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글을 써라. 고통이 위로받을 것”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2] 요아킴과 안나가 주님께 서원하다

번역 강명준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1/03 [05:40]

"나에 대한 글을 써라. 고통이 위로받을 것”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2] 요아킴과 안나가 주님께 서원하다

번역 강명준 변호사 | 입력 : 2018/01/03 [05:40]

[번역 강명준 변호사 편집 추광규 기자]

 

1944. 8. 22.

 

어떤 집의 내부가 보인다. 베틀 앞에 한 중년 부인이 앉아 있다. 반백의 머리에 주름살은 없지만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 여인의 나이는 오십대 중반쯤으로 보인다.

 

여인의 나이를 짐작함에 있어 나는 내 계산의 근거를 나의 어머니의 얼굴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내 어머니의 인상은 그분의 마지막 날들이 자주 생각나는 요즈음 나에게 더 생생하다. 모레는 내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쉰 살이 된 어머니는 그분 생애의 마지막 날들과 똑같은 백발이 되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외모의 나이든 모습을 떼어 놓고 생각해 보면 나이를 짐작하는 데 있어 빗나가게 하는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연로한 여인의 나이를 짐작하는 데 있어 틀릴 수 있을 것이다.

 

여인은 물레질하고 있다. 넓은 채소밭 쪽으로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방이 환하다. 정원이 기복을 이루며 초록빛 비탈까지 이어져 자그마한 밭처럼 보인다. 여인은 전형적인 유다인의 얼굴모습을 띠고 있는데, 아름답다. 눈은 검고 깊은데 왠지 모르게 세례자의 눈을 상기시킨다. 그 두 눈은 여왕의 눈처럼 자신만만하면서도 다정하기도 하여 마치 빛나는 독수리의 눈을 파란 베일이 가리고 있는 것 같다.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며 회한에 잠긴, 다정하지만 어딘지 슬픈 눈이다. 피부는 갈색이나 아주 짙은 갈색은 아니다. 약간 크고 뚜렷한 입술은 근엄한 모습을 띤 채 굳게 다물고 있지만 냉엄하지는 않다. 코는 길고 가늘며 아래쪽이 약간 구부러져서 매부리코인데, 눈과 잘 어울린다. 체격은 건장하지만 뚱뚱하지는 않고 체격은 균형 잡혀 있다. 앉은 모습으로 짐작해 보건대 키는 클 것 같다.

 

여인은 커튼이나 양탄자를 짜는 것 같다. 갈색 날실 위로 여러 가지 색깔의 북이 왔다 갔다 한다. 이미 짜인 부분에는 그리스식의 만(卍)자 무늬와 장미꽃 무늬가 수놓아져 있는데, 초록, 노랑, 빨강, 하늘빛이 교직되어 모자이크를 이룬다. 여인은 붉은 자줏빛의 아주 평범한 옷을 입고 있는데 특수 종 팬지의 빛깔이다.

 

누군가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여인이 일어선다. 여인은 진짜로 키가 크다. 여인이 문을 열어 준다. 한 여자가 그 여인에게 묻는다.

 

“안나, 항아리를 주시겠어요? 물을 길어다 드릴게요.”

 

그 여자는 다섯 살쯤 된 귀여운 사내아이를 데리고 왔다. 어린 사내아이는 즉각 안나라고 불린 여인의 옷에 매달린다. 여인은 어린이를 쓰다듬어 주고 다른 방으로 가서 아름다운 구리 항아리를 가져와 그것을 주면서 말한다.

 

“자네는 항상 이 늙은 안나에게 친절하구먼. 하느님께서 이 아이와 행복한 자네가 앞으로 더 갖게 될 아이들을 통해서 상 주시기를 바라네!”

 

안나가 한숨을 쉰다. 그 여자는 안나를 쳐다보면서 이 난감한 상황에서 할 말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가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해서 그 여자가 말한다.

 

“괜찮으시면 알패오를 언니 곁에 남겨 두겠어요. 그러면 저는 언니를 위해 더 많은 물을 길어다 드릴 수 있을 거예요.”

