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은 영혼에는 빛, 육체에는 구원인 눈 가져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6] 안나의 정결례와 마리아의 봉헌

강명준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1/13 [14:22]

성인들은 영혼에는 빛, 육체에는 구원인 눈 가져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6] 안나의 정결례와 마리아의 봉헌

강명준 변호사 | 입력 : 2018/01/13 [14:22]

 

[번역 : 강명준 변호사 / 편집 : 추광규 기자]

 

 

1944. 8. 28.

 

나는 요아킴과 안나가 즈카르야, 엘리사벳과 함께 예루살렘의 어떤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보는데, 틀림없이 친구나 친척의 집일 것이다. 그들은 정결례를 행하기 위하여 성전을 향해 간다.

 

안나가 아기를 안고 있는데, 아기는 가벼운 모직으로 만든 넓은 천으로 꼭꼭 잘 쌌는데,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틀림없다. 안나는 가끔씩 곱고 따뜻한 천의 끝을 쳐들고 마리아가 숨을 잘 쉬는지 보고 나서 맑지만 추운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로부터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다시 여며 주는데, 얼마나 조심스럽고 사랑스럽게 자기의 작은 아기를 안고 보살피는지 묘사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엘리사벳은 양손에 꾸러미들을 들고 있고, 요아킴은 크고 하얀 어린양 두 마리를 끌고 오는데, 어린양이라기보다는 다 큰 숫양이라고 할 만하다. 즈카르야는 손에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다. 그는 흰 모직으로 된 무거운 겉옷 안에 속이 들여다보이는 아마포 옷을 입고 있는데, 아주 잘 생긴 모습이다.

 

내가 이미 세례자가 태어났을 때에 본 즈카르야보다 훨씬 더 젊어 보이는 한창 때의 중년남자이다. 엘리사벳도 원숙한 부인이지만 아직은 젊어 보이는데, 그녀는 안나가 아기를 들여다볼 때마다 황홀해하며 잠 든 작은 얼굴을 들여다본다. 짙은 청보라 색 옷을 입고, 머리를 덮고 양어깨에 흘러내린 같은 색깔의 베일을 쓴 안나도 매우 아름답다.

 

요아킴과 안나는 명절 옷을 입고 있는데 엄숙하다. 여느 때와는 달리 요아킴은 암갈색 튜닉을 입고 있지 않고 대단히 붉은, 지금 우리가 성 요셉의 빨강이라고 부르는 색깔의 긴 옷을 입었는데, 겉옷의 가장자리에 달린 술이 새 것인데다가 아름답다. 그도 둥글게 가죽 끈으로 고정된 장방형의 두건을 쓰고 있다. 그의 몸에 걸친 것은 모두가 새 것이고 품질이 좋은 물건이다.

 

오, 안나는 오늘 짙은 색 옷을 입고 있지 않다. 그녀는 빛바랜 상아색에 가까운 아주 옅은 노란색 옷을 입고 있는데, 허리와 목과 손목에는 은과 금처럼 보이는 긴 띠 하나로 고정시켰다. 머리에는 아주 옅은 담홍색 베일을 쓰고 있는데, 이마의 머리카락에 얇은 귀금속 핀으로 고정시켰다. 목에는 선 세공한 목걸이를 걸었고, 손목에는 팔찌를 끼었다. 그녀는 입고 있는 옷의 품위와 특히 같은 색으로 아름답게 수놓은 그리스 식 만(卍)자 무늬의 단을 단 망토로 인하여 정말 여왕 같아 보인다.

 

“언니는 결혼식 때의 모습과 똑같아요. 그때 나는 갓 성인이 되었었지만 언니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요.”

 

엘리사벳이 말한다.

 

“지금 나는 훨씬 더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이 예식을 위해서 같은 옷을 입기로 결정했다. 나는 이 날 입으려고 이 옷을 보관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 예식을 위해 다시 입을 수 있을 거라고는 더 이상 기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언니를 아주 많이 사랑하셨어요.”

 

엘리사벳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때가 되었을 때 언니는 어떻게 아기를 언니 마음에서 떼어 놓으실 수 있겠어요?”

 

“나에게는 아기가 없었는데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렇게 하겠다. 아기가 성전에 있게 될 때에 ‘아기는 지성소 가까이에서 기도드린다. 엄마를 위해서도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기도드린다’고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할 것이고 그래서 나는 평화를 누릴 것이다. ‘그 아기는 전적으로 주님의 것이다. 그 아기를 하늘로부터 받은, 늙었지만 행복한 이 부모가 죽어도 영원하신 주님께서 여전히 그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주실 것이다’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더 큰 평화를 느낄 것이다.

