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문칼럼] 국민 여러분 밤새 안녕하십니까?

이강문 영남본부장 | 기사입력 2017/12/05 [02:32]

[깡문칼럼] 국민 여러분 밤새 안녕하십니까?

이강문 영남본부장 | 입력 : 2017/12/05 [02:32]
▲ 양파tv. 양파뉴스 이강문 총괄사장.     ©이강문 영남본부장

노인들끼리 모여 회식을 하는 자리에는 으레 ‘9988’이란 건배사가 따른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죽었으면 하는 기대감의 건배사일 것이다. 또 요즘에는 거기에 덧붙여 ‘234’라는 숫자가 들어간다.


즉 이틀이나 사흘 앓다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다. 의학기술의 발달과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노인들은 오래 사는 것이 두려울 따름이다.


저녁에 잠이 들어 그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요즘 노인들의 바람이다. 9988은 그저 하는 소리일 것이다. 노인들이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형벌인 것이다. 2016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노인 인구 10곳 중 반은 독거노인들이다.


거기다 노인가구의 상대 빈곤율은 OECD 33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반면, 노년층의 삶의 만족도는 모든 연령대 가운데 가장 낮다. 가난하고 외로운 이 땅의 노인들은 “내일아침 깨어나지 않기를, 그저 잠든 채로 죽음을 맞이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유엔이 정한 기준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7% 이상인 경우 고령화 사회, 20% 이상인 경우 초고령화 사회라고 한다. 한국은 이미 2000년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으며 2016년 전국 100여 곳이 넘는 시군구가 초고령 사회에 들어섰다.


고령화 사회에 많은 우려와 함께 수많은 노인복지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노인들의 구체적인 삶은 정부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비참하고 고달프다. 노년층의 소비시장에서는 이미 구매력이 없어 무의미한 집단으로 전락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선거기간에만 노인복지가 반짝 구호처럼 외치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금방 잊어지는 공약(空約)일 뿐이다. 지하철이나 공원에서 마주치는 노인들은 무기력하거나 표정이 없다. 무언가 분노에 가득찬 표정들이다.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나 홀로 폐지를 줍거나 유모차에 손주를 태우고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는 노인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젊은 층은 이미 노인을 외면한지 오래다. 그래서 도시에서는 일명 ‘번개탄’이 노인들의 눈에 들어오고, 농촌에서는 ‘농약병’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오늘의 노인들의 삶이다.


한국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일생을 가족과 자식들만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고달프게 일만하며 오늘의 한국경제를 일으켜 세웠지만, 미처 자신들의 노년을 준비하지 못한 채, 이 시대의 노인들은 절반 가까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우울한 생을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노인 자살률을 갖고 있는 나라, 그 중에서도 도시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농촌의 노인들, 오늘의 삶이 어떤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많은 노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암보다 무서운 병’ 치매다. 치매를 겪는 배우자를 돌보다 살해했다거나 동반 자살을 했다는 보도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치매노인의 치매의료 서비스 비율은 47%로 치매노인의 절만 이상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오늘의 노인들은 늙도록 벗어나지 못하는 ‘밥벌이’의 고단함과 “힘들어도 좋다. 일자리만 다오.”라는 언뜻 보면 상반된 목소리가 담겨 있다.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 나온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오늘의 노인들의 말년은 ‘축복’이 아닌 ‘형벌’이라고 말하고 싶다.


노인들이 “이렇게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괜한 걱정이 아님을 보여주는 작금의 현실이다. 혼자 살다가 사망자가 발견되면 한 달 동안 공고를 해 유족을 찾고, 그래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각 시도가 정하는 대행업체가 장례를 맡는데 서울의 경우 연평균 300건의 무연고 시신을 서울 시립승화원에서 수습하고 있다고 한다.


빈곤은 죽음과 가깝고 그 사이를 노인들은 혼자서 위태롭게 걷고 있는 상황이다. 노년의 외로움은 단순한 경제적 문제도 있지만, 노인들은 오전은 두류공원 오후는 중앙공원(경산감영공원)에서 소일을 하는데 삼삼오오 모여 장기나 바둑을 두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사회 전반의 문화와 여가시설이 구매력 있는 청장년 위주로 되어 있으니 노인들의 문화적 소외감은 갈수록 커져갈 수밖에 없다. 선진국과 비교하는 것도 노인들은 가슴 아플 뿐이어서 비교하지 않는다. TV에 비치는 외국 노인들의 유유자적한 모습에서 한숨만 절로 나올 뿐이다.


지금의 정치권을 보라. 줄줄이 부정한 돈을 먹고 검찰로 부려가는 것을 보면서 먹고살만한 정치인들이 부정과 비리로 수억대의 돈을 부정으로 먹은 사건이 어제도 아니 내일도 뉴스를 장식할 것이다. 그들이 늙은 노인들의 삶을 생각하겠는가.

 

각 당은 오로지 지방선거에만 매달리고 있는 저들을 보고 있노라면 울화가 치밀어 온다. 저들도 금방 노인이 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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