 

알패오는 여기 있게 된 것을 매우 기뻐하는데, 그 이유는 명백하다. 그 여자가 떠나자 안나는 어린이를 안아 들고 과수원으로 가 황옥처럼 노란 포도송이들이 달려 있는 퍼골라 높이까지 들어 올리며 말한다.

 

“먹어라, 먹어, 포도가 아주 맛있다.”

 

게걸스럽게 따먹어 포도즙으로 범벅된 아이의 작은 얼굴에 여인이 입 맞춘다.

 

“그럼 이젠 또 뭘 줄 거야?”

 

어린이가 말하면서 짙은 회청색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자 여인이 유쾌하게 웃는데, 그때 드러나는 고른 치열과 기쁨으로 빛나는 얼굴로 인해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 여인은 웃으며 무릎까지 몸을 숙이면서 말한다.

 

“내가 너한테 뭔가를 준다면 넌 나한테 뭘 주겠니? 내가 너한테 무얼 주려는지 알아맞혀 봐라.”

 

어린이는 손뼉을 치며 활짝 웃으면서 말한다.

 

“뽀뽀해 줄 거야, 많이 뽀뽀해 줄 거야. 예쁜 안나 아줌마, 착한 안나 아줌마, 안나 엄마한테 입 맞춰 줄 거야!”

 

‘안나 엄마’라는 말에 안나는 애정과 기쁨을 나타내는 소리를 지르고는 꼬마를 품에 꼭 껴안으며 말한다.

 

“내 귀염둥이! 요 귀여운 것! 귀여운 것, 귀여운 것!”

 

귀여운 것’이라는 말끝마다 장밋빛 뺨에는 키스 세례가 퍼부어진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은 찬장으로 가고, 안나는 큰 접시에서 꿀로 빚은 빵 과자들을 꺼낸다.

 

“불쌍한 안나의 귀염둥이, 이건 너에게 주려고 내가 만든 거다. 네가 나를 좋아해 주니까. 그런데 너는 나를 얼마만큼 좋아하니?”

 

꼬마는 자기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생각해 낸 다음 대답한다.

 

“주님의 성전만큼 많이.”

 

안나는 아이의 반짝이는 눈과 붉은 입술에 입 맞추고, 아이는 새끼 고양이처럼 안나에게 몸을 비빈다. 아이의 엄마는 물이 가득 찬 물동이를 가지고 왔다 갔다 하면서 아무 말 없이 웃는다.

 

나이든 남자가 과수원에서 돌아온다. 그 남자는 안나보다 키가 약간 작고, 억센 머리털은 완전히 하얗다. 그의 깨끗한 얼굴에는 네모꼴로 깎은 턱수염이 나 있고, 두 눈은 터키 옥 같은 하늘색이고, 속눈썹은 금발에 가까운 옅은 갈색이다. 그는 암갈색 겉옷을 입고 있다.

 

안나는 입구 쪽에서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그를 보지 못한다. 요아킴이 안나의 뒤쪽으로 다가서며 말한다.

 

“나에게 줄 것은 아무 것도 없소?”

 

안나가 돌아서며 말한다.

 

“오, 요아킴, 일을 다 마쳤어요?”

 

거의 동시에 어린 알패오가 요아킴의 다리를 껴안으면서 말한다.

 

“아저씨한테도, 아저씨한테도.”

 

요아킴이 몸을 구부려 아이에게 키스하자 아이는 두 팔로 그의 목덜미를 껴안고 작은 손으로 수염을 헝클어뜨리며 키스한다. 요아킴도 선물을 가지고 있다. 그는 등 뒤에 감추고 있던 정교한 자기처럼 반짝이는 사과를 든 왼손을 등 뒤에서 가져다가 앞으로 내민다. 그는 빨리 달라고 손을 내미는 아이에게 웃으며 말한다.

 

“기다려라. 네가 먹기 쉽도록 작은 조각으로 잘라 줄 테니. 자르지 않고는 네가 먹을 수 없다. 사과가 너보다 더 크니까.”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전지용 칼로 작은 조각들로 자른다. 둥지에 든 새끼 새들에게 어미 새가 먹이를 주는 것처럼 그는 아삭아삭 씹어 삼키는 아이의 작은 입에 사과조각들을 정성들여 넣어 준다.

