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홍남순 변호사 가옥, 5.18 사적지 지정 돼

강종호 기자 | 기사입력 2017/12/04 [15:52]

故 홍남순 변호사 가옥, 5.18 사적지 지정 돼

강종호 기자 | 입력 : 2017/12/04 [15:52]

[신문고뉴스] 강종호 기자 =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 광주민주화운동의 큰어른 '시대의 양심'으로 살다 간 故 홍남순 변호사 자택이 5.18 사적지로 지정되어 안내 표지석 제막식을 가진다.

    

4일 ‘홍남순기념사업회(회장 박석무)’ 측은 “홍남순 변호사 가옥 사적지 제막식 및 대인 홍남순 변호사 기념사업회 출범식 개최‘에 대한 안내문을 통해 오는 8일(금) 오후 4시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 15번지에 있는 홍 변호사의 자택에서 표지석 제막식을 거행한다고 알렸다.

 

▲ 박정희 정권 당시 부정선거 규탄에 나선 홍남숩 변호사(좌) 5.18 사적지로 지정된 가옥. 기념사업회는 이 가옥에서 시적지 제막식을 갖는다고 알렸다. (이미지 출처 :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홈페이지    

 

또 이 제막식이 끝난 뒤 오후 5시 옛 전남도청 민원실 2층에서 ‘대인 홍남순 변호사 기념사업회’ 출범식도 거행한다고 덧붙여서 알렸다.

    

사업회 측은 “대한민국 민주화운동 제1세대를 상징하는 홍남순 변호사의 생애 업적과 시대정신을 기리기 위한 사단법인 大人 홍남순 변호사 기념사업회 출범식을 개최한다”면서 “출범식에 앞서 이날 오후 4시 홍남순 변호사 가옥에 설치될 5.18사적지 안내 표지석 제막식을 개최한다"고 전했다.

 

사업회 측은 이어 “이날 출범식에서는 홍남순 변호사와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던 전국의 민주인사와 민주화운동 제1세대 원로들이 참석할 예정”이라면서 “송기인 신부와 이부영 의장 등이 축사를 통해 홍남순 변호사의 업적을 기리고 함께 활동했던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회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날 출범하는 대인 홍남순 기념사업회의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할 예정인 박석무 이사장 내정자는  “홍남순 변호사는 권력 앞에 당당하기 위해 청빈의 지조를 고집하셨고, 당신이 지닌 능력과 지위를 오직 사회적 약자와 부당한 권력에 짓밟히는 인권을 위해 소진하셨던 어른이었다”고 회고하면서 홍남순 변호사의 정신을 계승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생전의 홍남순 변호사...이미지 출처 :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

한편 이날 자택의 사적지 제막식과 기념사업회가 출범하는 故 홍남순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1세대 인권변호사로, 가히 인권변호사의 아버지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1912년 전남 화순에서 출생, 일제 강점기를 보내고, 1948년 해방된 조국에서 치른 변호사 시험에 우리나이 서른일곱, 만 36세의 늦은 나이로 합격한 홍 변호사는 1950년 터진 한국전쟁에 38세의 나이로 참전한 때문에 전쟁이 끝난 1953년에야 광주지법 판사로 임용되었다.

 

이후 변호사로 개업한 1963년까지 10년 동안 광주고법 대전지법에서 판사로 근무했으나 박정희가 쿠데타 후 대통령으로 집권한 1963년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그리고 1963년 변호사 개업 후 홍 변호사는 박정희 강압정권에서는 긴급조치 위반 사건의 변론과 양심수들을 위한 무료 변론을 도맡아 했으며, 5·18민주화운동 때 신군부의 광주시민 무차별 학살에 항의 행진을 펼치다 내란수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의 이 같은 양심수 변론은 1965년 한일협정 반대 발언으로 기소된 국회의원 유옥우 사건을 필두로 학생, 정치인 등 양심수들을 위해 60건 이상을 무료로 변론했다.

 

박정희 정권 때  변론을 맡아 진행한 대표적 시국 사건으로는 1973년 전남대 ‘함성’지 사건, 1976년 김대중 윤보선 함석헌 등이 구속된 3·1구국선언, 1978년 전남대 송기숙 교수의 교육지표사건 등 30여건의 긴급조치법 위반사건 등이 있다.

    

그래선지 이런 홍 변호사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일흔의 나이에 내란수괴 혐의로 신군부에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년 7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광주 5·18구속자협의회’ 회장으로 추대된 고인은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과 5·18명예회복에 주력했으며, 이 같은 공로로 1985년 가톨릭 인권상과 1986년 대한변호사회 인권상,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이랬던 그는 2001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진 지 5년 만인 2006년 10월 14일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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