 

정말이다. 나는 그것을 확신한다. 이 아기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님께서 내 눈물을 닦아 주시고, 내 바람과 내 기도를 이루어 주시려고 하느님의 선물인 이 아기를 내 품에 안겨 주셨다. 그러니 아기는 주님의 것이다. 우리는 아기의 행복한 보호자다. 이것으로 인해 주님을 찬미하자!”

 

그들은 이제 성전 담장에 도착한다.

 

“두 분이 니카노르 문으로 가시는 동안 저는 사제에게 가서 알리고 나서 그리 가겠습니다.”

 

즈카르야는 이렇게 말하고 회랑으로 둘러싸인 큰 마당의 입구인 아치 뒤로 사라진다. 일행은 이어져 있는 계단식 정원으로 계속 간다. 내가 이 말을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성전 경내의 땅은 높이가 같지 않고 점점 더 높아지는 연속적인 단이 이어져 올라가기 때문이다. 각 마당에는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데, 단마다 작은 마당들과 회랑들과 대리석, 청동, 금으로 화려하게 세공한 출입문들이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가져온 물건들을 꺼내기 위하여 그들이 발을 멈춘다. 기름기가 많은 넓고 납작한 케이크들과 흰 밀가루, 버들가지로 만든 새장에 넣은 비둘기 두 마리와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커다란 은전 두 개다. 그 은전들은 꽤나 무거운데 그 시절에는 옷에 호주머니가 없어 다행이다.  

 

청동과 은을 꼬아서 세공한 아름다운 니카노르 문이 여기 있다. 즈카르야는 아마포 옷을 입고 있는 위엄 있는 사제 곁에 있다.

 

정화수가 뿌려진 다음 안나는 제물을 바치는 제단으로 나오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제 아기는 어머니의 품에 있지 않다. 엘리사벳이 아기를 안고 문 밖에 있다.

 

요아킴이 울고 있는 불쌍한 어린양을 끌고 아내 뒤로 간다. 나는 마리아의 정결례 때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살육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다.

 

이제 안나는 깨끗해졌다. 즈카르야가 동료사제에게 몇 마디 말을 속삭이자 동료는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다음 그 사제는 다시 모인 일행에게로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그들의 기쁨과 약속에 대한 믿음을 축하하고 그들로부터 두 번째 어린양과 밀가루와 케이크들을 받는다.

 

“그렇게 해서 이 딸이 주님께 바쳐졌습니까? 주님의 강복이 아기와 당신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여기 한나가 옵니다. 그녀는 아기의 선생들 중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세르 지파 프누엘의 딸 한나입니다. 자, 이리 오십시오, 이 아기는 성전에 찬미의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당신이 이 아기의 선생이 될 것이고, 당신의 지도 아래서 아기가 거룩하게 자랄 것입니다.”

 

백발이 된 프누엘의 딸 한나가 아기를 쓰다듬자 아기는 잠이 깨서 천진난만한 눈으로 모든 흰색과 햇빛에 반짝이는 모든 금을 쳐다본다. 의식이 끝난 모양이다. 나는 마리아를 바치는 특별한 의식을 보지 못했다. 아마 거룩한 장소에서 사제에게 특히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으로 충분한 모양이다.

 

“나는 성전에 제물을 바치고 나서 작년에 빛을 보았던 저곳에 가 보고 싶어요.”

 

안나가 말한다.

 

그들은 프누엘의 한나와 함께 그리로 간다. 그들은 여자들이고 여자아이에 관한 일이므로 실제 성전에는 들어가지 않는데, 마리아가 자기 아들을 바치러 갔던 곳으로 가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활짝 열린 문 바로 가까이에서 어두컴컴한 안쪽을 바라보는데, 그곳에서는 처녀들의 부드러운 노랫소리가 들려나온다. 또한 그 곳에는 값진 등들이 켜져 있는데 그 황금빛이 하얀 백합꽃들이 피어 있는 두 개의 화단 위를 비춘다.

 

“내 백합꽃아, 3년 후에는 너도 여기 와 있게 된다.”

 

홀린 듯이 안쪽을 바라보면서 느린 노랫소리에 미소 짓는 마리아에게 한나가 약속한다.

 

“아기가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

 

프누엘의 한나가 말한다.

