 깨서 버렸다고 한다”고 했다. (유시민의 ‘썰전’ 발언을 보도한 ‘조선일보’에서 발췌)

    

박연차 게이트의 많은 부분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인해 ‘봉인’되었다, 그럼에도 문재인 집권 후 적폐청산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언론은 ‘권양숙 여사가 명품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당시 보도가 검찰과 국정원이 기획한 망신주기용 허위사실이라는 사실을 집요하게 주장해 왔다.

 

만약 이것이 허위사실이라고 한다면 상식적으로 사람들은  ‘권양숙 여사는 명품시계를 받은 적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논두렁에 버릴 일은 더더욱 없다.’ 라고 생각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일수록 이렇게 받아들이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연예인 유시민이 당당하게 밝히는 진실은 완전히 다른 뉘앙스이다. 명품 시계는 분명히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되었으며, 노 전 대통령 또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게다가 그는 고가의 시계를 당사자인 박연차 회장에게 돌려주지 않고 망치로 깨서 버렸다고 한다.

 

유시민 발언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권 여사와 노건평씨는 뇌물성 시계를 받은 어리석은 사람일지언정 노 전 대통령만은 깨끗했고, 진노하여 그 비싼 시계를 망치로 박살낼 정도로 강단 넘치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발언의 의도와 상관없이 유시민은 노 전 대통령 망신주기용 발언이었다는 ‘논두렁 시계 루머’에 적어도 절반의 면죄부는 주게 된 것이 되는 ‘헛발질’이었다.

    

'검찰과 국정원의 기획'이라는 논두렁 시계 허위루머의 대강은 이렇다.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에게 시계를 받았다. 그런데 검찰 수사과정에서 문제가 될 것 같아 봉하마을 논두렁에 버렸다’

    

유시민이 밝힌 '고가시계 선물' 팩트는 이렇다.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이 노건평씨를 통해서 준 시계를 받았다. 그런데 검찰 수사를 앞두고 이를 알게 된 노 전 대통령이 시계를 망치로 부셨다’ 

 

루머와 팩트의 차이는 논두렁에 버린 게 아니라 망치로 깨버렸다는 것. 이는 뇌물이든 아니든 명품 시계는 분명히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에게로 전달되었다는 사실에서는 변함이 없다.

    

이제 차분히 생각해 보자. 당시 검찰이 시계를 논두렁에 슬그머니 버린 게 아니라 화끈하게 망치로 박살내 버렸다고 밝혔다면 그건 노 전 대통령에게 있어 망신은 아니었을까? 이건 정말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다. 이 시대 최고의 어용지식인이 되겠다는 유시민은 도대체 무슨 의도로 ‘논두렁에 버린 시계의 진실’을 ‘망치로 깨버린 시계’로 바꾸고자 했는지 말이다.

    

연예인 유시민이 이렇게 거침없이 잘나가는 것을 보니 나에게는 그의 별명 중 하나가 떠오른다. 그와 정치적 대척점에 선 사람들이 유시민을 비아냥거리며 부르는 별명은 다름 아닌 ‘촉새’이다. 촉새는 그냥 흔하게 말이 가볍고 방정이 맞은 사람, 쉽게 말을 하고, 재잘재잘 대는 사람을 의미한다.

 

유시민, 친문을 위한 어용지식인이 되겠다며 난데없이 연예인으로 데뷔하시더니 결국 촉새로 퇴화해 버렸나 보다. 아니다. 혹시 내가 처음부터 잘못 판단했는지도 모르겠다.

 

유시민은 어쩌면 ‘노무현을 재물로 문재인 영웅 만들기’를 도모하는 진짜 무서운 어용지식인일수도 있겠다. 이 써늘한 생각이 갑자기 떠오르자 나는 그가 무서워진다. 하지만 그의 '망치로 시계깨기' 발언이 헛발질인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어용'의 미래는 유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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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차려 2017/11/20 [12:00] 수정 | 삭제
  • "나는 친문 정파가 진보를 참칭하는 것은 이 땅의 진정한 진보 정치세력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라고 단언한다."=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