 

“요아킴, 알패오의 눈이 얼마나 예쁜지 보세요! 저녁 바람에 뭉게구름이 흘러갈 때의 갈릴래아 바다의 작은 파도 같지 않아요?”

 

안나는 남편 요아킴의 어깨에 한 손을 얹고 몸을 살짝 기대며 말한다. 그것은 아내의 깊은 사랑, 오랜 결혼생활 후에도 여전히 완전한 사랑을 나타내는 몸짓이다.

 

요아킴은 다정한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동의한다.

 

“대단히 아름답소! 이 곱슬머리는 또 어떻소? 마치 햇볕에 여문 밀 빛깔 같지 않소? 이 황금색과 구릿빛이 섞인 걸 보오.”

“아! 만일 우리에게 아이가 하나 있었다면 이런 눈과 이런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였으면 좋았겠어요.”

 

안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몸을 숙이고 무릎까지 꿇어 아이의 회청색 눈에 입을 맞춘다. 요아킴도 한숨을 쉰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위로하기를 원한다. 그는 아내의 숱 많은 반백의 곱슬머리에 한 손을 얹으며 말한다.

 

“우리는 계속 희망을 가져야 하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소.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기적은 일어날 수 있소. 특히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한다면 말이오.”

 

요아킴은 마지막 구절을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안나는 상심하여 입을 다물고, 뺨으로 흘러내리는 두 줄기 눈물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인다. 눈물은 어린 알패오만이 본다. 알패오는 자기가 좋아하는 아주머니가 어린 자기처럼 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가슴 아파한다. 아이가 작은 손을 들어 그 눈물을 닦아 준다.

 

“안나, 울지 마오. 우리는 여전히 행복하오. 적어도 나는 행복하오, 나에게는 당신이 있으니까.”

 

“저도 당신이 있어서 행복해요. 하지만 전 당신에게 아이를 낳아 드리지 못했어요. 주님께서 제 태를 닫으신 것을 보니 제가 주님의 마음을 상해 드렸나 봐요.”

 

“오, 여보! 거룩한 여인인 당신이 어떻게 주님의 마음을 상해 드렸겠소? 다시 한 번 성전에 갑시다. 장막절을 지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 청원을 드리기 위해서도 말이오. 긴 기도를 드립시다. 어쩌면 사라와 엘카나의 한나에게 일어난 것과 같은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소? 그 여자들도 오래 기다렸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 자신들이 하느님께 버림받은 징표로 생각했었소. 그런데 오히려 하느님의 하늘들에서는(in the heavens of God) 그 여자들을 위해 거룩한 아들이 준비되고 있었소. 여보, 웃어요. 나는 자녀를 가지지 못한 것보다 당신의 슬픔이 더 가슴 아프오. 알패오를 데리고 갑시다. 그 애에게, 죄 없는 알패오에게 기도하라고 합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이 아이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실 거요.”

 

“그래요, 주님께 서원합시다. 우리 아이는 주님께 바쳐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아이를 주시기만 하면… 오!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어 보았으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순진한 알패오가 말한다.

 

“난 아줌마를 엄마라고 부르겠어요.”

 

“그래라, 내 귀염둥이야. 그러나 너에게는 엄마가 있지만, 나에게는 아이가 없구나.”

 

환상이 여기서 그친다. 나는 이 환상으로 마리아의 탄생에 관한 일련의 사건들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나는 그것을 몹시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기쁘다. 나는 당신도 기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나는 성모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내 사랑하는 딸아, 나에 대한 글을 써라. 네 모든 고통이 위로받을 것이다.”

 

성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한 손을 내 머리에 얹고 상냥하게 쓰다듬어 주셨다. 그런 다음 이 환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50대 부인의 이름을 듣기 전까지는 내가 성모님의 어머니 앞에 있고, 결국 성모님 탄생의 은총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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