 

“예쁜 아기입니다. 이 아기는 내 친딸이라도 되듯이 사랑스럽습니다. 아기 어머니, 저에게 그것이 허락된다면 친딸처럼 사랑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즈카르야가 말한다.

 

“할머니는 이 아기를 봉헌된 처녀로 받으실 것입니다. 저도 그 때 오겠습니다. 저는 그날 여기 와서 아기에게 들어오자마자 저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하겠습니다.”

 

그가 말하면서 아내를 바라보자 아내는 알아듣고 한숨을 내쉰다. 예식이 끝나고 프누엘의 딸 한나가 물러가고 일행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성전을 떠난다. 나는 요아킴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

 

“이 기쁨을 위해서,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해서 나는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어린양 두 마리뿐 아니라 전부라도 바치고 싶습니다.”

 

환상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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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솔로몬은 자기의 지혜의 책에서 말한다. ‘어린이는 누구나 나에게로 오너라.’ 참으로 영원하신 지혜(the Eternal Wisdom)는 성채(城砦)에서, 당신의 도성의 성곽에서 영원한 처녀(the Eternal Maiden)인 마리아를 소유하기를 갈망하시며 그녀에게 ‘나에게로 오너라’ 하고 말씀하신다.

 

나중에 지극히 순결한 이 처녀의 아들이 말할 것이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게 하여라. 하늘나라는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처럼 되지 않는 사람은 내 나라에서 자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목소리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하늘의 목소리가 어린 마리아에게 ‘나에게로 오너라’ 하고 말하는 동안 그 사람(Man)의 목소리는 ‘너희가 어린이처럼 될 줄을 알거든 나에게로 오너라’ 하고 말하면서 자기 어머니를 생각한다. 나는 너희 본보기로 내 어머니를 준다.

 

여기 비둘기 같이 순박하고 순결한 마음을 가진 완전한 소녀가 있다. 세월과 세상과의 접촉도, 부패하고 비뚤어지고 거짓된 영도 이 소녀를 손상시키지 못했다. 마리아는 손상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아기를 살펴보면서 나에게로 오너라.

 

저 아기를 보는 네가 말해 다오. 저 어린 아기의 눈빛이 십자가 아래에서나 성령강림의 환희 속에서나 영원한 잠에 들어가려고 그의 눈꺼풀이 영양의 눈과 같은 그의 눈을 가릴 때에 네가 본 그 눈빛과 다르냐? 아니다. 여기서는 영아의 불분명하고 놀란 눈빛인데, 그 다음에는 성모영보(the Annunciation)의 놀라워하는 겸손한 시선, 그 다음에는 베들레헴에서의 어머니의 지극히 행복한 눈빛, 그 다음에는 숭고한 내 첫째 제자로서의 흠숭하는 눈빛, 그 다음에는 골고타에서 고통당하는 어머니의 고문당하는 것 같은 눈빛, 그 다음에는 부활과 성령강림 때의 빛나는 눈빛, 그 다음에는 임종 시에 황홀한 잠이 드는 베일에 덮인 눈빛이다.

 

그러나 보기 위하여 최초로 눈을 뜰 때에나 많은 기쁨과 소름끼치는 일을 본 다음 마지막 광선에 피로하여 감길 때에나, 눈은 마리아의 이마 아래에서 빛나는 하늘의 한 조각처럼 항상 맑고 깨끗하고 조용하다. 분노, 오류, 교만, 호색, 증오, 호기심은 희뿌연 구름으로 이 눈을 더럽힌 적이 결코 없었다.

 

그 눈은 울든지 웃든지 사랑으로 하느님을 쳐다보며 하느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어루만지고 용서하고 참고 견디었으며, 마음에 침투하기 위하여 눈을 그토록 많이 사용한 악의 공격에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손상되지 않았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성인들,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이 가진 눈은 맑고 안온하고 축복하는 눈이다. 내가 말하였다. ‘몸의 등불은 눈이다. 네 눈이 건강하면 네 몸 전체가 빛으로 충만할 것이다. 그러나 네 눈이 병들었으면 네 몸 전체가 어둠으로 가득할 것이다(마태 6,23-역주).’ 성인들은 영혼에는 빛이고, 육체에는 구원인 눈을 가졌다. 왜냐하면 그들이 마리아처럼 일생동안 하느님만을 바라보았고, 하느님을 기억하였기 때문이다.

 

작은 목소리야, 나의 이 말의 뜻을 설명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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